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라 맥그리거 방한 강연:
여성과 《자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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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오랜 활동가이자, 신간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과 성차별, 성폭력》(책갈피)의 저자 실라 맥그리거(사진)가 7월 20~23일 방한해 노동자연대가 주최한 ‘맑시즘2017’에서 연설했다. 이 글은 7월 22일에 실라 맥그리거가 한 같은 제목의 강연을 녹취한 것이다. 이 강연에서 실라 맥그리거는 마르크스가 여성차별과 노동계급 재생산 문제에 무관심했다는 페미니즘 일각의 왜곡을 반박하고 여성해방을 위한 마르크스주의적 대안을 제시한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편집부가 덧붙인 것이다.
발제
지난 몇 년 사이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부활하고 있습니다. 제가 2년 전에 참가한 독일의 한 학술대회 이름은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의 궤적’이었습니다. [관련 기사: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과 계급 문제’(178호)] 비슷한 시기에 헤더 브라운이라는 미국의 사회주의자는 《마르크스와 젠더, 가족》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또, 리즈 보걸이라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가 쓴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이 최근 재출간 됐습니다. 이 책은 1983년에 처음 나왔던 책입니다. 이 책은 미국과 유럽의 많은 페미니스트 모임들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부흥하고 있습니다.
저는 1960~70년대의 오류가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마르크스와 여성차별 문제의 관계에 대해 오해가 많았습니다.
그중 한 가지 오해가 ‘마르크스는 여성차별 문제에 대해서 별로 한 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본론》 1권 등의 저작을 볼 때, 마르크스는 여성차별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거나 빅토리아 시대 남성의 전형적인 [여성차별적] 태도를 보여 줬다’는 오해도 있습니다.
둘째 오해는 마르크스가 여성차별을 다루면서 순전히 사회적 재생산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거나 자본주의 하의 여성차별의 기원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것입니다. 이런 오해는 잘못된 가정을 깔고 있습니다. 여성은 노동계급의 중요한 부분이 아니고, 오직 노동계급 남성의 아내라는 구실만 한다고 보는 가정입니다. 즉, 여성이 노동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먼저 몇 가지 통계를 공유하겠는데요. 전 세계 여성의 노동시장 참가율은 1990년부터 2010년 사이에 52퍼센트로 올랐습니다. 반면 남성의 노동시장 참가율은 같은 기간 81퍼센트에서 77퍼센트로 하락했습니다.
물론 지역마다 차이는 있습니다. 예컨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서는 30퍼센트이고, 남아시아에서는 40퍼센트였습니다.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오늘날 60퍼센트입니다. 카리브해 지역과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는 50퍼센트가 못 됩니다.
영국에서 1971년에서 2011년 사이에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59퍼센트에서 74퍼센트로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남성은 92퍼센트에서 75퍼센트로 떨어졌습니다.
즉, 여성은 더는 “산업예비군”이 아닙니다. 노동인구의 구조적 일부입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노동조합 조직률도 여성이 28.7퍼센트로, 남성(23.4퍼센트)보다 더 높습니다. [여성의 고용이 공공부문에 더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2002~12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65.3퍼센트에서 71.6퍼센트로 증가했습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전체 노동인구의 50퍼센트 정도가 여성입니다. 또, 세계적으로는 의류 노동자의 80퍼센트 정도, 가정용품과 가전제품을 만드는 노동자의 대다수가 여성입니다.
중국에서는 2013년 현재 전체 노동자의 44퍼센트가 여성입니다. 농촌에서 상경한 농민공 노동자들의 60퍼센트도 여성입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의류 노동자가 4백만 명인데, 그중 90퍼센트가 여성입니다. 의류 생산은 방글라데시 수출의 76퍼센트를 차지합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주거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데요. 그래서 방글라데시 여성의 16퍼센트가 ‘바스티’(Bastee)라고 불리는 군대 막사 비슷한 시설에서 살고 있습니다. 바스티는 허술하게 지어졌습니다. 2013년 4월 [의류 공장이 밀집된] 라나 플라자가 붕괴해 수많은 사상자가 났던 사건을 기억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만약 마르크스가 오늘날 살아 돌아온다면, 당연히 자신이 살던 시대에 견줘 달라진 것이 많다고 느낄 것입니다. 스마트폰 사용법도 익혀야겠죠. 그러나 동시에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집필할 당시의 많은 모습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있다는 것에 놀랄 것입니다. 예컨대 농촌의 노동인구가 대거 대공장으로 유입되는 현상, 그에 따라 성매매와 가사 도우미 규모가 거대해진 현상 등은 모두 그가 《자본론》 1권에서 묘사하고 분석한 현상입니다.
