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3대 메가 프로젝트’:
반도체·AI, 성장의 새로운 견인차인가 거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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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는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메가프로젝트는 AI 산업과 연관된 반도체, 로봇, 데이터센터에 1,500조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라도에 총 800조 원을 들여 반도체 공장 4기를 짓고, 5년 내 메모리 생산 능력을 두 배로 늘린다. 또한 2035년까지 총 18.4기가와트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전국에 짓고, 충청권에는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거점을, 영남권에는 피지컬 AI 벨트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대규모 투자와 정부의 인프라 지원을 결합해, 한국을 첨단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3대 메가 프로젝트는 한국 경제의 생산 능력 자체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려는 담대한 산업 정책”이라고 규정하면서, “한국은 일본의 길을 가장 충실히 따라온 나라에서 그 길을 가장 먼저 벗어나는 나라가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즉, 한국이 일본식 저성장 경제에 빠지지 않게 할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주요국의 정부와 자본가들은 AI가 성장의 견인차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고 있다. 또, 각국 정부들은 자국 기업들의 생산성이 뒤쳐질 것을 우려하는 한편, AI 기술을 국방, 안보 분야 등에서 활용하기 위해 AI 인프라 투자 경쟁에 나서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은 AI가 향후 전쟁의 승패를 가를 핵심 기술임을 보여 준다.
이재명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는 친기업 정책을 본격화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두 재벌 총수를 “국민 영웅”이라 부르며 90도 인사까지 했다.
그래서 민주노총, 정의당, 노동당, 환경단체 등 엔지오가 ‘3대 메가 프로젝트, 개발 폭주를 멈춰라’는 공동 성명을 하며 메가프로젝트에 반대하고 나섰다. 진보당도 수차례 성명을 내며 메가프로젝트를 비판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그동안 내세워 온 ‘노동 존중’, ‘탈핵’ 등을 내팽개치고, 노동자 쥐어짜기, 핵발전소 증설, 환경 파괴 등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메가 프로젝트’의 이런 친기업적이고 환경 파괴적인 문제점에 반대해야 마땅하다.(관련기사; ‘메가프로젝트가 노동자 등 서민층에게 내민 청구서’)
AI 투자는 이윤을 낼 것인가
그런데 3대 메가프로젝트의 성패는 AI 산업이 더 성장할 것인지, 그리고 AI가 생산성 향상을 이룰 것인지 하는 근본적인 문제와 연관돼 있다.
3대 메가프로젝트의 경제적 전제는 AI 투자 수요가 상당 기간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한국이 반도체 생산과 데이터센터 운영, AI 모델, 산업용 로봇을 연결한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면 새로운 성장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AI 투자 호황의 근본 가정은 AI가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리라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AI를 19세기 증기기관에 비견될 만큼 사회 전체에서 생산성을 높일 혁신적인 기술로 평가하고 있다. 생산성 향상이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궁극적으로는 경쟁에서 승리한 빅테크 기업들에게 막대한 이윤을 안겨주리라는 것이다.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미래가 걸린 기술 경쟁에서 뒤쳐지면 시장에서 완전히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현재 빅테크 기업들의 AI 설비투자 경쟁은 일종의 무제한 ‘군비 경쟁’ 양상을 띠고 있다.
최근 IBK투자증권은 ‘반환점 없는 AI 마라톤, 빅테크의 숨은 이미 가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의 AI 설비투자가 2025년 3,782억 달러에서 올해 6,437억 달러(약 1,000조 원)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투자 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돼, 2030년에는 약 1조 달러(1,5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재명 정부도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세계 AI 데이터센터 누적 투자가 5조 5,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런 막대한 AI 투자가 이윤을 내려면 앞으로 연간 수천억 달러의 영업이익이 남아야 한다. 그러려면 AI 산업의 연 매출은 2조~3조 달러는 돼야 한다. 현재 최대 빅테크 기업 중 하나인 구글의 연간 매출이 지난해에 4,000억 달러를 기록한 것을 고려하면, 목표치와는 까마득한 격차가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AI 투자 붐은 1990년대 말의 IT 거품에 비견되며 경고가 커지고 있다. AI에 투자가 잔뜩 몰렸는데, 뚜껑을 열어 보니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별 볼 일 없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주가가 폭락할 것이다. 닷컴 버블 붕괴 당시 시가총액 1위에 올랐던 IT 기업 시스코는 당시에 주가가 무려 80퍼센트나 폭락했다.
