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 끝난 한화토탈 파업, 다음 투쟁을 위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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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 대폭 삭감에 맞서 기본급을 인상할 것과 노조 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을 했던 한화토탈 노동자들이 5월 27일 사측과 최종 합의에 이르면서 투쟁을 종료했다.
한 달 전, 한화토탈 노동자들은 기본급 인상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섰다. 한화토탈 사측은 “업황이 안 좋다”는 이유로 임금을 지난해보다 무려 30~35퍼센트(성과급 전액)나 삭감하려 했다.
특히 내년은 한화가 삼성토탈을 인수한 지 5년째 되는 해로, 고용·노동조건 등을 유지하기로 한 기간이 만료된다. 여러모로 공격이 예고됐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측은 노동조합을 눈엣가시로 여기며 노조 활동을 방해하고 각종 권리를 무시했다.
노조의 애초 요구안은 기본급 10.3퍼센트 인상이었는데, 이는 예상되는 임금(성과급) 삭감분의 반의 반 정도 벌충하는 수준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5조 원에 육박하는 수익을 벌어들인 한화토탈은 그 몫의 일부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너무나 냉혹했다. 그 수익은 모두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만들어 낸 것이었는데 말이다.
사측이 꿈쩍도 하지 않자 노조 집행부는 최종 합의 전까지 두 차례나 양보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사측은 “더 낮은 안을 가져오라”며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결국 최종 합의는 노조가 한 발 더 양보한 ‘2.7퍼센트 인상안’에서 이뤄졌다.(이 외에는 복지 포인트 40만 원 인상, 일시 격려금 300만 원 그리고 노조 차원의 발전기금 4억 5000만 원 지급이 포함됐다.)
경제 위기 고통 전가
한화토탈은 지난 몇 년간 매출이 증가했음에도 수익성은 악화하고 있다. 미국의 이란 제재나 중국의 동종 공장 대거 신설 가능성 등 국외 조건도 불안정하다.
경제 위기의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해 이윤을 최대한 보전하려는 사측의 의지는 확고했다. 사측은 파업 초기부터 “2000억, 3000억 원 손해 봐도 회사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사측이 전면 파업으로 하루에 수십억 원씩 손실을 보면서 그것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를 거부했던 것도, 이번 힘겨루기에서 밀리면 앞으로 계속해야 할 임금·노동조건 공격이 수월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흔히 이런 공격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레퍼토리는 ‘경기가 안 좋은 만큼 노동자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그래야 회사가 살고 노동자가 산다’는 것이다. 한화토탈 사측도 이런 논리를 반복하며 노동자들을 압박했다.
하지만 업황이 좋을 때 사측이 그 결실을 노동자와 함께 나눈 적이 있었던가? 지난 5년간 5조 원 넘는 수익이 났지만 노동자 임금 몫인 인건비 비중은 매출액 대비 2퍼센트에도 못 미쳤다. 반면, 한화토탈 등기임원들은 1인당 연봉이 약 33억 원이다. ‘조폭 재벌’ 회장 김승연은 2013년 연봉으로 331억 원을 받았고, 2014년에는 계열사 4곳의 퇴직금으로 179억 원을 받았다.
주주들이 배당금 잔치를 벌이고 남은 돈은 사측의 곳간으로 들어갔다. 한화토탈의 사내유보금은 2019년 3월 기준 3조 4000억 원이나 된다.
