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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극우 이재명 정부 팔레스타인과 이란전쟁 이주민·난민 긴 글

AI 패권 경쟁과 메가프로젝트
고전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의 관점

이 글은 같은 제목의 토론회에서 한 발제를 글로 옮긴 것이다. 다만 청중 토론에서 제기된 여러 주장과 논쟁을 반영해 필자가 글의 후반부를 적잖이 수정했다. 특히 AI 거품 붕괴가 낳을 파괴적 효과와 전망을 명확히 하는 데에 기여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재명 정부가 지난 6월 29일 청와대에서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연 지 두 달이 다 돼 간다.

3대 메가프로젝트의 핵심 내용은 ① 반도체, ② 피지컬 AI, ③ AI 데이터센터에 약 1,50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4,000조 원이 넘는 액수가 거론된 적도 있다. 삼성이 2040년까지, SK는 명시하지도 않은 어떤 시점까지 투자할 계획을 모두 합친 액수이니 다소 과장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이번에 발표된 액수는 앞선 두 정부가 내놓았던 반도체 투자 계획의 8~10배가량 된다. 자본가들이 순진하게 속아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단순한 과장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국힘도 계획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호남에 집중된 것에 비판적이었을 뿐이다. 대자본가들이 대체로 메가프로젝트에 우호적임을 보여 준다.

정부는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부지와 전력, 용수를 대고, 송전선을 놓고, 군 공항을 옮기겠다고 했다. 재정 지원과 로봇 선구매뿐 아니라, 인허가 기간 절반 단축 등 규제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공무원 면책과 감사원 감사 면제까지 검토한다.

8월 12일에는 7대 첨단기술 프로젝트(시드 프로젝트) 발표가, 8월 14일에는 국방 로봇 업무협약이 뒤따랐다.

이런 파격적인 시도에는 오늘날 AI 산업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적 경쟁에서 한자리(AI 경쟁력 3위 목표)를 차지하려는 야심이 있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이재명 정부는 국가자본주의적 경쟁을 가속시키고 있다 ⓒ출처 청와대

AI 패권 경쟁은 왜 제국주의 경쟁인가

오늘날 AI 경쟁은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제국주의 경쟁에서 현재 가장 두드러진 측면을 보여 준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제국주의는 단지 강대국의 나쁜 정책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1916년에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혹은 최신) 단계”라고 봤다. 자유 경쟁이 자본의 집적과 집중(독점)을 낳고 그것이 일정 수준을 넘자, 거대 자본이 국가와 융합해 세계 지배를 두고 다투게 됐다는 것이다.

이 경쟁에는 두 축이 있다.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다. 그리고 제국주의 경쟁은 자본주의 발전의 또 다른 근본적 법칙인 불균등 발전과 결합된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는 선진국들이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밟아야 했던 단계나 형성한 관성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고, 그래서 새로운 생산 기술과 기법을 전면적으로 도입해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 지금 중국의 전기자동차가 대표적이다. 그러면 군사적·지정학적 능력도 발전하고 세계적 강국의 순위도 재편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안정적이고 영속적인 협력은 유지될 수 없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이 결국 타협해 ‘규칙 기반 질서’가 회복되리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레닌과 부하린은 군사적 경쟁이 평화적 경쟁으로부터의 일탈이 아니라 그것의 필연적 발전 결과라고 지적했다.

19세기에 이런 경쟁을 대표적으로 보여 준 생산물은 철과 석탄이었고, 철도는 둘을 결합하는 상징이었다. 오늘날에는 AI가 바로 철도 같은 구실을 하고 있고, 그것을 이루는 생산물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이다.

전기, 물, 반도체, 노동: AI ‘생산’의 네 기둥

AI의 실체를 하나의 ‘생산 과정’으로 보면 왜 기업들의 경쟁이 국가 간 경쟁으로 발전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과정의 단계마다 재정과 강제력을 가진 국가의 뒷받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첫째, 전력이다.

