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되는 청년·서민 주거 문제:
값싸고 질 좋은 장기 공공임대가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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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부동산 세제 개편안을 발표한 정부가 또다시 8·13 부동산 공급대책을 발표했다. 수도권에 ‘23만 호+α 추가 공급’과 공공택지 사업기간 단축, 비아파트 공급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이다.
정부는 공공택지 발표 시점부터 착공까지 걸리는 기간을 현재 68개월에서 37개월로 단축하겠다며 공공택지 공급 확대와 조기 착공을 강조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미 지난해 9월 연평균 27만 호씩 5년간 135만 호를 착공하겠다는 공급 계획을 발표했지만, 올해 상반기 실제 착공 실적은 서울시는 목표치의 19퍼센트, 수도권은 24퍼센트 수준에 그친다. 태릉 골프장이나 과천 경마장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개발 계획이 발표됐지만 토지 보상 문제나 지역 유지 반발 등으로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태다.
또, 정부는 국민의힘 등 우파들이 주장해 온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도 일부 수용했다. 재개발 조합 설립 동의율을 낮춰 주고(75→70퍼센트), 공공재개발·재건축 동의율도 완화(67→60퍼센트)했다.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빚내서 집 사라’는 식의 실패한 정책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정부는 수도권 공공택지를 더 늘린다고 하면서도 서민 무주택 가구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주거 대책, 즉 공공임대주택 확대 계획은 발표 내용에 없다.
8·3 세제개편안도 역풍을 맞고 있다. 부자들의 초고가 주택(이른바 ‘똘똘한 한 채’), 비거주 주택 소유자,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을 높인다고 했지만,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시가 20억 원의 고가 주택까지 면제해 주면서 오히려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지율 하락과 겹치며 민주당에서조차 우려가 쏟아지자 결국 정부도 “확정안이 아니다”면서 한발 물러서고 있다. 안 그래도 구멍이 숭숭 뚫린 누더기 세제 개편안이었는데 더 큰 구멍이 뚫리게 생긴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세금 강화와 공급 확대는 노동계급 주택 문제 대책이 될 수 없다. 설사 이재명 정부의 공급 확대 정책이 성공하더라도 대다수 노동계급 대중의 가구는 무주택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차피 대다수 노동계급이 구입할 수도 없는 고가 주택의 가격이 좀 떨어진다고 한들 대다수 노동계급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일부 고임금 노동자나 고소득 중간계급만이 대출을 받아 서울 변두리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을 뿐이다.
수도권 집중과 청년 주거 문제
이런 서민 주거 문제는 특히 청년층에서 더욱 심각하다. 청년 대다수가 소득과 자산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역에 따라 불균등하게 자본이 축적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경제력이 일부 지역에 집중되는 불균등 발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의 중심지인 대도시가 형성된다.
그리고 이 생산 중심지들은 전국 각지로부터 노동력 인구를 집중시키고, 이에 따라 대도시에서 주택난이 벌어진다.
한국에서도 1960년대 이후에 경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대도시들이 급성장했고 주택난이 심각해졌다. 특히, 한국은 후발 자본주의 나라여서 국가가 개발을 위해 한정된 자원을 서울과 수도권으로 집중시켜 왔기 때문에 수도권 집중 현상이 훨씬 심각하다.
이런 경향은 최근까지 계속돼 이미 2019년 수도권 인구는 우리 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최근에 지방 인구는 감소하고 있는데, 지방에서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은 계속되고 있다. 수도권 유입 인구는 교육과 일자리 기회를 찾는 청년들이 대부분이다.
청년층의 수도권 인구 비중은 2000년 48퍼센트에서 2024년 56퍼센트 수준까지 높아졌다. 전체 인구보다 비중이 높다. 따라서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난이 가중됨에 따라, 특히 청년층의 주거 문제가 더욱 두드러지게 되는 것이다.
