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베네수엘라 석유 금수 제재 공식 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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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의 목줄 죄는 모든 간섭 중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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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 금수 제재를 공식 발효했다.
이 제재로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기업 PDVSA 및 그 자회사들과 거래하는 기업·국가를 모두 처벌·제재할 수 있다. 이는 베네수엘라 석유를 싸게 구입해 온 중국뿐 아니라, 베네수엘라산 석유를 할인가에 사들여 타국에 제값에 파는 식으로 차익을 챙겨 온 러시아에도 타격이 될 전망이다.
미국계 컨설팅 기업 라피단에너지그룹은 이번 제재로 베네수엘라 석유 수출이 하루 20만 배럴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는 2008년의 하루 320만 배럴에 비교해도 물론이거니와, 지난 2월 미국의 제재로 수출량이 하루 84만 배럴까지 떨어진 것보다도 심각하게 줄어드는 것이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베네수엘라를 더한층 압박해 사실상 ‘불가촉’ 국가로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다.
앞서 4월 17일 미국은 베네수엘라뿐 아니라 니콜라스 마두로 현 정부를 지지하는 쿠바·니카과라에 금융·무역·여행 제재를 부과해 압박을 키운 바 있다. 그 전에는 미국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가 라틴아메리카를 순방하며 베네수엘라에 대한 압박 동참과 미국과의 공조 강화를 요구했다.
이런 압박의 피해를 가장 크게 입는 것은 평범한 베네수엘라인들이다. 제재 발효 전에도 2019년 베네수엘라 물가인상률이 800만 퍼센트에 이르리라는 예측이 있었는데, 제재가 발효 후에는 1000만 퍼센트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 예측이 현실이 되면, 이미 4월부터 식량·의약품뿐 아니라 전력도 배급·통제에 의존해 연명하는 베네수엘라인들에게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고난이 될 것이다.
침공 훈련
미국은 경제 제재뿐 아니라 진짜 전쟁 카드도 내비치고 있다. 〈CNN〉은 미국 국방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군이 베네수엘라 침공 시나리오를 구상한다고 폭로했다. 미군은 남부사령부를 중심으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연계해 해상 군사 훈련을 시행할 것이며, 올해 안에 베네수엘라를 침공할 역량을 갖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트럼프 정부가 “먼로 독트린”까지 운운하며 라틴아메리카에서 공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배경으로 한다. 먼로 독트린은 1823년 당시 미국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유럽 국가들의 아메리카 대륙 개입을 반대한 선언이었다. 이후 이 독트린은 라틴아메리카가 미국의 독점적 세력권임을 노골적으로 밝히는 표현이 됐다.
브라질에서 강경 우파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집권하고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부 집권 물결(“핑크 물결”)이 퇴조하는 틈을 타, 미국은 대륙 내 자국의 영향력을 결정적으로 제고하겠다는 심산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다른 열강과도 긴장을 빚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지원 때문에 베네수엘라 위기가 연장되고 있다”(폼페이오)며 중국을 정면 비판하고, 러시아의 파병·지원도 미국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라며 날을 세웠다.
미국은 가당찮게도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와 자결권”을 명분 삼아 자신을 정당화했다. 베네수엘라인들의 자결권을 침해한 당사자가 적반하장식으로 성화를 부린 것이다. 미국의 이런 성화는 라틴아메리카 전체에 대한 중국·러시아의 투자·개입을 모두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 제국주의와 베네수엘라 부르주아 야당들이야말로 베네수엘라 민주주의와 자결권의 적이다.
베네수엘라 야당들은 미국의 제재로 베네수엘라인들이 받는 고통을 자기 입지 강화에 이용하느라 여념이 없다. 최근 마두로 정부가 국제구호단체의 구호를 수용한다고 밝히자, 과이도와 야당들은 이를 이용해 미국과 주변국들에 베네수엘라 압박을 키워 달라고 부추겼다. 개중에 일부는 미국의 군사 개입을 즉각 요청해야 한다고 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과 안위를 대가로 정권을 탈취하겠다는 심사에 다름 아니다.
지극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파 쿠데타를 저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베네수엘라인들을 지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우파 야당 지도자 과이도를 지지한다고 두 차례나 선언하고 300만 달러를 들여 지원한다고 나선 문재인 정부의 결정은 규탄받아 마땅하다. [관련 기사 본지 281호 ‘문재인 정부, 베네수엘라 진보 정권 전복 돕겠다고 300만 달러 쓴다’를 보시오.]
미국이 모든 압박을 중단하고, 미국의 제재에서 득을 보려는 자들 모두가 베네수엘라에서 손을 뗄 때, 평범한 베네수엘라인들이 자신의 운명을 민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좌파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국주의적 개입 일체에 반대하면서, 오늘날 베네수엘라 위기의 진정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베네수엘라가 ‘사회주의 독재’라는 주장을 어찌 봐야 할까?
