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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팔레스타인·이란전쟁 내란 청산과 극우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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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로 본 표현의 자유 문제

표현의 자유는 현대 민주주의에서 거의 신성불가침한 권리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권리만큼 다양한 정치 세력에 의해 전용(轉用)되고, 왜곡되고, 선택적으로 적용돼 온 것도 드물다. 우파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혐오표현을 정당화하고, 자유주의자들은 이를 모든 의견이 동등하게 경쟁하는 “사상의 자유 시장”이라는 환상 위에 세운다. 한편 파시스트들은 바로 그 자유를 발판 삼아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려 한다. 이 글들은 이 복잡한 지형을 꼼꼼히 탐색하면서, 좌파가 표현의 자유에 관해 일관되면서도 미묘하게 차별화된 입장을 견지하고자 애써야 함을 보여 주고자 한다.

표현의 자유는 애초에 누구의 것이었는가?

표현의 자유 개념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보편적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독재에 맞서 싸운 거대한 대중 항쟁의 산물이었으며, 이후로도 국가 권력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받고 억압받아 온 불안정한 권리였다. 그리고 이 사실을 가장 생생하게 입증하는 역사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의 최근 현대사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이 유신헌법을 선포하면서 한국의 표현의 자유는 체계적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 억압의 가장 날카로운 칼날은 ‘긴급조치’였다. 1975년 선포된 긴급조치 9호는 유신 체제에 대한 비판 일체를 금지했으며,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해 비상군법회의에 회부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 조항 아래 시인 김지하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박정희 체제에 맞서 사회 부패를 통렬하게 풍자한 담시 〈오적(五賊)〉을 쓴 죄였다. 국제 사회의 압박으로 사형은 면했지만, 그는 옥중에서 고문과 단식을 반복하며 6년을 보내야 했다.

같은 시기 언론인이자 학자였던 리영희는 냉전 이데올로기의 허구를 폭로하는 글들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거듭 구속됐다. 1977년 《8억인과의 대화》가 반공법 위반으로 판정받아 그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했던 일은 중국의 실상을 냉정하게 서술한 것, 즉 사실을 쓴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이 국가의 공인된 관점과 충돌한다는 이유만으로 감옥행이었다.

1974년 10월,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 선언을 발표했다. 정부의 보도 통제에 맞서 언론의 독립을 선언한 것이었다. 정권은 폭력 대신 경제를 동원했다.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가해 동아일보 광고를 전면 철수시켰다. 수입이 끊긴 신문사는 버티지 못했고, 1975년 봄 자유언론을 외쳤던 기자 수십 명이 해고됐다. 총칼 없이도 언론은 굴복했다.

1980년 광주는 또 다른 국면을 열었다. 신군부가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하는 동안, KBS와 MBC는 군의 지시에 따라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거나 왜곡 보도했다. 그해 11월 전두환 정권은 ‘언론 통폐합’을 단행해 172개 정기 간행물을 강제 폐간하고, 전국의 방송사를 통합했다. 한 번의 행정 명령으로 수십 개의 목소리가 지워졌다. 이 과정에서 1,000명이 넘는 언론인이 해직됐다.

1987년 소위 ‘민주화’ 이후에도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도구 노릇을 했다. 소설가 황석영은 1989년 방북 이후 귀국하자마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5년을 복역했다. 그가 쓴 것은 소설이었고, 그가 한 것은 분단된 민족의 다른 쪽을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이었다. 2005년에는 대학교수 강정구가 한국전쟁 기원에 관한 학술적 발언을 이유로 국가보안법 적용 논란에 휩싸였다. 역사 해석이 곧 범죄가 될 수 있는 국가였다.

2008년에는 전혀 다른 방식의 탄압이 등장했다. MBC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보도하자, 이명박 정부는 제작진 전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법원은 2010년 무죄를 선고했지만, 그사이 제작진은 몇 년간 법적 소송에 시달렸다. 같은 해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경제 비평 글을 올리던 블로거 박대성은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그의 죄목은 익명으로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한 것이었다. 법원은 그도 무죄로 판결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거리에서의 표현을 통제하는 무기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공장 옥상에서 농성을 벌이자 경찰은 헬기와 특공대를 동원해 강제 진압했다. 2015년 민중총궐기 당시에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로 피신한 뒤 결국 구속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이 인정한 죄목 하나는 허가받지 않은 집회를 개최한 것이었다.

2016년에는 박근혜 정부가 약 9,473명의 문화예술인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는 블랙리스트를 작성·운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의 정치적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 작가, 영화감독, 음악가, 시인들의 명단이었다. 총칼도, 법정 기소도 아닌 자금 차단이라는 방식으로 예술적 표현을 말살하려 한 것이다.

