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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혁명과 국제 좌파의 과제

다음은 최근에 있었던 국제사회주의경향(IST) 주요 단체 대변자들 사이의 대담 중 아랍 혁명에 관한 부분만 정리한 것이다. 한국 관련한 최일붕(다함께 국제연락간사)의 말은 생략했다. 녹취와 번역에는 전문 통역자이자 다함께 회원인 천경록이 수고해 줬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SWP) 아랍 혁명들은 분명 세계사적 중요성을 갖는 과정이다. 첫째, 튀니지와 이집트의 혁명은 연속 혁명으로 발전할 실질적 잠재력이 있는 미완의 과정들이다.

독재 정권들이 타도된 뒤 이어지고 있는 구 정권 청산 작업, 보안 경찰을 해체하려는 움직임, 새 헌법을 둘러싼 투쟁, 무바라크 퇴진 이전부터 폭발하기 시작한 노동자 운동 등을 보면 이 과정이 연속 혁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음을 알 수 있다.

4월 1일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위대 이집트 혁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집트의 경우 이 과정에서 우리 자매 조직인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하 RS)’이 중요한 구실을 했음을 빠뜨릴 수 없다. 예컨대 RS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보안 경찰에 대한 공격을 처음 시작했고 이것이 일파만파 확대됐다.

둘째, 아랍 혁명은 아직 중동 전역으로 계속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미완의 과정이다. 지난 열흘 사이 시리아에서 일어난 사태가 이를 특히 잘 보여 준다.

시리아와 사우디아라비아 정권은 가장 타도하기 어려운 축에 드는데, 왜냐하면 둘 다 매우 협소한 혈연 기반의 독재 정권들이고, 종파간 분열이 존재하고, 매우 억압적인 통치 기구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사우디는 아직까지는 시위 확산을 막는 데 성공하고 있는 듯하지만 시리아에서는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이처럼 아랍 혁명은 개별 국가 수준에서든 지역 수준에서든 미완의 과정이다. 우리에게는 이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작지만 중요한 도구가 있는데, 중동에서 가장 거대하고 투쟁 경험이 많은 노동계급이 존재하는 이집트의 RS가 바로 그것이다.

RS 동지들은 이집트 혁명으로 가는 길을 닦은 이전의 모든 운동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즉, 하나의 경향으로서 IST는 이 과정에 직접적인 정치적 개입을 해 온 것이다.

우리는 세계 혁명의 가능성을 논할 때 항상 이집트를 중요한 고리로 생각해 왔고 한동안 RS를 지원하는 데 많은 역량을 쏟아 왔다. 그러므로 향후 이집트 혁명의 전개 과정은 우리 정치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아랍 혁명에서 또 다른 변수는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개입이다. 서방의 개입은 여러 모로 뜨뜻미지근한데, 특히 미국이 주저하는 기색은 2000년대 초의 기세등등함과 확연히 대비된다. 서로 모순되는 동기도 있는 듯하다.

프랑스의 의도는 지중해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재천명하는 데 있는 반면 미국은 사태 흐름을 앞질러 감으로써, 즉 시위대와 같은 편인 척함으로써 통제력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 그렇게 얻은 통제력을 결국에는 중동을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한다는 목적에 이용하려는 것이다.

서방의 리비아 개입은 반제국주의 좌파를 분열시키는 효과를 어느 정도 냈다. 예컨대 질베르 아슈카르(프랑스 사회주의자)는 지난주 오바마의 연설을 거의 찬양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여론을 보면 예컨대 영국 여론은 이라크 전쟁 초기보다 리비아 개입에 덜 우호적이다. 오바마 역시 자신의 지지도 하락을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리비아 개입은 아랍 혁명의 결과를 제국주의에 더 안전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서방 국가들의 시도로서, 아랍 혁명 과정을 복잡하게 꼬이게 만들고 있다. 어쨌든 우리는 리비아 사태를 중동 지역 전체의 맥락에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파노스 가르가나스(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 SEK) 아랍 혁명과 관련해서 두 가지 유념할 점이 있다. 첫째는 긴축에 반대하는 투쟁에 참여해 온 그리스인들에게 특히 아랍 혁명이 큰 자극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혁명이 다시 의제에 올랐다는 생각은 운동 진영과 혁명적 사회주의자들 모두에게 큰 힘을 주고 있다. 아테네를 타흐리르 광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불어넣어 줬다. 물론 이것이 성급한 행동을 낳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아랍 혁명이 그리스의 모든 시위와 파업에 자신감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우리가 과거 [중동에 대한] 개입을 반대할 때는 항상 개입의 동기가 석유 통제권만이 아닌 강대국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미국의 패권 유지와 관련 있음을 지적해 왔다.

