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공격 극우에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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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제26회 서울 퀴어퍼레이드가 열린다. ‘성소수자의 명절’인 퀴어퍼레이드가 올해에도 성대하게 치러지길 바란다.
같은 날, 퀴어퍼레이드에 반대하는 개신교 극우의 집회도 열린다(‘거룩한방파제 통합국민대회’). 개신교 극우는 2014년부터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퀴어퍼레이드 반대 집회를 열어 왔다. 올해 서울에는 수만 명이 참가한다.
통합국민대회는 퀴어퍼레이드 반대, 차별금지법 반대, 성평등 교육 반대, 임신중지 허용 반대 등을 주요 요구로 내걸고 있다. 주최측은 이 집회가 “오늘날 계속해서 공격해 오는 젠더 이데올로기, 성 혁명[에 맞선] … 거룩한 방파제”라고 말했다.
“젠더 이데올로기”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극우가 이용하는 정치적 수사이다. 극우들인 미국 트럼프, 러시아 푸틴, 브라질 보우소나루, 헝가리 오르반,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 등이 모두 ‘젠더 이데올로기’를 공격했다.
“젠더 이데올로기”
통합국민대회의 주요 조직자들도 극우 인사들이다. 그들은 윤석열 쿠데타를 지지하고 탄핵에 반대했었다.
사무총장인 홍호수 목사는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를 이끌어 온 ‘세이브코리아’의 준비위원장이었고 자유통일당 전신인 기독자유통일당의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준비위원장인 이용희 교수, 특별위원장 박한수 목사, 전문위원장 조영길 변호사 모두 ‘세이브코리아’ 집회에 참석해 연설했고, 청년위원장 김혜수(한예종)는 자신의 학교에서 탄핵 반대 시국선언을 조직했다.
박한수 목사는 ‘세이브코리아’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산주의와 같은 위험한 사상을 가진 자들이 국민을 눈속임하고 멸시하지 않도록 이 나라를 지켜내야 한다. … 현 정부[윤석열 정부]를 지켜 주는 것이 자유대한민국을 지켜 주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짓밟으려 한 쿠데타 옹호자들이 천대받는 성소수자들이 일 년에 하루 마음껏 자신을 드러내고 즐기는 축제인 퀴어퍼레이드도 공격하는 것이다. 그들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며 ‘표현의 자유’ 운운하는 것은 더욱 역겹다.
극우들은 퀴어퍼레이드뿐 아니라, 지난 수년간 기층에서 성교육 반대 운동, 성평등 도서 퇴출 운동, 학생인권조례 폐지 운동,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을 ‘젠더 이데올로기’에 맞선 투쟁의 일환으로 벌여 왔다. 일부 공격은 성공하기도 했다. 이재명의 공약인 ‘성평등 가족부’에 대한 반대도 거셀 듯하다.
극우에게 “젠더”는 인구 감소, 성적 방종, 가족 해체, 임신중지, 성소수자 권리, 도덕적 타락 등과 동일시된다. “젠더”는 온갖 비난의 집합소가 되고, 공포가 되고, 가짜 원인으로 제시된다. 그래서 극우에게 “젠더”는 여러 의제와 집단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상징적 접착제” 구실을 한다. 이를 통해 극우는 외연을 확장하고 성장해 왔다.
극우의 전술 무기
극우의 방법은 부풀리고 왜곡해서 사람들의 공포심을 부추기는 것이다.
극우의 젠더 이데올로기 비판은 이렇다: ‘젠더를 인정하면 성이 “50여 가지”가 되고, 결국 성별이 해체된다. 젠더 지지자들(성소수자 활동가, 페미니스트, 좌파 등)은 이렇게 젠더를 통해 생물학적 성을 부정함으로써, 전통적 규범인 결혼, 가정, 사회 제도, 기독교적 가치, 나아가 인류까지도 파괴하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성은 생물학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인간의 성은 단지 생식을 위한 것으로만 발전하지도 않았고, (인간 성의 일부인) 성적 행동이나 태도는 사회마다 달랐다. 인간의 성은 생물학적 요소(섹스)와 사회적 요소(젠더)의 상호작용 속에서 봐야 한다. 그 둘을 예리하게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젠더를 인정한다고 해서 생물학적 성이 부정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극우가 젠더를 한사코 거부하며 악마화하는 것은, 그것이 사회 문제들(예컨대 저출생, 가정 위기, 청소년 일탈 등)의 책임을 엉뚱한 대상들에게 돌리기 쉽기 때문이다. 반면 진정한 책임이 있는 사회 체제와 지배자들은 면죄부를 얻는다.
주디스 버틀러는 반(反)젠더 운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반동적 운동이 보기에 ‘젠더’라는 용어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증대한 경제적 불안정성, 사회적 불평등 심화, 팬데믹 시기의 사업장 폐쇄로 생겨난 다양한 사회적·경제적 불안감을 끌어모으고 응축시키고 고조시킨다.”
수십 년간 신자유주의로 인한 복지 삭감, 불평등 확대는 사람들을 궁지로 내몰고 가족에 더 많이 의존하게 만들었다. 심화하는 경제·사회 위기는 가족 구성원을 압박하고 옥죄고 때로는 결국 해체시켰다.
극우는 사람들이 느끼는 이런 불안감을 문제의 원인인 사회 체제가 아니라, 애먼 트랜스젠더, 동성애자, 페미니스트, 좌파 탓으로 돌린다. 한 좌파 측 젠더 연구자는 “반젠더 운동과 사상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우파적 비판”이라고 지적했다.
신자유주의를 오른쪽에서 공격
동시에, 극우는 ‘젠더의 파괴성’을 강조함으로써 기존 질서를 복원하기 위한 법과 국가 권력 강화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극우는 사람들이 갖는 불안감의 진정한 원인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반젠더 극우의 대안은 전통적 가족 가치와 성별 규범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그들은 여성이 일차적으로 있어야 할 공간은 가정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통적 가족(특히, 그 안의 여성)은 현재와 미래 노동력 재생산이라는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극우가 전통적 가족 가치를 강조하며 그에 위협이 되는 존재들을 악마화하는 것도 자본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때문이다.
젠더는 좌파나 페미니스트들을 분열시키기도 하는 쟁점이기도 하다.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입학을 좌절시킨 것은 극우가 아니라 일부 분리주의적(남혐) 페미니스트들이었다.
이것은 극우가 젠더 반대 운동을 더욱 효과적으로 펼 수 있게 하는 조건이 된다.
극우가 사회를 반동적 악몽으로 만들려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젠더 차별에도 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