이 역사가 말해 주는 것은 분명하다. 표현의 자유는 지배 계급이 베풀어 준 선물이 아니라, 억압받는 자들이 투쟁으로 쟁취한 권리다. 자본주의 국가는 언제든 그 권리를 회수할 수 있으며, 실제로 수시로 그리해 왔다.

자본주의 하에서 표현의 자유는 평등하지 않다

자유주의자들이 즐겨 구사하는 논리 가운데 하나는, 자본주의 사회가 “사상의 자유 시장”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말할 수 있고, 좋은 생각은 결국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환상이다.

법적으로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신문사를 창간하고 방송국을 설립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막대한 자산을 소유한 소수뿐이다.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즉 이른바 ‘조중동’은 종합 일간지 시장을 과점하며 수십 년째 우파적 관점을 여론의 주류로 굳혀 왔다. 이 신문들은 단순한 언론사가 아니다. 각기 종합편성채널(TV조선, JTBC, 채널A)까지 거느리며 인쇄 매체와 방송을 동시에 장악한 복합 미디어 권력이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는 미디어법을 강행 처리한 것은 이 지배 구조를 법적으로 완성시킨 순간이었다. 야당과 시민단체가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며 저항했지만, 법안은 통과됐다. 돈이 있어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체제가 입법으로 공인된 것이다.

이 계급적 불평등은 언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통해 집단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한국에서 매우 위험한 행위였다. 노동쟁의법은 파업의 요건을 매우 까다롭게 규정하고, 이른바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해서는 직권중재 제도를 두어 파업 자체를 봉쇄했다. 파업에 나선 노동자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의 대상이 됐다.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맞서 파업한 노동자들에게 사측과 정부는 수십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후 여러 해 동안 해고 노동자들은 소송과 빈곤,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스물다섯 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파업이라는 집단적 ‘발언’의 대가가 죽음이었다.

법률 서비스에 대한 접근 불평등도 표현의 자유의 계급성을 드러낸다. 한국에서 명예훼손 소송은 권력자들이 불편한 비판자를 침묵시키는 수단으로 광범하게 활용돼 왔다. 형사상 명예훼손죄는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성립할 수 있다. 즉, 진실을 말했어도 기소될 수 있다는 뜻이다. 대기업이나 정치인을 비판한 언론인, 블로거, 활동가들은 종종 수억 원대 민사 손해배상 소송에 동시에 직면한다. 변호사를 선임할 여력이 없는 이들에게 이런 소송은 그 자체로 처벌이다.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소송이 진행되는 여러 해의 시간과 비용이 비판의 목소리를 스스로 거두게 만든다.

성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는 더 직접적인 법적 억압 앞에 처해 있다. 군형법 92조의6은 동의한 성인 군인 사이의 동성 성행위를 최대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한다. 202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이 조항은 여전히 살아 있다. 군에서 복무하는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 군법회의에 회부될 수 있다. 이보다 더 일상적인 억압도 존재한다. 서울시는 2015년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를 막기 위해 거듭 광장 사용 허가를 거부하거나 보수 단체에 선점 허가를 내줬다.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공적 공간에서 드러낼 권리조차 매년 법정에서 싸워서 얻어야 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수십 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혐오 발언으로부터 보호받을 제도적 장치 없이, 성소수자들의 ‘표현의 자유’는 공허한 구호에 머문다.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는 근본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는 ‘표현의 자유 수호자’를 자처했지만, 실상 그의 행보는 표현의 자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테슬라 공장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려 하자, 직원들에게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지하는 기밀 유지 정책에 서명하도록 강요했다. 스스로의 재산에 대해서는 3.3퍼센트의 실효 세율밖에 내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의 집단적 목소리는 철저히 억압했다.

이처럼 우파의 표현 자유 담론은 구조적 불평등을 외면한다. 미국 부통령 JD 밴스는 유럽을 돌며 극우 비판자들을 침묵시키는 법률에 항의했지만, 정작 미국에서 그의 동료들은 팔레스타인 지지 게시물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납치하고 추방했다. 자신들에게 편리한 ‘자유’만 옹호하는 이중성이다.

파시스트에게 발언 기회를 줄 수 없는 이유

표현의 자유 논쟁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은 파시스트들에 대한 ‘말할 기회 주지 않는 방법(이하 노 플랫폼)’이다. 단순히 무시하는 것을 넘어, 혐오 표현을 퍼뜨릴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나 단체가 공공 장소에서 발언하거나 활동하지 못하도록 강단이나 매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유주의적 관점에서는 아무리 혐오스러운 사상이라도 공개 토론을 통해 논파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에 강력히 반박한다. 옥스퍼드 유니언1이 영국국민당(BNP) 지도자 닉 그리핀과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데이비드 어빙을 초청했을 때(2007년), 혹은 마린 르펜을 불렀을 때(2015년), 주최 측은 ‘합리적 토론’으로 그들을 논파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닉 그리핀이 BBC의 정치 시사 토론 프로그램 〈퀘스천 타임〉에 출연했을 때 그의 논리는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나 그날 밤 무려 3,000명이 BNP에 새로 가입했다.