미국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2010년대 중반까지 60테라와트시에서 거의 늘지 않았다. 데이터센터가 정보를 저장하는 창고 구실을 할 뿐, 정보를 생산하는 구실을 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7~2023년 사이에 그 수치는 176테라와트시로 뛰었다. 미국 전체 전력 소비의 4.4퍼센트다. 2028년에는 6.7퍼센트에서 최대 12퍼센트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데이터센터가 창고에서 공장으로 바뀐 것이다.[그림 1] 중국의 데이터센터도 마찬가지다. 중국 정부 수치로 2022년 77테라와트시, 2030년 추정 400테라와트시다.

그림 1. 미국과 중국 데이터센터 전력소비 2015~2030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5퍼센트, 중국은 25퍼센트다. 2024년 기준 하이퍼스케일러(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보면 미국은 51퍼센트, 중국은 16퍼센트다.

규모를 실감하기 위해 비교하자면 일론 머스크가 만든 초대형 AI 슈퍼컴퓨터 클러스터인 콜로서스 한 대는 인구 25만 도시만큼 전기를 쓴다. 이런 막대한 전기를 확보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스리마일섬 핵발전소에서 나올 전력을 20년 동안 사기로 계약하고, 트럼프는 “좋고 깨끗한 석탄”을 내세우는 것이다.

둘째, 냉각에 필요한 물이다. 미국의 데이터센터 클러스터는 심각한 가뭄 지역에도 있다. 기후 위기로 가뭄이 더 극심해진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데이터센터 건설 반대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셋째, 반도체다.

1971년 인텔의 첫 상용 마이크로프로세서에는 트랜지스터 2,300개가 들어 있었다. 오늘날 5나노 공정은 1제곱밀리미터에 1억 7,100만 개를 넣는다. 고도로 발전한 기반 산업이 필요하다 보니 공정마다 독점이 생긴다. TSMC는 2024년 세계 위탁생산의 최소 64퍼센트를 차지했고, 최첨단 공정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머신러닝용 칩 시장의 80~90퍼센트를 장악하고 있다. 반도체 초미세 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 노광 장비는 ASML 한 회사만이 만든다. 미국은 2020년 기준으로 칩 설계 매출의 46퍼센트를 차지했다. [그림 2]

그림 2. 세계 반도체 시장과 독과점

넷째, 훈련 데이터와 그것을 만드는 노동이다.

데이터에 이름표를 붙이는 일은 사람이 한다. 그 일은 미국에서 시작했지만 인도와 케냐와 우간다로 외주화됐다. 임금이 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온라인상의 이미지와 글에 태그를 달아야 하는데, 살인이나 성폭행 같은 끔찍한 범죄나 아동 학대 장면 등을 보고 그것들을 분류한다. 그런 고역에 노동자들은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한다.

손꼽히는 데이터 라벨링 회사인 스케일AI의 고객 명단에는 미군의 상당 부분이 들어 있다.

광산과 발전소, 수자원, 저임금 노동을 최첨단 기술과 결합시키는 AI는 “대규모의 장기적 투자가 중요한 기술 경쟁”이다. 그러므로 이 산업은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가속시키고, 국가의 개입을 불러들인다.

‘국가의 귀환’이 아니라 국가자본주의의 재편

국가를 불러들인다고 해서 그동안 국가가 떠나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정책에 대한 노동운동의 영향력을 줄이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재편하는 것”이었다. 1 해체가 아니라 재편이었다.

오늘의 국가자본주의도 신자유주의와의 단절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제약과 정치적 조건에 따른 자본주의 지상 명령의 최신 적응 형태”라고 봐야 한다. 2

니콜라이 부하린은 이 적응의 원리를 110년 전에 이렇게 말했다. “‘국민경제’는 금융 집단과 국가가 형성한 하나의 거대하게 결합된 트러스트로 전화된다. 우리는 이 조직을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라고 부른다.”

핵심은 세계경제가 긴밀히 통합될수록 국가 간 경쟁이 오히려 격화한다는 역설이다. 110년 전 카우츠키 이래 좌우를 막론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세계경제의 통합으로 전쟁이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실제로는 그 반대의 동학이 작동하고 있다.

미국은 2022년 반도체법을 통해 첨단산업에 2,800억 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다. 인텔, TSMC, 삼성, 마이크론 등이 수혜를 입었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인텔 지분 10퍼센트를 가졌다.

