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많은 십대가 극우 주장에 끌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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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의 ‘스타벅스 응원 구호’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하다. 그러나 이 논란은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많은 십대, 특히 남학생 사이에서 극우적인 조롱과 혐오 표현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 말이다.
십대 남성이 십대 여성에 비해 극우 주장에 더 이끌리는 현상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성차별이 바뀌지 않았음에도 성적·외모·남자다움 등 십대 남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압박도 커지는 현실에 대한 반발이 작용하는 듯하다.
윤석열의 군사 쿠데타 직후에도 ‘십대 극우’ 문제가 수면 위로 올랐다. 당시에는 극우 개신교 대안교육기관에 다니는 십대들이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한 것이 정치적 주목을 받았다.
이번에 새삼 확인된 것은 극우 ‘밈’(비유전적 문화 요소)이 교실 안에 광범하게 확산돼 있다는 사실이다. 조직화된 운동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으나, 많은 십대가 일상적인 온라인 공간에서 분산적으로 쏟아지는 극우 주장에 상당히 노출돼 있음을 보여 준다.
물론 십대 전체가 극우화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위안을 얻을 사실은 아니다. 윤석열의 군사 쿠데타 기도를 겪으면서 많은 십대가 극우적인 조롱과 혐오 표현을 더 많이 쓴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한국일보〉, 2025년 9월 2일 자). 대다수 교사도 학교 내 극우적 혐오 표현이 심각하다는 데 동의한다(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2026년 7월 1일 자 발표).
많은 십대의 조롱과 혐오 표현의 소재는 민주당 소속 전·현직 대통령 비하, 중국 혐오, 여성 혐오, 역사 왜곡, 소수자 혐오 등이다.
이는 젊은 극우 유튜버들이 십대를 끌어들이기 위해 사용하는 ‘외부의 적 때리기’ 소재와 대체로 일치한다. 이제 저격, 좌표 찍기, ‘밈’을 활용한 조롱은 많은 십대에게 익숙한 문화가 됐다.
현재 많은 십대가 극단주의 주장에 끌리는 진입로는 주로 인터넷이다. 극우 추적단 ‘카운터스’는 십대가 많이 이용하는 인스타그램이 극우 콘텐츠로 심각하게 오염됐다고 경고했다.
인스타그램을 이용한다고 해서 사람의 생각이 그렇게 극우적으로 바뀌겠느냐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십대가 인스타그램에 머무는 시간이 매우 길고,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콘텐츠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오늘날 십대가 처한 물질적 조건과 밀접하다. 모든 세대가 그렇지만, 특히 십대는 외로움, 사회적 소외, 주체성 결여, 정치적 이반감 등을 겪고 있다. 이는 질풍노도와 같은 청소년기와 맞물리며 십대를 더한층 괴롭힌다.
요즘 십대가 타인과 직접 소통하며 보내는 시간은 극도로 적다. 예컨대, ‘학원·학습지·온라인 학습’ 때문에 친구와 직접 만나 놀지 못한다(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등위원회 실태 조사).
반면 십대의 주간 평균 인터넷 이용 시간은 20시간에 달한다(여성가족부, ‘2024 청소년 통계’). 십대가 인터넷을 이용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 하나는 ‘소통’이다. 이런 온라인 공간이 십대에게 사회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다른 시각이나 기존 생각에 도전하는 견해를 접할 기회가 제한되는 ‘에코 체임버’ 또는 ‘필터 버블’ 효과가 나타난다.
금기
그렇다면 십대가 극우 콘텐츠에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극우 콘텐츠는 과거의 무겁고 딱딱한 정치 선동과 다르다. 여행·미용·예능·아이돌 등 일상적인 소재를 폭넓게 다룬다. 이들은 일상 채널 사이에 극우적 혐오 표현을 교묘히 끼워 넣는다. 예상치 못하게 일상적 공간이 극우 포섭의 장으로 활용되는 셈이다. 미국 극우가 이런 수법을 선도적으로 써 왔다.(미국 극우가 혐오 표현을 일상화하는 공간과 사례들은 신시아 밀러 이드리스의 《극우는 어디서 태어나는가》(동아시아)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극우적 혐오 표현은 용기 있는 소신 발언으로 포장된다. 주류 사회의 위선에 맞서 싸우는 ‘진정한 반역자’나 ‘표현의 자유 수호자’를 자처하는 방식이다.
