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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즘2019 해외 마르크스주의자 강연:
SNS 시대에도 혁명적 종이 신문이 필요할까?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이자 공동 사무국장, 주간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편집자인 찰리 킴버가 8월 22~25일 방한해 노동자연대와 〈노동자 연대〉가 주최한 ‘맑시즘2019’에서 연설했다. 이 글은 8월 23일에 킴버가 한 강연을 녹취한 것이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통역자와 편집부가 덧붙인 것이다.

제 강연을 들으러 오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맑시즘2019’에 대한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연대를 전합니다.

오늘 제가 발언할 주제는 혁명가들의 매우 중요한 과제에 관한 것입니다. 바로 혁명가들의 주장을 사회의 훨씬 더 광범한 층에 전파하는 것 말입니다.

맑시즘2019에서 연설 중인 찰리 킴버 ⓒ조승진

혁명적 단체는 원칙, 경험, 운동의 과제를 연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칙이라 함은 [사회주의자들의] 기본적 정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노동계급 조직의 중요성, 모든 형태의 차별에 맞선 투쟁의 필요성, 자본주의 국가를 전복할 필요성 같은 기본적인 정치 사상 말이죠.

경험이라 함은 노동계급 투쟁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회주의자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있었던 노동계급 투쟁과 국제 노동계급 투쟁의 역사 모두를 뜻합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 위대한 혁명 당시 있었던 일, 1987년 한국에서 대중 파업 당시 있었던 일, 1994년 남아프리카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을 붕괴시킬 때 있었던 일 등이 그런 것입니다.

운동의 과제라 함은, ‘이 다음은 무엇인가?’, ‘노동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학생들에게 앞으로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당면한 핵심 과제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에 답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주장할 바는, 지금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뉴스와 분석을 얻는 시대에도 혁명적 신문은 정말이지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노동자 연대〉라든가 〈소셜리스트 워커〉 같은 [종이] 신문을 여전히 포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소셜리스트 워커〉가 〈노동자 연대〉보다 판형은 약간 작지만 지면 수는 더 많다는 점을 덧붙여야겠군요. [좌중 웃음]

조직, 교육, 선동

종이 신문은 다음 세 가지 점이 핵심입니다. ① 조직자로서의 신문, ② 교육자로서의 신문, ③ 선동가로서의 신문. 이런 점들이 어떻게 표현됐는지 〈소셜리스트 워커〉 최신호[2667호]를 사례로 들어 보겠습니다.

7면에서는 기후변화에 맞서 9월 20일에 영국에서 동맹휴업과 노동자 파업을 하려 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기사 중 하나는 제목이 ‘9월 20일에 모두 거리로’ 입니다. 이 쟁점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조직하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교육자로서의 면모입니다. 14면에서는 50년 전에 당시 영국 노동당 정부가 북아일랜드 공화파의 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북아일랜드에 군대를 투입했던 역사를 다룹니다.

그리고 선동가로서의 면모는 1면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헤드라인이 ‘보수당 범죄자들을 감옥으로!’ 이고, 여기 철창에 갇힌 사람이 [보수당 소속 현 총리] 보리스 존슨입니다. 덧붙이자면, 한국에서 여러분이 한 것[박근혜 퇴진]처럼 영국의 우리들이 해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좌중 웃음] 그럼에도 이것은 선동적 요구인 거죠.

지금은 제가 이 [혁명적] 신문의 편집자를 맡고 있습니다만, 제가 최초[의 혁명적 신문 편집자]인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150년에 걸친 혁명적 신문의 역사를 짧게 훑어 보며, 오늘날 우리가 배울 교훈이 무엇일지 살펴 보겠습니다. 꽤나 흥미진진한 역사입니다.

첫 번째는 1850년대 영국의 사례입니다. 영국이 자랑스러울 것은 별로 없고 영국 제국주의에 관해 사과할 것이 많은 나라입니다만, 그래도 하나 내세울 게 있다면 세계 최초의 노동자 운동이 영국에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북극성〉이라는 제호의 이 신문은 차티스트 운동의 신문이었습니다.(자료1) 〈북극성〉은 영국에서 일어난 사상 최초의 총파업을 이끌었고, 산업혁명 초기에 [노동자들의] 투표권, 정치적 권리, 민주주의 요구들을 선동했습니다.