따라서 닉 그리핀이나 마린 르펜 같은 파시스트 지도자를 이곳에 초청하는 것은, 단순히 한 토론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영국 엘리트 사회의 권위를 빌려 그들에게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행위라는 것이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동지들의 핵심적 비판점이었다.

이것이 핵심이다. 파시스트들은 토론에서 이기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토론 참여 자체가 가져다주는 정당성의 외피다. 그 외피를 두르면, 거리에서 활동하는 그들의 돌격대에게 신호를 보내게 된다. 공개 패널로 등장하는 것은 파시스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그 자신감은 좌파와 차별받는 인종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진다.

역사적 증거는 충분하다. 1920년대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는 선거에 출마하며 합법적 정당을 자처하는 동시에 전투 조직인 ‘검은 셔츠단’를 동원해 노동조합 집회를 습격하고 활동가들을 살해했다. 주류 의회 정당들은 그를 여느 정당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며 헌법적 권리를 보장했다. 결과는 1922년의 권력 장악과 이후 모든 민주적 권리의 철폐였다.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히틀러의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던 자유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결국 히틀러가 세운 강제 수용소에 갇혔다.

1990년대 초 파시스트 영국국민당이 런던 웰링에 본부를 차리고 세력을 넓히던 시기, 그 지역에서는 일련의 인종차별적 폭행이 잇따랐고, 흑인 청소년 스티픈 로런스의 살해라는 비극이 벌어졌다. 이 사례는 파시스트 조직의 공개 활동이라는 것이 단순한 ‘나쁜 방안’에 그치지 않고 물리적 폭력으로 직결됨을 보여 준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파시스트에게 노 플랫폼 방침을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주장이 싫어서가 아니다. 파시즘은 의회 외부에서 폭력 조직을 구축하고, 모든 민주주의의 흔적을 말살하려는 특수한 정치 운동이다. 그것은 여타의 반동적 사상과는 차원이 다른 위협이다. 파시스트의 ‘표현의 자유’는 다른 모든 사람의 자유를 파괴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노 플랫폼 정책이 만능 해법은 아니다

그렇다고 노 플랫폼 전술이 불쾌한 주장 일체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노 플랫폼은 파시즘이라는 특수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발전된 수단이다. 노 플랫폼을 단순히 반동적이라고 여기는 견해 일체에 확대 적용하는 것은 역효과를 낸다. 일부 ‘트랜스 비판적’ 페미니스트들,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대학 교수들, 또는 이슬람혐오적 잡지 등은 분명 반박받고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파시스트와 똑같은 방식으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폭력 운동이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공개적 논쟁, 규탄 시위, 조직적 설득이 더 적절한 대응이다.

국가에 더 많은 검열 권한을 넘겨주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없다. 역사적으로 국가는 검열 권한을 확보하면 그것을 맨 먼저 좌파와 억압받는 집단에게 행사해 왔다. 국가보안법은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1948년 제정된 이 법은 원래 공산주의 활동을 봉쇄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노동운동가, 통일운동가, 언론인, 학자, 심지어 소설가에 이르기까지 정권에 불편한 목소리 일체를 탄압하는 만능 도구 노릇을 해 왔다. ‘이적 표현물’ 조항은 특히 악명 높다. 북한의 입장과 유사하다고 판단되는 주장을 하거나, 그런 내용이 담긴 문서를 소지하기만 해도 처벌 대상이 된다. 무엇이 ‘이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국가다. 이 조항 아래서 통일 운동 단체의 성명서가, 페이스북에 공유한 게시물이, 심지어 북한 국가를 지배계급 조직으로 보는 남한국제사회주의단체(ISSK)의 책자들이 기소의 근거가 됐다. 2013년 통합진보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강제 해산됐다. 선거로 국회의원을 배출한 정당이 사법적 결정 하나로 지도부가 구속되고 정당 자체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인터넷 검열 권한의 확장도 마찬가지 경로를 밟았다. 2000년대 이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불법·유해’ 정보를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온라인 콘텐츠 삭제 권한을 꾸준히 넓혀 왔다. 그 권한이 실제로 향한 곳은 아동 착취물이나 사기 사이트만이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정부 비판 게시물, 노동쟁의 관련 온라인 토론, 성소수자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삭제 또는 차단 조치를 받았다. 검열의 칼자루를 국가에게 쥐여 주면, 그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목을 겨눈다.

