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사망 그 이후 — 인터뷰②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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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야간 근무, 컨베이어 벨트, 비정규직, 그리고 20대의 죽음. 고(故) 김용균 씨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4월 3일 한솔제지 장항 공장 산재 사망 사고에서도 이 단어들은 고스란히 반복됐다. 희생된 노동자는 사내하청으로 입사한 지 1년 4개월밖에 안 된, 28세 청년이었다. 이 노동자는 전원이 켜진 상태로 컨베이어 벨트 관련 설비를 점검하다가 갑자기 작동한 대형 무쇠 원반에 끼어 무참한 모습으로 사망했다. 도대체 김용균 사고 이후 무엇이 달라졌단 말인가?
그로부터 4일 전인 3월 30일 인천의 두산인프라코어 협력업체 소속 41세 노동자가 변압기 점검 중 감전·화재 사고로 사망했다. 노동조합(민주노총 인천지부 캐스코드지회) 노동안전보건부장이기도 했던 그는 아내와 어린 자녀 2명을 남긴 채 세상을 등져야 했다.
이렇게 3월 한 달간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만 23명이다.(노동건강연대 집계)
이른바 ‘김용균 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이처럼 끔찍한 산업재해는 반복되고 있다. 그 원인과 과제에 대해 노동건강연대 이상윤 대표를 만나 들었다. 이상윤 대표는 ‘고(故) 김용균 시민대책위’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이 기사를 읽기 전에 “김용균 사망 그 이후 — 인터뷰① 고 김용균 씨 어머니: “내 아들의 억울한 죽음, 해결된 건 하나도 없습니다””를 읽으시오.
김용균 씨를 사망에 이르게 했던 컨베이어 벨트 설비 사고가 최근 몇 달 사이에 또 일어났습니다. 왜 이런 사고가 반복되나요?
기계는 늘 관리하고 보수를 해 줘야 합니다. 오작동도 있고 녹슬기도 하고. 근데 문제는 기계를 멈추지 않은 채 설비를 보수하거나 점검하는 작업을 한다는 거예요.
원래는 2인 1조로 일하면서, 점검할 때는 기계를 멈추고 점검이 끝나면 컨트롤 타워에 연락해서 다시 돌리는 게 정상적인 과정이거든요. 근데 컨베이어 벨트 같은 기계는 애초에 쉼 없이 생산하기 위한 거라 멈추지를 않습니다. 기계가 멈추면 생산이 멈추는 거니까. 그게 사업주 입장에서 엄청난 손실이에요.
보통 기계에 이물질이 들어가거나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면 저절로 기계를 멈추게 하는 장치가 있거든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런 안전 장치를 풀어 놓고 일을 해요. 기계 돌리는 게 지상 과제인 공장에선 [기계 멈춤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 일이죠.
한솔제지 사고를 보며 김용균이 떠오른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김용균 법’이라고 불리는 개정 산안법으로 산재가 줄어들까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서 외주업체와 관련된 것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공장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는 원청 사업주가 하청업체의 안전 관리도 책임지라고 한 겁니다. 다른 하나는 위험 작업에서는 원칙적으로 도급을 금지한다는 거예요.
첫째 항목의 경우에 원청이 좀 더 신경 써야 하는 건 맞아요. 그러나 한국 기업들이 법을 우습게 압니다. 기존 법 체계 안에서도 원청의 책임을 물을 조항이 있지만 안 지켜 온 거거든요. ‘그걸 조금 포괄적으로 명시했다고 해서 과연 지킬 것이냐’ 하는 물음이 있죠.
한편, 위험 기계의 유지·보수 업무는 도급 금지 적용 대상이 아니에요.
노동부는 “위험 작업”을 위험 물질 제조·유통 작업으로 한정하려고 해요. 발암 물질이라든지 태아의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화학 물질, 중금속 등 말이죠. 위험 기계에 의한 사고는 너무 많지 않냐, 법이 어떻게 그걸 다 직고용하라고 하겠냐는 겁니다. 제조업에 대부분 위험 기계 한두 개씩은 있으니까요.
