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으로 본 메가프로젝트
〈노동자 연대〉 구독
이재명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한 세대 전과 완전히 딴판이 돼 있음을 보여 준다. 세계화가 순항하던 시절, 세계 자본주의를 호령하던 미국과 주요 열강은 국가가 시장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현실이 무엇이었든 간에) 외쳤다.
이제는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이재명의 메가프로젝트에서 (국가를 대표해서) 정부는 한국의 최대 반도체 기업 성장을 위해 돈과 땅과 전기와 물을 대겠다고 나섰다. 이쯤 되면 외국 기업들로부터 불공정 경쟁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 그런 조짐도 없다. 뒤에서 보겠지만, 지금 세계 곳곳에서 국가와 대기업이 한 몸이 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술 더 뜨고 있다.
110년 전 제1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러시아 혁명가 니콜라이 부하린이 《제국주의와 세계경제》에서, 그리고 이듬해 레닌이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레닌은 자본주의가 새로운 단계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자유 경쟁이 낳은 집적과 독점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자, 거대 자본들은 국가와 융합해 세계 자체를 두고 다투는 경쟁으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세계 분할은 “자본에 비례해”, “힘에 비례해” 이뤄진다고 레닌은 썼다.
부하린도 자본주의의 ‘최신’ 현상을 파고들었다. 은행과 산업이 결합한 거대 독점체들이 국가와 갈수록 긴밀하게 얽히더니, 마침내 나라 경제 전체가 하나의 기업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부하린은 이렇게 썼다.
“‘국민경제’는 금융 집단과 국가가 형성한 하나의 거대하게 결합된 트러스트로 전화된다. 우리는 이 조직을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라고 부른다.”(니콜라이 부하린, 《제국주의와 세계경제》, 책갈피)
이런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 간의 경쟁은 세계시장에서 이전 어느 시대에도 없던 규모로 다시 타오른다. 세계경제가 긴밀히 통합될수록 국가들 사이의 경쟁은 오히려 격화한다는 역설이 레닌과 부하린이 남긴 제국주의론의 핵심이다.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
산업통상부는 보도자료에서 반도체 전략을 속도전·거점전·선도전이라고 명시했다. “국가[의] 전 구성원이 단결하는 총력지원체계”라고 강조했다. 전력·용수 대책에는 ‘전기국가’라는 신조어도 등장한다. 전쟁과 총동원의 어휘가 문서를 가득 채우고 있다.
재원은 반도체 특별회계, 국민성장펀드, 초저리 장기임대 산업단지로 마련한다. 기구로는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반도체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를 신설한다. 국가가 직접 시장 확보·조성에 나선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앞장서 교육, 국방, 재난대응 등을 위한 로봇을 선제 구매하여 초기 시장을 창출”한다.
전기와 물은 한국전력과 수자원공사가 공급하고, 부지는 인허가 단축과 강제수용 절차로 보장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7월 6일 점검회의에서 “오직 속도전이 중요하다”며 토지의 협의 취득과 강제수용 절차를 동시에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이제 부하린이 1915년에 작성한 목록과 비교해 보자.
“국가 발주가 ‘국민적’ 기업에게 제공된다. 위험에 처했지만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는 ‘유용’한 기업에게는 소득이 보장된다. 갖가지 방법으로 ‘외국인’의 활동을 방해한다.”(위의 책)
보조금, 군수 주문, 신용 정책, 자국 기업 전용 발주, 위험 사업에 대한 수익 보장 등 항목 하나하나가 110년 전과 판박이다. 로봇 선제 구매는 자국 기업 전용 발주의 현대적 판본이며, 특별회계와 성장펀드는 국가가 돈을 끌어모아 보조금을 대는 셈이다.