덴마크의 보수 성향 일간지 〈윌란스포스텐〉과 프랑스의 좌파 성향 주간 풍자 잡지 〈샤를리 에브도〉가 각각 2005년과 2015년에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만평을 게재했을 때 그들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무슬림들이 이미 심각한 차별과 억압에 시달리고 있는 사회적 맥락에서, 그 만평들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차별받는 인종 집단을 조롱거리로 삼는 행위였다. 그렇다고 이를 국가가 금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슬람혐오에 반대하는 대중 시위와 연대가 더 적절한 응답이다. 권력자에게 맞서는 항의와 소수자를 겨냥하는 혐오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우파의 표현 자유 담론에는 의도가 있다

오늘날 우파가 표현의 자유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정치적 의제, 이슈 주도권, 여론 형성을 위한 수단이다.

한국의 보수 세력이 ‘표현의 자유’를 무기로 삼는 방식은 두 가지 방향으로 동시에 작동한다. 한 방향으로는 스스로에게 편리한 발언의 자유를 확장하고, 다른 방향으로는 불편한 목소리를 ‘종북’이라는 낙인으로 봉쇄한다.

2019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이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폄훼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쏟아 냈을 때, 이들의 방어 논리는 ‘표현의 자유’였다. 광주 시민을 향해 총을 쏜 것이 북한 특수부대였다는 음모론, 유공자들을 ‘괴물 집단’으로 묘사하는 발언이 국회 토론회장에서 버젓이 발설됐다. 생존자와 유족들이 격분하며 법적 처벌을 요구했지만, 우파들은 이를 ‘역사 해석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로 맞받아쳤다. 광주 학살의 피해자들이 가해자 측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침묵을 강요받은 셈이었다.

반면 같은 우파 세력이 좌파측 발언에 대해 취한 태도는 정반대였다. 이석기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2013년), 각종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과 활동가들에 대한 ‘종북 세력’ 낙인이 그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5·18을 모욕하는 자들에게는 방패가 됐지만, 국가 권력을 비판하는 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2015~2016년)는 이 이중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정부는 기존의 검정 교과서가 ‘편향됐다’며 국가가 단일한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균형’ 잡힌 역사 교육이라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친일 행위를 축소하고, 박정희 개발독재를 미화하고,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희석시키는 방향이었다. 다양한 관점을 보장한다는 미명하에, 국가가 승인한 단 하나의 관점만을 강요하는 역설이었다. 전국의 역사학자와 교사들이 반발하며 집필을 거부했고, 결국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폐기됐다.

이 이율배반적 논리는 분명하다. 우파가 옹호하는 ‘표현의 자유’는 보편적 원칙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 왜곡을 정당화하고, 소수자 혐오를 합리화하고, 기득권의 서사를 공적 담론의 중심에 놓는 것을 뒷받침할 때만 작동하는 선택적 자유다.

독일에서 2024년 말 연방의회를 통과한 ‘반유대주의’ 관련 결의안도 비슷한 논리로 작동했다. 표면상 유대인의 삶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그 진정한 효과는 팔레스타인 연대 목소리를 탄압하고, 예술가·학자·활동가들에게 재정 지원을 철회하는 것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진짜 반유대주의 극우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이 이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사실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결의안이 유대인 보호와는 무관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탄압을 위한 도구임이 명백해진다.

2021년 보리스 존슨 총리의 영국 정부가 대학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한다며 ‘표현의 자유 챔피언’ 직위를 신설하겠다고 나선 것을 보자. 그 실질적 내용은 무엇인가? 홀로코스트 추모 연합(IHRA)의 지나치게 포괄적인 ‘반유대주의’ 정의(定義)를 채택해 이스라엘 비판을 봉쇄하고,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약화시키고, 대학의 반인종차별 교육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운동을 “끔찍하다”고 묘사하는 동시에, 확대 해석의 여지가 큰 ‘반유대주의’ 정의를 통한 친이스라엘 발언의 자유는 확대하는 이율배반이었다.

이처럼, 오늘날 우파는 ‘표현의 자유’ 담론을 두 가지 방향으로 동시에 구사한다. 한편으로는 파시스트와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발언 기회와 공론의 장을 마련해 주는 데 활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종차별 반대, 팔레스타인 연대, 무슬림 혐오 반대 목소리를 억압하는 국가 권력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한다. 이 이중성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우파의 ‘표현의 자유’ 프레임에 포섭되고 만다.

마르크스주의가 말하는 표현의 자유: 집단적 권리로서의 자유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표현의 자유는 자유주의적 관점과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자유주의는 표현의 자유를 개인의 권리, 즉 어떤 의견이든 동등하게 제시될 수 있는 사상의 자유 시장으로 이해한다. 이 관점에서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이성적 토론의 공간이고, 좋은 견해는 결국 나쁜 견해를 이긴다. 그러나 이 모델은 권력과 자원의 불평등을 무시한다. 개인은 동등하게 말할 수 없다. 재벌 총수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동일한 법적 권리를 갖지만, 실질적인 발언력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전자는 계열 신문과 방송, 홍보 부서, 법무팀을 총동원해 자신의 서사를 사회 전반에 유포할 수 있다. 후자는 공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다 업무방해죄로 고소당한다.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볼 때 표현의 자유는 집단적 행동과 불가분하게 연결된다. 역사적으로, 억압받는 집단이 목소리를 낸 것은 개인적 발언의 보호 덕분이 아니었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파업하고, 대중이 거리로 나서고, 활동가들이 구속을 무릅쓰고 유인물을 찍어 돌린 집단적 투쟁의 결과였다.