자본주의 동역학이 미치는 영향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쓴 것은 무엇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가 어디서 생겨나고 또 그것이 어떻게 노동력 착취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마르크스는 이 체제의 기본 동력이 축적 자체를 위한 축적임을 밝히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체제의 핵심에 경쟁이 있고 이 경쟁 때문에 체제가 끊임없이 변화·발전하고 세계적으로 확장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이런 축적 과정이 기계류 도입, 생산과정 혁신, 신제품을 낳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일하는지를 바꾸고 결국 사람들의 삶을 바꾼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성이 어디서 일하느냐는 결국 축적 동역학과 자본의 필요에 따라 정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컨대 방글라데시 여성들은 의류 부문에서 많이 일하는 반면, 영국 여성들은 지방정부, 의료, 교육 부문에 밀집돼 있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축적 압력이 서로 다른 조건에서 다른 결과를 야기하고 그 결과 여성이 일하는 부문이 달라진다는 것을 봐야 합니다.
동시에 여성들은 노동력 재생산이 개별 가정에게 떠맡겨진 상황에서 그 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육아를 중심으로 자신의 노동을 조정합니다. 그래서 영국 여성들은 출산 이후 시간제 일자리를 얻는 경향이 있고, 한국 여성들은 일을 중단하는 식이죠.
물론 이 패턴조차 영국과 한국 모두에서 변하고 있습니니다. 여성들이 출산 이후 더 일찍 업무에 복귀하고 더 오래 일하는 경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가 중요하게 지적한 한 가지는, 자본 축적의 경쟁 본성 때문에 경제 위기가 굉장히 핵심적 구실을 한다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지난 20~30년 동안 신자유주의 변화의 배후에 있는 중요한 목적은 바로 이윤율 하락을 만회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즉, 임금을 더 낮추고, 노동자들을 더 쥐어짜고, 여러 공공 서비스를 민영화하고, 최근의 금융 위기 이후로는 긴축 재정을 강요하는 것 등은 엄청난 변화를 낳았는데 단적으로 빈곤이 크게 늘었습니다.
영국과 유럽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긴축을 밀어붙이며 복지 국가를 공격했는데 이 모든 일은 노동력 재생산과 관련된 부담을 여성에게 한층 더 떠넘기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처럼 지배계급은 이윤율을 만회하려고 하면서 노동계급 전체에게 부담을 떠넘기지만 특히 여성에게 더 많이 전가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어디서 비롯하는지를 알지 못하면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파악할 수 없습니다.
최근 [영국에서] 진행 중인 장애인 보조금 삭감, 주거지원금 삭감, 성폭력 상담소나 가정폭력 상담소에 대한 예산 삭감 등을 낳는 긴축 정책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성은 노동자로서 노동 현장에서 착취율이 커지고 휴식 시간이 더 짧아지고 노동 시간은 길어지고 업무 목표치 압박이 커지고 더 엄격한 규율을 부과받는 동시에, 가정 내 부담도 긴축 정책의 효과로 더욱 커지는,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자본론》 1권을 읽고 또 나아가서 2권, 3권까지 읽어볼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동계급으로서 여성의 힘
《자본론》을 읽어야 할 다른 이유들도 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둘 다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자신의 행동으로 쟁취해야 한다”고 말했고, 같은 맥락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도 “노예의 사슬은 바로 그것이 만들어지는 곳에서 끊어 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제1인터내셔널[1864~1876]과 제2인터내셔널[1889~1916] 등 초창기부터 여성이 사회적 생산 활동에 참가할 권리를 주장했는데요. 19세기에는 여성의 생산 참여가 사람들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강력하게 주장하며 논쟁을 벌여야 했던 문제였습니다.