〈북극성〉 지면을 보신 여러분의 첫 인상은 ‘정말 따분하겠다’일 것입니다. [좌중 웃음] 이렇게 생긴 [활자만 빽빽하고 사진 등은 없는] 신문을 읽는 것이 상상이 되시냐는 겁니다. [웃음]

자료1 1850년대 차티스트 운동을 대변한 신문 <북극성>

하지만 이것은 [지면이 이런 모양인 것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북극성〉 창간 이전인 1840년대에 이미 신문에 사진이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북극성〉 지면이 이런 모습인 것은 당시 영국의 문맹률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노동계급의 문맹률이 높았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열 명 중 한 명 꼴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우편마차로 〈북극성〉이 배달되면,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신문을 꺼내 들고는 동료 노동자들과 주변 청중들에게 신문 기사를 큰 소리로 낭독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북극성〉은 자연스럽게 조직자의 구실을 하게 됐습니다. 누군가가 청중에게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 주는 신문이었던 것입니다. 또 〈북극성〉은 선동가의 구실도 하게 됐습니다. 신문을 낭독하는 사람이 앞에 앉은 [낭독을 듣는] 노동자들에게 ‘자, 다음주 화요일에 파업에 나섭시다!’ 하는 식으로 신문에 실린 메시지를 전달했던 것입니다.

당시 차티스트 운동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어니스트 존스는 신문이 중요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느 운동이든 가장 먼저, 가장 핵심적으로 갖춰야 할 것은 의사 결정 과정을 기록하고, [운동의 구성원들이] 소통하고, 호소하고, 촉구하고, [운동의 대의를] 옹호하고, [운동의 구성원들이] 서로 접촉하는 매체다. 그런 매체는 단결의 보루이며, 전진의 기치이며, 논쟁의 도구다. 그런 매체가 있어야 운동은 자신감을 유지하고, 상이한 당파들을 한데 모으며, 운동 내 여러 요소들을 하나로 규합할 수 있다.’

레닌

반 세기쯤 건너뛰어 러시아 혁명가들의 신문 〈이스크라〉가 있습니다. ‘이스크라’는 불꽃, 들불을 일으킬 불씨라는 뜻으로, 1900년에 창간된 레닌의 첫 신문의 제호였습니다. 레닌은 차티스트 운동이 품고 있던 [신문에 대한] 생각을 가져와 한 단계 더 발전시켰습니다.

레닌이 1900년에 창간한 <이스크라>

레닌은 신문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문은 단지 집단적 선전·선동의 수단일 뿐 아니라, 조직 수단이기도 하다. 신문을 비계, 즉 건물을 지을 때 공사 인력이 작업할 수 있도록 건물 주위에 세운 발판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런 신문을 중심으로 건설된 조직은, 혁명 운동의 극심한 침체기든 전국적 무장 봉기를 준비하는 시기든 당의 위상과 연속성을 지켜내기 위해 어떤 과업이든 수행할 준비가 돼 있을 것이다.’ 핵심은, 사회주의자들을 공통의 과제로 집중시킨다는 점에서 신문은 그저 소통 창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하는 구실을 한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혁명가들은 〈이스크라〉를 1905년 혁명기를 거쳐 제1차세계대전 직전까지 계속 발행했습니다.

그 후 레닌은 〈프라우다〉라는 새로운 제호로 신문을 발행했습니다. ‘프라우다’는 러시아어로 ‘진실’이라는 뜻입니다. 〈프라우다〉는 1917년 러시아 혁명기에 핵심적 구실을 했습니다. 〈프라우다〉는 매우 대중적인 신문이 됐지만 이는 한참 나중의 일이고, 대부분의 발행 기간 동안 〈프라우다〉 판매 부수는 볼셰비키 당원 수와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훗날 [1917년 혁명을 거치면서] 대중적인 신문으로 성장했죠.