또, 회사 사정이 안 좋다고 아우성치지만 사측은 몇 년 전부터 매년 수천억 원의 공장 증설 계획을 내놓고 있다. 2017~2020년 기간에 1조 430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프랑스 석유회사 토탈과 함께 5억 달러(약 6000억 원)를 들여 공장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비하면 노동자들의 임금 요구 수준(1년에 약 65억 원)은 ‘새 발의 피’ 수준이다. 공장 증설에 쓸 돈은 있고 노동자에게 줄 돈은 없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요컨대, 사측과 노동자는 운명 공동체가 아니다. 사측은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서 자기 배를 채우려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 위기를 이유로 노동자들이 희생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귀족 노조’ 비난
또, 사측은 동종업계 자본가들의 눈치도 봐서 강경하게 나왔을 것이다. 몇몇 언론은 한화토탈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을 때 석유화학 업계가 투쟁 확산을 염려한다고 보도했다. 한화토탈 투쟁이 승리해서 기본급이 올라가면 이것은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는 한화토탈 노동자들의 투쟁이 큰 파급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비슷한 조건에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한화토탈 노동자들의 투쟁을 자기 일처럼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한국경제〉 등 보수 언론과 우파들이 한목소리로 한화토탈 파업을 비난한 것은 이 때문이다. 우파들은 청년 실업난을 들먹이면서 고임금 ‘귀족’ 노동자들이 ‘배부른’ 파업을 한다며 비난했다.
그러나 한화토탈 노동자의 임금 대부분은 365일 돌아가는 공장에서 밤에 안 자고 일하고, 초과해서 일하고, 쉬는 날 없이 일해서 받은 수당과 성과급이다. 이렇게 착취당해 온 노동자들이 어딜 봐서 ‘귀족’인가?
오히려 ‘노동귀족’론이 노동자 투쟁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끊임없이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노동자들조차 끊임없이 투쟁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노동귀족론”은 앞서 살펴본 사측과 노동자들 사이의 엄청난 소득 격차, 즉 진정한 계급 불평등을 가리고 엉뚱한 데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것이다.
무엇보다 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자들은 미조직 노동자나 청년 실업자들을 위해 실질적인 이익을 제공한 적이 없다. 오히려 정부나 자본가들은 노조로 잘 조직된 부문을 비난하고 공격해서 힘을 약화시키고 나면 그 칼날을 곧 나머지 부문들로 돌리곤 했다. “노동귀족론”은 이렇게 노동계급 전반의 조건을 하락시키기 위한 것이다.
반대로 한화토탈 노동자들이 잘 싸워서 임금·조건을 개선한다면, 이는 동종업계와 좀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에게도 투쟁에 나설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볼 때, 운동 진영 내에서도 (우파들과는 의도와 방향성이 다르지만) 대기업·정규직의 임금 투쟁을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는 것은 안타깝다.
예컨대, 이번 투쟁에 적극 관여했던 정의당 활동가가 취한 입장은 문제가 있었다. “이번 파업의 원인은 [사측의 교섭] 불성실함 ... 비교적 고액 연봉을 받는 한화토탈 노동자들이 사측과 몇 퍼센트 급여 인상에 사인을 할지는 관심이 없다.”(정의당 서산태안지역위원장 페이스북) 이런 입장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진정한 요구를 앞세우기를 꺼리게 만들어 투쟁의 태세를 불필요하게 수세적이고 자기제한적이게 만든다.
한화토탈노조 집행부도 임금 인상 요구를 내세우는 것을 상당히 조심스러워했다. 집행부가 임금 양보안을 거듭 선제적으로 내놓았던 것을 보면 실제로 위축감과 압박감이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와 투쟁은 완전히 정당하다. 경제 위기에서 정부와 사용자들은 어떻게든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으려고 혈안이다. 임금 동결·삭감, 임금체계 개악, 최저임금 등의 문제가 노동자 투쟁의 중요한 화두다. 노동자들이 당당하게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싸우면, 그만큼 많은 이들의 지지도 얻을 수 있다.
더구나 문재인 집권 3년차, 개혁 염원에 대한 배신에 분노하며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 투쟁이 벌어지는 등 정세가 나쁘지 않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5월 1일 충남 지역 노동절 집회와 5월 15일 충남 노동자 연대 집회는 성공적이었고, 덕분에 이 집회들에 전원 참가했던 한화토탈 노동자들이 크게 고무되기도 했다. 한화토탈노조가 좀더 단호하게 싸웠다면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조건이었다.