물론 IT 버블과 다르다는 반론이 있다. IT 버블 때는 실제 수요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개별 기업들이 IT 장비에 과잉 투자를 했다가 거품이 터졌다면, 최근 투자되고 있는 AI 데이터센터들은 모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IT 버블 때는 기업들이 많은 이윤을 얻지도 못하면서 무분별하게 투자를 했다면, 지금 데이터센터들은 큰 이윤을 얻고 있다는 반론인 것이다.
그러나 AI 빅테크들도 치열한 투자 경쟁을 위해 막대한 외부 자금에 의존하고 있다. 자신들이 버는 이윤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투자 규모가 커진 것이다. 결국 IT 버블 때와 마찬가지로 막대한 부채로 투자를 하기 시작한 것인데, 결국 부채를 갚을 만큼 이윤을 내지 못한다면 거품이 붕괴될 것이다.
이처럼 차입이 늘어나면서 지난번 거품 때 동원된 금융 수법들도 동원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사모 신용’에 대한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한다.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자금을 유치하는 데에 흔히 동원되는 방식은 사모 신용에 기초한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는 것이다. 그러한 법인은 관련 기술 기업들의 대차대조표에 나타나지 않는다.” 요컨대, AI 빅테크 기업들에는 숨겨 둔 막대한 부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모 신용에는 미국의 주요 은행과 보험회사들이 자금을 대고 있다. 사모 신용의 붕괴는 미국 은행과 보험회사들에게까지 전이돼 금융 시스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정부 규제를 벗어난 ‘그림자 금융’이 크게 성장했다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발생하자 공황이 터지며 금융 시스템이 붕괴 직전까지 갔었다.
생산성 패러독스
AI 투자의 이러한 거대한 흐름은 버블 우려를 키우고 있다. IMF나 영국은행, BIS 같은 주요 금융기관들뿐 아니라 미국 재무부 내부 보고서조차 세계적인 AI 투자 붐이 버블을 형성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물론 미국 재무부는 그 내부 보고서가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미 재무부의 공식 입장은 AI가 전례 없는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고, 미국의 새로운 황금시대를 이끌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일부 AI 투자 옹호자들은 지금 거품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거품은 “좋은 거품”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신기술과 혁신에 대한 과도할 정도의 투자 붐이 일어야 자본과 인력의 대대적인 조정이 가능해진다며 말이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피를 보겠지만, 세계를 변화시킬 새로운 기업이 탄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철도, 전기, 라디오, 자동차, 인터넷 등 신기술이 나타날 때마다 거품이 생기고 폭발했지만, 결국 살아남은 기업들이 세계 경제를 바꿨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이번 AI 투자 열풍에서 살아남은 기업이 사람들을 지루한 업무에서 해방시키고,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거나 신약 개발을 촉진하는 등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세계은행이 올해 6월에 내놓은 〈글로벌 경제전망 보고서〉는 AI 덕분에 우리 시대 생산성이 강한 회복세를 보여 줄 거라고 전망했다. 그동안 추세적 하락(2000년대 1.4퍼센트→2010년대 1.1퍼센트→2020년대 0.8퍼센트 전망)에 있던 세계 생산성 증가율이, AI의 확산으로 향후 10년간 최소 1.4퍼센트에서 최대 2.7퍼센트로 올라갈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켜 줄 수 있다는 점과, 이 기술이 생산성을 높이고 자본주의 경제를 성장시킬 동력이 실제로 되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1920년대 전기, 라디오, 자동차 등 신기술이 대량으로 나왔지만, 1930년대에는 전례 없는 대불황을 겪었다.
주류 경제학자들도 이런 현상을 ‘생산성 패러독스’ 문제로 제기해 왔다. 예컨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솔로는 1987년에 이렇게 썼다. “우리 주변 어디를 둘러보든지 ‘컴퓨터 시대’를 실감할 수 있지만, 생산성 통계에서는 이것을 느낄 수 없다.”
또,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도 2016년에 쓴 책 《미국 경제성장의 흥망》에서 이렇게 썼다. “요즘 세상을 가만히 보면 잘 이해되지 않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인터넷 웹과 닷컴 혁명이 일어나고 이토록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보편화됐는데도 2004년 이후 10년 동안 미국의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은 저조(연 0.4퍼센트)한 편이다. 경제 전반의 생산성은 왜 이렇게 상승 속도가 느린가?”
이처럼, 새로운 기술이 일을 더 편하게 하고, 재화와 서비스를 더 값싸게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데도 막상 자본주의 경제 지표에서 생산성 향상이나 경제성장률 상승으로 나타나지 않는 문제는 주류 경제학자들을 당혹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생산성 패러독스’ 문제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으로 보면 당혹스러운 문제가 전혀 아니다. 마르크스는 이 문제를 ‘이윤율 저하 경향’으로 설명했다.
