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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탄생 200년:
마르크스, 일찍이 여성 차별 현실과 해방 잠재력에 주목하다

카를 마르크스가 여성 차별 문제에 관심이 많지 않았다는 오해가 꽤 있다. 더 나아가 그가 성차별주의자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오해와 달리 마르크스는 초기부터 여성 차별에 주목하며 그 원인과 해결 방안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초기 저작인 《신성 가족》(1845)에서 공상적 사회주의자 푸리에의 말을 빌어, 사회의 진보를 여성해방의 진전 수준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848년에 쓴 《공산당 선언》에서도 여성을 재산으로 취급하는 부르주아 가족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여성해방을 사회주의 정치의 필수적 요소로 보았고, 차별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므로 차별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했다. 그는 여성해방을 그저 입발림으로 얘기하지 않고 당시 노동운동 내 성차별 사상과 맞서 싸웠다. 독일의 라살레 지지자들과 프랑스의 프루동 지지자들은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남성과 경쟁해서는 안 되고 ‘자연스러운’ 영역인 가정에 있어야 한다며 여성의 노동 참여를 반대했다. 마르크스는 이들의 사상을 경멸했고 여성의 노동권과 노조 가입을 옹호했다.

그뿐 아니라 마르크스는 여성의 동등한 정치·사회 활동 참여를 옹호했다. 제1인터내셔널에서 여성이 지도적 구실을 하도록 지원했고, 노동조합과 파리코뮌에서 제기된 여성의 구체적 요구를 지지했다.

물론 마르크스가 여성 차별에 관해 포괄적인 분석을 내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평생 협력자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1884, 이하 《기원》)에서 여성 차별에 관한 체계적인 분석을 발전시켰다.

그런데 이 책은 애초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함께 쓰려던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여성 차별의 기원에 많은 관심을 갖고 무계급 사회를 광범하게 연구한 노트를 남겼다. 마르크스 사후에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남긴 방대한 초고를 참고해서 《기원》을 썼다.

《기원》은 역사유물론을 적용해 여성 차별의 기원을 밝히며 여성해방의 전망을 밝힌 기념비적 저작이다. 당시는 가족을 자연적이고 영원한 제도로 보는 관념이 강력했는데, 엥겔스는 유물론적 분석을 통해 아내가 남편에게 종속되는 가족 형태가 인류 역사의 보편적 제도가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등장한 계급사회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계급사회 철폐를 통해 여성 차별을 끝장낼 수 있다는 혁명적 전망을 제시했다.

마르크스의 통찰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변혁하고자 발전시킨 여러 분석은 오늘날 여성의 삶을 이해하고 여성해방 투쟁을 발전시키는 데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소외와 역사유물론과 자본주의 동역학에 대한 분석, 노동계급 혁명 운동 이론은 모두 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여성 차별에 관한 이론과 실천을 발전시킬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 됐다.

자본주의의 동역학을 밝힌 마르크스의 위대한 저작인 《자본론》은 자본주의 체제가 임금노동 착취에 기반을 두고 있고 자본가들이 얻는 잉여가치의 원천은 바로 임금노동 착취에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은 경쟁이고, 경쟁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는 세계적으로 확장하며 끊임없이 변화·발전한다는 것(세계화와 제국주의)도 보여 준다.

여성의 삶을 자본주의 체제와 분리시켜 살펴보며 여성 차별을 (모종의) 남성의 지배욕으로 설명하는 가부장제 이론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이 대거 노동시장에 진출한 것과 여기서 비롯한 가족의 변화, 여성과 남성의 관계 변화 등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마르크스가 생산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노동력) 재생산은 무시했다고 비판한다. 마르크스가 생산을 중심에 두고 분석하는 바람에 가족이나 재생산 영역에서 여성이 전통적으로 해 온 구실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마르크스가 경제 환원론자라는 비난과 연결된다.

1970년대 서구의 좌파 페미니스트의 다수가 이런 오해를 하면서, 한편으로 마르크스의 이론을 생산 영역에 한정하고, 다른 한편으로 여성 차별을 설명할 때는 가부장제 이론의 개념을 수용해, 절충주의적인 이론 체계를 제안했다.

