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북극 쟁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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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그린란드 합병 발언을 계기로 북극 문제가 주목을 받고 있다.
트럼프는 2019년에도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때는 매스미디어가 이 발언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트럼프 측근들도 그린란드 문제의 중요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될 마이클 왈츠는 이렇게 말했다. “이 문제는 단지 그린란드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북극 문제다. 러시아가 북극의 왕이 되려고 한다.”(폭스 뉴스, 1월 8일 자)
미국 매스미디어의 태도도 바뀌었다. “미국 주요 언론들도 좌우를 떠나 트럼프의 의도에 대해 외교적으로 잘 협상해서 병합할 수 있다면 긍정적이라는 논조가 늘어나고 있다.”(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조선일보〉 1월 16일 자)
이런 변화는 북극을 놓고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음을 반영한다. 기후 변화라는 자본주의의 끔찍한 재앙이 북극에서 새로운 지정학적 불안도 낳고 있는 것이다.
기후 변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북극 항로 확대와 자원 개발의 가능성이 점차 커져 왔다. 지난 10년 동안 북극해의 선박 통행량은 37퍼센트나 증가했다. 해운사들에게 북극 항로는 바다 위에 새로 깔린 “고속도로”가 돼 가고 있다.
러시아는 이를 절호의 기회로 받아들였다. 2022년 푸틴 정부는 북극해를 통한 운송량을 2035년까지 4배로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옛 소련 시절의 북극 기지들을 재가동했고, 핵 추진 쇄빙선 4척을 포함해 약 40척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쇄빙선단을 운영하는 등 많은 군 전력을 북극에 배치해 놨다.
중국은 북극해에 면한 국가가 아니지만, 2018년 북극에 대한 이해당사국임을 선언하고 ‘빙상 실크로드’를 추진해 왔다. 북극 주변국들과 협력해 자원을 개발하며 북극해 경쟁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이는 군사적 확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2020년대 들어 알류샨 열도 등 중국에서 북극해로 가는 바닷길에서 중국 해군이 활동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이런 변화를 미국도 예의 주시하며 대응해 왔다. 지난해 7월 미국 국방부는 ‘2024년 북극 전략 보고서’를 내놓아, 러시아와 중국이 북극에서 벌이는 다양한 협력이 미국의 이해관계에 주는 위협을 경고했다.
이미 지난해 1월 미국은 북유럽 국가인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와 잇달아 방위협력협정을 맺는 등 북극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제 트럼프는 영토 확대로 북극 쟁탈전에 더 적극적으로 임하려 한다. 트럼프 측의 의지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덴마크도 미군 주둔 확대 등으로 그린란드에서 미국의 이익을 더 보장해 주겠다고 밝혔다. 트럼프와 협상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드러낸 노골적인 영토 야욕은 북극의 지정학적 불안을 더한층 키울 것이다.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도 잠재적으로 불안한 곳의 하나다. 이곳은 1920년 스발바르 조약을 맺어 주권은 노르웨이에 있지만 러시아 같은 다른 조약 가입국들이 자원 개발 등 경제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보장된, 비무장이자 비자가 면제된 지역이다.
그리고 이미 스발바르 제도를 두고 노르웨이와 러시아 사이에 긴장이 있다.
스발바르 제도는 러시아와 그린란드 사이에 있고, 러시아 북방 함대가 대서양으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곳이다. 그만큼 러시아에 전략적으로 중요하며, 노르웨이 땅임에도 옛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인들이 많이 정착해 있기도 하다.
2022년 노르웨이 정부는 서방의 대러 제재 이행을 위해 스발바르 제도의 바렌츠부르크에 러시아 선박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러시아는 반발했고, 지난해 스발바르 제도에 새 극지 연구 센터를 짓겠다고 발표하는 등 노르웨이의 제재에 대응해 왔다.
미국도 스발바르 제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공동으로 국무부에 서한을 보내, 중국이 스발바르의 연구 기지에서 군사적 목적의 연구 활동을 하는데 노르웨이가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노르웨이의 한 전문가는 트럼프의 그린란드 합병 발언이 북극해의 다른 지역에 미칠 파장을 우려했다. “그린란드는 러시아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거기보다는 핀란드 국경이나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 심지어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해상 경계선 같은 다른 목표물이 나는 더 걱정된다. 그런 곳들이 더 취약하다고 생각한다.”(〈폴리티코〉, 10월 10일 자)
북극 얼음이 녹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북극이 제국주의적 갈등의 새로운 발화점이 돼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