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기후변화정상회의(COP26):
기후 위기와 불평등 ─ 정의로운 해결책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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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는 가난한 나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을 주며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한국이 포함된 G20 국가들이 전 세계 온실가스의 80퍼센트를 배출하지만,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의 75퍼센트는 가난한 나라에서 생긴다.
지난해에 유엔 재난위험경감사무국이 발표한 ‘2000~2019년 세계 재해 보고서’를 보면, 기후 변화 때문에 지난 20년간 자연 재해는 그전 20년보다 70퍼센트가 늘었고, 해마다 6만 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재해 사망자 수는 저소득 국가가 선진국의 4곱절에 이른다. 기후 위기가 더욱 심한 적도 부근에 가난한 나라가 많을 뿐 아니라 홍수, 태풍, 가뭄 등에 대비하는 사회안전망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2019년에 기후 문제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나라 중 5곳이 아프리카에 있었다. 예컨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사막화는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8년간 나이지리아의 원시림은 14퍼센트 이상 사라졌고, 전체 국토의 35퍼센트 이상이 사막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농부의 95퍼센트 이상이 관개 시설 없이 농사를 짓는 상황이라 사막화는 심각한 식량 위기와 빈곤으로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해외 자본을 유치하며 무분별한 개발을 벌이는 빈국의 권력자들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기후 위기로 인한 물 부족 때문에 국가 간, 부족 간 갈등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30만 명이 죽고, 25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던 수단 다르푸르 학살에도 물 부족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기후 위기는 이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재난, 빈곤, 전쟁으로 인해 난민이 돼 세계를 떠돌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은 요새처럼 장벽을 치고 난민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한국도 난민 수용에 가장 인색한 나라 중 하나이다.
그러나 탄소 배출을 많이 해 온 선진국들이 기후 위기에서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산업화 이후인 1771~2017년 동안 이산화탄소 누적 배출량을 따져 보면, 미국이 전체의 25퍼센트, 유럽연합 28개국이 22퍼센트, 중국이 12.7퍼센트를 차지한다. 여전히 서방 선진국들의 책임이 더 큰 것이다.
한국의 이산화탄소 누적 배출량은 1퍼센트로 세계 16위이지만, 현재 배출량은 세계 8~9위다. 특히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12.54톤)은 세계 4위로, 세계 평균(4.79톤)의 2.5배이고 중국(6.92톤)보다 훨씬 많다.
세계자원연구소는 각국 정부가 내놓는 계획대로 탄소 배출이 줄어든다면, 2030년에 1인당 배출량 1위는 한국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본주의 체제와 그 수혜자들의 책임
온실가스 배출 책임이 선진국 국민 모두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1990~2015년 세계 1퍼센트 부유층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양은 가난한 50퍼센트가 배출한 양의 두 배가 넘는다(옥스팜). 같은 기간 부유한 1퍼센트의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율은 가난한 50퍼센트의 세 배에 달했다.
한국에서도 삼성 총수 일가가 매달 2500만 원어치 전기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집안에 적정 온도와 습도, 공기의 질을 유지하려고 많은 전기를 쓴다고 한다. 이들에게 열대야, 찜통 더위, 혹한은 남의 나라 일인 것이다.
무엇보다 탄소 배출은 대부분 기업 책임이다.
지난 30년간 거대 기업 100곳이 온실가스 배출량 71퍼센트에 해당하는 연료를 공급해 막대한 이윤을 거뒀다(탄소공개프로젝트(CDP)와 기후책임성연구소(CAI) 공동 연구). 1854~2015년 동안에도 사라진 기업까지 포함해 불과 224개 기업이 화석연료 72퍼센트를 공급했다.
한국에서도 탄소 배출량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포스코는 혼자서만 전체의 10퍼센트 이상을 배출한다. 한국에서 전력 소비는 가정용은 13.5퍼센트인 반면 산업용은 53.8퍼센트에 달한다.
따라서 기후 위기의 책임이 전체 인류에게 있는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탄소 배출 사업을 통해 막대한 이윤을 얻은 기업주들과 부자들, 각국 지배자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 이들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며 무한 경쟁을 벌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해 왔고, 그 수혜를 누려 왔다.
