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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퇴진 운동 극우 팔레스타인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여성이란 무엇인가? ― 트랜스 여성은 여성이다

여성의 범주는 차별에 맞선 투쟁 속에서 형성되고 쟁취돼 왔다 ⓒ출처 Steve Eason (플리커)

4월 16일 영국 대법원은 여성의 법적 정의가 “생물학적 성별”에 근거한다고 판결했다. 또한 “사람은 여성 또는 남성 중 하나”라며, 이분법적 성별 틀을 거부하는 많은 사람들(특히 논바이너리)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판결은 트럼프 정부를 비롯해,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아예 삭제하려고 드는 극우를 고무할 것이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이는 “생물학적” 여성에게도 결코 좋지 않은 일이다.

이 판결은 스코틀랜드의 트랜스 배제적 여성 단체 ‘여성을 위한 스코틀랜드’가 성별은 “변경될 수 없는 생물학적 상태”라며, 영국의 평등법(차별금지법) 내 “여성” 규정을 생물학적 여성으로만 한정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의 결과였다.

해리포터 작가 JK 롤링을 비롯한 트랜스 혐오자들은 이 판결을 쌍수 들고 환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개신교 우익 언론들이 이를 고무적인 소식으로 보도했다. 안타깝게도,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트랜스 배제적 페미니스트들도 이 판결을 환영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영국의 트랜스젠더에게 실질적인 후퇴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영국의 여러 공공 서비스 부문(보건, 교육 등)에서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후퇴시킬 것이다.

성별 이분법은 트랜스든 시스젠더든 모두에게 해롭다 ⓒ출처 Ted Eytan (플리커)

극우를 고무하는 판결

위에서 언급했듯이, 일반으로 트랜스 배제적 페미니스트들은 이번 영국 대법원 판결이 여성의 권리를 보호할 승리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판결은 낙태권 후퇴나 폭등하는 육아 비용 등 수많은 여성들이 겪고 있는 실질적 성차별 문제들을 개선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트랜스젠더를 공격하고 페미니즘과 여성에 대한 비하를 일삼는 극우들이 이 판결에 고무되고 있다는 건 매우 시사적이다. 트럼프는 “여성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여성은 단지 자궁이 아니다” 하고 외친 낙태권 운동의 구호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말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임신중지권 후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국의 개신교 우익도 트랜스 여성 혐오를 부추기면서도 페미니즘을 “악한 사상”(지난해 10월 연합예배 100대 기도문 중)이라고 비난해 왔다. 그들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한 윤석열을 지지했다.

“생물학적 특성은 숙명이 아니다”

이번 영국 대법원 판결은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라는 ‘상식적인’ 관념에 기댄다.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이 고정돼 있다는 관념은, 본래 남성은 경쟁적이며 적극적이고 여성은 본래 섬세하며 돌보는 존재라는 매우 보수적인 관념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돼 왔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여성 해방 운동은 이러한 성 고정관념에 강력히 도전했다. 그들은 여성이 집안일에 갇혀 가사와 육아에만 묶이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들은 “생물학적 특성은 숙명이 아니다”라며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별(gender)을 구분했다.

하지만 적잖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차별이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기에 발생했다는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생물학 결정론에 다시금 문을 열어 줬다. 즉,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폭력적이며 지배적이고,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양육적이며 협동적인 특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고정된 생물학적 성이 여성 차별을 이해하는 핵심으로 등장하게 됐다.

그런데 이것은 그들의 일부가 트랜스 혐오적인 관념을 받아들이도록 이끌었다.

그들은 젠더와 생물학적 특성을 예리하게 구분하며, 젠더는 오직 사회적(그들이 말하는 ‘가부장제’)으로 강요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받아들이면 젠더 정체성을 허구적인 것이나 문제적인 것으로 치부하기 쉽게 된다. 그래서 심지어 “젠더를 폐지해야 한다”며 트랜스젠더를 문제 삼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생물학적 성과 젠더의 상호작용

그러나 생물학적 성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결코 이분법적이지 않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생물학자들은 생물학적 성이 이분법적이 아니라 스펙트럼이라는 점을 밝혀 왔다. 많은 복합적인 과정들이 태아의 성을 결정하는 데 작용한다.

어떤 사람은 염색체 성이 생식기와 다를 수도 있다.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들 사이에서도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매우 다양하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복잡하고 정교한 생물학적 성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는데도, 사회는 여전히 이분법적 성을 강요하고 있다.

여성이 대체로 임신·출산을 할 수 있다는 생물학적 사실은 “여성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연결된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적 젠더 규범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부단한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통해서만 유지된다.

태어난 순간부터 젠더는 언어, 옷, 장난감, 부모와 교사의 기대와 상호작용 등을 통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다. 여자 아이의 방은 핑크색으로 꾸며지고, 남자 아이의 방은 파란색으로 칠해진다.

오로지 사회 규범 때문에, 간성으로 태어난 아기들은 생식기를 여성이나 남성 중 하나로 정하기 위한 수술을 받는다.

그런데 생물학적 특성도 젠더와 사회적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다. 빈곤은 여성의 몸과 태아의 몸에 영향을 미친다. 가난이나 비난 때문에 피임을 못한 여성들은 출산 과정에서 커다란 신체적 변화를 겪는다. 여자 아이들은 종종 육체적 활동(가령 체육)에 적극 참가하도록 기대받지 않으며 때로는 아예 배제된다.

