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경찰 강화가 권력기관 개혁?

지독한 위선 2020년 9월 21일 회의를 주재하는 문재인. “검찰 개혁”은 조국 사태 직후 급물살을 탔다 ⓒ출처 청와대

9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2차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이렇게 말했다. “권력기관 개혁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의 진척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개혁의 골자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부패한’ 검찰을 약화시키기 위해 검찰의 직접수사 권한을 축소시키고, 그 권한을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분산시키는 것이다.

검찰은 범죄자를 재판에 넘기는 일(기소)도 하지만 수사도 한다. 경찰을 지휘하는 방식으로 수사하기도 하지만 직접 수사하기도 한다. 마약 등 강력범죄를 다루는 강력부, 공안·집회·노동 사건 등을 다루는 공공수사부, 고위 정치인이나 재벌 등의 대형 비리 사건을 다루는 반부패수사부가 직접 수사 부서에 해당한다.

검찰은 이런 강력한 권한을 이용해 국가 권력의 핵심적 일부가 돼 특권을 누려 왔다. 경제 권력자들과 유착해 재벌 비리를 덮어 주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각종 뇌물 사건과 성추문 사건 등 자신들의 부패도 서로서로 셀프 면죄부를 주며 덮어 왔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부패한 검찰을 견제하려면 경찰을 강화하고 공수처를 신설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실제로 정부가 2019년 9월 조국 사태 직후부터 속전속결로 추진해 온 일은 부패 척결과 아무 관계도 없었다.

부패 수사만 약화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한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과 8월 발표된 시행령(대통령령)을 보면, 결과적으로 검찰의 직접수사권은 크게 손상받지 않았다. 시행령으로 직접수사의 범위를 좀더 구체화했는데, 대부분 반부패수사부와 관련돼 있다. 공수처가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은 약화됐지만 지휘 관계는 실질적으로 유지된다(경찰의 1차 수사 결과를 검찰이 뒤집을 수 있는 식이다). 결국 검찰 권한은 조금 약화된 반면, 경찰의 수사권이 대폭 강화된 셈이다.

한편, 기존 반부패수사부의 수사 영역에 대한 권한은 공수처로 이전된다. 공수처의 권한은 막강해서 검찰은 고위 공직자 범죄를 발견한 즉시 공수처에 보고해야 하고 공수처가 검찰의 수사 권한을 빼앗아 올 수 있다.

공수처가 명목상 독립된 수사기관이라지만 지금으로선 현 정부·여당에 편파적으로 유리한 구실을 할 공산이 크다(최근 서울중앙지검이나 서울동부지검이 하는 것처럼). 부패로 치면 켕길 게 너무 많은 국민의힘이 공수처 출범에 비협조적인 것도 그런 예상 때문이다.

법무부장관 추미애는 지난 반년간 직접수사 폐지와 검찰 직제 개편이라는 명목으로 직접수사팀 십수 곳을 해체시켰다. 그중에는 라임 펀드 인사들 수사가 한창일 때 서울남부지검에 설치된 증권범죄합동수사단도 있다. 최근에 라임 펀드의 여권 대상 로비 의혹이 다시 불거졌다.(관련 기사: 339호, 김문성, ‘연이은 의혹 제기와 폭로: 민주당의 권력형 부패, 진보세력이 회피할 문제가 아니다’)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금융위원회와 검찰이 합동으로 만든 부서로, 주로 고위층이 복잡한 금융 시장을 이용해 벌이는 범죄를 적발하려고 전문적인 수사 기법과 인력을 집중시켜 놓았다. 당시 이 수사단은 정권 연루 의혹이 있는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가 투자한 신라젠 건을 수사 중이었다고 한다. 해체된 수사팀 중에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건을 수사 중이던 서울중앙·울산지검 공공수사부도 포함됐다.

또한 추미애 휘하에서 대규모 검찰 간부급 인사가 두 번 휩쓸고 지나가자, 조국 수사 등 정권 관련 수사를 하거나 정부에 불만을 표했던 검사들이 좌천되거나 먼 지역으로 발령 나서 뿔뿔이 흩어지기도 했다.