의사결정 구조도 마찬가지다. 메가특구특별법의 골자는 국회 심의에 앞서 당정협의에서 조율되고, 여당은 ‘메가프로젝트 지원 TF’를 꾸려 법안 통과를 지원하기로 했다. 국힘은 ‘관치’ 운운하며 트집을 잡았지만, 입지(호남) 등을 문제삼은 것일뿐 메가프로젝트 자체에 반대하지 않았다. 부하린은 이런 구도 역시 이미 묘사했다. “오늘날 의회는 대체로 장식품에 불과하다. 그것은 기업가 조직이 미리 준비한 결정들을 확인하고, 통합된 부르주아지 전체의 집단적 의지를 형식적으로 비준할 뿐이다.”(위의 책)
국가와 시장 — 짧은 역사
레닌과 부하린이 포착한 경향은 그들의 사후에 만개했다. 1929년 대공황이 닥치자 영국과 미국은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자국 경제에 보호장벽을 쳤다.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참전국들은 전시에 경제 전체를 국가가 직접 통제했다.(크리스 하먼, 《크리스 하먼의 새로운 제국주의론》, 책갈피, 46~50쪽)
제2차세계대전 후에도 국가자본주의는 한동안 우세했다. 서방의 기간산업 국유화와 복지국가, 소련과 동유럽·중국의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남반구 신생 독립국들의 국가 주도 발전 전략(“발전주의 국가”)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중반기 동안 세계 자본주의의 지배적 형태는 모종의 국가자본주의였다. 1970년대 중반 이윤율 위기가 닥친 후에야 시장 근본주의자들이 변방에서 주류로 부상했고, 치열한 쟁투 끝에 우리가 아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렸다.
그 시대에 국가가 정말로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 종주국 미국의 정부지출은 신자유주의 원년이라 할 1979년에 국내총생산의 33.6퍼센트였는데, 이후 오늘날까지 한 번도 34퍼센트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코로나19 대응이 정점에 달한 2020년에는 47.3퍼센트까지 치솟았다.(에이드리언 버드,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189호) 파산한 기업들을 구제하느라 2008~2009년에도 각각 38퍼센트, 45퍼센트를 기록했다.
다른 선진국 경제도 대체로 비슷한 추세였다. 국가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역할을 조정했다. 자본 규제와 사양산업 지원에서는 물러났지만, 노조를 공격하고 노동자에게 시장 규율을 강제하는 역할은 오히려 강화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후퇴한 것은 국가 전체가 아니라 국가의 ‘왼손’ — 과거 사회적 투쟁의 흔적인 복지 부서들 — 이고, 재무 관료와 은행이라는 ‘오른손’은 여전히 강력하다고 꼬집은 바 있다. 요컨대 신자유주의 질서의 실체는 국가의 퇴장이 아니라 부분적이고 선택적인 후퇴, 정확히는 재편이었다.
전환점은 2007~2009년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였다. 금융 시장이 붕괴하자 각국 정부가 개입해 은행을 국유화하고 재정을 투입했다. 그리고 “부자들의 사회주의”라고 자조적으로 불렀다. 자유시장의 본산이라는 미국에서 그랬다. 2012년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국가자본주의의 부상’이 신흥국들의 새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2020년 시작된 팬데믹 위기는 이 흐름을 가속했다.
가장 앞서 나간 국가는 중국이었다. 1990년대 이후 중국의 성장은 다국적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 자유화·시장 개방과 나란히 갔다. 그러나 시진핑 집권 이후 방향을 약간 틀었다. 2015년 국가안전법은 모든 기업 활동을 국가안보의 일부로 규정했다. 기업마다 경영진에 공산당 세포가 포함돼 전략적 결정에 관여했으며, 국유은행 대출은 국유기업으로 쏠렸다. 15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대기금이 첨단 산업을 뒷받침했다.(“반도체 굴기”)
미국 트럼프 1기 정부는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을 상대로 기술 전쟁과 수출 통제를 시작했다. 바이든 정부는 이를 이어받아 2,8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과학법으로 중국과의 기술패권전쟁을 이어갔다. 2025년 초 중국 딥시크의 AI 모델 발표가 미국에서 ‘스푸트니크 순간’(경쟁자에게 허를 찔린 충격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자, 트럼프 2기 정부는 국가 개입 수위를 한 단계 더 높였다.
인텔 지분 10퍼센트를 취득해 사실상 최대 주주가 됐고, 국방부는 자국 유일의 희토류 기업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나아가 1,000억 달러 규모의 ‘스타게이트’ 데이터센터 사업에 연방 토지와 보조금을 지원했다. 관세 장벽을 통한 압박도 여기에 포함된다.
유럽연합(EU)은 유럽을 ‘AI 대륙’으로 만들겠다며 5년간 2,000억 유로(약 335조 원) 규모의 지출 계획을 발표했다. AI 발전은 국가와 기업을 더 밀접하게 융합시키고 있다. AI가 경제 경쟁의 최전선이자 최첨단 군사 기술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에서 입증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최근 국가자본주의적 양상이 강화되는 점이 신자유주의와의 ‘단절’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가 간 경쟁 격화라는 새로운 조건에 맞춰 자본주의가 조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세계는 레닌과 부하린이 분석 대상으로 삼았던 바로 그 시기를 점점 닮아 가고 있다.