그로부터 50년을 또 건너뛰어, 이번에 소개할 신문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신문은 아닙니다. 미국 흑인들의 혁명적 조직인 흑표범당의 신문입니다. 신문 창간호의 헤드라인은 불행히도 오늘날에도 미국에서 너무도 자주 일어나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바로 경찰의 흑인 살해죠. 덴절 다월이라는 흑인의 어머니가 경찰이 아들을 죽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혁명적 흑인 조직 흑표범당이 발행했던 신문

이 신문은 조금 거칠긴 하지만 오늘날 신문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 저라면 이 활자 크기를 헤드라인과 똑같이 했겠습니다만, 이거야 사소한 문제죠. 신문의 메시지는 굉장히 선명합니다. ‘경찰이 덴절을 죽였다, 그러니 이 신문을 읽어라.’

흑표범당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데이비드 힐리어드는 신문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간행물을 갖는 것이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 간행물은 흑인들을 차별하는 국가에 맞서 흑인들의 정치 의식을 고양시키고, 정부의 거짓말을 반박하고, 진실을 전하고, 변화를 촉구하고, 칼과 함께 펜도 쓰기 위한 수단이다.’

힐리어드가 든 칼과 펜의 비유는 가벼운 말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흑표범당은 [경찰 폭력에 맞서] 총으로 무장한 단체였습니다. 그러니 힐리어드가 칼[무기]뿐 아니라 펜도 [투쟁에] 필요하다고 한 것이 의미가 남다른 것입니다.

혁명적 전통

이제 1850년대부터 2019년에 이르는 [혁명적 신문의] 전통을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계승·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이것은 영국 〈소셜리스트 워커〉의 역사를 보여 주는 여섯 호의 1면 사진들입니다.(자료2)

자료2 계급투쟁 등락에 따른 <소셜리스트 워커> 변천사

첫째는 1968년에 창간한 〈소셜리스트 워커〉의 초창기 호 중 하나입니다. 1968년에 신문을 창간했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1968년에 프랑스에서 그때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총파업이 벌어졌고, 베트남에서는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 구정 공세를 감행해 미국에 쓰디쓴 패배를 안겼고,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습니다.

그래서 신문 1면이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헤드라인 제목은 ‘프랑스가 영국 노동자들이 갈 길을 보여 주다’입니다. 프랑스 노동자들이 대규모 총파업을 벌였다면 영국 노동자들도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냐는 겁니다. 이 신문은 4면짜리였는데 상근 기자 한 명이 모든 기사를 썼습니다. 그렇게 많이 팔리진 않았죠.

운동이 점점 부상하면서 지면 수도 늘고 판매량도 늘었습니다. 이 둘째 사진은 같은 해에 나온 신문의 1면인데, 전체 8면짜리 신문이었습니다. 1970년대가 되면 노동자 파업과 작업장 점거가 영국을 휩쓸고, 대규모 광원 파업으로 정부가 퇴진했습니다. 이 셋째 사진은 4만 부가 팔려 당시에 가장 많이 팔린 호의 신문입니다. 영국 노동자 투쟁 역사에서 두드러지게 많이 팔린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영국에서 투쟁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습니다. 투쟁 상승세에 발맞춰 〈소셜리스트 워커〉는 재창간을 했고, 독자층도 더 넓어졌습니다. [그때 발행된] 이 넷째 사진은 제가 처음으로 거리 가판에서 판매했던 신문이기도 합니다. 당시는 1970년대 영국 투쟁이 정점을 찍은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SWP에 입당한 직후인 1977년에 영국의 계급투쟁 수준이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 따라 저희는 신문의 형태를 이전보다 훨씬 더 긴 기사를 주로 싣는 방식으로 바꿔야 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파업하자’, ‘작업장에서 투쟁하자’, ‘정부를 퇴진시키자’ 같은 것[선동]이 아니라, 더는 파업이 연전연승하지 않는 이유를 길게 설명하고 역사와 이론을 제시해야 했습니다.

