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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해결 가로막는 제국주의 경쟁

기후 변화로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중동 지역은 살인적인 더위와 갈수록 깊어지는 가뭄으로 신음한다. 북극의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태평양과 카리브해의 작은 섬들이 가라앉을 위기이고, 해안 저지대는 태풍과 해일에 취약해지고 있다.

이런 재난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각국 정부에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대책을 실행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11월에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를 기해서도 대규모 시위가 예고돼 있다.

그러나 강대국 지배자들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기후 변화를 걱정한다. 최근 한국에 번역·출간된 《기후 붕괴, 지옥문이 열린다》(마이클 클레어 지음,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는 미국 지배자들이 군사적·지정학적 측면에서 기후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북극

예컨대 기후 변화로 빙하가 녹기 시작하자 북극이 새로운 요충지로 떠오르고 있다. 북극권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세계 석유의 약 13퍼센트와 철, 구리, 우라늄, 희토류 등 경제적 가치가 있는 광물 자원이 상당량 매장돼 있다고 한다.

만약 미국의 경쟁 국가가 북극의 석유를 장악하면 미국의 석유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한편, 기후 변화로 중동의 많은 지역에서 여름 평균 기온이 43~49도까지 올라가는 기간이 길어져 야외 노동이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중동의 석유 공급이 불안정해지면 북극의 석유가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북극을 향한 강대국들의 경제적·군사적 경쟁은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2016년 미국은 북극과 인접한 노르웨이에서 나토(NATO) 국가들과 1만 5000명 규모의 군사 훈련을 벌였다. 러시아가 북극권에서 노르웨이로 침입하는 상황을 가정한 훈련이었다. 또, 미국은 2019년에 북극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역시 2018년 첫 번째 북극 정책을 공개하는 등 북극을 일대일로 사업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있다. 중국 국영 석유 기업들은 노르웨이와 그린란드 등 북극에 인접한 국가들과 함께 북극해에서 시추를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제국주의적 경쟁 속에서 “온난화는 팽팽한 [긴장] 상황이 공공연한 전쟁으로 넘어가도록 쿡 찔러주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아랍의 봄

미국은 동맹국들이 기후 변화가 낳은 재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정치적 격변에 휩싸일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2010년 세계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이상 기후로 곡물 수확량이 크게 줄자 식량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폭등했다. 전체 식량의 절반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던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식량 가격 폭등은 기존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불만과 결합됐다. 이는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돼 순식간에 중동 전역으로 번진 아랍 혁명의 한 배경이었다.

“이 지역을 휩쓴 뜨거운 혁명의 물결은 … 정치적 지형을 영구히 바꾸어놓으며 미국에 새로운 안보 과제를 잔뜩 안겨주었다. 이집트의 대규모 시위는 결국 미국의 오랜 동맹이었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축출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강대국들은 직·간접적 개입으로 혁명을 좌절시키고 패권을 유지하려 했다. 가장 비극적인 사례 중 하나는 시리아 혁명이었다. 미국과 러시아, 터키, 이란 등 강대국들이 저마다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따라 군사적으로 개입했고 시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이 발생하는 생지옥이 됐다.

강대국 정부들은 국내에서 서민들의 기후 위기 피해도 가중시켰다. 미국에서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휩쓸어 2000여 명이 사망했다. 이라크 전쟁 비용을 충당하려고 홍수 방지 예산을 삭감한 것이 피해를 키웠다.

구호물품이 오지 않아 생존자들이 상점을 침탈하자, 미군 제82공수사단이 뉴올리언스에 배치됐다. 미국 도시에 군대가 배치된 것은 1992년 로스앤젤레스 반란 이후 처음이었다.

“녹색함대”

강대국들의 군사력과 군비 증강은 그 자체로 기후 변화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예컨대 미군은 전 세계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조직이다. 미군보다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나라가 스웨덴, 핀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스위스 등 140개나 된다. B-52 폭격기 한 대가 한 시간 비행하려면 도시에서 승용차를 7년 동안 몰 정도의 휘발유가 필요하다. 미국 정부는 교토협약에서 군사 용도의 온실가스 배출을 집계에서 제외하게 만들기도 했다.

환경도 파괴하는 살인기계 온실가스 내뿜는 B-52 폭격기 ⓒ출처 미 공군

미군은 최근 석유 사용량을 줄이고 재생 에너지를 개발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2016년 미군이 사용한 석유량은 2011년에 비해 20퍼센트 줄었다. 2016년 미군은 바이오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으로 함대를 구성하고는 “대(大)녹색함대”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군사적 필요에 따른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에서 적군의 공격으로 보급선이 끊기는 일이 빈발하자 각 부대가 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거나 자급자족 할 수 있게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미군의 한 보고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전투는 많이, 연료는 적게.”

《기후 붕괴》는 이것이 어쨌든 결과적으로 좋은 효과를 낳았다며 주목하지만, 이런 평가는 전쟁의 목적이 석유 지배력과 세계적 패권의 확보였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지배자들이 핵발전을 유지하려는 진정한 속내도 군사적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핵무기를 손에 넣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를 정당화하려고 핵발전이 기후 변화의 대안인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체르노빌,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 등이 보여 준 방사능 누출 위험은 차치하더라도, 핵발전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다. 우라늄 채굴부터 핵발전소 건설과 폐기물 보관까지 모든 단계에서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2016년 전 세계의 기후 관련 재정은 전 세계 군사비의 12분의 1에 불과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는 2018년 전 세계에서 군사비 지출이 1조 8000억 달러(2100조 원)에 달했다고 추산했다. 2019년 기준 한국의 국방예산은 46.7조원이었던 반면, 환경부의 기후 변화 대응 예산은 792억 원에 불과했다.

이런 돈을 재생 에너지를 늘리고, 대중교통 체제로 개편하고, 단열 설비가 잘 갖춰진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기후 재난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써야 한다.

그러려면 기후 위기에 맞선 운동은 제국주의적 경쟁에도 반대하고, 기후 위기와 제국주의를 낳는 근원인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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