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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법 개정:
경찰력 강화로 위기 대처하려는 문재인 정부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경찰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서 8월 초 민주당 김영배 의원이 내놓은 안을 중심으로 통합됐다. 골자는 경찰을 국가경찰과 시·도 자치경찰로 나누고, 이 가운데 행정 경찰과 수사 경찰을 분리해 후자는 신설되는 국가수사본부가 지휘·통제한다는 것이다.

경찰청이라는 한 지붕 아래 여러 가족을 둬 권력을 ‘분산’시키겠다는 구상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경찰 개혁”이라고 부른다.

분권화? 비대화!

그러나 경찰 서열 꼭대기에 있는 경찰청장이 각 조직의 인사권 등 핵심 권한을 쥐고 있는 위계는 여전하다. 청와대 국무총리실 산하 기구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조차 “[온전한] 자치경찰제를 100으로 보면 이번 개정안은 10 정도”라고 말할 정도다.

‘제2의 군대’라고도 불리는 거대 관료기구 경찰을 “자치”라는 표현으로 꾸미는 것도 어불성설이다.(관련 기사: 344호 ‘문재인 정부의 경찰 개혁에는 아무런 진보성도 없다’)

무엇보다 이번 경찰법 개정은 ‘새 가족’(자치경찰, 국가수사본부)을 들인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경찰의 비대화를 낳을 공산이 크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경찰 권력은 이미 비대해져 왔다. 경찰 공무원은 2019년을 기준으로 2012년 대비 약 23퍼센트 증가했다. 국가 공무원 증가율의 3배, 지방 공무원 증가율의 1.4배다. 경찰 공무원의 수는 2019년 기준 12만 명 이상이고, 증원된 2만 3800여 명 중 1만 1500여 명은 문재인 정부 하(2017~2019년)에서 증가했다. 여기에 의경 등을 합하면 경찰은 인력 14만 명이 넘는 거대한 공룡 조직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10월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2만 명 증원을 또다시 약속했다. 2021년 경찰 예산은 12조 원에 이른다.

이번 경찰법 개정도 전국에 200개 넘는 자치경찰대를 신설하는 등 비대화를 동반할 가능성이 크다. 관리자급 인력이 갑절로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신설될 국가수사본부는 검찰과 국정원으로부터 이관받아 강화된 수사권을 담당하는 기구다. 그 산하에 설치된 안보수사국은 경찰의 핵심이자 사찰 부서인 정보국과 보안국을 확대·강화하고 국정원 출신 수사관들을 흡수할 것이다. 이미 경찰은 경력직 안보(보안) 수사관 40여 명을 채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방역 치안?

문재인 정부는 검찰의 직접 수사, 특히 정권이 연루된 권력형 부패 수사 부서와 권한을 축소하고 이것을 명분으로 경찰력을 강화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최측근 전해철을 경찰이 소속된 행정안전부 장관 자리에 앉힌 것도 시사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경찰이 “K-방역”과 “방역 치안’에 공헌하고 있다며 추켜세운다.

그러나 경찰이 하는 일은 진정한 방역이 아니다. 지침을 어긴 개인들을 연일 추적하고 찾아내서 벌금을 매기고 철창에 집어넣는 억압적 방식은 코로나19 위기의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팬데믹 초기부터 공공의료 강화가 시급하다는 촉구가 있었지만 정부는 별로 노력하지 않았다. 정부는 기업주 이윤을 건드리지 않으려 무진장 애썼고, 그래서 방역 대책이 모순되고 오락가락하기 일쑤였다.

정부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집 밖에 나오지 말라고 하고 국민 한 명 한 명에게 모두의 목숨이 달려 있다고 설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부와 기업이 유급휴가와 재난지원금 등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빽빽하게 붙어서 대중 교통을 이용하며 공장과 사무실로 모여야만 한다.

식당이나 술집 이용, 여행을 자제하고 “잠시 멈춤” 하라면서도, 경제 활성화를 연일 부르짖으며 소비를 장려한다.

