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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건설 파산 위기:
무보상 국유화해 노동자와 수분양자 보호하라

시공순위 16위인 태영건설이 부도(디폴트) 상황에 처했다. 12월 28일 서울 성수동 오피스 개발 사업 관련한 42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영건설은 부동산 호황기에 빚을 내 평당 1억 5000만 원을 주고 고가에 성수동 부지를 사들였지만 수익성이 떨어지며 1년이 넘도록 착공 계획도 세우지 못하다가 빚을 못 갚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갚아야 할 빚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사업을 시작하며 빚을 냈지만 아직 착공도 못하고 있거나, 분양률이 낮아 떠안게 된 고위험 채무는 태영건설이 밝힌 것만도 2조 5000억 원에 달한다. 태영건설의 자본 대비 부채 비율은 470퍼센트가 넘는데, 사업이 위기에 빠질 경우 부채로 떠넘겨질 수 있는 연대보증까지 포함하면 700퍼센트가 넘는다.

정부는 태영건설의 부도가 건설사 전반의 문제가 아닌 “특수한 상황”이라며 시장을 안심시키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러나 태영건설은 결코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2020년 말 92조 원에서 지난해 9월 기준 134조 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이 중 70조 원가량이 만기를 연장하며 버티고 있는 채무이다. 건설 경기가 회복되지 않을 경우 부실화할 공산이 큰 것이다.

이미 지난해 중·소형 건설사 19곳이 부도가 났다. 2020년 이후 가장 많다. 종합건설사 폐업 건수는 1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게다가 태영건설을 시작으로 대형 건설사 부도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롯데건설, 신세계건설, 동부건설 등의 위기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건설사 위기가 심화할 경우 금융권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지난해 9월 기준 금융권의 부동산 PF 연체율은 2.42퍼센트로 2022년 말에 견줘 두 배로 증가했다. 특히 증권사의 PF 연체율은 14퍼센트에 달한다. 저축은행은 5.6퍼센트, 상호금융은 4.18퍼센트 등으로 크게 치솟았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 위기의 여파 속에 한국의 100대 건설사 중 45곳이 부도에 처한 바 있다. 그 여파로 2011년에는 저축은행 연쇄 부도가 벌어져 85곳 중 30곳이 파산했었다. 현재의 부동산 PF 부실 문제는 그 규모와 파급력 면에서 10여 년 전보다 더 클 수 있다.

막대한 기업 지원

이 때문에 정부는 부동산 PF 부실이 터지지 않게 하기 위해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이미 2022년 레고랜드 사태가 터졌을 때 부동산 PF 부실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당시 위기가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는 금융회사들이 부동산 PF 대출의 만기를 연장하게 하고, 수십조 원에 달하는 저금리 특혜보금자리론 등을 공급하며 부동산 시장 부양에 주력했다.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와 부동산 관련 감세 등의 혜택도 쏟아 냈다.

또, 85조 원에 달하는 시장 지원 조처도 시행 중이다. 위기에 빠진 기업의 회사채와 어음을 매입하고(16조 원), 금융 채권을 매입하고(20조 원), 증권사의 유동성을 지원하고(3조 원), 부동산 PF 건설사를 지원하는 등의 조처들이 포함됐다.

최근 태영건설 부도 사태로 위기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는 이 지원책을 100조 원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고 했다.

위기에 빠진 PF 사업장을 LH가 직접 매입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최근 발표한 ‘2024 경제정책방향’에서도 부동산 개발 기업들에게 대규모 감세 혜택을 주고, 아파트 ‘제로 에너지’ 건축 의무화를 유예하는 등 기후 관련 규제도 완화했다.

이와 같은 조처는 그야말로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고 할 만하다.

집값, 땅값 급등기에 건설회사, 금융회사들은 PF 투자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였다. 건설사와 금융회사들은 잘 나갈 때 수익은 다 챙겨가 놓고는 위기에 빠지자 정부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것이다.

반면, 정부는 “개인 간 사기”에 정부가 지원할 수 없다며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보증금을 지원하라는 요구는 냉담하게 외면했다.

부동산 호황 시기 큰 이윤을 남긴 건설사, 금융회사들이 위기의 책임도 져야 한다. 1월 8일 건설노조 기자회견 ⓒ출처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지부

그런데 부동산 호황기에 막대한 수익을 챙긴 태영건설 소유주 윤세영 일가는 자신들의 재산을 손해 보지 않으려고 온갖 꼼수를 부리며 정부와 채권단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채권단을 이루고 있는 은행과 금융회사들도 부동산 시장이 잘 나갈 때는 PF 대출로 큰돈을 벌었지만 지금은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다툼을 벌이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장 이복현이 윤세영 일가를 비난한 것도 그런 다툼의 일환이다. “부동산 호황기에 태영건설은 시공·시행을 한꺼번에 맡으며 1조 원이 넘는 이익을 벌었고 그 상당 부분이 오너 일가 재산 증식에 쓰였다.”

태영그룹 회장(이자 윤세영의 아들) 윤석민은 2022년 연봉만 23억 원이었고, 윤세영은 10억 원이 넘었다.

고통 전가

앞으로 태영그룹이 채권단과 협약을 맺어 워크아웃을 하든, 워크아웃이 무산되고 정부가 나서서 회생 절차를 진행하는 법정관리를 하든 가장 큰 고통은 노동자와 수분양자들에게 강요될 것이다.

기업 회생을 위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 해고와 임금 삭감 등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금호타이어에서는 2010년부터 진행된 워크아웃 기간 동안 노동자 임금이 40퍼센트나 깎였다. 2009년 쌍용차 법정관리 과정에서는 대량 해고가 벌어졌다.

건설업의 특성상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피해도 상당할 것이다. 벌써 일부 건설 사업장에서는 임금 체불이 벌어지고 있다.

태영건설이 짓고 있던 아파트의 입주를 기다리고 있는 수분양자 2만 명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

시장 실패의 책임을 노동자와 평범한 사람들이 떠안아야 할 이유는 없다. 호황 시기에 막대한 돈을 벌어 온 건설사와 은행, 금융회사들이 책임져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태영건설을 국유화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켜 줘야 한다. 그리고 윤세영 일가의 재산을 무상 몰수해 임금 지급 등 손실 보전에 충당하면 된다.

물론 국유화가 사회주의적 조처라는 흔한 오해를 공유해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이 정치적·경제적 의사결정을 지배해 사회가 이윤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따라 운영되도록 하는 것인데, 자본주의 국가가 기업을 국유화한다고 그런 사회가 건설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국유화를 요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부도 기업에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한 현실적으로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키고 생활수준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동원할 능력이 있다. 또 국가는 국민의 삶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분양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위기에 놓인 수분양자들의 처지에서도 정부가 책임지고 분양을 진행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게 문제를 해결할 방안일 것이다.

현재 정부가 시장을 살리기 위해 지원하는 막대한 돈은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지키는 데 쓰이지 않는다. 정부의 잘못된 우선순위를 바꿔야 한다.

경제 위기의 고통이 노동자들과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겨지지 않도록 투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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