세기의 전환기였던 1999년 말에 시작된 반자본주의 항쟁과, 2001·2003·2004년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으로 대중 운동의 시대가 돌아오면서 〈소셜리스트 워커〉는 전환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다섯째 사진이 바로 대중 운동의 시대에 발행된 신문입니다. 두드러진 변화는 컬러 사진을 꾸준히 쓰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도 컬러 사진을 몇 번 싣긴 했지만 계속 그러진 않았었는데, 이 때 이후로는 모든 면에 컬러 사진을 쓰게 됩니다.

마지막 사진은 2012년에 디자인을 개편한 것입니다. 개편의 이유 중의 하나는 인쇄 환경의 변화였습니다. 영국에서 더는 어떤 인쇄소도 큰 판형으로 신문을 인쇄하지 않아서, [지금 〈소셜리스트 워커〉처럼] 작은 판형으로만 인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모든 역사를 들어서 전하고자 하는 바는, [저희가 무엇을 했는지 하는] 시시콜콜한 부분들이 아닙니다. 계급투쟁의 시기에 따라 신문이 다른 형태를 띄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입니다.

인터넷

이런 [신문의] 역사에 흥미로운 옛날 이야기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에 다 있는걸? [그러니 종이 신문은 의미가 없어.]’

사실 사람들이 주로 온라인에서 뉴스를 접하기는 합니다. 영국에서 ‘지난 한 주 동안 뉴스를 어떤 경로로 접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통계를 보면, 인터넷에서 뉴스를 접하는 비율은 지난 5년 동안 꾸준히 높은 반면, 종이 신문으로 뉴스를 접하는 비율은 5년 사이에 약 60퍼센트에서 35퍼센트로 크게 줄었습니다.

영국만이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질문에 대한 2016~2019년 한국의 통계를 보면, 인터넷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매우 높아 80퍼센트를 넘는 반면, 종이 신문은 비교적 낮아 약 20퍼센트 정도로 줄었습니다.

자본가들에게 이는 굉장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종이 신문은 돈이 되지 않으니, 이제 수익을 내려면 인터넷에 광고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셜 미디어(SNS)로 뉴스를 읽는 비율도 높습니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SNS를 [뉴스 구독 목적으로 이용하는 순서에 따라] 정리한 통계를 보면 1위는 제게도 익숙한 유튜브이고 2위는 제가 알지 못하는 카카오톡입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카카오스토리가 그 뒤를 잇습니다. 1위인 유튜브로 뉴스를 보는 비중이 38퍼센트인데, 이는 SNS를 아주 많이 이용한다는 것이고 영국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치입니다.

SNS의 중요성 때문에 저는 특별한 명함을 언제나 휴대하고 참석하는 모임에서 늘 사용합니다. 저희 당원들도 그 명함을 신문 가판과 모임 장소에 비치하고, 연대체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면서 신문을 알립니다. 명함 뒷면에는 〈소셜리스트 워커〉에 소식을 기고할 수 있는 이메일 주소, 〈소셜리스트 워커〉의 왓츠앱·트위터·페이스북 SNS 주소들이 적혀 있습니다. 맨 위에는 〈소셜리스트 워커〉 기사를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받아 볼 수 있게끔 이메일을 남길 수 있는 웹사이트 주소를 실었습니다.

SNS는 매우 중요한 매체입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그렇습니다. 〈노동자 연대〉는 웹사이트가 매우 훌륭하고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계정도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SNS를 잘 활용하면 〈소셜리스크 워커〉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사 일부는 온라인 조회수가 십만 이상을 기록할 수도 있습니다. 안타까운 말이기도 합니다만, 이는 종이 신문 판매 부수를 훌쩍 뛰어넘는 숫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논의를 멈춰선 안 됩니다. 지금부터 인터넷도 중요하지만 종이 신문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를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혁명이 임박한 상황이라면 인터넷은 차단돼 있을 것입니다. 혁명가들이 유념해야 할 점입니다. 2011년 이집트 혁명 당시 정부는 인터넷을 차단했습니다. 올해 북아프리카 나라 수단에서 대규모 항쟁이 벌어졌을 때 정부는 5주 동안 인터넷을 차단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혁명적 상황에는 왓츠앱 같은 SNS를 이용해 소통할 수 없을 것임을 대비해야 합니다.