사회에 제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많은 십대는 직설적이고 과격한 극우 주장을 금기를 깨는 짜릿함이자 기성 사회에 대한 반항심의 분출로 받아들인다. 위선적인 학교 교육이나 기성 사회의 권위를 조롱하며 십대 나름의 불만이나 불안을 해소하는 배출구로 삼는다.
진짜 문제는 극우가 매우 체계적으로 십대를 겨냥한다는 점이다. 좌파 운동에 치명적인 위협은 조직화·정치화된 극우 세력이다. 극우에 우호적인 개인들의 존재는 극우 운동의 인간 재료가 된다. 그러나 이들의 의식과 행동은 객관적 상황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대부분 극우 운동과 조직이 목적의식을 갖고 진행한 교육·선전·활동·동원의 결과다.
김종우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연구교수는 인스타그램에서 대표적인 극우 콘텐츠를 생산하는 곳으로 ‘자유대학’을 지목했다. ‘자유대학’은 윤석열의 계엄을 옹호하며 탄핵을 반대했던 대학생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극우 단체다. 김 교수는 이들의 콘텐츠가 “세련된 시각적 전략을 활용해 언론 매체와 유사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며 위험성을 경고했다(다큐 뉴스타파 ‘2026 10대 극우화 보고서, 소년 극우가 온다’).
모니터 밖 세계
사정이 이렇다면 십대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전면 금지해야 하는가? 오스트레일리아는 2025년에 16세 이하 청소년 대상 소셜미디어 금지 조치를 시행했고, 유럽 일부 국가도 유사한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더는 관련 논의를 미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극우 주장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십대에게 밈처럼 번지는 상황은 우려스럽다. 그러나 십대를 온라인으로 내모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소셜미디어 사용을 금지하면 수많은 십대는 더 고립될 것이다.(더 자세한 비판은 본지에 양효영이 쓴 ‘10대 소셜미디어 금지 조치 만지작거리는 일부 정치인들’을 보시오.)
교육과 사회적 돌봄망 구축이 또 다른 해법으로 제시된다. 이는 십대의 소셜미디어 과몰입과 건강 위기에 대처하는 데서 마땅히 필요한 조처다. 문제는 이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지배계급의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강력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지배계급의 저항에 의해 좌절되기 쉽다.
결국 노동자 투쟁의 전반적 활성화가 필수불가결하다. 이런 해결책은 십대가 겪는 문제가 보편적인 사회적 고통의 일부라는 점과도 연결돼 있다.
지금의 십대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쇠퇴 속에서 나고 자랐다. 글로벌 금융 위기 때 태어났고, 청소년기에 접어들자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했다. 이 위기들은 구조적 불평등, 사회적 고립감을 크게 심화시켰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공정을 약속하며 출범한 민주당 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많은 십대는 위선적 ‘진보’에 대한 피로감과 도덕적 훈계에 대한 거부감을 느낀다.
여기에 “시험 잘 본 사람만 대접받는 게 공정하다”라는 극단적 능력주의 말고는 다른 사회적 공존 방법을 배우지 못한 십대에게 구조적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역차별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많은 십대들은 숨막히는 입시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냉소를 사회적 약자, 이주노동자, 특정 국가와 국민에 대한 혐오(반중과 혐중)로 표출하기 쉽다.
그러나 우울한 전망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운동이 일어나 십대가 모니터 밖 세계의 실질적 변화를 실감한다면 얼마든지 가치관은 바뀔 수 있다.
십대의 고통을 해결하려면 극우와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서는 대중 운동이 진정으로 필요하다. 이런 운동을 건설하려면 정당성 위기를 겪는 기성 정치 시스템을 옹호하는 데 급급한 자유주의적 진보 정치가 아닌 급진적 좌파 정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