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노동자 파업 예고:
임금, 인력, 철도 통합 ... 문재인은 무엇 하나 지킨 약속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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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가 임금 문제 해결과 인력 충원, KTX-SRT(수서고속철도) 통합,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10월 11~14일 파업을 예고했다.
철도 노동자들의 임금에 대한 불만은 꽤 누적돼 왔다. 그간 임금 인상은 물가인상률에도 못 미치기 일쑤였고 고질적인 승진 적체로 장기간 임금 인상이 억제돼 왔다. 최근 몇 년간 연차 수당, 명절상여금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 신규 기관사들은 1인 승무 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올해 철도노조의 ‘임금교섭 조합원 설문조사’에서 직장 생활 만족도 중 임금과 복지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낮게 나와 이런 불만을 잘 보여 줬다.
누적된 임금 불만
사측은 올해도 돈이 부족하다며 4퍼센트 임금 인상 요구와 삭감된 수당 정상화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해 합의에 따른 승진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철도공사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대해서도 인색하기 짝이 없다. 철도공사 자회사 노동자들은 10년 넘게 일해도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에 허덕이고 있다.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는 정당하다. 임금은 노동자와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원천이다. 수많은 노동자의 출퇴근을 책임지고 재화를 실어 나르는 핵심 공공 교통 서비스를 책임지는 노동자들이 더 나은 임금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지금 철도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 열망이 크다. 노조가 이런 열망을 받아 안고 진지하게 투쟁하고 나서야 노동자들의 투지를 고무할 수 있다. 임금 인상 요구와 인력 충원은 둘 다 중요한 문제다.
이 점에서 철도노조 집행부가 노동법 개정에 따른 유급휴일 예산 증가분(450억 원)을 인력 충원에 사용하라는 양보안을 내놓는 것은 오히려 투지를 갉아먹는 일이다.
임금·노동조건 악화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인력 문제도 심각하다. 노사 합의에 따라 내년부터 현행 3조 2교대 근무체계를 4조 2교대로 개편하려면, 노조는 인력 4600여 명을 충원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노동자들은 인력 부족으로 인한 초과근로와 주기적인 야간 노동으로 건강과 생활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런 문제가 개선되길 바라는 노동자들의 열망은 크다. 철도 노동자 중 상당수는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인 2024시간(2017년 기준)보다 80~130시간 더 오래 일한다.
그런데 사측은 업무 강도를 높여 인력 충원을 최소화하려 한다. 근무체계 개편을 틈타 역무 업무 인력 축소(사실상 역무 업무 외주화), 전기 사업소 통합, 변칙적인 교대제 등 개악안을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용자들이 노동시간 단축에 대항해 흔히 사용해 온 수법들이다. 예컨대, 현대·기아차에서는 주야 맞교대 근무체계를 주간연속2교대제로 바꾸면서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휴게 시간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이런 노동강도 강화 방안이 시행되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얻으려는 효과가 사라진다. 근무시간이 줄어도 고강도 노동에 녹초가 돼 퇴근 후 다음날 노동을 위해 휴식하는 것 말고는 여가를 즐길 수도 없다. 외주화가 확대되면 열악한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결국 정규직의 노동조건도 악화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따라서 근무체계 개편으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면 인력이 충분히 늘어야 한다. 각종 노동강도 강화 시도와 역무 업무 외주화에 반대하는 게 중요하다.
노동시간이 단축될 때 임금이 보존되는 것도 중요하다. 임금이 삭감되면 부족한 임금을 벌충하기 위해 다시 초과노동을 하게 돼 장시간 노동이 지속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이를 두고 노동자들이 돈 몇 푼에 연연해 장시간 노동을 유지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구체적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독립적이면서도 단호하게 싸워야
철도노조는 이번 파업을 경고 파업이라고 밝히고, 사측과 정부가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11월 중하순에 완강하게 싸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 노동자들이 절실한 요구를 성취하려면 사용자와 정부에 만만찮은 압박을 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양보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철도 운영과 시설의 통합, 양질의 일자리 확충,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약속해 노동자들의 적잖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기대에 뒤통수를 치며 대폭의 규제완화와 공공부문 민자 사업 확대를 추진하고, KTX-SRT 통합에도 의지가 없다. 정부는 성과연봉제를 중단했지만, 정규직의 임금 인상은 억제돼야 한다고 한다. 인력을 늘리려면 그 비용을 노동자들끼리 나눠서 대라는 식이다.
이것은 단지 기재부 관료들이 문제여서만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의 핵심 방향이다.
따라서 이런 정부에 맞서 단호하게 독립적으로 싸워야 한다. 최근 조국 사태로 정부가 첨예한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을 잘 이용해 싸운다면 불리하지 않다.
안타깝게도 민주노총, 정의당, 민중당 등 중요한 노동계급 조직들이 우파의 부상을 막고 검찰 개혁을 이뤄야 한다고 보며 정부에 맞서기를 회피하고 있다. 그러나 우파를 막기 위해 정부와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진영논리에 노동자 투쟁을 종속시키면, 진정한 개혁은커녕 정부의 노동자 공격에도 제대로 맞서기 어려워진다.(본지 2~3면 기사 ‘노동계급은 여야 모두로부터 독립적이어야’를 보시오.) 우파에 반대해 정부를 지지하면서 동시에 정부의 노동 개악에는 맞서 싸운다는 논리는 링에서 권투 선수가 한쪽 팔을 묶고 싸우는 것과 같다.
철도 노동자들은 2016년 파업을 통해 성과연봉제 폐지를 성취할 수 있었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위기가 심화될 때 단호하게 투쟁해 촛불 투쟁을 촉발하는 구실을 했던 것이 결정적인 승리의 요인이었다. 정치적으로 투쟁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정규직 연대가 중요한 이유
이번 철도 파업의 요구에는 직접고용과 자회사 노동자 처우 개선도 포함돼 있다. 자회사 노동자들은 지난 9월 파업에 나섰지만 철도공사 사측은 완강했다. 사측은 대체인력을 투입해 파업 효과를 무력화시켰다.
이때 철도노조 집행부가 대체인력 저지에 나섰다면 사측은 상당히 압박을 받고 노동자들은 자신감이 배가됐을 것이다. 전체 철도 노동자들이 규정지키기 투쟁을 벌여 비정규직 파업에 연대하고 엄호하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연대가 부족했던 점은 아쉽다. 이번 파업 때는 비정규직 직접고용과 처우 개선을 적극 지지하고 나서야 한다. 철도 노동자들은 2013년 철도 파업 때 광범한 지지를 얻은 경험이 있다. 정부의 ‘정규직 철밥통’ 비난에도 불구하고 철도 민영화가 철도 노동자들의 조건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광범한 노동자, 서민에게도 피해가 된다는 주장에 많은 청년들이 지지를 보냈다.
이번에 철도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와 함께 비정규직의 요구를 위해서도 적극 나서면, 구의역 김군과 김용균 노동자 사망을 보며 분노했던 광범한 청년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래야 정부와 철도공사 사측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를 파고 들어 이간질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야말로 사용자에 맞설 가장 강력한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