자료3 SNS 뉴스 구독 비율이 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또다른 흥미로운 점은, 이 그래프(자료3)에서 보듯 몇몇 나라에서는 뉴스 구독 목적의 SNS 사용이 줄고 있다는 것입니다. 맨 위 선은 브라질의 뉴스 구독 목적 SNS 활용도 추이입니다. 보시다시피 브라질은 SNS 사용이 굉장히 활발한 나라인데, 2015~2016년을 고비로 70퍼센트가 넘던 비율이 65퍼센트로 줄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더 큰 폭으로 줄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도 마찬가지 경향을 보입니다.

자료4 갈수록 많은 이들, 특히 좌파에 친화적인 사람들이 무료 뉴스의 진실성을 의심한다

그리고 이것은 도널드 트럼프 집권으로 인해 사람들이 ‘가짜 뉴스’에 대한 경각심이 생겨 유료 뉴스 구독 의사가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자료4) 눈에 띄는 것은, 특히 자신을 좌파라 밝힌 사람들 중에서는 2016년에는 15퍼센트만이 ‘유료 뉴스 구독 의사가 있다’고 답했지만 2018년에는 그 비율이 29퍼센트로 늘었다는 것입니다. 뉴스 매체가 진실을 전하는지를 우려하는 거죠.

놀랄 일은 아닐 수 있지만 자신을 우파라 밝힌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수치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짜 뉴스’에 속든 말든 별 개의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진실을 접하기 위해서라면 뉴스 구독료를 지불할 의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그래프는 페이스북에서 뉴스 매체 웹사이트로 유입되는 비율의 변화 추이를 나타낸 것입니다.(자료5)

자료5 페이스북 등 SNS는 혁명적 좌파에 우호적이지 않다

페이스북은 혁명가들이 노동계급에 주장을 쉽게 전파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돈벌이를 위해 만들어진 SNS입니다. 페이스북은 알고리듬을 두 번 바꿔, 뉴스 매체 웹사이트(〈소셜리스트 워커〉, 〈노동자 연대〉도 포함됩니다)로의 유입을 줄이고, 광고에 적합한 웹사이트로 더 많이 유입되도록 했습니다.

그래프를 보시면, 참 급격한 변화죠? 첫 번째 커다란 변곡점은 2017년 여름이었습니다. 여기 그래프를 보시면 이후 뉴스 매체 웹사이트로의 유입이 급락합니다. 페이스북은 2018년에 알고리듬을 또 바꿨는데, 이 때도 유입이 크게 줄었습니다.

두 번 모두 〈소셜리스트 워커〉, 〈노동자 연대〉 같은 매체들은 도달률이 거의 반토막 났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이런 [혁명적] 언론들을 접할 기회가 훨씬 적어진 것입니다.

조직 건설 과제

남은 시간 동안 저는, 왜 우리가 SNS 시대에도 종이 신문을 계속 발행하고 판매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네 가지를 들어 설명할 것입니다.

① 신문은 독자·판매자들이 스스로를 신문과 동일시하게 합니다.

물론 온라인으로 신문 기사를 읽고 공유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만, 이는 대체로 익명 속에서 이뤄지는 일입니다. 신문을 들고 서서 판매를 하게 되면 ─ 한국에서는 어떻게 들고 판매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영국에서는 이렇게 들고 판매하는데, 1면 전체가 잘 보이게 하려는 겁니다. 초심자들은 긴장한 나머지 반쯤 접어서 품고 있기도 합니다. [좌중 웃음] 어쨌든 용기를 낸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죠 ─ 판매하는 여러분이 노동자든 학생이든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고 선언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와서 [신문의 주장에 대해] 질문하거나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판매하는 사람이 신문과 동일시되는 모종의 정체성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레닌은 사람들이 혁명적 신문에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세 가지 들었습니다. 첫째는 기사를 쓰는 것입니다. 이는 격렬한 계급투쟁의 순간에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노동자들이 직접 자기 작업장 소식을 기고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문을 구입하는 것으로, 역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셋째는 신문을 사지는 않아도 신문에 후원금을 내는 것입니다. 이 셋 모두가 매우 소중한 기여입니다.