과학의 발전도 생물학적 요소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아직 염색체를 바꿀 수 없지만, 호르몬은 변화시킬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젠더에 맞추기 위해 머리, 치아, 몸을 수없이 바꾸며 살아간다.

생물학적 성과 젠더는 상호작용한다. 여성의 아이 낳는 능력은 수만 년 동안 지속돼 왔다. 그러나 그 생물학적 특징이 여성의 삶과 출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시대에 따라 매우 달랐다.

저명한 젠더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는 생물학적 성과 젠더를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버틀러는 젠더를 “생물학적 현실과 사회적 현실이 상호작용하는 장소”라고 주장한다.

이런 복합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발전시킨다. 이는 개인적으로 깊이 느껴지는 내적인 경험이며, 출생 시 부여된 성별과 일치할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젠더 자체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트랜스 여성은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가?

일각에서는 트랜스 여성은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이 겪은 경험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짜 여성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같은 여성이라도 계급 차이에 따라 경험이 다를 것이다. 부유한 여성들도 난민캠프에서 생리를 겪거나, 생계 걱정으로 폐경기에 휴가도 못 내는 경험을 해 본 적은 없다. 그들은 미국의 흑인 여성들이 경찰 폭력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경험도 모를 것이다. 그럼에도 경험의 차이가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트랜스 여성이 여성 전용 공간이나 쉼터에 머무는 것이 여성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은 트랜스 여성이 사실상 ‘가짜’ 또는 ‘사기꾼’이라는 전제에 기초한다. 트랜스 여성에게 여전히 남성 성기가 있을 수 있고, 남성 성기는 곧 성폭행 위협이라는 식이다. 이는 최악의 생물학 결정론이다.

성폭행을 비롯한 성폭력은 결코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난 사람의 본성 같은 것이 아니다. 성폭력은 생물학이 아니라 사회관계에서 비롯한다.(《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과 성차별, 성폭력》, 실라 맥그리거 저, 책갈피 간을 참조)

2024년 UCLA 법학전문대학원은 트랜스젠더 차별을 완화하는 법률이 제정돼도 공중 화장실이나 탈의실 등에서 범죄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오히려 연구 결과는 트랜스 여성과 남성이 시스젠더에 비해 폭력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무려 4배로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트랜스 여성은 남성 교도소로 이감됐을 때 괴롭힘과 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단지 폭력뿐 아니다. 트랜스젠더는 생계, 고용, 학업 등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체계적 천대를 받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보육, 의료, 저임금 철폐, 불평등 해소 등의 요구를 공유한다.

다양한 사회에서 성별 이분법에 갇히지 않은 다양한 젠더를 인정했다 그 사례인 북미 원주민 사회의 "두 영혼의 사람" ⓒ출처 Omaha Public Library

여성과 트랜스젠더 차별의 뿌리

역사적으로도 다양한 사회들에서 남성과 여성 외의 젠더가 존재했다. 예를 들어, 남아시아의 히즈라, 북미 원주민의 ‘두 영혼의 사람’ 정체성들이 그 예시다.

여성과 트랜스젠더의 차별은 뿌리가 같다. 6천~1만 년 전 계급 사회가 등장하면서 가족 제도가 생겨났다. 부·재산·지위를 세습하기 위해 일부일처제가 도입됐고 여성의 성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성 역할이 강제됐다. 이에 따라 이전 사회에서는 수월했던 젠더 전환이 금지되거나 비난의 대상이 됐다.

19세기 자본주의 가족 제도 개편 속에서 성역할은 강화됐다. 이성애 남성과 여성으로 이뤄진 핵가족이 노동력 재생산에서 핵심 역할을 하게 됐다. 이런 가족 제도는 남성성, 여성성에 대한 케케묵은 편견을 계속 재생산하는 핵심 구실을 한다.

가족 제도 개편이 벌어지던 때,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약소민족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존재하던 젠더 다양성을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억압하고 성적 이분법을 강요했다.

이처럼, 성별 이분법은 생물학적 특성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토대에서 비롯한 강압적 통제 방식이다. 이 통제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트랜스든 시스젠더든 모두를 가둔 감옥의 벽을 허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여성이 무엇이며,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는 사회 상층에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천대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저항 속에서 형성되고 투쟁 속에서 쟁취된다.

오늘날 성차별에 맞선 저항은 고정된 성역할 규범에 도전해야 하고, 이런 저항에 트랜스젠더와 시스젠더는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

이번 영국 대법원 판결을 규탄하며 영국 전역에서 수천 명이 트랜스젠더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런 투쟁에 노동운동이 동참한다면 매우 좋을 것이다.

모든 곳의 극우는 영국 대법원 판결에 고무돼 자신들의 의제에 써먹을 것이다. 이미 지난해 10월 27일 개신교 우익 목사들은 차별금지법 반대 연합 예배를 열고(수십만 명이 운집했다), 트랜스젠더 혐오를 이용해 차별금지법을 반대했다.

트랜스젠더 차별에 단호히 반대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 트랜스젠더와 여성 해방을 자본주의 체제와 연결시키며 노동자 운동도 동참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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