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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권력기관 개혁안:
통치 효율화를 위한 재편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안의 핵심은 대중의 원성을 사 온 검찰과 국가정보원에 집중된 권한을 조금 줄이고, 또 다른 대중적 증오의 대상인 경찰에 그 기능의 일부를 넘기겠다는 것이다.

명목상으로는 국가기관 간 ‘견제와 균형’이라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더 강화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러나 세 억압적 국가기관 사이에서 피지배 대중에 대한 억압 기능을 배분하는 것이 노동자·민중에게 민주주의의 실질적 진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령 최근 여러 간첩 조작 사건이 들통나 위신에 타격을 입은 국정원 대신 국가보안법 수사를 주로 해 왔던 경찰에 대공 수사를 넘긴다고 해서 대공 수사에 수반하는 억압적 성격이 바뀌는 건 아니다.

대공수사권을 폐지한다고 했지만, 국정원이 국가보안법이나 그것과 같은 성격인 형법상 내란의 ‘예비·음모·선동·선전’의 죄 조항에 대해서는 여전히 간섭할 여지가 있다. 그 죄들을 사전에 감시하고 처벌하는 것이 국정원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야당 출신 전직 대통령들까지 옭아매려고 국가기관 내에서도 뇌물을 뿌리고 국세청까지 동원하던 권력이 명목상의 간첩 수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른 한편 경찰도 억압적 대공수사의 전문 집단이고 폭력적인 수사 권력의 양대 기둥임을 알아야 한다.

경찰이 검찰을 견제하는 게 피억압 대중의 민주주의와 어떤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이윤선

경찰은 해방 정국에 한반도를 강점한 미군정 내 경무국을 자신들의 기원으로 삼을 정도로 우익적이다. 경찰의 수사권이 검찰의 지휘를 받게 된 것도 해방 정국과 이승만 정권 하에서 경찰의 횡포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경찰은 자신들이 잡거나 죽인 “빨갱이”를 증거 부족으로 풀어 주거나, 과잉 진압으로 경찰을 처벌했던 한 검사를 여·순 사건 와중에 총살할 정도로 무도하고 힘이 셌다.

국정원의 대공수사 기능이 넘어갈 (신설) 경찰청 안보수사처는 지금의 경찰청 보안국과 (그 산하인) 보안수사대를 확대·강화하는 기구다. 2016년 국정감사에서는 경찰 보안수사대가 2012년부터 5년간 검거한 378명 중 간첩 10명을 뺀 나머지가 거의 국가보안법 구속자들임이 확인됐다. 박종철 열사를 죽게 한 것도 (당시 안전기획부의 지휘를 받던) 보안수사대 경찰들이었다.

보안수사대

보안수사대는 박종철 열사 등을 고문했던 남영동 대공분실 같은 조사 시설(지금 명칭은 보안분실)을 전국에 43곳이나 운영 중이다.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는 은폐된 별도 시설에서는 (고문까지는 아니어도) 지금도 강압적 수사가 가능하다.

과거의 보안경찰 DNA는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 기구를 안보수사처로 확대하면서 경찰은 국정원의 현직 대공수사 요원들을 경력직으로 흡수할 계획이다.(이미 경력직 채용 공고를 냈다. 이런 식의 경력직 채용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해외 국가정보기관의 실태와 보안경찰의 이러한 역사를 보면, 국가의 억압적 기능인 국내 사찰과 공작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혁명적 좌파를 범죄자로 몰 수 있는 국가보안법 등을 폐지하지 않는 마당에 대공수사 기능의 이관으로는 그 억압적 성격을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안은 지배계급 내 권력 균형 재편으로, 더 효율적인 체제 수호를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군사독재 이래 수십 년 동안, 그리고 최근 이명박근혜 정권 9년 동안 부패의 악취가 너무 심해서 국정원과 검찰 등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대중의 증오를 사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기관의 신뢰 만회를 위한 모종의 제스처(외양 변화)가 필요하다고 문재인 정부는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경찰이 대중의 신뢰를 받는 것은 아니다. 경찰도 집회나 저항에 대한 온갖 국가폭력의 주범이다.