미국과 베네수엘라 야당들은 현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와 전임 우고 차베스 정부 20년을 “좌파 독재”라고 비난한다. “사회주의 때문에 베네수엘라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극도로 가난한 절망의 나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국제 좌파 일부는 베네수엘라가 대중의 주도적 참여를 강조하며 새로운 혁명의 길을 제시한 “21세기 사회주의”라고 본다.
트럼프의 비난과 달리, 베네수엘라는 공업 수준이 취약한 가난한 나라에서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좌파는 베네수엘라의 실패가 대중 민주주의(사회주의) 때문인지를 규명해야 한다. 대안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가 그 기수였던 “핑크 물결”은 신자유주의에 맞선 라틴아메리카 대중 항쟁 물결에서 직접 영향받았다. 베네수엘라 대중의 자생적 봉기(1989년 ‘카라카소’), 에콰도르 원주민의 대규모 항쟁(1990년), 멕시코 사파티스타 봉기(1994년), 볼리비아 수도·천연가스 민영화 반대 대중 항쟁(1999·2003년), 우파 쿠데타에 맞선 베네수엘라 대중 시위(2002년) 등.
자본주의 야당의 거듭된 공격에 맞선 대중 항쟁으로 좌경화한 우고 차베스는 석유 수출 수익 일부를 이용해 대규모 친서민 개혁을 시행했다.
개혁의 성과는 분명 있었다. 21세기 초 국제유가 상승에 힘입어 베네수엘라 대중은 교육·주택·보건·복지에서 유의미한 생활 수준 향상을 겪었다.
자본주의
그러나 그런 개혁이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 동학인 축적·착취에 도전한 것은 아니었다. 베네수엘라뿐 아니라 “핑크 물결” 정부들은 대개 원자재 수출에 크게 의존했다. 그래서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 “핑크 물결” 정부들은 대중의 필요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필요에 따라 행정부를 운영했다. 차베스가 “21세기 사회주의”를 말할 때조차 석유·전력 등 핵심 산업 부문에서 노동자 통제를 철저히 가로막은 이유다.
대중운동이 “핑크 물결”에 권력을 부여했지만, 그렇게 집권한 정부들은 기존 지배 구조에 도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중]운동이 국가 권력을 장악”한 것이 아니라 “운동이 국가에 포섭돼 애초에 지녔던 급진적 동력과 가능성이 제약[됐다.]”
베네수엘라에서 주민자치위원회는 차베스 정부의 개혁 정책을 상명하달식으로 집행하는 구실을 했다. 차베스 시절 네 배로 불어난 국가 관료는 임금을 노동자 대중 수준으로 제약받지도, 노동자 대중에 의해 민주적으로 소환되지도 않았다. 베네수엘라 군부는 국가 권력의 핵심부를 장악했다. 심지어 동부의 한 지역을 통째로 관할하며 자원 채굴권을 독점 운용한다.
베네수엘라와 “핑크 물결” 정부들의 부패(뇌물·사보타주·매점매석·밀무역 등)도 이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자본주의 지배 구조 하에서 지배계급의 상이한 부문들이 서로 경제적·정치적 이권을 교류하는 과정에서 부패가 발생한다. “핑크 물결”(예컨대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이 자본주의 야당들보다 덜 부패했다느니 미국 제국주의의 압박 때문에 부패가 심화됐다느니 하는 것은 십중팔구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점들이 “핑크 물결”의 부패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이 스스로 권력을 장악해 자본주의 축적 논리를 분쇄하고 자본주의 국가 구조를 붕괴시킬 때만 이런 병폐들을 진정으로 철폐할 수 있다.
이를 어떻게 조직하고 건설할 것인가? “핑크 물결”로 집권한 (좌파) 개혁주의 정당들뿐 아니라 20세기에 라틴아메리카에서 강력했던 스탈린주의·게바라주의 정당들도 신자유주의에 굴복하거나 종파주의·엘리트주의로 주변화됐다. 21세기 초 라틴아메리카에서 부상했던 수평주의·자율주의적 운동도 권력 장악 문제에 진지하게 답변하지 못했다.
자본주의·제국주의에 맞서 노동자 권력을 일관되게 옹호하는 혁명적 운동이 절실하다.
오늘날 베네수엘라에서 지난 20년의 ‘볼리바르식 혁명’ 과정을 돌아보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좌파들이 (스스로를 ‘비판적 차비스타’라고 부른다) 존재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주변화된 처지다. 부분적으로 이는 계급투쟁 수준이 충분히 높지 않음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제기하는 논쟁은 중요하다. 베네수엘라의 운명을 둘러싼 쟁투에서 승리하려면 차베스와 마두로가 가지 않았던 길, 즉 노동자들이 생산수단과 권력을 장악하는 길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이에 관해서는 《베네수엘라 위기: 왜 발생했고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책갈피)를 보시오.)
좌파는 우파의 권력 찬탈 시도에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고, 그런 우파를 지원하며 유례가 드물게 공세를 펴는 미국 제국주의도 단호히 규탄해야 한다. 동시에 베네수엘라 위기에서 교훈을 끌어내고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과 권력 장악을 향한 투쟁의 과제를 도출하려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