유증기 유출 사고와 대체인력
이번 투쟁에서 5월 17~18일에 일어난 유증기 유출 사고는 중요한 기점이었다. 이 사고는 노동자 파업 중 사측이 투입한 사내 일반직 대체인력의 미숙한 탱크 조작과 뒤늦은 위험 감지로 인해 일어난 것이었다. 이 사고로 최소 100톤의 유독성 유증기가 대기 중에 유출됐고, 2000명 이상의 노동자와 주민들이 구토와 어지럼증 등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
쟁점은 자연스레 사고의 책임을 사측에게 물을 것이냐, 파업 노동자들에게 물을 것이냐가 됐다. 우파들은 다시 노동자들을 비난하기에 열을 올렸다. 특히 〈한국경제〉 등 보수 언론과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김학용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정치인들이 그랬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소속인 맹정호 서산시장은 사측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노동자들을 향해 “시민의 안전을 위해 양보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는데, 이는 파업을 탓하는 우파적 여론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론의 양팔저울이 어느 편으로 기울 것인지는 결코 정해진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측면도 적잖았다. 노조는 대체인력에 의한 사고 가능성을 일찍이 경고하면서, 사측을 향해 노동자와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지 말라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돈벌이를 지속하려고 이 경고를 무시한 것은 사측이었다.
서산시도 노조의 경고를 무시하고 사측을 방치한 책임을 톡톡히 져야 했다.
한화토탈 공장과 함께 석유화학 공장들이 몰려 있는 서산시 대산 공단은 화학 물질 유출 사고가 워낙 빈번해 이미 주민들의 높은 원성을 사고 있었다. 또, 서산시가 속한 충남도는 고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나 ‘죽음의 공장’으로 악명 높은 현대제철 당진 공장 등이 있는 지역이다.
게다가 충남도와 서산시 모두 민주당 소속의 지방 정부로, 문재인 정부와 마찬가지로 사고가 날 때마다 ‘산재 줄이기’를 거듭 약속해 왔기 때문에 공분이 컸다.
이런 상황에서 한화토탈노조가 사측의 무리하고 위험천만한 대체인력 투입을 단호하게 막아 나섰다면 여론의 더 큰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와 주민의 안전을 더 확실하게 지키는 동시에, 파업의 효과도 결정적으로 강화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한화토탈 공장 안에서는 추가적 사고의 직접적 피해자가 될 수 있는 플랜트 노동자들이 작업 거부를 하며 사측에 항의하고 있었다.
사태가 정치화된 조건을 이용해 민주노총도 실질적인 연대 투쟁을 조직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단호해야 승리할 수 있다
돈벌이에 단단히 미쳐 노동자와 주민의 안전은 안중에 없었던 사측은 사고 이후 오히려 대체인력 투입을 확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메인 공장인 나프타 분해 공장(이곳은 공정이 복잡하고 위험해서 대체인력이 미처 투입되지 못했던 곳이다)을 어떻게든 돌리겠다고 노조를 협박했던 것이다.
이는 뒤집어 보면, 사측이 파업으로 인한 손실 때문에 안달 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점까지도 강력한 파업을 지속했다면 승산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노조는 사고 이후 좀 더 조심스러워진 듯했다. 사고의 피해 규모가 무척 컸던 데다, 사측의 대체인력 투입과 무리한 공장 가동이 계속됐기 때문에 사고가 추가적으로 더 일어날 가능성도 컸기 때문이다. 결국 노조 집행부는 사측이 협박한 ‘한계’ 시점을 코앞에 두고 크게 부족한 수준의 잠정합의서에 사인을 했다.
이 안은 이후 찬반 투표에서 찬성 50.3퍼센트로 아슬아슬하게 통과됐다. 찬성과 반대가 10명밖에 차이 나지 않았고 기권도 65명이나 됐을 정도로 기층의 불만은 컸다.
이번 투쟁에서 남겨야 할 교훈은 경제 위기 시기일수록 더 단호한 태세와 강력한 투쟁으로 자본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는 노사가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더욱 적어지고, ‘성실 교섭’조차 강력한 투쟁력이 뒷받침될 때에야 가능하다.
온갖 비난과 탄압에도 한화토탈 노동자들이 보여 준 활력과 단결력은 참으로 인상적이고 고무적이었다. 노동자들이 그런 잠재력을 이어 가, 다음 투쟁에서는 이번보다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