1987년 6월 항쟁이 바로 그 역사다. 전두환 정권의 독재에 맞서 전국 곳곳에서 수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사진 한 장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면서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시위는 대학생만의 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회사원, 노동자, 영세 노점상, 종교인이 함께 거리를 메웠다. 그 집단적 압력에 직면해 정권은 6·29 선언을 통해 ‘민주화’ 개혁을 수용했다. 어떤 개인의 탁월한 논증이 독재자를 설득한 것이 아니었다. 수백만 대중이 거리를 채운 집단적 힘이 강권 통치를 굴복시킨 것이다.

1970년 전태일의 분신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그는 혼자 외쳤다. 평화시장 봉제 노동자들이 하루 16시간 노동과 폐결핵 속에서 죽어 가고 있다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아무도 듣지 않았다. 그는 근로기준법 책을 불태우며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그의 죽음은 이후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 전체를 촉발하는 집단적 각성의 불씨가 됐다. 한 사람의 절규가 운동으로 분출된 것은, 그 절규를 이어받아 조직하고 싸운 수많은 사람들의 집단적 행동 덕분이었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가장 강력한 위협은 파시스트들의 무장 운동이든 국가의 탄압이든, 아니면 자본의 미디어 독점이든 간에, 개인적 권리 보호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집단적 저항의 역량이다.

마르크스주의자가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이유도 자유주의자들과 다르다. 자유주의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원칙으로 옹호한다. 마르크스주의자는 그것을 억압에 맞선 투쟁의 도구이자,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수단으로 지지한다. 표현의 자유는 목적이 아니라, 더 정의로운 세계를 향한 투쟁의 수단이다.

맺음말: 자유는 투쟁을 통해서만 주어진다

혐오표현에 관한 노동자연대의 입장이 전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단순히 추상적 원칙의 다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누가 말하고 누가 침묵당하는가, 어떤 생각이 합법화되고 어떤 운동이 탄압당하는가 하는 구체적인 권력 투쟁이다.

우리의 입장은 일관된 세 가지 명제로 요약된다. 첫째, 자본주의 하에서 표현의 자유는 계급적으로 불평등하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 자유를 실질적으로 누리며, 피억압 집단의 발언권은 구조적으로 제한된다. 둘째, 파시즘은 일반적인 반동적 의견과 질적으로 다르다. 파시즘은 모든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 자체를 파괴하려는 운동이므로, 그것에는 노 플랫폼이라는 특수한 전술이 정당하다. 셋째, 국가에 더 많은 검열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 국가 권력은 항상 피억압자를 향해 휘둘러져 왔으며, 사회 변화는 국가의 허용이 아니라 집단적 투쟁으로 이뤄진다.

오늘날 표현의 자유 논쟁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가가 집회 주최 때문에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되고, 참사 진상 규명을 외친 유가족이 ‘불법’ 시위대로 규정되고, 팔레스타인 연대 구호가 (혐중 구호와 똑같이 취급받아) 억압받고,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공적 공간에서 드러내기 위해 매년 법정 싸움을 벌여야 하고,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계속 수감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진정한 표현의 자유는 권력자들의 자유가 아니라, 침묵당한 자들의 자유다. 그리고 그 자유는 투쟁 없이 주어진 적이 없다.

[부록] 나이절 워버턴의 《언론의 자유》 서평
어떤 종류의 입문서인가?

나이절 워버턴의 《언론의 자유》(교유서가, 2025)은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의 ‘짧은 입문’ 시리즈물답게 간결하고 명쾌하며, 교양 독자를 염두에 둔 균형 잡힌 서술로 쓰였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중심 축으로 삼고, 홀로코스트 부정론 논쟁, 이슬람혐오 만평 사건, 음란물 규제, 인터넷 시대의 표현의 자유까지 폭넓게 다룬다. 철학적으로 충실하고, 법적 사례들을 능숙하게 다루며, 성급한 결론을 피하려는 신중함도 돋보인다.

그러나 이 책을 우리가 지난 몇 년에 걸쳐 발표한 글들과 나란히 놓고 읽으면, 꽤 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워버턴의 책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의 지도를 꼼꼼하게 그리지만, 그 지도가 사회의 특정 부분만을 담고 있음이 드러난다. 계급, 권력, 역사적 투쟁이라는 지형은 이 지도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 서평은 그 공백을 분석하고자 한다.