이윤율 저하 경향
마르크스가 말한 이윤율 저하 경향을 이해하려면 마르크스 경제학의 기본 개념을 간단하게 살펴봐야 한다.
마르크스는 노동가치론을 주창했다. 노동가치론에 따르면,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에 따라 결정된다.
자본가는 생산을 위해 기계와 원료를 구입하고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에 자본을 투자한다.
기계와 원료는 다른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생산된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를 ‘죽은 노동’이라고 불렀다. 이 죽은 노동은 생산 과정에서 그 가치가 단순히 새 상품으로 이전된다.
반면 노동자의 노동은 완성된 상품에 새로운 가치를 추가한다. 이렇게 추가된 가치 중에서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부분이 임금이고, 임금을 제외한 부분은 자본가가 가져간다. 마르크스는 이를 ‘잉여가치’라고 불렀다. 잉여가치가 자본가의 이윤이 되는 것이다.
요컨대 자본가의 투자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기계나 원료처럼 죽은 노동을 구입하는 투자는 그 가치가 완제품에 고스란히 이전될 뿐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를 ‘불변자본’이라고 불렀다.
다른 한편,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데 쓰인 투자는 임금분을 생산할 뿐 아니라, 추가로 잉여가치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투자한 것보다 큰 가치로 변하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이를 ‘가변자본’이라고 불렀다.
자본가들은 경쟁 때문에 되도록 노동생산성을 올리려고 한다. 노동생산성을 높이면 그만큼 상품을 싸게 만들 수 있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새로운 기계를 도입해, 노동자 한 사람당 사용하는 불변자본을 늘리는 것이다.
어떤 기업이 먼저 생산성을 높이면, 그 기업은 비용을 절감해 상품 가격을 떨어뜨리면서도 이윤을 늘리고 시장 점유율을 키울 수 있다. 다른 자본가들도 기술 혁신에 나서고 곧 가격 인하 경쟁에 동참한다.
그러나 이렇게 신기술이 보편화되면, 경제 전반에서 고용보다 기계나 기술에 더 많은 투자가 된 상태가 된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봤듯이 잉여가치의 원천은 노동자의 노동이다. 결국 전체 투자 대비 이윤량, 즉 이윤율이 하락한다.
자본가들은 이윤을 더 많이 얻으려고 경쟁하다가 이윤을 창출하는 수단 자체를 생산에서 주변적 지위로 몰아내는 셈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 모순이다.
이것은 앞서, 로버트 솔로나 로버트 고든이 제기한 ‘생산성 패러독스’ 문제의 답을 준다. 기업들은 생산성 경쟁에서 앞서 가려고 앞다퉈 PC, 인터넷, AI에 투자한다. 먼저 투자하고 혁신을 이룬 기업은 일시적으로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새 기술이 보편화되면 이윤율은 더 떨어진 상태가 된다. 그러니 생산성 향상 수치도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AI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은 AI 기술 도입 후에 생산성 향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금융 위기의 근본 원인은 실물 경제의 이윤율 하락
이윤율 저하 경향은 AI 거품 문제나, AI가 생산성을 높일 것인지 하는 문제에만 답을 주는 건 아니다. 이 법칙은 지난 수십 년간 세계경제가 저성장을 지속하면서 금융 부문만 커지고, 때때로 금융 위기가 터지는 근본 원인을 설명해 준다.
일부 논평가들은 금융 자본과 투기꾼들의 투기 때문에 금융 위기가 터진다고 비난한다.
물론 사람이 탐욕에 눈이 멀면 황당하리만큼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할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투기꾼들은 어리석은 짓을 저지를 막대한 자금을 어디서 제공받았는가?
이윤율 저하는 이를 설명해 준다. 이윤율이 낮아지면 기업들은 생산적 투자를 꺼리게 된다. 그러면 저축은 쌓이고, 생산된 제품은 다 팔리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과잉’ 생산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때,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은 그나마 수익성이 좋아 보이는 채권, 주식, 부동산 등 자산 시장으로 옮겨 간다. IT나 AI가 큰 이윤을 낼 것이라고 기대하며 그 부문에 투자가 몰린다. 최근 급증한 사모 신용도 금융권에 쌓인 자금이 투자처를 찾아 나서다가 AI 투자에 몰린 것이다. 그러다 거품이 터지면서 결국 금융 위기가 온다.
또 다른 논평가들(흔히 좌파다)은 금융 자본이나 독점 자본이 너무 많은 이윤을 가져가서 노동자들의 소비 능력이 줄어들면 기업 이윤이 줄어들면서 경제 위기가 온다고 주장한다. 이를 ‘과소소비론’이라고 한다.