반면 각국의 노동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기후 위기로 인한 고통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올해 미국과 캐나다 북서부의 폭염, 갈수록 심해지는 캘리포니아의 산불, 텍사스의 혹한, 유럽의 홍수 등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한국에서도 2018년 폭염의 영향으로 무려 7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행정안전부). 앞으로 폭염은 더 늘어날 텐데, 뙤약볕에서 일하는 건설 노동자, 서울대 청소노동자처럼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 쉬어야 하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노약자들에게 그 고통이 집중될 것이다.
시장도, 유엔도 기후 불평등 해결 못해
각국 지배자들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기후 위기에 대응해 왔다.
예컨대, 탄소 배출권 거래제처럼 시장을 이용한 방식은 기업의 이윤을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탄소 배출을 제대로 감소시키지 못해 왔다. 또, 보편 증세 방식으로 도입된 탄소세는 그 역진적 성격 때문에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반발을 사 왔다. 2018~2019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노란 조끼 시위처럼 말이다.
영국 등에서 석탄화력발전소와 탄광이 폐쇄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그 고통을 짊어지기도 했다.
선진국 정부들이 화석 연료의 대안으로 육성한 바이오연료 사업은 세계적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곡물 가격을 인상시키며 가난한 사람들을 고통에 빠트렸다. 또, 제3세계에 숲을 조성해 탄소 배출을 상쇄하겠다는 선진국들의 계획으로 인해 원주민들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장 원리에 기댄 대안은 기업 이윤을 위한 꼼수와 사기 등으로 점철되며 문제를 악화시켜 왔다.
유엔과 같은 국제 기구도 기후 위기와 그로 인한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무능했다.
2009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15차 유엔기후정상회의는 2020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씩을 가난한 나라들에 지원해 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급된 돈은 200억 달러에 불과하다.
2015년의 파리기후협약은 선진국의 책임을 줄이려는 선진국의 입김이 반영됐고, 결국 가난한 나라들은 기후 위기의 책임을 물어 부유한 국가들을 고소할 권리를 포기해야만 했다.
유엔과 같은 국제 기구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관철되는 공간이다. 각국 정부는 자국 기업의 이윤과 국가경쟁력을 우선하며 암투를 벌인다. 이 때문에 기후 위기 대처는 언제나 후순위이고, 생색내기 수준에 머물러 왔다. 지난 수십 년간 유엔을 통한 기후 위기 대응은 완전히 실패했다.
진정한 대안
기후 불평등 심화는 기후 위기를 둘러싼 진정한 분단선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 준다. 진정한 분단선은 채식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지 않다. 또, 선진국의 노동계급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분단선은 계급 사이에 놓여 있다. 화석연료 체제에 기반해 이윤을 뽑아내는 자본가와 각국의 지배계급은 이 체제를 수호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는 반면,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은 기후 위기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
따라서 기후 위기에 맞서 지속 가능한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이해관계는 노동계급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다. 이들이 이윤을 위한 생산 체제인 자본주의를 끝장내고, 진정으로 민주적으로 계획하는 사회를 건설할 때에야 기후 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할 것이다.
이런 사회를 건설하려면 노동계급의 힘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에서 생산을 담당하고 있어 이윤 체제를 마비시킬 결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2019년 프랑스에서 노란 조끼 시위가 벌어졌을 때 전력노조의 조합원들은 전력 시설을 점거하고 요금 체납으로 전기가 끊긴 가정에 전기를 공급했다. 다른 모든 산업에서도 노동자들은 스스로 생산을 조직할 잠재력이 있다.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이런 노동계급의 힘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를 대규모로 생산·공급하고, 단열이 잘 되도록 집을 수리하고, 대중교통을 대거 확충하고, 재난에 대비해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고, 공공의료 시설을 늘리는 일 등은 모두 노동자들의 손으로 이뤄지는 것들이다.
오늘날 “기후 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는 인기 있는 구호이다.
이를 위한 진정한 동력은 시장이나 권력자들 사이의 협상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기후 위기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투쟁이 전진하는 데서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