권력의 분산·견제?

이번 개혁안으로 검찰의 수사권이 실질적으로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경찰이 명목상 독자적으로 1차 수사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수사는 범죄자를 기소하는 전 단계다. 기소를 위한 2차 수사 지휘권을 검찰이 갖도록 한 것은 여전히 검찰이 실질적 수사권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최근 광주에서 벌어진 3남매 방화 사망 사건을 봐도, 경찰의 초동수사 결과를 검찰이 재수사로 뒤집었다.(아이들을 실수로 죽게 한 혐의에서 일부러 죽였다는 혐의로 바뀜.) 아마 수사지휘권 조정에 대응해 검찰이 더 꼼꼼하게 경찰 수사의 허점을 파고들었을 것이다.

검찰 권한을 분산시킨다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안도 비슷하다. 국회에 제출된 관련 법안들은 모두 공수처 요원의 절반을 검찰청 검사가 맡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관의 특성상 불가피한 면을 강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초록은 동색이라고 조직 내 동료 여성 검사에 대한 성추행·성폭력 사건도 처리 못 하는 검사들이 공수처로 독립한다고 해서 쉽게 검찰 견제 기관으로 거듭나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박근혜 퇴진 운동 초기에 박근혜를 피의자로 공표해 타격을 입힌 검찰 특별수사본부도, 또 이후 발군의 수사 실력으로 각광을 받았던 박영수 특검팀도 결국 같은 검사인 우병우에 대해서는 그런 날카로움을 발휘하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 고위층 비리 수사를 전담하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연상시키는 공수처 신설은 권력 핵심부에 더 밀착한 기관을 만들려는 것일 수 있다.(대검 중수부장은 출세 코스로, 박근혜가 폐지하기 전까지 중수부장 31명 중 법무부장관까지 오른 사람이 7명이나 된다.)


절차적 민주주의와 노동계급

이명박이 대법원장으로 임명한 양승태의 대법원이 저지른 사법부 사찰과 블랙리스트 관리, 그리고 판결에 대한 부당한 개입이 최근 폭로됐다. 이미 많이 알려지고 짐작됐던 일들이다.

이제 검찰이 법원을 수사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향후 재판들에 검찰의 영향력이 커지는 건 아닐까? 공수처가 정권의 충견이 되지 않으려면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는데, 선출된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라면 이 기관들은 과연 무엇으로 통제된다는 말일까?

법원에 대한 검찰 수사나 공수처의 고위직 비리 수사가 문제가 아니라, 이런 딜레마가 진자의 추처럼 계속해서 반복될 거라는 점이 문제다. 그러므로 공수처·경찰·검찰이 서로 견제한다고 해도 이 기관들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통제”는 여전히 요원하다.

사실 수사·기소·판결의 형사·사법 기능은 선출되지 않는 권력으로서, 어느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민주적 통제로부터 보호된다. 심지어는 미국에서 시행하는 지방 검사장(D.A.) 선출제의 사례를 봐도 검찰의 억압적 성격에 전혀 변화를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검찰과 경찰 같은 수사권력이나 사법 권력의 힘은 자신들 외부의 세력, 특히 체제 반대 세력을 범법자로 만들 수 있는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어느 하나 민중의 민주적 기관이 아닌 상황에서 아무리 권력을 분산시켜 서로 견제하게 해도 계급 억압적 기능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국가 시스템 아래서 검찰이나 경찰, 국정원을 민중적 통제(민주주의) 아래 둔다는 건 애초에 공상이다. 문재인의 권력기관 개혁이 애초에 그런 공상을 목표로 한 것도 아니다. 통치의 효율성을 추구하며, 옛 여권에 치우친 국가기관 내 세력관계를 바꾸려는 것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에 환상을 가질 필요가 없는 까닭이다.

권력기관의 힘을 완화시켜 민주적 권리를 강화하는 것은 노동계급이 더 쉽게 조직하고 더 자유롭게 급진적 사상을 채택할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문재인 개혁의 응원 부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과 그 조직들이 정치적 독립성을 추구하며 투쟁을 구축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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