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
노동·환경 외면한 친기업 정책
〈노동자 연대〉 구독
7월 14일 문재인 정부는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번 계획을 발표하며 “대공황 이후 전례 없는 경기침체”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정부 투자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끌어 가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디지털 뉴딜, 그린뉴딜, 사회·고용 안전망 강화를 추진하고, 2025년까지 국비 114조 원, 지방비 25조 원, 민간 20조 7000억 원을 포함해 총 160조 원의 투자를 이끌어 일자리 190만 개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새로운 100년의 설계”, “국가 대전환 선언”이라는 거창한 의미 부여와 대조적으로 실제 내용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디지털 뉴딜 —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
디지털 뉴딜은 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D.N.A.)와 5G 등 혁신 기술을 성장시켜 경쟁력을 높이고, 비대면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신기술 육성으로 경제 성장을 이끌겠다는 말은 박근혜 정부도 하던 얘기(창조경제)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떠들썩했지만 지금은 이미 한풀 꺾인 상태이다. 정부는 규제 완화로 신기술을 육성하고 투자와 성장을 이끌겠다고 했지만, 코로나19 사태 전부터 경제는 심각한 침체에 빠져들고 있었다.
정부는 신기술 투자 확대를 유도하겠다며 2018년 9월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 정책인 규제 샌드박스를 밀어붙인 바 있다. 그러나 규제 완화는 사고 위험만 키웠을 뿐 투자를 촉진하지 못했다. 지난해 한국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7.6퍼센트로 2009년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이번에 정부는 “데이터 댐”을 건설하겠다고 강조했다. 데이터를 물처럼 마음껏 활용할 수 있게 해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미 정부는 올해 초 데이터3법을 통과시켰고, 올해 6월에는 개인정보보호법 시행령을 개정해 개인의 동의 없이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그러나 데이터 활용이 경제 성장의 견인차가 될 것이라는 근거는 미약하다. 물론 데이터 규제를 완화하면 기업들이 개인 정보를 상업적으로 활용해 소비자의 수요를 더 민감하게 파악하거나 개인 맞춤형 광고 등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광고가 생산을 촉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지금의 경제 침체는 단순히 소비가 부족해 벌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의 근본 원인은 기업들의 이윤율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에 있다. 지난해 한국의 상장기업들의 영업이익은 예년의 반토막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신규 투자를 꺼려 왔다.
물론 국제적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면 신기술에 대한 투자는 필요하고 이 때문에 기업들은 정부의 투자 지원을 반기고 있다. 빅데이터, 5G, AI 등에 대한 투자 계획은 다른 여러 나라들도 발표하고 있다. 이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다면 그 기업은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문재인은 이번 발표에서 “선도” 국가가 돼야 한다는 말을 11번이나 썼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술 경쟁에서의 성공은 보장돼 있지 않다. 게다가 이러한 경쟁은 새로운 위기의 씨앗이 될 수 있다. 혁신 기술을 위한 투자 과정에서 실제 가치를 만들어내는 노동이 아닌 기계 등에 대한 투자 비율이 높아지고, 이런 경쟁적 축적 압력은 이윤율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노동자들의 조건을 공격하거나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이나 건강 등을 후퇴시킬 내용들을 통해 기업들의 이윤을 보조하고 정부 재정도 절감하려 하고 있다. 특히 비대면 산업 육성 정책에 개악 요소들이 많다.
“디지털 기반 스마트병원”, “디지털 돌봄” 등과 같은 원격의료 정책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는 영상·의료기기를 판매하는 기업들의 이윤에는 다소 도움이 될지 몰라도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현재 대면업무 중심인 공공서비스의 디지털전환율을 2025년까지 80퍼센트 이상으로 달성하겠다고 했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명분으로 이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공서비스의 질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강화와 노인·장애인 등 사회 취약계층에게 엄청난 불편이 예상된다.
게다가 정부는 5G·AI 기반 지능형 정부를 추진하겠다며 이를 통해 “복지급여 중복수급 방지 등”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재정 절감을 위해 복지 수급자들에 대한 관료적 통제를 강화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린뉴딜 — 녹색 분칠에 불과
지난 5월에 정부가 한국판 뉴딜에 그린뉴딜을 포함시키겠다고 한 뒤 정부의 그린뉴딜에는 “그린”이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번 종합계획에서도 달라진 게 없다.
이번 발표에서도 정부는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구체적 목표·계획이나 기업 규제책은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노후 건물 리모델링, 친환경 기업과 산업 육성 등 친시장적 대책 일색이었다. 대표적인 회색 기업인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정의선이 자사 제품 광고를 하듯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은 결국 재벌 뉴딜이었나?” 하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
정부는 재생에너지 설비 생산과 운영을 민간에 내맡길 뿐 아니라 전력 판매도 민영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력 민영화는 평범한 가정의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친시장적인 방식으로는 기후 위기의 원인 물질인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없다. 시장 논리로는 거대한 화석연료 기업들이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권력을 약화시킬 수 없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한국전력은 두산중공업 등과 함께 인도네시아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수출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 두산중공업, 대우건설 등이 체코의 핵발전소 수주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정부의 친시장적 녹색 성장 정책은 결국 녹색 분칠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턱없이 부족한 고용·사회 안전망
정부는 디지털 뉴딜과 그린뉴딜을 고용·사회 안전망 강화라는 기반 위에서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고용·사회 안전망 강화는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동자 구조조정을 전제로, 그 피해를 일부 완화하는 정책이다. 정부는 집권 초반부터 “유연안정성”이라는 말로 이런 방향을 가리켜 왔다.
그러나 기업주들의 이윤 때문이 아니라면 기술 혁신이 노동자 해고로 이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 정부가 밝히고 있는 고용 안전망 강화 대책도 대량 실업에 대한 대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고용보험을 전국민 대상으로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전국민은커녕 상당수 특고 노동자를 배제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7월 8일 입법예고했다.
정부는 특고 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 직종을 확대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찔끔 확대에 불과해 전체 특고 노동자 220만 명 중 3분의 2가량이 배제됐다. 특고 노동자의 가입 문턱을 크게 제약하는 전속성(노동자가 한 기업에 속해야 한다는 것) 등의 기준도 그대로 유지됐다.
만들어질지 장담하기 힘든 일자리
정부는 한국판 뉴딜로 2025년까지 일자리 190만 개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다. 거의 유일하게 구체적으로 밝힌 내용은 최대 6개월간 월 180만 원을 받는 청년 디지털 일자리를 2021년에 5만 명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나마도 정부가 직접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에 인건비를 지원해 취업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실제 일자리가 얼마나 만들어질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힘들 것이다.
한국판 뉴딜은 노동자와 환경은 외면한 기업 경쟁력 강화 정책임이 더욱 분명히 드러났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을 발표한 당일에도 특별연장근로 인가 기간을 3개월 더 연장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단체협약 3년 연장, 작업장 점거 금지 등을 담은 노동법 개악안을 발의했고, 기업들의 이윤을 위해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 해고를 강요해 왔다. 탄력근로제 확대뿐 아니라 실업급여 수급 횟수를 제한하는 개악을 추진 중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한국노총 위원장이 한국판 뉴딜 보고대회에 참가해 들러리를 선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번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발표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사회적 대화에 매달려 온 지난 수개월 동안 정부는 노동자들을 공격할 생각만 해 왔음을 보여 준다. 경제 불황이 더욱 심화하고, 정부와 기업들의 노동자 공격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실체를 폭로하며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