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결혼이민제도 개정안:
체류 위해 남편에게 의존해야 하는 현실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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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 전남 영암의 한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에게 심하게 폭행당한 사건으로 커다란 공분이 일었다. 7월 15일 이주여성들은 법무부 앞에서 100여 명 규모의 기자회견을 열고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비슷한 때, 전북 익산시장의 다문화가정 자녀 비하 발언 이후 결혼이주여성들이 항의 시위를 벌였던 것과 맞물려 더욱 주목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결혼이주여성의 불안정한 체류 자격 문제가 도마에 오르자, 법무부는 8월 21일 결혼이민제도 개정안(이하 개정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일부 개선된 내용도 너무 제한적이거나 단서가 달려 있다.
취약한 처지
그동안 결혼이주여성은 체류 연장을 위해 비자를 갱신할 때마다 남편의 사실상 신원보증이 필요했다. 신원보증제도가 폐지됐다지만, 이주여성들은 현실에서는 남편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해 왔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이혼 후에도 체류를 원할 경우, 이혼 귀책 사유가 남편에게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언어·법·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이주여성이 입증 자료와 근거를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결혼이주여성들은 가정 폭력 등 부당한 일을 당해도 참고, 자유롭게 이혼하기도 어려운 처지로 내몰려 왔다.
법무부는 개정안에서 결혼이주민이 체류 연장을 신청할 때, 한국인 배우자를 동반하지 않아도 서류 제출만으로 신청할 수 있게 하며(당연한 조처다), 우선 연장을 허가한 다음 조사하겠다고 밝혔다(선 허가, 후 조사 방식).
그런데 그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면서 ‘혼인의 진정성’ 실태를 상시적으로 조사하고 ‘위장결혼’이 의심되면 ‘선 조사, 후 허가’하겠다고도 한다. 또, 이혼 과정에서 한국인 배우자에게 출입국·외국인 관서에 실태조사를 신청할 권리를 주겠다고 한다.
여전히 남편이 결혼이주여성의 체류 자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게 여지를 남겨 둔 것이다. 그동안에도 ‘혼인의 진정성’ 조사에서 한국인 남편이 이주여성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면 비자 연장이 안 되는 일들이 있었다.
정부는 ‘취업만을 목적으로 한 위장결혼’을 적발하려면 이런 식의 ‘혼인 진정성’ 조사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식의 조처는 이주여성을 남편에게 종속시켜 전체 결혼이주여성을 고통으로 내몬다. 본국의 가난을 벗어나거나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국제 결혼을 선택한 것도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이혼 시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의 귀책 사유를 입증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입증 과정을 돕는 옴부즈맨(민원도우미) 제도를 신설하는 것에 그쳤다. 입증 책임 자체는 여전히 결혼이주민에게 있는 것이다.
귀화 심사 과정 개선과 관련해서는 심사 현황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는 수준이고, 폭력 피해 이주여성의 체류 보장이나 지원에 대한 내용도 전혀 없다.
이중 굴레
정부는 자녀 양육이나 혼인 관계 지속 여부를 결혼이주여성의 체류 자격과 연동시켜 왔다. 결혼이주여성은 이혼 시 남편의 귀책을 입증하지 못하면 체류를 연장할 수 없지만, 혼인 관계를 유지하면 귀화 과정에서 치러야 하는 귀화적격시험이 면제된다.
한국 국적의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면 이혼하더라도 체류할 수 있고, 귀화 심사 기간도 최대 18개월에서 10개월 이내로 단축된다. 개정안에도 “자녀를 양육하는 등 혼인의 진정성이 인정되는 경우” 체류 기간을 최대(3년)로 연장해 주고 체류 실태조사를 간소화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결혼이주여성이 노동력 재생산과 돌봄이라는 자본주의 가족 제도에 충실하게끔 강제하는 것이다. 국가의 제도적 차별과 통제는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인종차별적 편견과 가정 폭력 피해의 한 배경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전통적인 가족 모델과 여성상이 도전받았다지만 결혼이주여성들은 여전히 그로 인해 고통받고 있고, 이주민이라는 취약한 처지 때문에 이중의 차별을 겪고 있다.
결혼이주여성들이 받는 천대에 반대하고 한국에서 그들이 안정적으로 살 권리를 지지해야 한다. 결혼이주여성들이 결혼과 동시에 국적이나 영주권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가정 폭력 등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모든 수단이 제공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