“사상의 (자유) 시장”: 아름답지만 비현실적인 모델

워버턴 책의 중심 부분은 밀의 ‘해악 원칙’과 ‘사상의 자유 시장’ 개념이다. 밀에 따르면,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는 한 어떤 표현도 허용돼야 하며, 사상의 자유 경쟁 속에서 진리는 오류를 이길 것이다. 그릇된 견해도 공개적으로 논파될 기회를 가져야 하며, 억압된 의견은 ‘죽은 교조’가 아니라 살아 있는 논쟁으로 남아야 한다. 워버턴은 이 모델을 중심으로 책 전체를 구성한다.

이 모델은 철학적으로 우아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델이 놓치는 근본적인 문제를 거듭 지적했다. 사상의 시장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자본의 지배 구조에 의해 왜곡돼 있다. 법적으로 신문사를 차릴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것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막대한 자산을 소유한 소수뿐이다. 재벌 총수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동일한 법적 권리를 갖지만, 실질적인 발언력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워버턴도 이 문제를 전혀 외면하지는 않는다. 그는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억압적 관용’ 논문을 간략하게 언급한다. 마르쿠제는 미디어를 장악한 권력자들이 대중을 세뇌시킨 사회에서, 검열의 부재가 오히려 권력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효과적인 통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워버턴은 마르쿠제의 해법인 ‘우파 운동에 대한 검열’을 역설적 불관용으로 일축하고, 그의 논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르쿠제가 내놓은 진단, 즉 자본주의 하에서 표현의 자유는 구조적으로 불평등하다는 명제는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채 넘어간다.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단순한 누락이 아니라 이 책의 방법론적 한계를 드러내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자유를 말하지만, 대다수에게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제공한 적이 없다. 신문사 소유주들은 자신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편집자와 기자를 고용하고, 그 계급적 지배 구조가 사회에서 무엇이 토론될 수 있는지의 한계를 규정한다. 밀의 ‘사상 시장’론은 이 구조적 불평등을 간과한 채 성립하는 모델이다.

파시스트 발언 기회 거부(노 플랫폼) 문제: 가장 선명한 대립점

이 책에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과 가장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점은 파시스트 ‘발언 기회 거부(노 플랫폼)’ 전술을 둘러싼 논쟁이다. 워버턴은 2007년 옥스퍼드 유니언이 영국국민당(BNP) 지도자 닉 그리핀과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데이비드 어빙을 초청한 사건을 자세히 다룬다. 그는 이 초청이 어빙에게 학술 역사가로서의 신뢰성을 암묵적으로 부여한다는 ‘발언 기회 거부’의 논거를 공정하게 소개하면서도, 밀의 논리를 따라 이 문제를 주로 표현의 논거 대 반론이라는 틀 안에서 처리한다. 어빙이 데보라 립스태트와의 명예훼손 재판에서 논파된 사례는 밀적 의미에서의 ‘대항 표현(언론)’의 승리로 제시된다.

이에 맞서 우리는 전혀 다른 논리를 제시한다. 파시스트들은 공개 토론을 정견 검증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토론 참여 자체가 가져다주는 정당성의 외피다. 닉 그리핀이 BBC의 시사 프로그램 〈퀘스천 타임〉에 출연했을 때 그의 논리는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나 그날 밤 3,000명이 BNP에 새로 가입했다. 논리적 패배와 정치적 성장은 함께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워버턴의 밀적 (‘사상의 자유 시장’) 모델이 설명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더 근본적인 차이는 파시즘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있다. 워버턴은 파시스트 발언 기회 거부 문제를 주로 ‘오류를 가진 의견자’를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의 문제로 다룬다. 반면 우리는 파시즘을 여타의 반동적 의견과 질적으로 구별한다. 파시스트를 다른 극우 세력과 구별하는 것은 그들의 사상이 아니라 그들의 목표다. 파시스트들은 의회 외부에서 폭력 조직을 구축하고, 민주주의의 흔적을 모두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들은 단순히 나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파시스트에게 발언 기회를 허용하는 것은 단순히 불쾌한 의견을 용납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려는 운동을 돕는 행위다.

워버턴도 표현이 폭력의 선동이 되는 지점에서 밀이 분명히 선을 그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파시스트의 발언이 거리에서의 폭력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논점, 즉 파시스트의 ‘표현의 자유’가 소수 인종과 좌파에 대한 폭력의 물질적 조건을 형성한다는 논점을 충분히 탐구하지 않는다. 1989년 당시 영국 파시스트 정당 BNP가 런던 웰링에 본부를 차렸을 때 그 지역에서 인종차별 폭력이 급증했고, 결국 스티픈 로런스 살해 사건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말과 행동 사이의 이 연속성이야말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파시스트에게 발언 기회를 거부하는 핵심 이유다.

역사의 부재: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운 건 누구였나?