이는 리비아 개입과 관련해서도 중요하다. 알렉스가 질베르 아슈카르의 사례를 언급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리비아 개입은 좌파 진영 내에서도 혼란을 자아내고 있다.

[그리스의] 스탈린주의 좌파들, 특히 공산당은 리비아 사태가 음모이고 진정한 혁명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서방의 개입을 불러들이기 위한 명분 만들기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좌파 진영 내의 이 같은 주장들을 반박해야 한다. 제국주의 전쟁의 전개 과정에 관해 우리 전통이 제시하는 풍부한 설명을 활용하고 리비아 개입이 어떻게 그 과정의 일부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풍부하고 열띤 논쟁에 개입해야 한다.

캘리니코스 서방 개입을 반대하면서도 리비아 혁명을 지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바로 리비아 혁명을 지지하기 때문에 서방 개입에 비교적 동조적인(그리고 카다피를 증오하는) 많은 아랍 대중과 접점을 잃게 될 위험이 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우리의 주장이 많은 지지를 얻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주장이 호소력을 얻을 것이다. 이미 리비아 반군 쪽에 대한 서방 강대국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고 CIA 등과 같은 어둠의 세력이 리비아에서 활개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들은 갈수록 반군들을 서방의 공습 작전을 위한 척후병으로 이용하려 할 것이다. 벵가지의 임시정부 ‘리비아 국가위원회’도 갈수록 친서방적인 이미지를 내세워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현실의 상황 전개가 우리의 주장을 입증해 줄 것이다.

불행히도 그것은 리비아 혁명이 약화됨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중동 전역의 혁명 물결이 끝난 것은 아님을 우리는 강조해야 할 것이다.

슈테판 보르노스트(독일 마르크스21) 독일에서는 논쟁 구도가 평상시와는 정반대다. 알다시피 독일은 UN에서 리비아 개입에 반대표를 던졌다. 독일 우파들은 카다피를 싫어할 이유가 없다. 지금껏 카다피는 그들의 훌륭한 사업 파트너였고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의 유럽 유입을 막아 주는 방파제였다.

오히려 녹색당과 사민당 좌파들이 리비아 개입을 가장 적극 찬성하고 있다. 핵 발전 문제 등 다른 여러 쟁점과 관련해서는 우리와 종종 협력해 온 세력들이 말이다. 이런 사람들을 ‘배신자’라거나 ‘적들의 편으로 넘어갔다’는 식으로 매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보다는 ‘무엇이 혁명에 도움이 되는가’를 중심으로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리비아 개입에 반대하는 쪽에는 애당초 리비아 혁명에 무관심했거나 반군들을 ‘지하드[성전]주의자들’ 정도로 취급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사회주의자’ 카다피를 방어하기 위해 서방 개입에 반대하는 것이다.

반대로 처음부터 아랍 혁명에 관한 우리의 주장에 동의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서방 개입에 동조적이다. 이런 사람들을 내치기보다는 그들과 동지적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디링케는 처음부터 리비아 개입에 분명히 반대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데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독일 정부도 처음부터 리비아 개입에 반대했고, 독일 여론도 카다피 군을 폭격하는 것을 지지하는 여론은 2퍼센트, 독일 병력을 투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여론은 62퍼센트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올바른 입장이긴 하다. 그러나 아까 말했듯이 그 논거에 종종 문제가 있다. 상당수 사람들이 카다피를 지지하는 관점에서 개입을 반대한 것이다.