중국에서는 국가가 기업 자본의 42.5퍼센트를 소유한다. 2015년에 도입된 국가안보법은 모든 기업을 국가 안보의 대상으로 삼는다. 공산당 규약에 따라 모든 기업에 당 세포가 들어간다. 반도체 대기금에는 1,500억 달러가 들어갔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 봐 말하자면 시진핑은 “과도한 복지주의”를 “나태를 기르는 함정”이라고 일컬었다. 중국은 앞에 무슨 수식어를 달든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계 없는 국가자본주의 사회다. 미중 경쟁은 국가자본주의들 사이의 경쟁, 제국주의 경쟁이다.

물론 국가는 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엔비디아의 대중국 수출이 허용된 것에서 보듯 국가도 자기 나라의 대자본들과 협상해야 하는 처지이고, 트럼프가 늘 짜증을 내는 이유다.

딥시크 충격이 불붙인 칩과 희토류 쟁탈전

AI 산업에서 “산업적 수단과 목적을 군사적 수단과 목적에 융합하라는 압력”은 국가자본주의화의 전형적인 과정을 보여 준다. 3 [그림 3~4]

그림 3. 경쟁이 가하는 압력 1 - 하루 만에 사라진 시가총액

2025년 1월 중국의 딥시크가 훨씬 적은 칩으로 미국 최상급 AI 모델에 맞먹는 성능을 냈다. 그날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에서 5,930억 달러가 지워졌다. 미국 주식 시장 역사상 하루 사이에 사라진 액수로는 최대 규모였고, 전문가들은 “스푸트니크 모먼트”*라고 불렀다.

그러자 트럼프는 중국의 AI 연구를 묶어 두겠다며 AI 칩 수출을 통제했다. 이는 중국의 혁신을 억누른 것이 아니라 자극했다. 제2차대전으로 천연고무가 끊기자 미국이 국가 개입으로 합성고무를 만들어 낸 것과 마찬가지다.

딥시크 발표 하루 뒤, 스케일AI의 최고경영자 알렉산더 왕은 트럼프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중국의 공격”에 맞서 “더 많은 재정 지원”을 요구했다.

경제와 군사의 융합은 자원 쟁탈전으로도 나타난다. 인공지능과 희토류는 깊이 얽혀 있다. 미국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희토류 수입의 70퍼센트를 중국에 의존했다. 미국에서 가동 중인 광산은 캘리포니아의 마운틴패스 하나뿐인데, 그것도 중국 정부가 지원하는 기업이 일부 소유하고 있다. 미국은 군사용 중희토류를 가공할 능력이 없어 중국으로 보내야 한다.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위협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 섬에는 세계 50대 핵심(미국 지배층이 안보에 필요하다고 간주하는) 원자재 가운데 43종이 묻혀 있다. 유럽연합이 지정한 핵심 원자재 34종 가운데 22종이 우크라이나에 있다.

부하린은 이런 자원 통제(독점)의 논리를 110년 전에도 지적했다. “한 번 특정 ‘국민적’ 집단의 수중에 들어가면, 다른 집단은 손을 쓸 수 없다.”

그림 3. 경쟁이 가하는 압력 2 - 자원 병목

AI와 군사의 융합은 이미 현실

동시에 정부 문서에서 갈수록 전쟁의 언어가 늘어나고 있다. 백악관의 〈AI 행동 계획〉은 “의문의 여지 없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적 기술 우위”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이 “국가 안보상 필수 과제”라고 밝혔다. 부통령 밴스는 2025년 3월 투자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래의 전쟁이든, 미래의 일자리든, 미래의 경제적 번영이든, 우리는 그것을 바로 여기 미국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드론 제조사 대표는 우크라이나군이 연간 100만 대의 드론을 소모한다며 “군사 구매력”이 “재산업화에서 …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고 했다.

가자에서 AI는 이미 대량 감시 체계로 쓰이고 있다. 타격 대상 건물을 고르는 AI의 이름은 ‘가스펠’, 사람을 고르는 AI는 ‘라벤더’라고 불린다. 팔란티어는 이란 전쟁에서 신속한 결정으로 수천 개의 목표물을 타격하는 ‘메이븐’ 시스템을 구축했다. 베네수엘라에서 마두로를 납치하는 데에는 앤트로픽의 LLM 모델이 사용됐다.

