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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극우 최일붕 글 모음 제국주의 팔레스타인·이란전쟁 이주민·난민 긴 글

영화평 〈두 검사〉:
1937년 스탈린주의 소련 — 세기의 한밤중 어둠의 심연 속으로

“1930년대는 희망과 절망이 모든 도시의 거리에서 힘겨루기를 하던 10년이었다. 그것은 혁명과 반혁명이 격렬하게 투쟁하던 10년이었다.”(《민중의 세계사》)

이 10년의 문을 연 것은 1929년 10월 ‘검은 목요일’과 함께 시작된 자본주의 역사상 최악의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이었다.

문을 닫은 것은 1939년 4월 스페인에서 반혁명의 승리와 1939년 9월 먼젓번보다 훨씬 야만적으로 리부트된 세계 전쟁의 재개였다.

다만, 1936년에는 아직 모를 일이었다. 그해 노동계급의 반격과 그 위대한 나날은 경이롭고 도도했다.

반면, 같은 해 빅토르 세르주는 소설 《세기의 한밤중》을 쓰기 시작했다(책은 1939년 5월 나왔다). 소설에서 “세기의 한밤중”은 1933~36년 스탈린주의 소련과 나치즘의 독일을 가리킨다. 반혁명이 소련(1928~1933)과 독일(1933)에서 먼저 승리했기 때문이다.

1937년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대중 파업과 혁명이 가라앉거나 패배할 위기에 처했을 때, 소련에서는 스탈린 체제의 참상과 테러가 극에 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1917년 혁명을 이끈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날조된 여론 조작용 재판에서 “히틀러의 간첩”으로 몰려 처형됐다.

세기의 한밤중

이 “세기의 한밤중” 그 어둠의 심연 속으로 우리를 이끄는 영화가 세르히 로즈니차 감독의 〈두 검사〉다.

스탈린 공포정치의 정점인 대숙청과 모스크바 재판이 벌어지던 1937년 소련, 어느 3일간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물리학자이자 정치수로 굴라크(강제 수용소)에서 14년을 보낸 게오르기 데미도프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1969년 쓰인 미출간 원고는 1980년 그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소련 국가안보위원회(KGB)에 압수됐고 2009년에야 비로소 출판됐다.

영화의 공간은 대략 서너 곳이다. 브랸스크의 교도소와 모스크바의 검찰청, 두 공간을 잇는 이동 수단인 기차와 차량 내부다.

등장인물은 풋내기 검사, 늙고 병든 볼셰비키 정치수, 교도관들, 보안경찰 NKVD, 검찰총장 안드레이 비신스키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브랸스크시 감옥의 거대한 철문이 열린다(나중에 이 문은 두 번째로 열릴 것이다).

촬영지는 실제로 1905년 러시아 제국 시대에 지어진 라트비아의 옛 감옥이다.

영양실조로 보이는 앙상하게 마른 수감자들이 하찮은 잡일들을 배정받고 있다.

그중 한 노인 수감자가 개봉된 적 없는 청원서 더미를 불태우는 작업을 맡게 된다. 전부 “친애하는 스탈린 동지”에게 보내는 것들인데 난로의 불쏘시개가 될 뿐이다.

“한 장이라도 숨기다” 걸리면 “한 달간 독방 신세”라는 교도관의 겁박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혈서로 휘갈겨 쓴 쪽지 하나를 숨긴다.

놀랍게도 이 쪽지는 지역의 신임 검사 코르녜프에게 전달된다. 그는 쪽지의 작성자인 정치수 스테프냐크를 만나기 위해 교도소를 방문한다.

교도소 측은 시간 끌기로 그를 돌려보내려 한다. (영화 속 시계에 따르면) 그는 7시간을 기다렸지만 교도소장은 “위생 규정 위반”을 들어 끝까지 면담을 방해한다.

교도소장이 그에게 묻는 말(“전임자가 어디 있는지는 아시고?”)에 비춰 볼 때 전임 검사는 이미 숙청된 듯하다.

마침내 신임 검사는 여러 겹의 철문과 복도와 계단과 철창을 통과해서 최고 보안 등급 수감자인 스테프냐크를 대면한다.

여기까지 영화의 3분의 1이 넘게 걸린다.

의도적인 느린 전개는 철벽 같은 억압 체제의 질감을 전하는 듯하다.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카메라, 정사각형에 가장 가까운 화면비도 그러하다.

광원을 제한하고 채도를 낮춘 화면은 다양한 색을 배제한 갈색과 검정, 회색의 세계다. 교도소, 군복, 수감자가 같은 색 영역에 묶여 있어 인물들이 배경에 붙들려 있는 느낌이다.

마치 유화나 벽화처럼 보인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미치광이들의 마당〉, 〈정신병동〉과 ‘검은 그림들’ 연작을 연상시킨다. 개인적 불행(청력 상실, 종교 재판)과 사회적 비관(혁명 실패, 왕정 복고)이 짙게 밴 작품들이다.

신임 검사를 불러들인 스테프냐크는 1917년 혁명과 내전을 겪은 고참 볼셰비키다. 하지만 비밀경찰 NKVD에 체포돼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다. NKVD는 그에게 1919~1920년 우크라이나 내전에서 반혁명군의 첩자였음을 인정하라고 강요한다. 목숨을 걸고 버티고 있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처형 또는 굴라크, 아니면 어디서든 병들어 죽을 비참한 결말이다.

스테프냐크는 지역의 NKVD들이 고문과 누명 씌우기는 물론이고 법정까지 장악했다고 말한다. 그는 코르녜프에게 “오늘 당장 모스크바로 가게. 가서 스탈린을 만나”, 아니면 “예조프, 보로실로프, 몰로토프를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왕년의 노련한 혁명가 스테프냐크의 현실 인식은 최악이다.