결국 방역 실패를 국가의 억압 강화로 메우는 것이 경찰의 “방역 치안”의 본질이다. 이런 시도는 대중이 서로를 탓하고 비난하게 만들어서 진정한 책임자가 누군지 흐려버린다(시스템이 아니라 그 피해자를 탓하기).

세계적 흐름

정부와 경찰이 “방역 치안”을 내세워 노동자 집회를 비난하는 것도 위선이고 엉뚱한 책임 전가다.

경찰은 12월 4일 노동개악 반대 집회를 한 민주노총 노동자 두 명을 구속하고 수십 명을 내사 중이다. 그러나 그날 집회는 정부의 방역 지침 탓에 제한적 규모로 열렸다. 1000여 명이 스무 곳 넘는 장소에 나뉘어 모이거나 1인 시위를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찰 부대를 181개나 동원해 시위를 막고 해산시켰다.(대규모로 모인 게 어느 쪽인가?)

12월 4일 노동개악 반대 집회를 강제 해산시킨 문재인의 경찰 민주노총은 “방역 실패 책임 떠넘기지 말라”고 규탄했다 ⓒ출처 민주노총

경찰의 억압 강화는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유행과 경제 위기로 도처에서 지배의 정당성이 흔들리자 지배자들은 불만을 통제하려고 경찰력 강화를 꺼내들고 있다.

최근에 프랑스 마크롱 정부는 경찰 만행을 촬영하지 못하게 하고 이를 위반하면 최대 징역 1년, 벌금 6000만 원을 매길 수 있게 하는 보안법을 통과시키려 한다. 그 와중에 경찰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흑인 한 명을 20분간 쉴 새 없이 구타했다. 그 영상이 공개돼 프랑스 대중의 분노가 폭발했다.

프랑스 주요 도시에서 대중 수십만 명이 2주째 격앙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벌써 수십 명이 구속됐다.

그리스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모임을 금지하면서 다른 한 편에선 관광 산업 재개를 위해 방역 단계를 완화했다. 최근 확산세가 심해지자 키리아코스 마초타키스 총리는 “비밀 파티를 즐기는 젊은이들”을 탓했다. 최근 그리스 경찰은 노동자연대의 그리스 자매단체 사회주의노동자당(SEK) 지도부와 당원 수십 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영국 보리스 존슨 정부는 코로나19 초기에는 마스크의 효과가 불분명하다며 쓰지 말라더니, 확산세가 극심해지자 이제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벌금 200파운드(30만 원)을 매긴다. 벌금은 추가로 걸릴 때마다 배가돼 최대 6400파운드(960만 원)까지 올라갈 수 있다.

경찰의 끔찍한 만행은 우리에게 낯선 일이 아니고 오래 전 일도 아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사망했다. 노무현 정부의 경찰도 2005년 농민 집회에서 두 명이나 죽였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대중 저항 수준이 커진다면 경찰의 폭력적 본질도 노골화할 것이다.

문재인의 “경찰 개혁”은 착취와 억압을 완화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그 목적은 오히려 경찰력을 강화해 진보·좌파와 노동자 운동의 저항을 억누르는 데에 있다.

주류 양당은 이런 일에서는 이견이 없다. 두 자본주의 정당은 국회 행안위에서 경찰법 개정안을 함께 통과시키면서 그간 이 개정안에 반대해 온 이은주 정의당 의원을 배제해 버렸다.

사실 정부의 목적에 비춰 보면, 정의당의 경찰법 개정 비판이 견제 장치나 기구를 더 마련하라고 촉구하는 데 머무는 것은 불충분하다. 이은주 의원은 경찰이 “감염병 대책의 공적 역할에 이바지한 조직이고 행정명령의 감시 단속의 주체”(지난 10월 경찰의 날 국회 발언)라고 덧붙였다. 이런 유화적 발언으로는 경찰 비대화를 한결같이 반대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개혁”으로 치장하는 경찰력 강화에 원칙에 입각해 반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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