그들이 이를 중요하게 주장한 것은, 여성이 사회적 생산 활동에 참여하면 해방될 거라고 봤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힘을 갖도록, 즉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위치에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벌어진 큼직한 투쟁들을 보십시오. 영국에서는 공공부문과 교사 노동자들의 투쟁이 크게 벌어졌고, 최근에는 런던에 있는, 유럽에서 가장 큰 병원에서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고 있는데, 이 노동자들의 압도 다수가 여성입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는 2011년 혁명 당시 타흐리르 광장에서 여성들이 남성들과 나란히 용감하게 싸웠을 뿐 아니라, 혁명을 예비했던 [2006~07년] 섬유 노동자 파업에서도 여성들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당시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었는데, 여성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거리로 나서면서 구호를 이렇게 외쳤습니다: “남자들 다 어디 갔냐! 남자들 나와라!” 왜냐하면 당시 남성 노동자들은 집에 있었는데, 자신들이 시작한 점거 파업에 합류하라고 촉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촉발된 파업은 10개월 동안 전국 20만 명으로 크게 확대됐다.]
그리고 이집트의 보건 부문과 교육 부문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들과 대등하게 아주 중요한 구실을 했습니다.
중국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확률은 남성 노동자들이 파업할 확률과 똑같습니다.
그리고 2014년 방글라데시의 5개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11일 동안 단식 투쟁을 벌였는데, 전체 1천6백 명 노동자 중 여성 노동자 1천3백 명이 참여했습니다.
이런 사례들을 볼 때 여성들이 혁명적 과정, 즉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 과정에서 중심적 구실을 한다는 마르크스의 분석이 옳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한편, ‘《자본론》의 분석을 보면, 마르크스는 젠더 감수성이 없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기는 합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가 분석한 상품, 상품 생산, 자본주의의 착취 본성 등의 개념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백인이든 흑인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젊든 늙었든 아동이든, 무슬림이든 기독교인이든 불자든, 그들이 모두 노동자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윤이 생겨나는 과정(착취 과정)은 그런 차이들을 막론하고 모든 노동자에게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가 자신이 탐구하던 노동계급, 특히 잉글랜드 노동계급이 남성·여성·아동으로 나뉘어 있고,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노동자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이를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본론》의 핵심 내용 중 하나가 지배계급이 남성 노동력을 값싸게 대체하려고 기계 도입과 함께 여성과 아동 노동력을 사용한 방식을 분석한 것이고, 이 분석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합니다.
노동계급 재생산과 양육
지금부터 저는 《자본론》이 제기하는 네 가지 쟁점을 다루겠습니다. 첫째는 노동계급의 재생산에 대해서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바를, 둘째로는 자본주의 발전이 가정 안의 일들에 미친 영향을, 셋째로는 자본주의 발전이 노동계급 가족에 끼친 영향을, 넷째로는 여성과 노동계급에 대해서 마르크스가 말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자, 그럼 노동계급의 재생산 문제에 대한 내용입니다. 노동계급의 재생산 문제라 함은, 노동자들이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다음날 다시 노동을 할 수 있도록 먹고 마시고 자는 등 재충전하는 문제, 다음 세대의 아이들을 기르는 문제, 그리고 [나이 들어] 더 일하지 않게 됐을 때 살아가는 문제를 말합니다.
마르크스의 핵심 개념은 노동가치론이라는 것인데요, 바로 노동력의 비용, 즉 임금은 그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드는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죠. 예컨대 주 40시간 일하고 임금을 받는다고 했을 때, 임금이 실제로는 그 40시간 노동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거비를 감당하고 먹고 마시고 옷을 구입하는 등 우리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필요한 비용에 기초한 것이지, 40시간에 대한 대가는 아닌 것이죠. 그래서 실제 임금이 [40시간이 아니라] 10시간 동안 노동한 몫밖에 주지 않는 것이고 나머지는 자본가가 이윤으로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운하게도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먹고, 어떤 옷을 입는지 등에 대해서 그리 많은 얘기를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은 이 점을 들어 마르크스를 비판합니다.
