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희생 강요할 현대중공업 법인분할 중단하라
〈노동자 연대〉 구독
현대중공업 법인 분할이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전면파업 중이다. 지난 월요일에는 해당 안건이 다뤄지는 5월 31일 주주총회를 나흘 앞두고 조합원 수백 명이 전격적으로 주주총회장을 점거했다. 수백 명이 건물 안팎을 에워쌌고, 천막 농성장 수십 개가 차려졌다. 파업 대오와 지역대책위가 집회를 이어 가며 투쟁 열기를 더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법인 분할이 낳을 고용불안과 단체협약·노조권리 후퇴에 분통을 터뜨리며 깊은 분노를 토했다. “도대체 우리가 언제까지 희생해야 하는가?”, “노동자 다 죽이는 법인 분할 중단하라!”
법인 분할은 대우조선 인수합병과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기 위한 절차다. 사측은 현대중공업을 지주회사(한국조선해양)와 자회사(현대중공업 생산 공장)로 쪼개고, 부채 대부분을 현대중공업에 떠넘기려 한다. 그렇게 되면 부채비율이 현행 60퍼센트에서 110퍼센트로 갑절 가까이 뛸 것이고, 사측은 그만큼 노동자들을 쥐어짜려 할 것이다.
사측과 보수 언론이 이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을 “불법”, “폭도”라고 비난하는 것은 위선이다. 사측은 노조 간부·조합원 60여 명을 업무방해, 폭행죄로 고소하며 용서는 없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사측이야말로 지난 4년간 죄 없는 노동자들을 혹독하게 쥐어짜 배당금을 늘리고 편법 경영승계를 추진하는 날강도 같은 짓을 해 왔다. 그러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또다시 수십만 노동자와 지역민의 삶을 짓밟는 용서받지 못할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현대중공업 사측에 온갖 특혜를 주며 대우조선 매각과 구조조정을 밀어붙인 장본인이다. 정부는 이미 지난 4월 발표한 ‘조선업 발전전략’에서 인수합병과 설비·인력 축소 등 강력한 구조조정 방향을 제시했다.
민주당 울산시장 송철호도 최근 공정거래위원장 김상조를 만나 현대중공업의 본사 이전 반대를 조건부로 대우조선 인수합병(기업결합)을 승인하라고 설득했다. 이런 송철호에 중재를 기대하는 것은 무망하다. 정부와 민주당을 비판하고 압박해야 한다.
점거 투쟁이 연대의 초점을 제공하다
― 단호하게 구조조정 저지 투쟁을 지속하자
현대중공업지부가 주주총회장 점거에 들어가자 수많은 노동자들의 시선이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으로 몰렸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언론 보도가 줄을 이었다.
점거 투쟁은 확실히 지역 차원을 넘어 전국적으로 여론을 환기시키는 중요한 구실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왜 노동자들이 주주총회를 막으려 하는지, 법인 분할이 무엇이고 왜 문제인지 등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법인 분할 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자 연대도 확산되고 있다. 인근 사업장의 노동자들과 지역 단체들이 점거 농성장을 찾았고, 인수합병의 당사자인 대우조선지회는 경찰 침탈 시 즉각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금속노조 중앙집행위원회는 영남권 노동자대회 참가 지침을 전국 확대간부로 확대했다.
노동자들이 법원과 사측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단호하게 투쟁한 것이 중요한 정치적 효과를 낸 것이다.
지금 사측은 주주총회 장소를 변경해 법인 분할을 강행 통과시키려 한다. 그러나 비록 사측이 그런 야비한 짓을 하더라도, 이번 점거 투쟁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 투쟁의 정치적 성과를 디딤돌 삼아 투쟁을 지속·확대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그러면 앞으로 법인 분할 이후 이어질 구조조정과 대우조선 인수합병에 제동을 걸 수 있다.
1999년 시애틀에서 열린 WTO 회담 반대 투쟁이 비록 회담 자체를 완전히 무산시키지는 못했지만, 국제적인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을 탄생시키고 확산하는 중요한 성과를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사측이 주주총회에서 법인 분할을 기어이 강행하더라도 투쟁이 끝났다고 자포자기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점거 투쟁으로 만든 정치적 기회를 이용해 투쟁과 연대를 더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매각 저지에 나선 대우조선 노동자들과의 연대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대우조선 매각 반대에도 함께해야
구조조정을 효과적으로 저지하려면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대우조선 매각-인수합병 반대 투쟁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현대중공업 사측이 주주총회에 제출한 ‘법인 분할 계획서’는 분할의 목적으로 사업부문별 경쟁력 제고를 강조했다. 2017년 기업 분할 때처럼 경영 실적에 따라 임금·조건을 차등하며 노동자들을 경쟁시키겠다는 것이다.
대우조선 인수합병은 이를 심화시킬 것이다. 특히 대우조선은 현대중공업의 기존 자회사들과 달리 현대중공업과 유사 규모의 중복 사업부문이 많아 더한층 성과 경쟁과 구조조정을 압박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정부와 현대중공업 측은 해외 기업결합심사에서 설비·인력을 축소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진다. 설비·인력 축소는 정부의 조선산업 정책 방향이기도 하다.
현대중공업이 인수하는 쪽이라고 그 노동자들이 안전한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몇 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보듯, 현대중공업 사측은 애당초 자기 노동자들에 대한 신의 따위는 없다. 오히려 인수합병을 기회로 고용을 위협하면서 그동안 추구했던 임금·복지 삭감, 비정규직화와 외주화 확대 등을 밀어붙이려 할 수 있다.
경제 위기 하에서 추진되는 인수합병에 구조조정이 없을 수 없다. 대우조선 인수합병과 현대중공업 법인 분할을 칼같이 분리시켜 대우조선 매각은 내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대처한다면 구조조정을 효과적으로 막기 어렵다.
대우조선 인수합병과 현대중공업 구조조정이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함께 저지 투쟁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