이재명 정부는 “전격전”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재명 정부의 목표: 아류제국주의로의 도약

한국은 이런 경쟁의 그림 속 어디에 있을까?

30년 가까이 중국에 투자해 온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엄청난 호황을 누리면서도 모순된 처지에 놓여 있다. 삼성은 시안에, SK는 우시와 다롄에 공장이 있다. 미국처럼 중국도 한국 기업을 이용하려 하면서 동시에 견제한다.

이재명 정부의 메가프로젝트는 미중 사이 줄타기에서 더 큰 자율성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자강’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국주의 열강의 질서 안에서 줄타기를 하며 자기 몫을 키우려는 시도는 그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자주적’ 핵 능력이든 ‘소버린’ AI든, 앞에 무슨 말이 붙든 그것이 무엇을 위한 능력인지는 달라지지 않는다.

AI가 지금까지 실적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은 분야는 사실상 하나뿐이다. 전쟁, 즉 살상 능력이다.

메가프로젝트 문서에도 군사가 있다. 국방반도체, 국방 로봇이 있다. 8월 12일 발표된 7대 프로젝트 가운데 세 가지, 즉 핵융합, 양자 컴퓨터, SMR(소형모듈형핵반응로)은 성공한다면 어마어마한 군사적 이점을 제공하는 기술들이다.

부하린은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미 설명했다.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의 군사력은 그 트러스트가 경제적 투쟁에서 쓰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류제국주의가 될 잠재력을 갖췄다. 그러나 잠재력은 현재의 상태와 구별된다. 즉, 아직은 제국주의와 아류제국주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재명 정부는 AI 메가프로젝트와 '방산 강국' 프로젝트를 연결시키고 있다 ⓒ출처 한화디펜스

전력, 물, 노동에 돌아올 메가프로젝트의 청구서

이 잠재력을 실현하려고 추진되는 메가프로젝트는 2040년 데이터센터의 추가 수요를 24.7기가와트로 제시했다. 핵발전소로 치면 18기 분량이다.

서남권에 대겠다는 하루 65만 톤의 용수는 200만 명이 쓰는 수돗물과 같은 양이다. 그만한 수원을 확보하려면 이명박의 한반도 대운하, 실제로 시행된 4대강 사업에 버금가는 개발 사업이 필요하거나 주민들에게 희생을 요구하거나 둘 다일 것이다.

메가특구특별법(안)은 소득 상위 3퍼센트 관리자와 연구개발자에게 주 52시간 상한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담고 있다고 한다. 법정 휴게시간과 휴일 규정,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도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런 말도 했다. “52시간제 이슈는 우리의 가장 큰 경쟁 상대인 중국과 비교해야 한다.”

이 압박은 미국 실리콘밸리, 유럽, 일본의 경쟁사 노동자들에게도 가해진다.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유럽 나라들과 일본도 속도전을 강조하며 AI 경쟁에 국가 보조금을 쏟아붓는 한편, 노동 규제를 개악하려 한다. 국가자본주의들의 경쟁이 어디서나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재명 정부는 정면 탄압보다 설득과 회유를 앞세울 것이다. ‘메가프로젝트가 잘돼서 나라가 부강해지면 노동자한테도 이득이다’, ‘지금 경쟁이 심한데 당신들이 그런 요구를 하면 우리나라가 뒤처진다, 국익을 해친다’ — 이런 논리로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압박하고 회유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AI 호황의 성과가 노동자의 삶으로 흘러내린다는 약속은 실현된 바 없다. 대만에서도 반도체 호황이 역대급이라는데 청년 주택난과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거품을 알아도 멈출 수 없는 AI 질주

일각에서는 AI 거품을 크게 강조한다. 거품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마이클 로버츠에 따르면, 장부 가치 대비 주가로 측정한 AI 거품의 규모는 2000년 닷컴 광풍 때의 17배다. 2025년 AI 자본지출은 3,320억 달러인데, 매출은 287억 달러다.