더욱이 《자본론》에는 다음과 같은 말도 나오는데, 분명 환원론적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노동자계급의 유지와 재생산은 언제나 자본의 재생산에 필요한 조건이다. 그러나 자본가는 이 조건의 충족을 노동자의 자기 유지 본능과 생식 본능에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자본론》 1권 제23장, 이하 인용문 출처는 장만 표기]
이 말만 놓고 보면 노동자들은 단지 생물학적 욕구에 좌우되는 존재인 양 들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가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 과정을 분석하던 맥락이었음을 떠올리면 그가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본가들이 과연 우리가 어떻게 의식주를 해결하고 재생산을 하는지에 관심을 갖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즉,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강제하지 않는 이상, 노동자들이 먹고 사는 문제는 자기 알 바 아니고 각자 알아서 할 일이라고 방치합니다. 자본가계급이 오직 관심 갖는 것은 개별 노동자들의 소비를 최소한의 수준으로 깎아 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경쟁의 결과입니다. 자본가계급은 사람들이 집에서 쫓겨나서 거리에 나앉든 열악한 주택에서 살다가 화재가 나 불타 죽든, 정말이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듯한 과정인데요, 마르크스는 자본가계급이 경쟁이라는 쳇바퀴를 돌리면서 우리의 몫을 빼앗고 또 빼앗는다고, 우리의 저항에 부딪히기 전까지는 계속 빼앗는다고 설명합니다.
더욱이, 《자본론》 1권을 읽다 보면 마르크스가 노동자들의 재생산과 가족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군데군데 볼 수 있는데, 이것들을 종합해 보면 마르크스가 이 문제에 대해서도 나름의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단적으로, 마르크스는 임금에 대해 말하면서 “[다른 상품과 달리] 역사적, 도덕적 요소가 포함된다”고 설명합니다[제6장]. 다시 말해, 임금은 한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앞서 쟁취한 것과,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고 사회적으로 여겨지는 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따라서 임금은 단지 헐벗고 굶주리는 것을 피하는 것뿐 아니라 예컨대 신문을 구독하고, 문화적 생활을 즐기고, 교육을 받는 비용까지 포함합니다. 그러나 이는 다시 그 사회의 자본주의 발전 수준과 계급투쟁 결과에 의해 정해집니다.
또한 마르크스는 노동계급 전체로 봤을 때 그들이 받는 임금에는 ‘아직 노동을 하지 않는 가족 구성원(아동)이나 더 이상 노동할 수 없는 구성원(노인)을 위한 생존 수단을 포함한다’고 분명하게 지적합니다.[제6장]
그는 또한 남성 성인뿐 아니라 여성과 어린 아이들까지 공장 체제로 빨려 들어가고 그 결과 남녀, 어린아이까지 모두 임금을 받고 일을 하는 것이 가장인 남성 한 사람만 돈을 버는 것보다 노동계급 전체로 봤을 때 착취율을 높인다고도 지적했습니다.
또한 마르크스는 가족 안에서 여성이, 자기나 아이가 먹을 몫을 줄이면서까지 남성에게 음식을 더 많이 주고 그래서 그가 다음날 일을 나갈 수 있도록 하는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남성이 벌어오는 임금이 없으면 가족들이 먹을 것이 아예 없기 때문이죠.
둘째로 저는 자본주의 동역학이 사람들이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에도 어떻게 침투하는지 마르크스가 분석한 것을 다루겠습니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자본가를 위한 강제노동은 아이들의 놀이 시간뿐 아니라 가정 안에서 가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유노동까지도 일부 빼앗았다.”[제15장]
마르크스는 자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몹시 즐겼던 만큼, 5살부터 공장에 나가서 일하는 아동들은 집에서 놀 시간이 없다는 것을 결코 보아 넘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또한 가사노동이 상품화되는 과정에도 주목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성복을 구입하는 것으로 바느질과 옷 수선 같은 기존의 가내 노동을 대체하는 것에 주목을 했습니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예견했고 오늘날 그가 옳았음이 입증된 것 중에는 이런 게 있습니다. 여성(물론 남성도 적용되지만 특히 여성)이 가정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그 가족은 가정 바깥에서 더 많은 물건을 사야 하고 이를 위해 상점에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또한 경제 위기의 효과에 대해 쓰면서 다음과 같은 지적도 했습니다. 당시 경제 위기는 주기적으로 찾아왔고 면직물 산업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요, 그런 경제 위기가 찾아오면 [일감이 사라진] 여성 노동자들이 이전에는 일하느라 못했던 모유 수유를 한다거나, (공장 감독관 보고서를 인용하며) 요리하는 법을 배운다고 썼습니다.