그러나 흔한 오해와 달리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에서 노동력 재생산이 하는 기능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않았다. “노동자 계급의 유지와 재생산은 언제나 자본의 재생산에 필요한 조건이다.”(《자본론》)

마르크스가 노동계급의 재생산이 이뤄지는 세부적 메커니즘에 관해 충분히 논의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자본론》 1권을 보면, 마르크스가 재생산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가 임금에 대해 서술한 것을 보면, 임금은 개별 임금노동자뿐 아니라 노동계급 가족 성원의 재생산과 관련돼 있다. 또한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에도 자본주의 동역학이 침투한다고 지적한다. 여성이 노동시장에 대거 진출하면서 가사노동이 상품화되는 과정도 포착했다. (자세한 내용은 ‘[실라 맥그리거 방한 강연] 여성과 《자본론》’(217호)을 보시오.)

이처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개되는 재생산을 생산과 별개로 파악한 게 아니라 생산의 동학과 결부시켜 파악했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재생산이 자본의 필요에 종속된다고 봤다.

이런 분석은 생산과 재생산을 분리하는 이중체계론과 사뭇 다르다. 뿐만 아니라 생산과 재생산이 연결돼 있다고 보면서도 둘을 병렬적으로 취급하는 이론(사회적 재생산 이론)과도 다르다. 마르크스는 변증법적 접근법 덕분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 노동자가 대거 창출되는 한편, 자본 축적 논리가 노동계급 가족의 재생산을 위협하는 과정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경제 위기가 오래 끌면 일자리뿐 아니라 공공서비스도 축소되면서 노동계급 가족의 고통이 극심해지고, 흔히 가족이 해체되기도 한다.

물론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계급 가족을 지탱할 물질적 토대가 사라졌다고 본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이런 예측은 산업혁명기에 여성과 아동이 하루 14시간씩, 휴일도 거의 없이 공장에서 착취당하면서 노동계급 가족이 거의 해체된 상황에 바탕을 뒀다.)

실제로는, 자본가들의 필요와 노동자들의 투쟁 때문에 19세기 후반 이후 노동계급의 가족은 재건됐다.

노동계급으로서 여성 다수의 힘

자본주의 체제가 노동계급의 착취에 토대를 두고 굴러가므로 노동계급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는 주체가 된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서로 벌이는 경쟁과 자본가 계급 대 노동계급의 투쟁 동학을 분석하면서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포착했다.

마르크스가 남성을 중심에 두고 노동계급을 얘기했다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마르크스가 쓴 글을 보면, 당시 여성 노동자들이 임금노동자로서 대거 일하고 있다는 점을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자본론》의 핵심 내용 하나가 지배계급이 남성 노동력을 값싸게 대체하려고 기계 도입과 함께 여성·아동 노동력을 사용하는 방식을 분석한 것이다. 영국의 산업혁명기에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여성이 임금노동을 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노동을 통한 해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의 임금노동 참여가 해방이라는 게 아니라(터무니없는 생각이다) 이를 통해 얻게 되는 사회적 힘에 주목한 것이다.

여성이 임금노동자가 되면 직장과 집에서 이중부담을 안게 되지만, 자본주의가 임금노동 착취에 의존하므로 여성 노동자도 남성 노동자와 함께 자신들의 조건 개선을 위해 투쟁하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사회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오늘날 여성해방의 가능성을 힐끗 보여 준다 ⓒ이미진

여성 노동자들이 혁명적 투쟁 과정에서 중심적 구실을 한다는 마르크스의 분석은 역사에서 거듭 입증됐다.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여성 노동자는 핵심적 구실을 했다. 가장 최근의 혁명인 2011년의 이집트 혁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여성은 세계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이 노동시장에 진출했고, 따라서 계급투쟁에서 중추적 구실을 수행한다. 중요한 노동자 투쟁에서 여성이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

페미니즘의 흔한 가정과 달리, 여성은 동질적 이해관계를 지닌 단일한 집단이 아니고 남성 집단과 마찬가지로 계급적 이해관계로 분열돼 있다. 그리고 여성 내 계급적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여성의 다수가 노동계급이므로 여성해방은 노동계급 해방과 분리될 수 없다. 계급 착취와 여성 차별 모두에 맞서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만이 노동계급의 해방과 여성해방을 성취할 수 있는 동력이다.

마르크스의 통찰과 정치적 실천은 오늘날 여성해방 투쟁에 필수적인 투쟁의 전략과 전망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