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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영국 ‘구 노동당’의 귀환이라는 환상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명예교수다. [ ] 안의 내용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노동자 연대〉 편집부가 넣은 것이다.

새 노동당 총리 버넘은 전임자 스타머보다 좌파적 언사를 하면서 실제 변화는 최소화하려 한다 ⓒ출처 Andy Burnham (SNS)

영국 노동당 총리 앤디 버넘이 연례 당대회에서 한 연설은 그가 키어 스타머를 외과 수술하듯 깔끔하게 몰아냈을 때 이미 분명했던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 줬다. 온갖 감상적인 언사를 걷어내고 보면 버넘은 대담하고 영리한 정치인이다. 그럼에도 그가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사회주의 정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버넘은 2024년 7월 총선 결과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있음을 보여 줬다. 당시 스타머가 얻은 압도적 과반 승리는 신기루였다. 1945년 클레멘트 애틀리, 1966년 해럴드 윌슨, 1997년 토니 블레어가 거둔 진정한 노동당 압승과는 비교가 안 된다. 2024년에 의석이 크게 이동한 것은 정당 지지가 나뉠 때 단순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결과였다.

노동당, 보수당, 영국개혁당[나이절 퍼라지가 이끄는 극우 정당], 자유민주당, 녹색당의 5당 체제가 등장했다. 스코틀랜드국민당(SNP)과 플라이드 컴리[웨일스 민족주의 정당]까지 치면 사실 7당 체제이지만, 이 두 당은 영국 중앙정부를 차지하려고 경쟁하지 않는다. 이런 구도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야비하고 무능한 스타머 정부는 오히려 어떻게 하면 패배하는지를 보여 줬다.

그런데 2월 고튼앤덴튼[맨체스터의 노동당 텃밭 지역구] 보궐선거 결과는 여기에 새로운 요소를 보탰다. 당시 녹색당의 승리는 스타머 몰락의 주된 수혜자가 꼭 극우여야 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 줬다. 진보적 대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버넘은 노동당이 바로 그 구실을 하도록 새 단장 시키려 한다.

버넘은 연설에서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정부가 영국 사회를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한 것을 거듭 비판했다. 이는 케미 베이드녹 대표 하의 보수당이 대처주의 쪽으로 급격히 움직이는 것과 대립각을 세우는 데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버넘은 미사여구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대안 세 가지를 내놓았다. 첫째, 국민보건서비스(NHS)에 견줄 만한 ‘국민돌봄서비스’를 신설해 처참한 사회적 돌봄의 실태를 끝내겠다는 것이다. 둘째, 선거제도 개혁을 다룰 전국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셋째, 유럽연합과 “영국의 장기적 관계” 문제를 다루겠다는 것이다. 버넘은 여기에 어쩌면 유럽연합 재가입도 포함될 수 있다고 이후 밝혔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로버트 슈림슬리가 지적했듯 이런 공약에는 “기민한 정치 전략”이 담겨 있다. “왼쪽에서 선거 연합을 재건한 뒤, 선거제도 개혁이 우파의 집권을 막아줄 것이라는 노골적인 기대 아래 그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영국개혁당은 더는 선두가 아니다. 그리고 퍼라지가 총리가 되는 것을 막으려고 전략 투표를 할 의향이 있는 중도좌파 성향 유권자가 많다. 버넘의 정책 묶음이 논리적으로 향하는 길은, 선거제도 개혁과 유럽연합 재가입을 모두 열렬히 지지하는 자유민주당과의 연립이다.

슈림슬리는 또 “새로운 앤디는 ‘구(舊) 노동당’[신자유주의를 적극 수용한 블레어의 ‘신노동당’ 이전의 노동당] 노선을 천명”해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싶어한다고도 했다. 아마도 1950~1960년대의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뜻일 것이다. 터무니없는 말이다. 버넘은 사회적 돌봄 개혁의 재원 일부 마련을 위해 국민연금 보호 장치인 ‘삼중 잠금’[연금을 해마다 물가 상승률, 평균 임금 상승률, 2.5퍼센트 중 가장 높은 것만큼 올리는 제도]을 손보자고 한다. 그의 안대로라면 2030년 4월 이후에도 연금 수령액은 물가 상승률 혹은 2.5퍼센트 중 높은 쪽을 따라 인상될 테지만, 평균임금 상승률과는 더는 긴밀하게 연동되지 않게 될 것이다.

녹색당 지지 경제학자 제임스 미드웨이는 이렇게 지적한다. “이것은 사회적 돌봄 비용을 대려고 미래의 연금 수령액을 삭감하는 것이다. 다소 퇴행적일 공산이 크다. 돌봄 비용 때문에 집을 팔 필요가 없어지는 사람들은 득을 볼 것이다. 반면 자가 보유자가 아니거나 돌봄이 필요 없는 사람들은 연금 개혁으로 손해를 볼 것이다.”

영리한 수이기는 하다. 삼중 잠금을 깨면 가난한 연금 생활자들이 고통을 겪겠지만, 그것은 여러 해 뒤의 일이다. 게다가 이것은 대기업들과, 대기업들의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는 BBC와 재정연구소(IFS)가 목청 높여 요구해 온 것이기도 하다. 버넘은 복지 지출 문제에서 자신이 ‘강경’할 수 있다는 신호를 그들에게 보내는 것이다.

버넘이 추진하고 있는 종류의 정책 전환은 여러모로 그의 외무장관 에드 밀리밴드가 개척한 길이다. 밀리밴드는 점령지 팔레스타인 내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과의 교역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그 발표는 엄청난 소란을 일으켰는데, 주로 이스라엘이 격하게 반발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밀리밴드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영국-이스라엘의 경제·안보 관계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어조는 극적으로 바꾸되 현실은 최소한으로만 바꾸는 것, 이것이 바로 버넘의 수법이다. 이럴수록 진정한 좌파적 대안이 더한층 시급히 필요해진다.

번역: 김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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