청년층은 일자리를 위해 대부분 수도권에 살 수밖에 없지만, 월급을 수십 년 모아도 수도권 아파트 한 채를 사기 어렵다. 2024년 기준 서울에서 평균 수준의 집을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4년을 꼬박 모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층이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청년층의 주거 문제도 악화되고 있다. 고시원·컨테이너·판잣집 등 ‘주택이 아닌 거처’에 사는 청년 가구 비율은 5.3퍼센트로, 전체 2.2퍼센트보다 높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청년층의 불만을 사는 이유는 서민 주거 대책이 전혀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내 집 마련의 꿈’
흔히 주택 문제에 대한 대안은 ‘내 집 마련’, ‘주거 사다리 복원’이 얘기된다. 월세나 전세를 거쳐 최종적으로 내 집 마련으로 나아가는 주거 상향 이동 과정을 제공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뿐 아니라 국민의힘 등 우파가 주택 공급 확대를 얘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류 경제학의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라 주택 공급을 늘리면 집값을 낮출 수 있고, 그러면 사람들이 내 집을 마련해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다수는 서울과 수도권 주요 지역에 주택을 구입할 만한 돈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수요는 ‘유효수요’로 간주되지 않는다. 결국 공급 확대 정책은 노동자들의 내 집 마련에 도움이 되기보다 부유층의 투기용 주택 수요나 충족시켜 줄 뿐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주택 문제의 대안이 내 집 마련이라고 보지 않는다.
150년 전에 쓰인 엥겔스의 《주택 문제에 대하여》는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여전히 많다.
19세기 말 독일 대도시의 주택난도 매우 심각했다. 대다수 사람들이 주택이 없었고, 싼 임대료를 찾아 악취 나는 지하방에 살거나 비좁은 방에 여러 가구가 함께 살기도 했다.
이때 개혁주의자들은 모든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주택을 소유하게 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래서 엥겔스는 “‘주택 문제’에 대한 대부르주아와 소부르주아의 해결의 핵심은 노동자가 자기 주택을 소유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엥겔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주택 문제를 이렇게 규정한다. “현대 대도시 노동자들과 일부 소부르주아들의 주택난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생산 방식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비교적 작은 이차적 폐단들 가운데 하나”다.(강조는 엥겔스)
자본주의 생산 방식이 낳는 문제는 무엇인가? 자본주의에서는 끊임없이 신기술 도입과 산업 격변이 일어나고 따라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기고 길거리로 내몰리는 일이 벌어진다. 오늘날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저임금의 임시 일자리를 전전한다.
“따라서 그야말로 더러운 돼지우리 같은 집도 언제나 빌리려는 사람이 나타나며, 끝으로 가옥 소유자가 자본가로서 자기 소유의 가옥에서 최고의 집세를 무자비하게 짜낼 권리뿐 아니라 또한 경쟁으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 사회가 존속하는 한 주택난을 겪지 않을 수 없다.”(엥겔스)
게다가 자본주의 생산 방식은 필연적으로 경기 변동을 만들어 내고, 주택 경기도 경기 변동과 연동해 움직인다.
경기가 좋을 때는 임금이 좀 오를 수 있지만, 치솟는 집값을 따라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경기가 나쁠 때는 집값이 떨어질 수 있지만, 일자리와 소득도 줄어들어 서민층이 집을 살 여유가 없다.
그래서 엥겔스는 자본주의 생산 방식 자체, 즉 노동자 착취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 돈을 모으는 ‘대안’들은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실제 ‘2024년도 주거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자가점유율(자기 소유 주택에서 살고 있는 비율)은 61퍼센트밖에 안 된다. 서울은 더 심각해서 44퍼센트밖에 안 된다. 이 비율이 수십 년간 큰 변화가 없다는 점도 주택 공급 확대가 집 없는 서민들의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별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주택 문제의 근본적 대안
노동계급의 주택 문제는 시장의 관점에서 부동산 정책을 시행하는 한 해결할 수 없다. 앞서 봤듯이 부동산 공급 확대 정책은 비싼 집을 추가로 살 수 있는 부유층에게만 득이 될 뿐이다. 부동산이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상품으로 남아 있는 한 이를 이용해 한몫 잡으려는 투기를 조장하는 동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본주의는 경제 위기와 산업 구조조정 등으로 끊임없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구직자 처지로 내몬다. 그러면 애써 마련한 주택도 결국 처분할 수밖에 없게 된다.