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가정에 끼친 영향을 얘기하면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 대한 통찰도 보였습니다. 당시 의무교육이 처음 도입됐는데 많은 부모들이 반발했습니다. “애가 돈을 벌어야지, 학교에는 뭐 하러 가냐” 하면서 아이의 등교를 막고 공장으로 끌고 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마르크스의 기본 논지는, 탓할 대상은 부모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공장으로 끌고 가는 장본인은 분명 그 부모이지만 부모들로 하여금 생계를 위해서 그렇게 행동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자본주의 체제를 탓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마르크스는 또한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의 건강에 끼친 해악, 특히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병에 걸리고, 그것이 출산과 양육에 영향을 끼치며, 공장 노동자들의 영양실조와 사망률에 영향을 준다고 기록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이처럼 공장 제도가 남녀 노동자와 아이들에 끼치는 온갖 부정적인 영향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음에도 동시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음 인용구는 제가 전체를 인용을 하겠는데 중요한 인용구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종래 가족제도의 붕괴가 아무리 끔찍하고 메스껍게 보일지라도, 대공업은 사회적으로 조직된 생산과정의 중요한 일부를 가정 영역 바깥에서 여성, 미성년자, 남녀 아동에게 맡김으로써 더 고차원적 형태의 가족, 더 고차원적인 남녀 관계가 가능해질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 또한 노동자 집단은 이처럼 남녀 모두를 포괄하고 모든 연령층을 포괄하기 때문에, 적절한 조건과 맞물린다면, 이 사실이 인간적 발전의 원동력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도 명백하다.”[제15장]
물론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노동계급 가족을 지탱할 물질적 토대가 사라졌다고 본 것은 틀린 것이었습니다.
사회 변화와 계급투쟁
그럼에도 마르크스가 1867년에 《자본론》을 출판한 지 1백50년이 지나서 후기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의 변화를 보면, 마르크스가 예견한 대로 여성이 노동력의 핵심적 일부가 된 것이 여성에게 모종의 ‘힘’을 부여했고 여성의 사회적 구실을 바꾸는 동력이 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1백50년 전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갖고 있던 이런 통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는 아직 여성 해방이나 완전한 평등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전보다 더 많은 평등을 바라고 있고, 그럴 자격이 있다고 여기고, 많은 남성들도 그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제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오늘날 자라나는 여자 아이들은 남자 아이들보다 자기가 더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여학생들도 남학생들보다 자기가 못하다고 느끼질 않습니다. 또, 세대간의 관계를 보더라도 조부모와 손자·손녀의 관계가 예전처럼 위계적이지 않습니다. 세대를 가로질러, 그리고 같은 세대 안에서도 오늘날에는 과거보다 훨씬 더 평등주의적인 분위기가 강합니다.
마르크스가 노동력 재생산 방법으로 묘사한 현상 중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당시에 사장들은 런던의 고아들을 영국 북부에 있는 공장으로 끌고 가 막사 같은 곳에 수용하면서 일하게 한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마르크스가 여성과 노동계급에 대해서 한 얘기를 살펴 보겠습니다.
마르크스는 당시 공장 감독관들과 공중보건의들이 공장에서 관찰하고 보고한 것을 많이 인용했는데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부르주아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의 행동을 굉장히 도덕주의적으로 비난하는 논조로 보고서를 썼습니다. 그래서 예컨대, 여성 노동자들이 남성이라도 되는 양 술에 취한다든가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등의 얘기들을 썼는데, 마르크스는 딱히 비판하는 논평 없이 그런 말들을 인용합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는 공장 내에서 남녀 간에 또 성인과 아동 간에 어떻게 노동 분업이 이뤄지는지를 주의 깊게 관찰했는데요. 예컨대 남성이 작동하는 기계, 여성이 작동하는 기계, 아동들이 작동하는 기계들 사이의 연관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노동시간을 단축시키는 투쟁이 처음에는 아동들의 노동시간 단축을, 이후에는 여성들의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것으로 벌어진 이유를 이해했습니다. 남성 노동과 여성 노동과 아동 노동이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남성 노동자의 노동시간도 단축시키는 성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 봤고 당시 노동조합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마르크스는 실크 산업을 위해 아동들의 교육이 어떻게 희생됐는지에 대해서도 비판을 남겼습니다. 비단을 짜는 일에는 손가락이 작고 야문 아동들이 성인보다 더 능숙했기 때문에 그들은 교육 대상에서 제외됐고 노동에 동원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고발했습니다.