앞서 말한 대로 이 거품은 한국만의 것도 미국만의 것도 아니다. 각국이 국가 지원으로 밀어 올리는 투자 규모가 세계적으로 거품을 부풀리고 있다. 그러니 그것이 터질 때의 파급도 한 나라 안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품의 존재 자체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 자본주의 하에서 세계적 경쟁이 각 참가 단위들로 하여금 거품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AI를 향해 질주하게 만드는 압력을 낳는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AI 도입으로 일자리 증가나 생산성 향상이 지표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AI가 도입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AI 도입이 노동강도를 높이고 노동시간을 늘리는 효과가 있음을 지적한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성과를 내도록 요구받고, 경쟁을 강화해 노동시간도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용어로 하면 절대적 잉여가치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기업들보다 먼저 더 효과적인 AI를 도입한 기업은 특별 잉여가치를 얻을 수도 있다.

경제 전체에 내는 효과가 무엇이든, 기술을 먼저 도입한 기업과 국가는 이익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우위를 위해서라면 경제적 리스크는 물론이고 세계 전체가 무슨 일을 겪든 개의치 않을 것이고 우선순위를 조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30년 넘는 기후 ‘협약’ 끝에 네팔에서 벌어진 끔찍한 재난을 보라.

이 정신 나간 질주가 단지 경제적 경쟁에서 그치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도 경고해야 한다.

“절대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이란 없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 정부는 대자본이 파산하지 않도록 엄청난 재원을 투입했다. ’부자들의 사회주의’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이번에 AI 거품이 붕괴하면 2008년처럼 정부가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당시처럼 세계 금융 시스템을 유지한 채(그 결과 유럽 등 다른 주요국의 은행도 지원을 받았다) 그렇게 하려고 할지, 할 수 있을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트럼프가 해 온 것처럼 ‘자국 우선’을 강조하며 국가자본주의적 해결책을 찾으려 시도하면, 그 시도 자체가 세계 금융 시스템의 균열과 국가 간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의 국가자본주의화가 특별히 우려스러운 이유다.

사실 미국과 중국의 국가자본주의화는 AI 경쟁보다 먼저 진행돼 왔다. 그것이 크게 가속된 계기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였다. 시진핑 집권 이후에 나온 조치들은 하나같이 국가의 통제를 대폭 강화하는 동시에 해외로 뻗어 나가는 것이었다.

동시에 중국 지배자들은 자국 군사력을 빨리 키우지 않으면 경제를 아무리 따라잡아 봐야 소용이 없다는 판단 아래 국가자본주의화를 더한층 강화했다.

그리고 중국의 ‘굴기’를 그냥 뒀다가는 미국이 경쟁에서 따라잡히겠다는 두려움 때문에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로의 중심축 전환’(피벗)을 선언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시 양대 강대국이 똑같은 것을 느꼈다는 점이다. 이전과 같은 방식의 경쟁으로는 더 이상 쉽지 않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그 결론의 핵심 요소 하나가 바로 군사력과 산업을 한층 더 융합하는 것이었다.

이런 추세가 위기를 맞으면 전쟁이 의제에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AI가 군사 영역에서 발달하고 비대칭 전쟁 수단으로 세계가 쑥대밭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거품 붕괴는 경제 위기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정학적 위기를 심각하게 격화시키는 경로를 제공할 수 있다.

그 결과는 엄청난 재앙이겠지만, 더 지긋지긋한 것은 그런 일만으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질서가 저절로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레닌이 지적한 대로 자본주의가 전쟁과 착취 강화 통제를 노동계급을 희생시켜 극복하지 못할 “절대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이란 없다.” 4 19세기 말부터 위기에 시달려 온 자본주의 시스템이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사반세기 넘는 장기 호황을 누린 것이 그런 사례다.

따라서 한국 정부의 핵보유 열망과 AI 기술의 군사적 이용, 반도체와 희토류 생산을 위한 국내외의 환경 오염, 그리고 노동자에 대한 통제 강화와 착취 모두에 맞서야 한다.

메가프로젝트와 국가자본주의적 경쟁 강화가 노동계급에 내미는 청구서, 그것에 맞서려면 자국 지배계급의 ‘국익’ 추구에 협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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