워버턴의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백은 역사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죽음, 밀턴의 《아레오파지티카》, 미국 수정헌법 제1조, 갈릴레오, 나치 분서(焚書) 사건 등을 언급하지만, 이것들은 사례로 호출될 뿐 역사적으로 분석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가 구체적으로 누구의 투쟁으로, 어떤 계급적 조건에서 쟁취됐는가 하는 질문은 이 책에 없다.

반면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가 들춰 낸 표현 자유의 역사는 전혀 결이 다르다. 17세기 영국 혁명에서 인쇄 규제가 철폐된 것, 19세기 초 급진 출판인들이 왕정 비판 신문을 찍다가 줄줄이 감옥에 간 것, 1819년 피털루 학살 이후 집회 금지와 신문 탄압에 맞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목숨을 건 것이 상세하게 서술된다. 리처드 칼라일이 복역하고, 그의 아내 제인이 뒤를 이었고, 누이 메리 앤이, 그다음엔 갓난아기를 안고 직접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한 수재나 라이트가 이어받았다. 이들의 용기가 오늘날 서구 부르주아 민주주의 하에서 노동자들이 누리는 표현(언론) 자유의 초석을 놓았다.

워버턴이 얘기하는 표현의 자유의 역사는 철학자들과 판사들, 법원 판결들의 역사다. 우리가 얘기하는 역사는 노동자들과 활동가들, 감옥과 죽음의 역사다. 전자는 표현의 자유를 이념으로 다루고, 후자는 그것을 투쟁의 산물로 다룬다. 이 차이는 방법론의 차이이기 전에, 누구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느냐의 차이다.

맥락 문제: 이슬람혐오 만평 사건을 다시 보다

워버턴이 3장 “불쾌함을 주고받기”에서 다루는 2005년 덴마크 〈윌란스 포스텐〉 무함마드 만평 사건은 우리와의 또 다른 중요한 쟁점을 드러낸다. 워버턴은 이 사건을 종교적 감수성과 표현의 자유 사이의 긴장이라는 틀로 접근한다. 만평이 의도적으로 도발적이었던 것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지의 문제를 중심에 놓는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노동자연대가 발행한 기사 “혐오감을 부추길 자유?“(2006년 2월 22일)에서 워버턴의 관점과는 다른 측면을 지적한다. 덴마크가 당시 유럽에서 가장 우파적인 정부를 가졌고, 그 정부는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했고, 이민 반대 정당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런 정치적 맥락에서 《윌란스포스텐》이 무함마드를 폭탄 터번으로 묘사한 것은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 이미 심각한 차별과 억압을 당하고 있는 무슬림 공동체를 더욱 취약한 처지로 내모는 행위였다.

워버턴의 관점과 마르크스주의자 관점의 핵심적 차이는 다음과 같다. 워버턴은 표현의 자유 문제를 발화자와 청자(청중)의 권리 사이의 균형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권력 관계를 분석한다. 누가 말하는가, 누구에 대해 말하는가, 그 발언이 이미 존재하는 불평등 구조를 강화하는가 아니면 도전하는가? 억압자가 피억압자를 겨냥하는 것과 피억압자가 억압자에게 맞서는 것은 동일한 ‘표현의 자유’라는 범주로 묶일 수 없다.

국가 검열 문제: 워버턴의 경고와 그 한계

워버턴은 국가 검열에 대해 전통적인 자유주의적 경계심을 갖고 있다. 그는 영국 의회 근방 1킬로미터 이내에서의 시위를 금지한 2005년 법률을 우려의 사례로 들고, 미끄러운 경사면(위험한 선례先例) 논증을 진지하게 검토한다. 국가가 한 번 검열 권한을 가지면 그것이 점점 확장될 수 있다는 경고는 우리도 공유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중요한 차이가 있다. 워버턴의 국가 불신은 개인 자유에 대한 국가 간섭을 일반적으로 경계하는 자유주의적 불신이다. 우리의 자본주의 국가 불신은 그 억압 장치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적 분석에서 나온다. 국가보안법은 ‘북한 위협’ 방지의 외피를 두른 채 좌파 전반을 탄압하는 도구 노릇을 해 왔고, 테러방지법은 국가 기관(국정원)이 안보를 빌미로 모든 시민의 대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문을 열어 준다. 검열 권한을 국가에게 넘겨주면, 그것은 결국 구조적 차별(억압)을 받는 집단 자체를 향한다.

이 논점은 워버턴의 책에서 충분히 발전되지 않는다. 그는 국가 검열이 나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왜 그것이 특히 노동계급을 비롯한 차별받는 집단들에게 나쁜지, 그 계급적 성격을 분석하지 않는다.