마르크스는 또한 여성의 행동이 전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게 아님을 이해했습니다. 마르크스는 남녀가 함께 일할 때 복장도 똑같고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성관계를 갖는다는 것도 똑같다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마르크스는 또한 아이들이 엄마를 낯설게 여기는 현상에도 주목했습니다. 당시 여성들은 자기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도저히 없었고 그 결과 아이들이 자기 엄마한테 몹시 적대적이기 일쑤였습니다. 동시에 엄마들도 아이들에 대해서 무관심했습니다. 이른바 ‘모성 본능’이라는 것은 발휘되지 않았고 엄마는 노동하느라 아이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엄마와 아동을 모두 서로 낯선 타인으로 만드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마르크스는 또한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이 너무 적기 때문에 그들이 성매매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도 주목했습니다.
요컨대 저는 여러분께 《자본론》을 한번 읽어 보라고 권합니다. (혼자 읽기보다는 여럿이서 함께 읽는 게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 착취 과정이 단지 남성뿐 아니라 여성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굉장한 통찰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축적 과정은 남과 여, 그리고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인간을 단지 노동력으로 환원시켜버립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그들의 주거와 보건 상태나 복리는 어떤지, 이 체제는 철저하게 무관심합니다.
나아가 마르크스는 착취 과정에서 노동자들 간에 성별 차이, 나이 차이, 숙련도 차이 등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그 중요성을 이해했습니다.
또한 착취 과정이 다시 성별 역할을 변화시키는 것도 이해했습니다.
무엇보다 《자본론》은 이런 착취 과정에 맞서는 데서 계급투쟁이 얼마나 핵심적인지 보여 줍니다. 자본주의는 살아 있는 노동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노동자들과 자본가들 사이에는 “때로는 공공연하게 때로는 은밀하게”(〈공산당 선언〉) 계급투쟁이 끊임없이 벌어집니다.
은밀하든 공공연하든 바로 그 계급투쟁에서 오늘날 여성들은 핵심 세력이고, 다수 남성들과 같은 편에 서 있습니다.
정리 발언
청중 토론에 기여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어떤 분이 여성이 사회적 생산 활동에 진출한다 해도 직장 내 여성차별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될 텐데 어떻게 대처해야 되냐고 질문을 주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먼저 답변 드리겠는데요.
일단 사회주의자든, 페미니스트든, 여타 진보적 활동가든 직장 내에서 여성차별적 언행들 또는 관행이 벌어질 때 당연히 그에 맞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차별적 사진이 실린 달력이 걸려 있는 문제든, 동료 간의 여성차별적인 언행이든, 임금이나 진급 같은 데서 여성이 차별 받는 문제든 간에 그에 맞서서 싸워야 합니다.
저는 특히 남성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왜냐하면 남성들이 압도적인 직장에서 일부 몰지각한 남성들이 여성차별적 편견을 맘 놓고 드러내고 포르노 사진을 걸어놓는 등의 행동을 할 때, 강단 있고 원칙이 분명한 남성이 그것에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인종차별적 언행들에 대해서 마땅히 도전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밖에도 일터에서는 남녀 노동자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문제 또는 주로 여성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문제들에 대해서 목소리 높여야 할 일들이 끊임없이 생깁니다.
예컨대, 여성 노동자들이 법으로 보장된 출산 휴가나 육아 휴가를 마음 놓고 쓸 수 있어야 하고 나중에 휴가 다 쓰고 부담 없이 복귀할 수 있도록 남녀 노동자들이 함께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가 어떤 병에 걸렸을 때 부모들이 자녀를 돌보기 위해서 간병 휴가도 쓸 수 있도록 하고, 남녀 평등한 임금도 주장해야 합니다.
또 합법적 낙태권도 주장을 해야 하고 낙태가 불법인 현 상황을 바꾸자고도 얘기해야 하고요.
그리고 어떤 한 동지가 말씀하셨듯이 여성 노동자들이 해고 대상이 됐을 때 그 회사의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연대해서 해고를 막기 위해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직장 또는 노조에서 이런 투쟁들을 선도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이 속한 회사와 일터에서 어떤 쟁점들이 있는지 항상 예의주시하고 잘 알고 있어야겠죠.
