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은 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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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투표용지 부족사태 진상규명위원회’가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선거 관리의 총체적 부실”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상급위원회에 대한 보고 체계와 지휘권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조현욱 선관위 진상규명위원장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예견한 매뉴얼 자체가 없었다”고 밝혔다.
전국 1만 4,288곳 중 140곳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추가 수급이 이뤄졌으며, 26곳은 투표가 일시 중단됐다.
선관위의 행태는 무책임한 직무유기에 가까웠다. 6.3 지방선거 당일 투표 관리 인력은 19만여 명이었는데, 일선 투표소에 배치된 선관위 직원은 없었다.
대신 지방직·국가직 공무원과 교사, 공공기관 직원 등이 차출돼 업무를 수행했다.
전국공무원노조는 6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앙선관위가 권한만 행사하며 현장 업무와 사고 책임은 지자체 공무원에게 전가한 기형적 구조를 비판했다.
선거 관리 부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제20대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 사전투표에서 투표지를 소쿠리나 쇼핑백에 담아 옮긴 ‘소쿠리 투표’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는 감염병 상황에 대비한 투표 절차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결과였다.
당시 중앙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구라는 이유로 감사원의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며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번에도 선관위는 투표용지 인쇄 축소를 결정한 회의록을 “비공개”라면서 진상규명위에 제출하지 않았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관리를 똑바로 안 하면서 외부 감시와 통제도 거부하니, 선관위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헌법상 독립기구’ 지위가 부패와 무능의 가림막이 되다
선관위는 이승만의 3.15 부정선거 같은 일이나 관권 선거를 방지하기 위해 헌법상 독립기구 지위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외부 감시와 통제 부재는 오히려 조직의 폐쇄성과 비밀주의를 강화했고 부패와 행정 편의주의를 고착화했다.
2023년부터 2025년 사이에는 고위직 자녀 및 친인척 특혜 채용 비리가 드러나기도 했다.
도덕적 해이도 심각한 수준이다. 전 선관위원장 노태악은 2024년 11월 한 달간 단 하루 출근하고 425만 원을 수령했다. 비상임 위원들 역시 회의 불참 시에도 월 215만 원의 활동비를 챙겼다.
노태악이 재임 시절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선관위 예산으로 배우자의 항공료와 숙박비를 지불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현재 선관위의 ‘독립성’은 민주적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 것을 뜻한다. 중앙선관위원장뿐 아니라 각 지역별 선관위원장은 판사들이 맡는다. 다른 자본주의 국가기구처럼 선관위도 비선출 관료에 의해 운영되는 폐쇄적 조직인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독립성’은 관료적 자율성일 뿐이다. 그런 데다 감사원이나 국회 등의 견제마저 받지 않으니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성역이 되는 것이다.
반극우 대중운동이 필요하다
선관위의 부패와 선거 관리 부실은 “헌법상 독립”이 민주적 책임성을 보장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선관위 개혁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를 개혁하려면 개헌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선관위가 앞으로 다른 국가기구의 견제와 감시를 받게 된다손 쳐도, 자본주의 국가기구 일반이 민주적 통제 장치가 없거나 매우 제한적이라는 문제는 남는다.
더구나 제도 개혁과 개헌으로는 극우의 세력을 꺾을 수 없다. 극우는 체제의 복합 위기에서 비롯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 하락을 자양분으로 성장하고 있다. 선관위를 개혁한다고 해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신뢰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극우의 기세를 꺾고, 선관위에 분노한 청년들과 극우를 분리시켜 내려면 반극우 대중의 대항 행동이 필요하다. 거리, 일터, 대학, 지역에서 벌어지는 반극우 대중의 투쟁이야말로 극우에 맞설 진정한 동력이고 민주주의의 알짬이다.
그러나 주요 좌파 정당들은 법·제도·선거·국회 차원의 해결책에 집중하면서, 극우에 맞서는 대중 투쟁을 조직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300여 명의 후보를 내고 41명이 당선된 진보당은 극우가 선관위를 향한 대중의 불만을 악용하는 것을 비판하면서도, 실천적 대응으로는 이재명의 개헌 제안을 추수하고 있다. 15만 당원의 진보당이 반극우 대중 행동을 조직하는 데 열의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의당은 당 공식 논평에서 올림픽공원 시위대에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가 당 안팎의 비판을 받은 뒤 일부 지역 재선거와 올림픽공원 시위에 대한 경찰의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다. 그러나 재선거 요구는 극우 의제의 주류화에 일조하는 효과를 내고, 경찰의 엄정 대응 요구는 좌파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