적어도 김용균 씨와 연관된 석탄 화력 관련 위험 기계 업무는 [도급 금지 대상에] 포함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고 노동계가 주장하지만, 노동부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김용균 없는 김용균 법’이 된 거죠.
세부적인 얘기이지만, 위험 물질 작업도 도급 완전 금지는 아닙니다. 업체가 여러 가지 인증을 받아서 노동자 안전 관리 능력을 갖췄다고 하면 노동부의 허가를 받아서 도급을 할 수 있게 돼 있어요.
외주화와 산업재해는 어떤 측면에서 연관돼 있나요?
첫째, 위험 작업 자체를 외주화한다는 겁니다. 직고용 노동자들이 위험 작업을 하면 [원청이] 그만큼 관리를 해야 하고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데, 외주화하면 비용도 싸고 책임도 안 질 수 있어요.
법에 따르면 위험 작업을 외주화하더라도 원청이 안전이나 노동자 건강 관리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나몰라라 해요. 애초에 그러려고 외주화를 한 거니까요.
둘째, 외주업체 노동자들은 위험한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할 수밖에 없어요. 외주업체는 영세하거나 힘이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노동자를 쥐어짜서 이윤율을 높이려 해요. 그래서 외주업체 노동자들은 같은 일을 하더라도 노동 시간도 길고 더 빨리 일해야 해요.
셋째, 의사소통 문제입니다. 같은 현장에 여러 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오게 되면 서로 의사소통이 잘 안 됩니다. “기계 멈춰 주세요”, “다시 켜 주세요” 이런 소통이 잘 돼야 하는데 안 되면 사고가 나는 거죠.
외주업체 노동자는 보고를 하더라도 자기 업체 관리자까지만 연락이 가고, 그 관리자가 원청 업체에 또 얘기를 해 줘야 해요. 바로 연락해서 지휘 감독을 받으면 불법이 되니까. 그런 이중, 삼중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정보가 왜곡되거나 [컨트롤 타워까지] 올라가지 않기도 해요.
넷째, 하청·외주업체 노동자들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재계약(해고) 압박도 있고, 노동조합도 대체로 없고, 그래서 현장에서 요구를 관철시킬 자원이나 수단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위험 업무를 외주화하면 필연적으로 사망하거나 다치는 일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문재인 정부는 산재 사망을 202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지만, 실제 산재 사망자 수는 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산재 사망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경기 변동입니다. 경기가 좋아지면 사망자 수가 늘어나고 경기가 악화하면 사망자 수가 줄어요. 업무량이나 물량이 줄어서 일 자체가 줄어드니까요. 정부 정책이 아무런 효과를 못 내고 있다는 반증이죠.
문재인 정부는 산안법을 개정하고 근로감독관 수도 늘리는 등 노력은 해요. 근데 문제는 그 정도 노력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죠.
현 정부는 산재를 이런저런 기술적 조처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산재 문제는 굉장히 구조적인 문제예요. 경제를 돌리는 어떤 큰 원칙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고, 노동자의 권리 보장 수준과 관련된 것이기도 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겠다”, “규제를 완화해 주겠다” 하는 한편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해요.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서로 분리되지 않거든요.
사람 죽이는 기업들에게는 ‘기업하기 힘든 나라’ 만들어야 돼요. 문재인 정부가 기업을 위한 정책을 하면서 안전도 중요하다 말하는 것은 자아분열적인 행태고, 의도적인 거라면 이중 플레이죠.
산재를 줄이기 위해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요구와 과제는 무엇인가요?
산안법을 진정한 의미에서 ‘김용균 법’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행령, 시행규칙을 놓고 벌어질 싸움도 예고되고 있어요. 이것이 일차적인 과제고요. 나아가서는 ‘기업 살인법’이라 불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도 중요한 요구입니다.
법을 제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키도록 만드는 것, 정부가 양질의 근로 감독에 나서게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법이 있다고 해서 사업주들이 알아서 지키지 않거든요.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강화되는 것입니다. 안전 문제가 발생했을 때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권리를 얘기할 수 있는 구조, 현장을 노동자들이 결정하고 바꿔 나갈 수 있는 구조로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