유료신문 판매는 체제의 압력에서 혁명적 주장을 지키는 방법이고, 독자가 더 큰 유대를 갖도록 한다. 7월 3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파업대회 ⓒ이미진

② 신문은 다양한 쟁점들을 한데 연결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는 지난주에 영국에서 열린 홍콩 항쟁에 연대하는 [런던] 집회에 참가해 신문을 판매했습니다. 저는 ‘홍콩 소식을 다룬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구입해 읽어 보세요’라고 말하며 신문을 판매했습니다. 하지만 이 집회에서 신문을 구입한 사람은, 홍콩 기사만이 아니라 공무원노조 파업 소식, 보리스 존슨이 도입하려는 경찰력 강화 조처 같은 다른 기사들도 읽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쟁점 하나에 이끌려 신문을 산 사람도 〈소셜리스트 워커〉가 매호 18·19면에 현장 노동자 파업·투쟁 소식들을 다룬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온라인에서는 다릅니다. 온라인에서 기사 하나를 읽은 사람이 다른 기사를 읽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웹사이트 전체를 훑어보지는 않습니다. 종이 신문은 그 특성상 혁명적 정치를 총체적으로 보도록 유도합니다.

③ 신문은 당원들과 그들의 주변 사람들 모두에 교육적 구실을 합니다.

신문을 팔려면 그 전에 신문을 읽어 그 내용을 익히는 것이 좋겠죠. 그러다 보면 여러 쟁점들의 성격, 노동계급 투쟁의 향후 과제에 관한 우리의 의견을 익히게 될 것입니다. 이 역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④ 혁명적 종이 신문은 신문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그에 속한 사람들을 SWP로 견인하는 구실을 합니다.

예컨대 〈소셜리스트 워커〉에는 한 주 동안 영국 각지에서 열릴 SWP 당원 모임 광고를 실어, 사람들이 기사를 읽고 인근 지역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가할 수 있게끔 합니다. 또 우리의 기본 입장을 실어 ─ 〈노동자 연대〉에도 기본 입장이 실리는 것으로 압니다 ─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 우리 단체에 가입하고 정치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끔 압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오늘날은 [혁명적 신문이 처음 탄생한] 1850년대나 볼셰비키가 활동하던 러시아 혁명기와는 매우 다른 시절입니다. 그러나 교육·조직·선동은 여전히 혁명가들에게 사활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SNS 시대’에도 종이 신문은 여전히 핵심으로 중요하고, 바라건대 레닌이 말한 신문의 과제였던 ‘전국적 무장 봉기 준비하기’를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토론 정리

발언해 주신 모든 동지들께 감사드립니다.

먼저, 진실과 거짓의 문제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혁명적 신문이 지배계급의 추악한 진실을 들춰내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입니다.

한 가지 사례를 들겠습니다. 몇 년 전에 저희 독자 한 명이 영국 정부의 노동조합법 개악 계획을 담은 문서를 〈소셜리스트 워커〉 편집부에 보냈습니다. 저희는 그것을 온라인으로 공개하고 지면에 폭로했는데, 그 후 영국의 주요 언론들이 모두 저희 기사를 인용 보도했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언론’이라는 평판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온라인에 거짓이 넘쳐나는 요즘에는 이 평판을 사수해야 합니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모든 파업을 승리한 것처럼 보도해서도 안 되고 1만 규모의 시위를 4만 명으로 부풀려서도 안 됩니다. 진실을 말해야 앞으로 사람들이 우리를 믿어 줄 것입니다.

둘째, 주류 언론과 혁명적 신문의 차이점에 관해 말하겠습니다.

