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
오늘날, 왜 마르크스인가
〈노동자 연대〉 구독
카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위대한 혁명가가 남긴 여전히 유효한 유산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카를 마르크스가 1883년 3월 세상을 떠났을 때 여기에 주목한 이는 많지 않았다. 런던 하이게이트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는 10여 명이 참석했다.
마르크스는 1871년 파리코뮌을 옹호한 일로 유럽 언론에 마녀사냥을 당한 바 있지만,
그후로도 마르크스는 상징적으로 여러 차례 다시 묻혔다. 사회학자 대니얼 벨은 냉전 시기에
1989년 동유럽과 러시아의 스탈린주의 정권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미국 국무부 관료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더 나아가
그럼에도 5월 5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은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았고 많은 행사가 열렸다.
심지어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장클로드 융커
대체 왜 이렇게 마르크스를 묻어 버리기 어려운 것일까? 근본적 답은, 자본주의 때문이다.

후쿠야마의
그는 이렇게 썼다.
후쿠야마의 말은 이제 허황된 소리가 됐다. 미국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은 한 세대 내내 침체된 상황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경제적 불평등은 증가했고, 토마 피케티의 연구에 따르면, 제1차세계대전 이전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서방 정치권에서 득세하며 신자유주의를 추종한
이 모든 문제는 자본주의가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나중에 언급한 바에 따르면, 1840년대 독일의 젊은 급진적 민주주의자였던 그는
그는 위대한 현대 혁명
그가
마르크스는 또한
마르크스는 고전 정치경제학
그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단지 정치경제학을 이론적으로 비판한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학이 일부 설명하는 동시에 신비화하는 경제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나아갔다. 바로 그 체제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 불렀다.
그는 자신의 걸작 《자본론》에서 현대 산업 자본주의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쓸 당시에만 해도, 자본주의 체제는 몇 개의 교두보
마르크스는 가장 유명한 저작 《공산당 선언》에서 자본주의를 거의 찬양하는 듯 말했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 쓴 자본주의에 대한 묘사는 오늘날 세계화 시대의 자본주의에 잘 들어맞는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이렇게 작동케 하는 근본 원리를 밝힌 마르크스의 작품은 《자본론》이다.
속박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자본주의 기업들이 생산수단을 통제하고 이들은 상품을 판매하는 능력에 따라 생존
이 말은 기업들이 경쟁 논리에 따라 운영된다는 뜻이다. 자본가들은
이 생사를 건 싸움에서 승리의 잣대는 이윤이다. 마르크스는 스미스와 리카도의 연구를 더 발전시켜, 자본가가 상품을 만들려고 고용한 노동자의 노동에서 이윤이 생긴다는 점을 드러냈다.
마르크스가
노동자들은 사용자를 선택할 자유가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지적했듯, 노동자가 가진 것은 오직 노동력뿐이라서 그들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착취당하는 것이다.
《자본론》의 가장 뛰어난 부분 중 하나는 자본주의 생산 조건이 갖춰지면서 농민이 토지에서 쫓겨나는 상황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농민들은 노동자가 됐고, 유럽은 점령, 약탈, 노예화를 통해 세계를 지배하게 됐다.
자본주의는 누구도 통제하지 못하는 체제다. 자본가들은 생존하려면 착취해야 할 뿐 아니라, 이윤을 축적해 더 크고 효율적인 생산에 재투자해야 한다.
바로 이 원리가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찬양한 역동성과 동요를 가져오는 것이다.
경쟁적 축적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경제 위기도 낳는다.
기업은 점점 더 많이 노동 절약형 기술에 투자하고, 이는 이윤율을 저하시켜 자본주의의 경제 위기를 초래한다.
그러나
분열
자본주의는 생산에서 협력을 증대시키지만, 동시에 생산을 실제로 담당하는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착취하려 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사용자에 맞서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데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는다.
단결은 노동계급이 효과적으로 행동하는 데 핵심적이다. 이는 또한 자본주의의 대안인 공산주의의 기초이기도 하다. 공산주의는
스탈린주의의 왜곡과는 달리,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전복을 근본적으로 민주적인 과정으로 여겼다.
1864~1872년 마르크스가 이끈 제1인터내셔널은 이렇게 선언했다.
그뿐 아니라 마르크스의 인터내셔널은, 노동자들이 분열돼 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문제에도 대처해야 했다.
1870년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단지 그의 자본주의 비판 때문만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로 나아갈 길은 노동자의 단결을 통해서 사용자와, 분열을 조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차별에 맞서는 데 있음을 이해했다.
마르크스는 죽기 얼마 전 켄트 램스게이트에서 쉬면서 미국 언론인 존 스윈튼과 인터뷰를 했다.
스윈튼은 이렇게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