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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무엇이 나의 젠더 정체성을 결정할까?》:
인간 성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 트랜스젠더를 지지하는 급진 페미니즘의 견해

아이다 은디아예 지음, 레아 뮈라비에크 그림, 이현 옮김, 김석 감수, 돌배나무, 48쪽, 9,000원

이 책은 돌배나무 출판사가 발간하는 “청소년을 위한 철학 입문서” 시리즈의 13번째 책이다.

프랑스 고등사범학교 출신의 철학 교수이자 공영 라디오 방송사 프랑스 엥테르의 칼럼니스트인 아이다 은디아예가 썼다. 50쪽이 안 되는 얇은 책인데, 만화 작가인 레아 뮈라비에크의 재미있는 컬러 삽화도 자주 등장해 손이 가는 책이다.

책에서 던지는 질문도 흥미롭다. 성별과 젠더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성별은 단지 자연적인 것인가?, 젠더는 단지 문화적인 것인가?, 젠더는 사실인가 아니면 사회적 규범인가?, 젠더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하는가?, 젠더 사이의 지배라는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젠더에 대해 더 명확하게 생각하려면 젠더를 뛰어넘어야 할까? 등.

그런데 이 질문들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 명료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인간의 성(성별과 젠더)에 대한 견해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고, 얇은 책에서 저자의 견해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탓도 있겠으나, 이하에서 서술하겠지만 저자 관점의 문제가 크다.

저자는 여러 철학자·사회학자·페미니스트를 인용하는데, 전반적으로 보면 대체로 1970년대 프랑스 제2물결 페미니즘 경향(클레트 기요맹, 크리스틴 델피, 모니크 비티크 등)을 바탕에 두고 퀴어이론, 교차성 개념을 얼마간 수용한다. 프랑스 제2물결 페미니즘의 한 축은 구조주의 영향 속에서 이분법적 성별이 ‘자연적’이라는 통념에 도전했다.

이 책에서도 성별(생물학적 성, 즉 섹스를 말함)과 젠더를 설명하는 부분에는 장점이 있다.

저자는 성별 고정관념을 반대하며, 인간의 성을 이분법적인 생물학 특성으로 환원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간성인,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의 존재에 대해서 우호적으로 언급한다.

동시에 저자는 젠더를 단지 문화적인 것으로만 보지 않고 “생물학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이라고 지적한다. 즉, 남성성/여성성 구성은 그 신체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성이 오로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보는 학자들은 거의 주목하지 않는 점이다.

젠더가 규범적으로 작동한다는 저자의 설명은 타당하다.

하지만 성별에서 젠더가 곧장 도출된다는 상식(성별→젠더)을 잘 반박하는 것을 넘어서, 성별과 젠더의 관계가 어떤지를 통합적으로 설명하진 않는다(못한다). 명료하게 스스로 규정하진 않지만 저자는 크리스틴 델피(델피는 이슬람혐오에 반대하는 옳은 입장을 취한 프랑스의 급진 페미니스트이다)나 주디스 버틀러와 같이 젠더가 성별을 선행한다는 관점에 서 있는 듯하다(젠더→성별).

그런 관점은 ‘성별→젠더’ 관점보다 인간 성의 다양성과 유동성을 이해하는 데서 훨씬 낫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 방법을 이용하면 더 통합적으로 성별과 젠더에 접근할 수 있다. 즉, 인간 성의 사회적이자 의식적인 요소인 젠더는 생물학적(자연적) 요소인 성별로 환원되지 않지만 완전히 분리돼 있지도 않다. 둘은 상호작용한다.

한편, 젠더가 위계적으로 조직돼 있는 현실, 즉 여성 차별과 그 대안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문제가 많다.

저자는 남성이 여성을 “지배”한다고 보는데, 그 원인을 프랑스 인류학자 프랑수아즈 에리티에의 견해를 따라 ‘여성의 출산 능력을 남성이 장악하려는 것’에서 찾는다.

하지만 남성이 왜 여성의 출산 능력을 장악하려고 하는지, 그런 욕망을 왜 남성 일반이 공통으로 가지게 됐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결국 여성 차별의 원인을 생물학으로 돌리는 데로 미끄러지게 된다.

그런 설명은 결국 저자가 비판하는 프로이트의 ‘남근 선망’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에 불과하며, 계급 등장 이전 사회에서는 여성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남성이 여성의 출산을 점유·통제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진실도 부정한다. 앞에서의 생물학적 본질주의 비판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대안으로 저자는 “젠더 해체”를 제시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아마 독자를 격려하려는 취지이겠지만) 소박하게 “젠더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이미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성별이분법과 성별 고정관념은 이성애적 가족을 기반으로 한 사회 질서의 산물이고, 간성인,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뿐 아니라 남녀 사람들 모두를 고통스럽게 한다. 제도와 일상 규범, 사람들의 생각에서 성별이분법이 해체되고 더 다양한 젠더를 폭넓게 수용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여성 차별과 엄격한 성별 규범이 계급 사회의 등장으로 시작됐고, 오늘날에는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방식과 긴밀하게 관련돼 있음을 인식한다면(특히 자본주의하의 가족제도가 결정적 구실을 한다) 진정한 성 해방은 총체적 사회 변혁의 맥락 속에서만 가능하다.

이 책에서 던진 흥미로운 질문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유물론적 여성 해방론이 더 명료한 대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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