사회주의자는 개인이더라도 변화를 낳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 사회주의자라는 것이 회사에서 알려지고 차별 문제에 원칙 있게 싸우는 투사라는 게 입소문을 타면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겪을 때 알아서 찾아 옵니다. 나아가 원칙 있게 목소리를 내면 주변 사람들의 태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찍이 마르크스가 던진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바로 ‘교육자 자신은 누가 교육 시키느냐?’입니다. ‘노동자들의 의식은 어떻게 변하는가?’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의식을 결정하는 두 가지 모순된 요소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노동자들이 서로 경쟁하기 때문에 분열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열이 반복되면 이간질에 취약해지고, 실제로 지배자들은 그런 걸 십분 활용하죠. 예컨대, 어떤 특정 종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런 차별을 일부러 만들어 내고, 이미 집단 간의 반목이 있는 경우에는 그걸 활용하고 더 악화시키려고 합니다.
분열로 향하는 이런 경향과 반대방향으로 작용하는 압력도 있습니다. 바로 노동자들이 조그만 거라도 하나 얻어 내려면 똘똘 뭉쳐야 한다는 압력입니다. 그래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여성 노동자들의 연대가 필요하죠. 그런 상황에서 “여자들은 멍청한 것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제 발등에 도끼를 찍는 격입니다.
예컨대 1984~85년에 영국 스코틀랜트, 웨일스, 잉글랜드 등 각지에서 광원 파업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그때 광원 파업에 연대하러 어느 작은 마을에 갔었는데 경찰들이 쫙 깔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광원 노동자들이 내세우는 구호 하나는 “여성들은 광원들을 지지하면 젖가슴을 내보여라”였습니다. 굉장히 끔찍한 구호였죠.
그리고 광원 노동자들이 발행하는 신문은 여성들이 가슴을 드러낸 사진을 싣곤 했습니다.
이 남성 노동자들은 굉장히 전투적인 노동자들이었지만 또 동시에 여성차별주의자들이기도 했습니다.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아주 지독하고 끔찍한 여성차별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도 연대가 필요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연대 단체들을 찾아 다녔고 그 과정에서 그 따위 여성차별적 태도를 전혀 용인하지 않고 도전하는 사회주의자들을 만났습니다.
광원들의 태도가 결국 바뀐 데는 이처럼 연대 단체들의 개입도 있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어쩌면 더 크게 영향을 끼친 다른 요인도 있었습니다.
당시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파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버티려면, 아이들을 돌보고 파업 참가자들과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광원들의 아내들이 집단적으로 이를 조직했고 당연히 그 아내들은 이 투쟁의 아주 핵심적인 축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는 광원 아내들을 변화시켰습니다. 투쟁에서 중요하고 핵심적 구실들을 하게 되면서 당당해지고, 주장을 펴고, 예전과는 달리 수동적인 여성 역할에서 벗어나서 리더들이 되고, 대외활동을 통해 정치 의식이 급진전했습니다.
그리고 광원 아내들의 변화는 결국 모든 파업 참가자와 지지자들의 태도를 바꿔 놨습니다.
아까 제가 던진 질문 ‘교육자는 누구한테 교육 받느냐’는 문제로 돌아가면, 결국 우리는 함께 투쟁하면서 서로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기 위해 사회주의자들은 여성차별,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또는 트랜스젠더 혐오 등을 조금도 묵과하지 말고 논쟁을 벌여야 하고, 그러면서도 함께 행진하고, 함께 싸우고, 함께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이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존재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단적 행동을 통한 이런 자기 교육과 변화 과정은 남성들에게도 필요하지만 여성들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러시아혁명에 그토록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 줬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그 당시까지 자본주의 국가 중에서 가장 낙후한 사회에 속했고, 여성이나 소수 민족에 대한 편견도 극심했고, 또 노동계급은 전체 인구의 극소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집단적 투쟁을 통해서 사회 전체의 의식을 대단히 변화시켰고, 법률적으로 여성과 성소수자의 완전한 평등을 이뤄낼 수가 있었고, 여성이 해방된 사회를 그렸고 구체적인 정책도 일부 실시했습니다.
우리가 러시아혁명에 주목하는 이유는, 우리가 원하는 수준으로 높은 의식에 이를 방법이 그만큼 거대한 투쟁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수준에 도달할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으로 뭉쳐서 우리가 속한 작업장 등의 공간에서 동료들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투쟁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아가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1960년대 영국의 여성 해방 운동의 오랜 구호 하나를 선창하면서 끝내겠습니다.
“여성해방 없는 사회주의 혁명 없고, 사회주의 혁명 없는 여성해방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