제국주의 경쟁 속으로
국가자본주의적 축적의 ‘기적’으로 불린 한국도 신자유주의 시대를 지나 다시 국가자본주의 시대로 진입하기 시작하는 모양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의 수혜자이면서도 국가자본주의의 유산(은행에 대한 통제 등)이 지속돼 왔기 때문에 그 변모가 극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선진국들을 빠르게 추격하는 양상은 부하린 시대에 영국의 지위를 추격하던 독일, 러시아, 일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의 이런 행보가 박정희의 국가자본주의적 ‘관치’와 다른 점이 있다. 첫째, 무대가 다르다. 옛 발전국가는 미국이 관리하는 자유무역 질서의 우산 아래서, 그 질서에 올라타 수출로 성장하는 전략이었다. 지금은 그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은 안보를 이유로 갈라지고, 동맹국 사이에서도 보조금과 관세를 동원해 상대국 기업을 밀어내는 경쟁이 치열하다. 둘째, 주역이 다르다. 과거 국가 주도 발전이 후발국의 추격 수단이었다면, 지금은 최선진국인 미국 자신이 국가자본주의적 개입을 가장 공세적으로 재개하고 있다. 그만큼 경쟁의 강도와 위험도 커졌다. 이재명 청와대의 메가프로젝트는 이 새로운 각축전의 출정식 같았다. 셋째, 그럼에도 지금은 군사정권 당시처럼 국가가 자본의 투자 지휘관 구실을 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투자 브로커 비슷하다.
레닌과 부하린이 당대에 내린 결론처럼 세계 분할전은 누군가의 악의가 아니라 집적이 강제한 방법이고(레닌),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는 그 경쟁이 강제한 형태이며(부하린), 따라서 그 안에서 ‘착한 산업정책’을 고르는 길은 없다.
부하린이 이 분석에서 끌어낸 예측은 불길한 것이었다.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의 군사력이 경제적 투쟁을 위한 무기이기 때문이다.”(앞에 인용된 책) 국가 단위로 조직된 경제 경쟁은 결국 군사 경쟁과 연결되며, 20세기 전반부의 그 연결은 실제로 양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메가프로젝트에서 군사 항목들은 굳이 찾을 필요도 없이 겉으로 드러나 있다. 반도체 ‘선도전’의 투자 대상에는 국방반도체가 명시됐다. 정부가 선제 구매할 로봇의 용처에도 국방이 들어갔으며, 행사에는 방위사업청이 참석했다. 이재명 정부는 올해 국방예산을 8퍼센트 증액하면서 국방 전 분야에 AI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대체불가 대한민국”?
부하린은 국가·자본 융합체 안에서 국가의 힘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적했다.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의 최대 주주인 현대 국가는 가장 고도의, 가장 포괄적이고, 가장 완성된 국가조직이다. 현대 국가의 거대하고 어마어마하게 큰 권력은 여기서 탄생한다.”(앞에 인용된 책) 국가가 “총자본가”가 될수록, 노동자를 향한 국가의 권위 표명 의지도 함께 커진다는 것이다.
그 힘이 어디에 쓰일지 보여 주는 단서도 이미 나왔다. 당정 협의를 거치고 있는 메가특구특별법 잠정안에는 특구 내 일부 노동자에 대한 주52시간제 적용 예외가 담겼다. 올해 1월 반도체특별법이 통과될 때는 빠졌던 조항이 ‘국가 대 국가 경쟁’의 이름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서민 전기요금은 인상하면서 데이터센터용 저가 전기요금제를 도입하고, 지역 주민의 물과 전기를 공단으로 돌리는 계획과 강제수용 속도전까지 추진한다.(물과 전기, 핵발전 문제는 관련 기사; 메가프로젝트가 노동자·서민에게 내민 청구서 를 참고하라.)
이러한 추세는 (‘국익’의 이름으로) 애국주의도 강화한다. ‘국가 전 구성원의 단결’과 ‘대체불가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이를 암시한다. 국경 안팎의 노동자들이 ‘국익’ 경쟁의 수단이 됨과 동시에 그 비용을 치른다.
메가특구법의 주52시간 예외 조항, 국방예산 증액, 무기 수출 드라이브를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 물과 전기와 안전을 빼앗기게 될 지역 주민과 노동자들의 저항을 지지해야 한다. 노동계급은 자국 지배계급의 국제 경쟁 드라이브 반대편에 서야 한다는 110년 전 레닌의 정치적 결론은 오늘날에도 적용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