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일자리·복지보다 기업 이윤 우선한 2021 예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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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과 국민의힘이 12월 2일 국회에서 2021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흔히 예산안은 여러 논쟁으로 통과가 지연되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6년 만에 법정 시한을 넘기지 않고 일사천리로 처리된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정의당도 배제한 채 비공개로 예산안을 조정해 처리했다.
우파 언론들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막판 타협 과정에서 최종 예산을 2조 원 늘렸다며 빚잔치 초수퍼예산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2021년 예산 558조 원은 올해 추경예산을 포함(555조 원)해서 보면 겨우 3조 원 증액된 것이다. 이는 올해에 비해 0.5퍼센트가량 늘어난 것으로 물가 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파 언론들이 호들갑스런 말과는 달리 예산은 대폭 증액된 것이 아니라 올해 수준을 겨우 유지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정부는 이런 제한된 돈으로 노동자·서민보다는 기업주들을 지원하는 데에 명백한 우선순위를 둬서 예산을 짰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보면, 전체 12대 분야 중에서 상승폭이 가장 큰 것은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로 2020년보다 22.9퍼센트나 늘었다.
이번 예산안에서 정부가 강조한 것은 한국판 뉴딜을 통해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보통신, 자원순환, 환경경제, 과학기술 등과 관련한 기업 지원 예산은 40퍼센트 넘게 늘었다. 이런 지원들을 통해 첨단 기술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 현대, SK, LG 등 대기업들이 주된 혜택을 볼 것이다.
그린뉴딜이라고 표방하는 것과는 딴판으로, 화석연료 시추 사업 예산은 3.5배나 증액했고, 국내외 유전 개발 사업도 지원한다. 기후 위기에 악영향을 미칠 공항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턱없이 부족한 고용, 복지, 방역 예산
반면 고용, 복지, 교육, 보육 예산과 무엇보다 방역을 위한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교육 예산은 오히려 2.2퍼센트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안전한 교육을 위해 더 많은 인력과 시설 투자가 필요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되레 허리띠를 졸라매게 생긴 것이다. 양질의 보육을 제공할 필요성도 커졌지만 보육 예산은 삭감됐고,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예산은 20.6퍼센트나 줄었다.
보건·복지·고용 관련 예산은 10.7퍼센트가 늘었지만 급속히 진행되는 고령화에 따른 복지 비용의 자연 증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의 공공사회지출이 GDP의 11.1퍼센트로 OECD 평균 20.1퍼센트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정도 예산 증가도 결코 많은 것이 아니다.
게다가 2020년 추경으로 증액됐던 것까지 고려하면 노동자의 고용지원 등을 위해 배정된 고용노동부의 내년 예산은 7.7퍼센트 줄었다.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고 했지만 관련 예산은 무려 32.9퍼센트나 줄었다. 예술인 3만 5000명과 특수고용 노동자 43만 명에게 고용보험 지원 예산을 책정했지만, 이제까지 지원해 오던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보험료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했기 때문이다(참여연대, 고용노동부 2021년 예산안 분석 의견서). 그야말로 밑돌 빼서 윗돌 괴기를 한 것이다.
코로나19로 병상 부족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내년 예산에서 공공병원 설립 예산은 전혀 배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공공의료 관련 예산은 삭감됐다. 대신 원격의료와 바이오헬스 관련 산업 투자 확대 등 의료 상업화에는 수천억 원이 배정됐다.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보다 의료 산업의 이윤을 중시하는 행태는 끔찍한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방의료원이 없는 대전은 6월과 8월, 코로나19 하루 확진자가 불과 10명 안팎일 때 병상이 포화됐다. 진주의료원이 폐쇄된 서부경남 지역 코로나19 확진자들은 타 지역 공공병원으로 원정치료를 가야 했다.
“대구·경북에서는 적십자병원이 적자를 이유로 문을 닫은 후 대구의료원을 중심으로 공공병원이 78퍼센트의 환자를 감당하며 버텼지만, 3월 초 2300명이 집에서 대기했고 3월 중순까지 23퍼센트가 입원도 못 하고 사망했다. 수도권에서도 8월 중순 하루 2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했을 때 병상이 포화돼 자택 대기환자가 발생했다.”(11월 3일, 공공의료강화를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우익 언론 등은 턱없이 부족한 복지 예산조차 문제 삼으며 재정 적자가 늘어서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렇게 재정적자를 걱정하는 자들이 법인세 감면은 문제 삼지 않는다. 정부와 여야는 소득세 최고세율을 연 소득 10억 원 초과인 경우 42퍼센트에서 45퍼센트로 인상했지만, 투자세액공제 확대 등 법인세 감면도 대규모로 진행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국방비는 매해 7퍼센트씩 늘어 53조 원에 이른다.
따라서 이번 예산안은 생명·고용·복지보다 이윤을 더 중시하는 정부와 민주당, 국민의힘의 우선순위를 보여 준다. 이번 예산안을 신속하게 통과시킨 것은 심각한 불황 상황에서 이들이 기업 지원을 위해 힘을 모으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후 이들이 노동개악을 신속하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대비해야 한다.
대폭 줄어든 3차 재난지원금
3차 재난지원금에는 고작 3조 원만 배정됐다. 1차 14조 3000억 원, 2차 7조 8000억 원에 견주면 반의 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정의당은 21조 원을 편성해 전 국민에게 30만 원씩 지원하고, 자영업자에게 100만 원을 추가로 지원하자고 했다. 진보당은 국방예산 5조 5000억 원을 삭감해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외면당했다.
2차 재난지원금 때 대다수 노동자와 빈곤층이 지원에서 배제됐는데 이번에는 소상인들 사이에서도 배제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심각한 코로나19 재확산 상황과 길어지는 불황 속에 사람들의 고통은 커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의 불만이 커질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