워버턴이 잘 하는 것: 분석철학적 정밀함

비판적 서평이지만, 공정하게 말해야 한다. 워버턴의 책이 뛰어난 점들도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 밀의 한계에 대한 그의 분석은 정직하고 날카롭다. 워버턴은 밀의 모델이 사상 세미나라는 이상화된 공간을 전제하며, 현실의 논쟁은 이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파시스트들은 자신의 사상을 정직하게 검증 받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정당성의 외피를 얻으러 온다는 점도 그는 안다. 다만, 이 지식이 그의 저작의 전반적 틀을 바꾸지는 못한다.

음란물에 대한 논의는 이 책에서 가장 철학적으로 풍부한 부분이다. 워버턴은 캐서린 맥키넌의 페미니스트 비판과 밀적 자유주의의 충돌, 예술성이 검열 면제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 아동 이미지에서 동의의 문제를 치밀하게 다룬다. 노동자연대가 잘 다루지 않았던 영역이다.(우리가 그러기 잘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인터넷과 저작권에 관한 5장도 흥미롭다. 디지털 환경이 검열의 전통적인 작동 방식을 어떻게 바꾸는지, 저작권 보호와 사상의 자유 유통이 어떻게 긴장하는지에 대한 분석은 책 출판 연도인 2009년 시점에서도 선구적이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자유주의적 ‘표현의 자유’ 대 마르크스주의적 ‘표현의 자유’

결국 워버턴의 책과 우리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있다.

워버턴에게 표현의 자유는 개인의 권리다. 그것은 국가와 개인 사이의 관계에서 개인의 자율을 보호하는 원칙이다. 이 권리는 보편적으로 적용돼야 하며, 구체적인 피해가 없는 한 누구의 표현도 제한돼서는 안 된다. 이 틀 안에서 표현의 자유 논쟁은 추상적 권리들 사이의 균형 문제가 된다.

우리에게 표현의 자유는 계급적 권리이자 집단적 쟁취물이다. 그것은 억압(구조적 차별) 받는 집단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투쟁한 결과이며, 자본주의 하에서는 언제나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그것을 지키는 것은 법적 원칙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발언 기회 거부를 파시스트에게만 한정하고, 그 외의 경우에는 시위와 논쟁과 연대를 통한 집단적 대응을 선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의 권리는 언제나 정의롭지 못한 법을 어기고, 우리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말할 뿐 아니라 행동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집단적 역량에 달려 있었다.

요컨대: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못한 책

나이절 워버턴의 《언론의 자유》는 그것이 표방하는 바, 즉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자유주의적 논쟁에 대한 명쾌한 입문서로서는 훌륭하다. 밀, 홈즈, 드워킨의 논리를 이해하고 싶은 독자에게 이보다 더 접근하기 쉬운 안내서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자유주의적 표현의 자유론’의 입문서임을 알아야 한다. 계급 문제를 주변화하고, 역사적 투쟁을 사례 나열로 축소하고, 파시즘의 특수성을 충분히 다루지 않고, 집단적 행동이 아닌 개인의 발언권을 중심에 놓는다.

마르크스주의는 이 입문서가 열어 주지 못한 문을 제공한다. 표현의 자유는 누군가가 하사한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은 것이다. 그 자유(권리)는 지금도 계급적으로 불평등하게 분배돼 있다. 그 권리를 진정으로 지키는 것은 철학적 원칙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구조적 차별) 받는 집단의 편에서 집단적으로 싸우는 것이다. 그 투쟁의 역사와 논리를 이해하고 싶다면, 워버턴의 책을 읽은 다음 그가 외면한 질문들을 붙들어야 한다.


  1. 옥스퍼드 유니언(Oxford Union)은 옥스퍼드 대학교 총학생회가 아니다. 옥스퍼드 유니언은 총학생회와는 전혀 다른 조직이다. 정식 명칭은 ‘옥스퍼드 유니언 소사이어티(Oxford Union Society)’로, 1823년에 설립된 독자적인 토론 클럽이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공식 기구가 아니라 별도의 사설 회원제 단체이며, 회비를 내고 가입한 학생과 졸업생, 외부 인사들로 이뤄진다.
    이 단체가 유명한 것은 무엇보다 초청 연사 토론회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정치인, 지식인, 왕족, 연예인 등을 초청해 토론을 벌이는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며, 영국 정치 엘리트의 등용문으로 여겨진다. 마거릿 대처, 리처드 닉슨, 달라이 라마, 마이클 잭슨 등이 이곳에서 연설한 바 있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옥스퍼드 유니언을 비판할 때 쓴 표현, 즉 “귀족 자제들의 수다방”이라는 표현은 이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교 자체가 영국 상류층과 지배 엘리트를 재생산하는 기관으로 여겨지는데, 옥스퍼드 유니언은 그 안에서도 특히 특권층 학생들의 사교·토론 모임이라는 성격이 강하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데이비드 캐머런, 토니 블레어 등 수많은 영국 총리가 이 단체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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