그러나 금융 자본이나 독점 자본이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간다 해도 실물 부문에 이윤율이 높다면 그들도 거기에 투자할 것이다. 그러면 다시 일자리가 늘어나는 등 그 효과는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며 소비가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독점이윤론도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
경제 위기는 일부 자본의 탐욕이나 자본의 특정 조직 형태 때문이 아니다. 실물 경제 전반의 이윤율 하락, 즉 자본주의 생산 자체의 모순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조차(예컨대 데이비드 하비) 경제 위기의 원인을 이윤율 저하 경향으로 보지 않는다. 이윤율 저하 경향을 부정하는 그들은 자본주의를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조절하면 경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금융이나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은 이번 메가프로젝트에 대한 좌파들의 비판에서도 나타나는 듯하다. 앞서 본 것처럼 이들은 핵발전소 증설, 물 사용 증대에 따른 환경 파괴, 노동자 쥐어짜기 등을 근거로 메가프로젝트에 대해 옳게 반대한다. 하지만 AI 거품이나 AI 생산성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또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예컨대, “우리 사회의 산업구조 전반에 대해 정부가 선제적인 계획을 가지고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이나(정의당 성명서), “국가균형발전과 산업 리스크를 분산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며 긍정적으로 본 것도(전종덕 진보당 원내부대표), AI 거품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점을 보여 준다. 노동당도 반도체 특별법이 대기업 특혜라고 반대했을 뿐이다. 이들도 AI의 생산상 향상에 대해 일부 또는 전적으로 기대하면서, 자본주의를 고쳐 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아무리 조절하려고 해도, 자본주의 자체의 한계인 이윤율 저하 경향을 막을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주기적으로 경제 위기가 벌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으며 생계에 큰 타격을 받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뿐 아니라 사회 혁명의 필요성을 보여 준다.
심화되는 정치 위기
AI 거품은 계속 커지고 있다. 특히 대규모 투자를 계속하려고 벌어지는 온갖 금융 술수들을 보면 거품임이 분명하다. 또, 앞서 살펴본 것처럼 AI 기술이 보편화되면 생산성을 높여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실현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주요 대기업들과 각국 정부는 AI 투자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한발 앞서 나가 기술을 선점하면 얻을 수 있을 경제적, 군사적, 안보적 이익이 매우 크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도 ‘3대 메가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이 경쟁에 적극 뛰어들었다.
그러나 AI 거품 붕괴로 닥칠 경제 위기는 또다시 수많은 사람들을 실직과 고용 불안정, 노동유연화로 내몰아 그들의 삶을 파괴하고, 지정학적 경쟁 격화로 세계를 한층 더 위험하게 만들 것이다.
금융 위기는 세계 주요국들의 재정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얼마 뒤 남유럽 재정 위기로 전이된 바 있다. 이번 재정 위기의 여파는 그때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현재 재정 위기 위험 국가로 지목된 나라들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처럼 경제 규모가 2010년대 당시 그리스보다 훨씬 더 큰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가 부채도 계속 급증해 36조 달러를 넘어 GDP 대비 약 125퍼센트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각국 정부는 자국 경제를 방어하기 위해 ‘이웃 거지 만들기’ 전략을 강화할 것이고, 이는 강화되고 있는 국가자본주의 경향, 격화되고 있는 지정학적 갈등과 결합될 수 있다.(1873년 미국 철도 거품이 붕괴하며 시작된 세계적인 장기 불황은 국가자본주의적 경향과 군사적·지정학적 경쟁을 심화시켰고, 결국 제국주의 세계 전쟁으로 발전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본지 기사 ‘자본주의는 어떻게 제국주의로 진화했는가?‘를 참조하시오).
각국 내에서도 경제 위기의 고통을 누가 떠맡아야 하는지를 두고 충돌이 치열해질 것이다.
AI 거품 붕괴는 정치적으로 매우 큰 파장을 낳을 것이다. 좌파들이 제대로 된 대안을 내놓고 투쟁을 이끌지 못한다면, 부상하고 있는 극우들이 대중의 불만으로부터 득을 얻으며 세를 확대할 수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정부는 ‘노동 존중’, ‘탈원전’ 등의 약속을 다 내팽개치고 기업 경쟁력과 ‘국익’을 위해 친기업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AI 거품이 붕괴되고 연쇄적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타격을 입힌다면, 그 피해는 노동계급 등 서민층에게 전가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가 첨예해지고 있는 고통 전가에 맞서는 저항을 제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