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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이렇게 생각한다:
이재명은 사회민주주의 정치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강조했듯이, 자본주의 국가는 가장 민주적인 형태일지라도 자본가 계급이 자신의 사회적 지배를 지키기 위해 세운 기구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자기 자신의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기 자신의 정당을 세워야 한다.

마르크스·엥겔스가 말한 노동자 정당은 당연히 혁명적 정당이었다. 개혁적 정당이 아니었다. 개혁적 노동자당의 대표 사례는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회민주당 등이다.

이 정당들을 두고 사회민주주의라고도 한다. 레닌은 사회민주주의를 “부르주아적 노동자당”이라고 했다. 자본주의적인 노동자당이라는 것이다.

이 정의도 괜찮기는 하지만, 사회민주주의를 노동조합 관료에 기반을 둔 개혁주의 정당으로 이해하는 것이 분석에 가장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노동계급이 정치적으로 미성숙해서, 시스템 전체를 없앨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꽤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레닌이 말했듯이, 노동조합적 의식이 사회주의적 의식으로 도약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데 힘쓰기로 하고 개혁주의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노동자들은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이런 시기를 거쳐 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브라질 같은 다른 신흥공업국 노동자 운동도 마찬가지다. 남아공에서는 아프리카민족회의 ANC가 개혁주의를 대표해 왔고, 브라질에서는 노동자당 PT가 개혁주의를 대표해 왔다. 한국에서는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정의당과 진보당이 개혁주의를 대표해 왔다.

그러나 지금 민주노총 상근간부층(이하 관료)의 다수는 민주당 소속 경기도지사 이재명을 지지하고 있다. 위원장과 사무총장을 배출한 전국회의 전체, 국민파 간부의 대다수, 그리고 중앙파 간부의 다수(어쩌면 대다수)가 그러고 있다. 전에는 공식적으로 민주노동당과 그 계승 정당의 후보를 지지했는데, 이제는 그 제한(‘배타적 지지’로 불렸던)이 풀려 버리고 있는 듯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지만, 박근혜 퇴진 운동의 성격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박근혜 퇴진 촛불 시위는 위대한 운동이었지만 한계도 있었다. 반부패 민주주의의 성격을 뛰어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운동은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많이 참가했지만 노동자들의 계급 투쟁이 되지는 못했다. 요구든, 투쟁 방법이든 노동계급 고유의 것이 득세하지 못했다. 가령 파업 같은 수단을 통해 이윤이나 공공업무에 타격을 주는 일은 없었다.

덕분에 더한층의 확장이 이뤄지기 전에 탄핵이라는 상층에서의 합법적 방식으로 대통령과 그 핵심 측근 몇몇의 제거라는 선에서 그쳤다.

박근혜 퇴진 운동으로 가장 부상한 세력은 노동계 지도자들, 특히 민주노총 관료였다. 그 결과 노동조합 조직들이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새로 운동 속으로 이끌려 들어온 청년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적 의식을 뛰어넘지 못했다. 그 결과 지난 4년 남짓 사이에 일어난 투쟁들은 부문적·경제적 한계들을 넘지 못했다.

이런 정치적 상황 전개가 반영된 것이 좀 더 개혁적인 민주당 지도자를 찾는 것이었다. 민주당 정부에 대한 실망과 환멸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므로 이재명이 단연 가장 두드러지게 부상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특히, 이재명의 좌파적 민족주의(가령 미군정을 “점령군”이라고 표현한 것)나 좌파적 포퓰리즘(가령 그가 말하는 “억강부약”)은 한국 노동운동의 정서와 잘 들어맞는다.

이 정서는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했다: 일제 강점과 민족 분단, 민족 내부 전쟁, 오랜 독재 치하의 삶 경험, 미국의 간섭과 제국주의적 영향력, 재벌과 정권의 부패한 유착, 보안법에 의한 민주적 자유의 제약, 노동자 억압의 강력한 유산 등.

노동운동가 다수가 민주당 정치인인 이재명을 지지하는 건 미국과 닮은꼴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 민주당은 한국의 민주당보다 더 터놓고 대자본가 정당이고, 미국 노총 AFL-CIO는 민주노총보다 훨씬 온건해 오히려 한국노총과 닮았다.

이 점에서 한국의 노동조합-정당 관계는 좀 더 왼쪽에 있는 다른 나라 사례와 닮은 듯하다. 바로 멕시코의 경우이다. 3년 전 새로 선출된 좌파 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줄여 호칭해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2012년 민주혁명당 PRD에서 분당해 신당을 창당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친정인 민주혁명당 PRD와 부패 문제를 제외하면 그다지 큰 차이가 없는데, PRD는 좌파 포퓰리즘, 좌파 민족주의 정당이므로 이데올로기 상으로 이재명과 비슷한 정당이다.

정의당과 심상정이라고 해서 이재명에 비해 별 뾰족한 좌파적 변별성이 없다면,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에 실험된 이재명의 개혁 조처들이 대중에게 더 큰 인상을 남기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때 더 많은 개혁 조처들을 얻지 못한 게 중앙 정부의 제약 때문이니 이재명이 대선에서 이겨 중앙 정부의 집행권을 얻어야 한다고 대중은 생각하지 않을까?

사실 정의당은 진보당도 한일갈등이나 조국 논란, 소위 검찰개혁 등의 문제를 놓고 스스로 포퓰리즘을 드러내는 바람에, 민주당과 차별화된 대안을 제공하지 못했고, 노동자 대중의 소박한 정서에 질문을 제기하지도 못했다.

이번에도 민주노총과 정의당, 진보당은 노동운동의 힘을 한국 자본주의의 주요 정당이 된 민주당에게 넘겨 주는 구실을 할 것인가?

이재명에게 찍지 말라든가, 아예 대선 투표에 불참하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투표를 앞두고 우리는 이재명에게 찍으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할 수 있다.

물론 이재명이 당선돼도 이재명 정부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경제 위기와 제국주의 갈등으로 그의 운신의 폭은 아주 제한돼 있다.

더구나 민주당의 역사를 보면 민주당은 거대한 사회적 저항이 일어날 때마다 거듭 그 저항이 체제 자체에 도전하지 않도록 애써 왔다.

가령 1987년 6월항쟁의 요구를 사실상 대통령직선제로 축소시킨 것, 1997년 IMF를 불러들인 경제 공황 전의 입장을 대통령 당선 직후 손바닥 뒤집듯 번복한 김대중, 2008년 촛불 운동이 정점에 오른 6월 10일 직후 국회로 초점 맞추기를 강력히 촉구한 일, 박근혜 퇴진 운동을 합법적 절차로 수렴시키려고 애쓴 일 등.

처음에 이 운동들은 민주당에 짙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정치적 대안이 없었던 탓에 이 운동들의 기세는 민주당으로 수렴됐다.

그래서 우리는 당선 가능성이 희박해도 심상정에게 투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좀 더 긴 눈으로 정치를 보려 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이재명 찍기(또는 심상정 찍기)에서 더 나아가는 것이다. 이재명에게 찍더라도(아니면 심상정에게든) 그의 사회민주주의보다 훨씬 급진적인 대안, 곧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에 도전하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건설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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