캘리니코스 그런 류의 스탈린주의 정치와 선을 긋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리비아 반군 진영의 구성은 매우 이질적인 것 같다. 카다피 정권에서 떨어져 나온 인사들도 있고, 자유주의적 인권 지지자들도 있고, 이슬람주의자들도 일부 있는 듯하다.

일각에서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알 카에다일 것으로 단정하는데, 그렇게 볼 근거는 전혀 없다. 우리 쪽에서 리비아 사태를 가장 밀착 취재하고 있는 동지가 얼마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리비아의 이슬람주의자들과 한 인터뷰를 올렸다. 거기서 이슬람주의자들은 서방의 리비아 개입 때문에 서방에 대한 자신들의 시각이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상황이 아주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집트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활약

캘리니코스 지금 RS는 여러 가지 일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독재 정부의 하수인 국가안보국을 점거한 시위대

첫째, 독립 노조를 건설하는 일에 몇 년째 힘을 보태고 있다. 둘째, 혁명수호민중위원회들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의 상당수 지역에서 민중위원회 건설을 주도한 바 있다.

민중위원회를 통해 RS 동지들은 조직 규모를 크게 뛰어넘는 영향력을 발휘해 왔고, 앞서 언급했듯이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보안 경찰에 대한 공격을 이끌기도 했다.

셋째, 민주노동자당(Democratic Workers’ Party)을 만들려 하고 있다. RS보다 더 광범한 당으로 만들 계획이고, 지난 수년간의 노동자 투쟁 속에서 새롭게 떠오른 노동자 활동가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목적이다.

이 프로젝트는 민중연합당(Popular Alliance Party)이라는 것을 만들려는 또 다른 프로젝트와 경합을 벌이고 있다. 민중연합당은 사실상 기성 좌파들의 재결집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이집트 공산당의 합법 프론트 조직이었던 타가무 당이 참여하고 있다. 타가무 당 지도자들은 무바라크를 사실상 지지한 전력 때문에 매우 큰 불신을 받고 있다.

한편 군부는 명백히도 최소한의 헌법 개정만을 허용하려 하고 있다. 구 집권당인 NDP(국민민주당)뿐 아니라 무슬림형제단도 최소한도의 개헌이라는 목표에 힘을 보태고 있다.

2주 전쯤에 군부가 제시한 최소한도의 개헌안을 놓고 국민투표가 실시됐는데, 이를 주도한 양대 세력도 NDP와 무슬림형제단이었다. 국민투표 결과를 보자면 찬성이 78퍼센트, 반대가 22퍼센트 정도였던 듯하다. 그다지 나쁜 결과는 아니라고 본다.

카이로에서는 찬성이 60퍼센트, 반대가 40퍼센트였는데, 이는 당시 카이로 상황을 고려하면 결코 나쁜 결과가 아니다. 당시 반대를 주장하는 세력은 인권 운동가들과 강경 좌파들 정도였다.

규모 있는 정치 단체들은 찬성표를 던지자고 주장했다. 전국 수준에서 찬성표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은 혁명의 기운이 아직 농촌까지는 충분히 전파되지 못했음을 반영한다. 이집트에서 여전히 인구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농민들 사이에서는 무슬림형제단의 영향력이 크다.

이렇듯 이집트에서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 전개되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은 동질적인 조직이 아니다. 일종의 고전적 사회민주당이라고도 볼 수 있다.

비록 본질은 부르주아 정당이지만 구 정권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기도 하고, 동시에 그 저항이 너무 멀리 나아가지 않도록 억누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슬림형제단의 부르주아적 지도부는 명백히도 군부와, 그리고 이집트 지배계급과 모종의 거래를 맺은 것 같다. 그들의 목적은 무슬림형제단 내 ‘근대화주의자’들의 이상인 터키식 정치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즉 민주적으로 선출된, 사회적으로 보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이슬람주의 정권을 수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의 청년 조직들은 혁명에 적극 참여했다. 이 청년 조직들과 지도부 사이에는 온갖 종류의 분열이 존재한다.

RS 동지들은 이처럼 매우 복잡한 환경 속에서 활동해야 한다. 그래서 엄청난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 이들은 소규모 조직으로서 진정한 혁명적 과정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고, 그래서 할 일이 태산처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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