부동산 투기와 주거 문제를 완화하려 해도, 공공성을 강화하고 부동산에 대한 시장의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즉, 저렴하면서도 살 만한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비중은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서도 한참 낮다. 국가데이터처 자료를 보면, 2023년 기준 전체 주택 수는 2,262만 호, 공공임대주택은 192만 호로,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8.5퍼센트 정도다. 그러나 공공주택 중 분양 전환 주택과 민간 임대 주택 지원 등을 제외하면 실제 장기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은 5.5퍼센트(119만 호)에 불과하다.
이처럼 한국의 공공임대주택은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상당수는 그 질이 매우 나쁘고 주변 시세보다 조금 싼 수준이라 청년과 서민층의 삶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상당수 공공임대주택이 매우 비좁고 청년과 서민층이 길거리에 나앉는 것을 막는 수준이다.
게다가 청년들이 어렵사리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간다고 해도 청년 공공임대주택의 임대 기간이 짧기 때문에 얼마 안 가 비싼 민간 임대 주택을 구해야 한다. 대학 기숙사도 턱없이 부족하고 가격도 비싸서 상당수 대학생들은 60만~70만 원이나 되는 비싼 월세를 내고 주변 대학가에서 자취를 해야 한다.
이러니 상당수 청년들이 정부가 정한 최저주거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고시원이나, 곰팡이가 피는 지하방 등을 전전해야 하는 것이다. 최저주거기준이라는 것도, 1인 가구의 경우 고작 14제곱미터(약 4평)에 부엌, 전용 수세식 화장실과 목욕 시설을 갖추는 정도인데 말이다.
노동계급의 대중 행동으로 국가가 주거 문제를 해결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
예컨대 독일, 영국, 스웨덴 등지에서는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며 일어난 혁명이나 준(準)혁명적 상황이 벌어지자, 노동계급의 불만을 무마하려고 국가가 주택을 싸게 공급하기 시작했다. 서구에서는 1950∼60년대 호황기에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려 주거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 이는 노동계급의 불만도 잠재우고 주거비를 억제해 임금 인상을 막으려는 정부 지원으로 가능했다.
한국에서도 정부의 공공개발은 1980년대 말 이후 공공성이 조금 생겼다. 공공 택지에 공공임대주택 의무 건설 비율이 생긴 것이다. 1980년대의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노동자 운동 덕분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공임대주택을 줄이고자 하는 압력이 끊임없이 작동한다. 특히, 각국 정부가 재정 긴축에 나서면서 기존의 공공주택을 민간에 매각(민영화)했다. 그 결과 공공주택 비중은 계속 감소해 왔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1980년 공공 임대주택이 전체 주택의 32퍼센트에 달했으나, 2018년에는 17퍼센트까지 떨어졌다.
그나마 남아 있는 공공임대주택은 정부 재정 지원이 삭감되면서 노후화돼 사람이 살 수 없는 수준으로 질이 떨어졌다. 쥐가 나오고, 물이 새고, 곰팡이가 피어도 쫓겨나지 않으려면 참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정으로 토지의 불로소득을 몰수하고 공익적인 토지 이용으로 주거 문제를 해소하려면, 토지 소유주들(대부분이 자본가들이다)에 맞선 매우 큰 노동계급 투쟁이 필요하다.
그래서 엥겔스는 “주택난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오직 하나의 수단이 있을 뿐이다. 지배계급에 의한 노동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전반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 대도시에는 합리적으로 이용할 경우 현실의 ‘주택난’을 모두 즉각 시정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주택용 건물이 있다. 그런 일은 물론 오늘날의 소유자들로부터의 몰수를 통해서만, 즉 숙소가 없는 사람들이나 이제까지의 주택에 과도하게 밀집해 있는 노동자들을 그들의 가옥에 수용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는데, 공공 복지를 위해 필요한 그러한 조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 권력을 전취하자마자, 마치 오늘날의 국가에 의한 다른 몰수와 수용이 그렇듯이 쉽게 실행될 수 있을 것이다.”(강조는 엥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