이런 인사 파동의 노골적인 효과의 하나로, 추미애 아들의 군 복무 특혜 사건이 서울중앙지검(지검장 이성윤은 추미애 사단 대표 주자다)에 의해 불기소 처분됐다.

요컨대, 문재인 표 검찰 개혁은 겉으로 내세우는 그럴듯한 명분과 달리 서민·노동자 대중의 이익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그저 정권의 부패와 위선을 감추려는 추악하고 기만적인 권력 쟁투에 불과하다.

‘민중을 패는 지팡이’ — 경찰 강화

지난 8월 정부·여당이 발의한 경찰법 전부 개정안은 경찰 조직의 비대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런 기대감 때문에 경찰은 정권 내내 검찰과 경쟁하며 문재인 정부에 충성했다.

개정안의 내용은 강화된 경찰 수사권을 지휘할 국가수사본부를 신설하고, 전국적 업무를 하는 국가 경찰과 구분되는 자치경찰제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명분은 경찰 내부의 권력 집중을 막겠다는 것이지만 경찰의 핵심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경찰은 치안(체제 수호를 위한 질서 유지)을 위해 폭력을 사용할 권한을 가진 핵심 국가기관이다. 그러나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경찰은 검찰만큼이나 부패하고 못 믿을 집단이다.

검찰과 달리 경찰은 평범한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접촉하면서 감시·단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직접적인 혐오의 대상이기도 하다. 두루 알다시피 1960년 3월 김주열, 1987년 1월 박종철, 6월 이한열, 1991년 분신 정국의 강경대 등이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있다. 김대중 정부의 경찰은 2000년 롯데호텔 파업과 2001년 인천 부평 대우차 노동자 투쟁을 폭력 진압했고, 노무현 정부의 경찰은 2005년 농민 집회에서 두 명이나 죽였다. 정보·보안 경찰은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사찰, 은밀한 선거 개입,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운동가들에 대한 뒷조사와 탄압으로 악명 높다.

정부·여당은 국정원법 개정안도 발의 준비 중인데,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해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한다는 내용이다. 대공수사 폐지가 아니다! 이는 이미 대공수사에서 밀접한 관계인 경찰과 국정원 사이에 인력을 ‘이동’시키고, 경찰의 임무를 강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경찰의 대공수사도 사찰과 고문 등으로 악명 높았다. 민주항쟁의 정통성을 계승한다고 떠드는 정부, 인권 변호사 출신이라는 대통령이 박종철 열사를 죽였던 경찰의 대공수사를 강화하는 것을 ‘개혁’으로 치장하는 것은 역겨운 일이다.

뻔했던 것은 역시 정부가 국정원의 대공 관련 조사 권한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결국 기존 억압 기관들의 기득권은 대체로 유지되면서 경찰은 더 강화된 꼴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검찰 개혁을 칭송하면서 정부가 검찰을 개혁했으니 이제 제대로 된 경찰 개혁에도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경찰을 견제할 기구를 만들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구는 또 누가 견제할 것인가?

자본주의 국가의 비민주적 성격, 즉 소수가 다수를 통제해야 하는 그 본질 때문에 국가의 수사·사법 기관들은 계급 중립적일 수가 없다. “만인 앞에 평등한 법질서”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현실이다. 또, 그런 국가 기구들은 모두 엄청나게 관료적인데 그 질서의 고위층에는 남의 부패를 심판할 처지가 못 되는 부패한 자들로 수두룩하다.

따라서 국가의 수사 기관이 여러 개이고, 서로 더 많은 권한을 가지려고 싸우는 사이일지라도 그런 싸움이 진정으로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은 결코 아니다.

권력자들의 부패에 맞서는 유일한 힘은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에서만 나올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운동에 진 빚을 온갖 추잡한 위선과 불의, 개혁 염원 배신으로 되돌려 주고 있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본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