스탈린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가 말한 다른 세 명도 스탈린의 최측근이다. 그 모든 피바람을 일으킨 장본인들이다. 특히 니콜라이 예조프는 NKVD 수장이다. 그는 NKVD의 처형실을 설계한 자다(나중에 스탈린에게 토사구팽 돼 거기서 처형된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1937년 동부 시베리아의 어떤 관리가 안드레이 즈다노프(스탈린의 2인자)에게 보냈던 편지 내용과 비슷한 상황 인식이기도 하다.

스테프냐크와 의기투합한 코르녜프는 홀로 야간열차를 타고 정말로 모스크바를 향한다.

불과 석 달 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 할당제[국가 배치제]”로 지방에 임명된 풋내기 검사가 스탈린의 광기 어린 공포정치가 최고조에 달한 시기, 그 심장으로 걸어 들어가 NKVD의 전횡을 고발하려는 것이다.

그가 당도한 모스크바의 검찰청 중앙청사는 밀실 공포와 방향 감각 상실을 유발하는 일종의 미로처럼 묘사된다. 야수의 심장에 도달하니 외려 더 갇히고 원자화된 느낌이 증폭된다.

여러 요소가 암울하고 관객의 신경을 거듭 건드린다. 기차에서 부르는 흥겨운 체제 선전 가요는 소련 최고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했지만 그 작사가는 숙청됐다는 역사적 사실까지(1937년 체포, 1938년 처형).

신중한 연출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결말에 이르면 우리는 젊은 주인공처럼 미끄러지고 그물에 걸린 기분이 들 것이다.

이것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신랄한 고발이다.

신랄한 고발

영화에서 유일한 실존 인물인 검찰총장 안드레이 비신스키는 멘셰비키로서 10월 혁명에 반대했고 임시정부 치안 책임자로서 레닌의 체포영장에 서명했던 자다. 볼셰비키에는 내전이 다 끝난 뒤에야 가입했고 1930년대에는 스탈린의 법기술자가 돼 스탈린주의 반혁명을 공고히 하는 데 앞장섰다. 반혁명은 혁명을 상징하는 사람들의 죽음이 필요했고 비신스키는 10월 혁명을 이끌었던 볼셰비키 당원들을 파멸시켰다.

1936년 8월 1차 모스크바 재판, 이른바 ‘트로츠키파·지노비예프파 테러 본부’ 사건 재판은 피고인들의 자백이 유일한 증거인 날조된 여론 조작용 재판이었다. 비신스키는 검찰 측 발언에서 “저 미친 개들을 총으로 쏴 죽일 것”을 요구했다.

스탈린의 법기술자 비신스키 영화 〈두 검사〉 속 한 장면

1938년 3월까지 이어진 모스크바 재판은 국제적으로 트로츠키주의자들을 더욱 고립시켰고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혁명의 희망을 꺾는 데 한몫했다.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은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한 사회주의 혁명이었지만, 비슷한 시기부터 1927년까지 여러 나라에서 아래로부터의 혁명과 혁명적 기회들이 잇달아 좌절되면서 러시아는 고립됐다.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 체제라서, 한 나라에서 혁명이 먼저 일어나더라도 결국 세계로 확산하지 않는다면 혁명은 그 존재를 계속 유지할 수 없다.

1924년 스탈린은 ‘일국사회주의’ 전략을 채택했고 1928년부터는 반혁명의 성격이 확실해졌다. 스탈린 분파가 폭압으로 강제한 임시방편들은 전체로 보면 국가자본주의의 길이었다. (기사 ‘스탈린주의란 무엇인가?’의 일독을 권한다.)

스탈린 체제가 가한 극심한 억압의 뿌리는 새로운 지배계급인 관료들의 권력 강화와 자본주의적 대규모 시초 축적에 있었다.

서구 국가들의 시초 축적 역시 강탈과 학살과 폭력으로 점철된 것이었으나 영국에서 300년 걸린 과정을 스탈린은 10년 만에 해내려고 했다.

너무나도 급속하고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기 때문에 사회 전반을 더욱 심하게 억압해야 했다.

혁명기와 그 이후에도 볼셰비키당은 “레닌과 트로츠키의 당”이라 불렸지만(정부 역시 마찬가지), 1924년 1월 레닌은 사망했고 1929년 2월 트로츠키는 추방됐다.

이후 1930년대 소련에서 가장 중대한 범죄는 ‘트로츠키주의’였다. 스탈린과 관료들에게 트로츠키는 철저히 파괴돼야 할 상징이었다. 트로츠키가 대표하는 것은 저항과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국제 혁명은 조금도 목표가 아니었다. 국경 밖에서 이것은 각국 공산당의 활동 방향이 소련 국가의 대외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것을 뜻했다.

세계의 좌파 진영은 스탈린주의에 지배됐고 그들이 이끈 민중전선 전략이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혁명을 목 졸라 죽였다. 만약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승리했다면 세계 정세는 근본적으로 바뀌었을 것이다.(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스탈린주의가 행한 반(反)혁명적 구실과 그에 대한 트로츠키의 비판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추천한다. ‘90주년에 되짚는: 스페인 내전과 혁명’, ‘1930년대 트로츠키의 민중전선 비판’)

여기서 역사가 주는 교훈은 억압, 착취, 불의에 맞서 싸우고 더 나아가 그 뿌리까지 제거하려면, 스탈린주의 같은 사이비가 아니라 진정한 혁명적 이론과 실천이 필요하며 그런 전통에 기반하는 조직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화 〈두 검사〉는 유튜브, 왓챠, 웨이브 등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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