정말 중요한 차이 하나는, 혁명적 신문 구입은 양방향 소통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거리 매대나 상점에서 기성 신문을 구입한다고 신문사가 ‘저희 독자 모임에 나오시겠습니까?’, ‘이전에도 저희 신문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희 단체 가입을 생각해 보셨나요?’ 같은 질문을 하지는 않습니다. 혁명적 신문을 구입하는 것은 사뭇 다른 행위입니다. 혁명적 신문 판매는 독자를 더 많은 정치 활동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신문을 대가로 돈을 받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영국의 주류 신문들은 무가지로 배포하고 광고 수익으로 재정을 충당하는 방향으로 가는 추세입니다. 일부 좌파들도 무가지를 발행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돈을 받습니다. 우리 신문에 모종의 성의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고,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돈을 지불하려면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지폐를 꺼내야 합니다. 이는 중요한 행위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 때문에 신문을 구입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입하는 사람들은 그런 행위로 판매자와 모종의 유대를 갖게 됩니다.

호응

〈소셜리스트 워커〉가 선동 면에서 1850년대 〈북극성〉에 견줘 영향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북극성〉에 견주면 〈소셜리스트 워커〉는 명백히 부족합니다. 1839년 차티스트 운동 당시 〈북극성〉은 무장 봉기를 호소하거나 총파업을 호소해도 어느 정도 반향을 일으켰지만 〈소셜리스트 워커〉는 그런 일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셜리스트 워커〉도 그보다는 작지만 영향력이 있습니다. 예컨대 작은 규모로 치러질 수도 있었던 시위를 키울 수 있습니다. 파업에 연대를 조직해 투쟁 승리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기후 변화 문제가 노동계급 투쟁에 사활적으로 중요하다고 주장해 일정 정도 호응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혁명가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 정치적 사상을 갖는 것뿐 아니라 ─ 세계를 변혁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더라도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혁명적 신문은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여러 동지들께서 신문으로 조직하는 법에 관해 발언하셨습니다. 저 역시 신문이 사람들을 정치적 방향으로 이끌 쟁점들을 제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중 한 분이 자신의 작업장에서 매주 30~50부를 판매한다고 하셔서 매우 놀랐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는 정말 대단한 판매 부수입니다. 그런 동지들이 더 많이 있어서 작업장에서 독자 모임을 꾸린다면 더욱 대단한 일일 것입니다.

〈소셜리스트 워커〉의 구호 중 하나는 ‘우리는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다’ 입니다. 지배자들이 재갈을 물리고 짓눌러 버린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것입니다. 즉 지배계급의 사상에 부합하지 않아서 어떤 언론도 다루지 않는 문제들을 다뤄야 합니다.

어떤 분이 노동계급 운동에서 다루기 어려운 [인기 없는] 쟁점들에 관해 질문하셨습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때로 우리는 시류를 거슬러야 합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1970년대에 영국에서, 아일랜드 독립 투사들이 폭탄 테러를 벌인 일이 있었습니다. 잘못된 전술이었고, 아일랜드 독립에 도움도 안 됐습니다. 하지만 당시 〈소셜리스트 워커〉는, [테러의] 진정한 원인은 영국 제국주의의 아일랜드 지배라는 논조의 기사를 냈습니다. 당원들은 그 신문을 들고 작업장에 가서 ‘아일랜드에서 영국군이 철수해야 한다’, ‘가장 큰 책임은 영국 제국주의에 있다’ 하는 주장을 해야 했습니다. 쉽지 않은 논쟁이었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추천 소책자 크리스 하먼, 노동자연대, 2014년 1월, 3,500원

이보다 최신 사례는, 지금 영국 노동운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뜨거운 논쟁에 관한 것입니다. ‘영국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이 낮은 이유가 이주민·난민들 때문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소셜리스트 워커〉의 구실은 이런 주장에 반대해 논쟁하는 사람들에게 무기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노동조건 악화는 당신과 나란히 일하는 다른 나라 출신 동료 노동자들 때문이 아니라 사장들과 사회 최상층 때문이다’, ‘이주민 통제 강화가 아니라 노동조합 강화가 필요하다’ 같은 주장들 말입니다.

사회주의 신문은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 건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모든 일은 결국 작업장·대학·지역사회에서 혁명 조직을 강화하는 것으로 연결돼야 합니다. 다음 번에 더 큰 투쟁이 분출했을 때를 대비해 혁명적 세력의 기반을 더한층 굳히는 것입니다. 그런 기회가 찾아왔을 때 우리가 좀 더 강력해지는 데 오늘의 혁명적 신문 논의가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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