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노동자가 본 《나, 조선소 노동자》:
삼성중공업 사고의 치유되지 않는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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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조선소 노동자》(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기획, 코난북스)는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에서 일어난 끔찍한 중대재해 사건을 겪은 노동자들의 구술집이다. 이 사고로 노동자 6명이 죽고 25명이 다쳤다.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조금 보다가 덮어 버렸다. 내가 조선소에 입사한 지 몇 년 안 됐을 때, 정말 친한 형님이 바로 옆에서 돌아가시는 걸 본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자다가 다리를 떠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이제 그 기억이 잊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다시 살아났다. 그래서 덮었던 책을 다시 들기가 참 어려웠다.
이 책이 묘사하는 사고 당시 상황과 노동자들의 처지는 너무 처참했다. 사고를 높은 곳에서 보고 정신없이 현장에 뛰어내려 왔는데, 아수라장이 된 모습을 보고 주저앉은 한 노동자의 모습. 그 현장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인천에서 거제로 내려가 조선소에 취업한 뒤 ‘이모들’(도장을 담당하는 여성 노동자들)과 친해져 행복을 느꼈다는 한 젊은 노동자의 사연도 너무 슬펐다. 이 노동자는 대우조선에서 만난 ‘이모들’을 설득해서 삼성중공업으로 함께 일자리를 옮겼다가 사고가 났다. 그는 자책했고, 일부 이모들도 그를 비난했다.
이렇게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는데도, 얼마 전 법원은 삼성중공업에게 고작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사고가 난 지 벌써 2년이나 지났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장애를 갖게 됐다. 그 광경을 본 형제, 가족, 동료들은 큰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30억 원도 아니고 고작 300만 원이라니! 삼성에게는 30억 원도 푼돈일 텐데 말이다. 정말 화가 난다. 벌금 액수만으로도 노동자들에게 트라우마가 될 것 같다.
안전을 위한 투쟁
내가 일하는 현대중공업에서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산재로 죽고 다쳤다. 지난해에도 2명이 죽었다. 그걸 보면서 ‘더 이상의 죽음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의원으로서 안전 규정이 철저히 준수되도록 현장에서 싸우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작은 가방을 메고 다닌다. 거기에는 ‘산업안전보건규칙’이라는 핸드북이 들어 있다. 그냥 바꿔 달라고 하면 안 먹히니까 규정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책을 달달 외울 정도로 많이 공부했다. 그렇게 해서 많은 것을 바꿔 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사측은 비용을 아끼려고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은 뒷전이다.
예컨대, 용접할 때 쓰는 마스크를 바꾼 일이 있다. 용접을 하면 유해 물질이 나온다. 특히 내가 일하는 잠수함에서는 용접의 종류가 달라서 일반 용접용 마스크보다 더 나은 걸 써야 한다. 그런데 회사는 일반 마스크를 지급했다. 나는 처음에 규정을 몰랐지만, 한 직원이 ‘이 필터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알려 줘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다.
정부도 산재를 해결할 생각이 있는지 의문이다. 내가 일하는 특수선(군함) 공장은 노동부 감사가 들어오지 않는다. 중대재해가 발생해 노동부가 공장 전체를 감사해도 특수선은 언제나 예외였다. 처음 특수선 공장에 갔을 때, 뭐 하나 잘못되지 않은 게 없을 정도였다.
가령, 높은 곳에서 작업하는 용도인 A형 사다리의 핸드레일(사다리 옆 난간) 높이는 규정상 90센티미터다. 그런데 실제 특수선에서 사용되던 난간 높이는 70~80센티미터였다. 이렇게 난간이 낮으면 자칫 일하다 떨어질 수도 있다. 이것도 문제 제기해서 바꿨다.
정규직 활동가들의 안전 개선 노력은 하청 노동자들의 조건도 개선시켰다. 예를 들어, 내가 일하는 잠수함은 밀폐된 공간이라 혼재 작업(페인트칠, 용접 등 여러 작업을 동시에 하는 것)을 하면 함께 일하는 정규직과 하청 노동자 모두에게 매우 위험하다. 하지만 사측은 어떻게든 공사 기간을 단축하려고 이를 무시했다. 결국 항의해서 혼재 작업을 막아 냈다.
하지만 문제는 남아 있다. 혼재 작업을 못 하게 되자, 사측은 하청 노동자들에게 야간 작업을 떠넘기는 식으로 대처했기 때문이다.
야간 작업은 정말 위험하다. 나는 야간 작업 중 사고가 날 뻔한 상황을 본 적 있다. 당시 내가 들어간 배 안의 통행로 조명등 밝기는 기준치 미달이라서 깜깜했다. 그래서 내 앞에 가던 형님이 발을 삐끗해 떨어져 죽을 뻔했다. 나는 즉시 노조에 요청해 작업을 중지하고 노동자들을 퇴근시켰다. 이후 조건이 개선됐다.
안전을 위해 싸우면서 관리자들과 많이 싸우기도 했다. ‘적당히 하자’는 한 관리자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안전은 타협 대상이 아니다.”
반복되는 죽음을 막기 위해 싸워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