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의 고용·안전망 강화”?:
왜곡·과장으로 얼룩진 김명환 위원장의 노사정 합의 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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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를 앞두고, 노사정 잠정합의안 폐기를 주장하는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들과 대의원들이 연서명 결과를 발표했다. 전체 대의원 1480명 중 절반이 넘는 809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김명환 위원장 측이 밀어붙이고 있는 노사정 합의와 임시대의원대회 개최가 조합원들에게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도 김명환 위원장 측은 노사정 합의를 승인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왜곡까지 동원해 성과를 부풀리면서 말이다.
그러나 잠정합의안은 경제 위기로 일자리를 잃고 생계를 걱정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게다가 노동계가 사용자·정부와 협조하겠다는 선언 자체가 사용자·정부의 조건 악화 시도에 맞서 싸우기 힘들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관련해서 본지 331호 기사 ‘노사정 합의를 둘러싼 민주노총 위기와 진정한 좌파적 대안’과 330호 기사 ‘김명환 위원장 측의 노사정 잠정합의안 해설 비판’를 참조하시오.)
정부의 누더기 고용보험법안을 성과로 포장
김명환 위원장 측은 노사정대표자회의 잠정합의문에 “민주노총이 제기한 주요 핵심 요구들이 큰 방향에서 대부분 포함”됐다고 주장한다.
이런 성과 중 하나로 제시하는 것이 전국민고용보험제 시행과 특수고용 노동자의 고용보험 적용에 관한 사항이다. 그러나 전국민고용보험제는 ‘연말까지 로드맵[을] 확정’한다는 것 외에는 명시한 것이 없고, 특고 노동자 고용보험 적용은 상당수 특고 노동자를 배제할 위험성을 열어 뒀다.
그런데 김명환 위원장 측은 잠정합의안의 핵심적인 문제점을 감춰 진실을 가리고 있고, 근거 없는 낙관까지 더해 합의안을 성과로 포장하기 급급하다.
첫째, 김명환 위원장은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7월 14일)에서 “전국민고용보험제와 관련해 경영계가 보험료를 부담하겠다는 동의를 얻은 것”이 이번 합의의 성과라고 말했다. 그러나 합의문 어디를 봐도 재정을 누가 어떻게 댈지는 나와 있지 않다. 민주노총 명의의 공식 해설 자료에서조차 “노사 보험료 인상 검토”라고 설명한 게 전부다.
게다가 사용자 단체들의 반발을 수용해 특고 고용보험 적용 시 “특성”을 고려한다는 문구를 포함해 후퇴시킬 길을 열어 뒀다.
둘째, 김명환 위원장 측은 특고 노동자 고용보험 적용에서도 상당한 성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노사정 잠정합의안이 마련되고 며칠 뒤에 나온 정부의 고용보험법 입법예고안에 “특수고용노동자 전속성 기준을 폐기하라는 민주노총의 요구가 수용”됐고, “2018년 고용보험위원회 의결을 기본으로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7.23 임시대의원대회 소집 이유와 노사정 대표 합의 최종안의 의미’ 카드뉴스)
2018년 고용보험위원회안의 핵심 내용은 특고 노동자를 ‘근로자가 아닌 노무제공자’라고 규정하고, ‘전속성’ 요건을 법률에 포함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물론 노무제공자 규정은 노동자와는 구분되는 지위를 부여하는 것으로 온전한 노동권 보장과 그에 따른 사용자 책임 문제가 제한된다는 한계가 있다). 구체적인 적용 대상은 시행령으로 정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번 정부 입법예고안은 2018년 고용보험위원회안보다 후퇴해, ‘노무제공자’ 대신 ‘노무제공 계약’이라고 명시했다. 특고 노동자의 절반가량이 아무런 계약 없이 일하는 상황이므로 특고 노동자 다수가 배제되는 것이다. 6월 초에 민주당 한정애 의원 등이 발의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에도 ‘노무제공 계약’이라고 돼 있어서, 당시 민주노총은 “코로나19에 고통 받은 특수고용노동자를 외면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이라고 규탄한 바 있다.
이번 정부 입법예고안에 ‘전속성’이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그 기준이 폐기됐다고 볼 수도 없다. 정부 입법예고안 시행령으로 고용보험을 적용할 것이라고 거론되는 14개 직종은 산재보험법 적용을 받는 특수고용직인데, 이 14개 직종의 선정 기준 자체가 전속성(‘하나의 사업에 주로 속해 노무를 제공’)이다. 최근에도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직종별 접근이 중요”하다며 그 이유로 직종별로 전속성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마도 김명환 위원장 측은 (산재보험과는 달리) 선별된 직종 14개 내에서는 개별 노동자의 전속성 여부는 따지지 않는 것이 정부 방향이라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정부가 개별 노동자의 전속성을 따지지 않겠다고 밝힌 바는 없다.
특고 노동자들도 이런 우려를 여전히 갖고 있다. 7월 20일 대리운전노조는 고용보험 전면 적용과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는 농성에 돌입하면서 정부를 이렇게 비판했다. “[전국민고용보험의] 첫 단추인 특수고용 노동자들마저도 ‘전속성 기준’이라는 선을 그어 일부만 적용하려 한다.”
이처럼 이번 정부의 입법예고안(7월 8일)은 여러 제약 요소를 둠으로써 특고 적용 대상을 대폭 축소하는 안이다.(관련해서 본지 330호 기사 ‘정부 고용보험법 개정안 입법예고: 전 국민은커녕 상당수 특고 노동자 배제, 사업주 책임은 축소’를 보시오.)
보잘것없는 취약계층 고용 보호 대책
김명환 위원장 측은 노사정 잠정합의안이 취약계층 노동자의 ‘고용 유지’ 대책을 담았다고 강조한다. 7월 18일에는 이 점을 집중적으로 다룬 카드 뉴스를 발표했다.
그러나 잠정합의안에는 (민주노총이 핵심 의제로 제시한) ‘해고 금지’가 명문화되지 않았고, 취약계층의 “고용 유지”를 언급한 대목도 추상적 선언에 그쳤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고용불안 등이 여전하다며 잠정합의안에 반발하는 이유이다.
사실 김명환 위원장 측이 제시한 근거는 알맹이 없는 눈속임이거나, 해고만 아니면 임금 삭감이나 휴업 등 노동자 희생은 별것 아니라는 강변일 뿐이다.
우선, 김명환 위원장 측이 구체적인 성과로 내세우는 ‘고용유지지원금 특례기간의 3개월 연장’은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하반기에도 경제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공산이 큰데, 3개월 단위 유급휴직 지원 연장은 매우 단기적인 임시변통일 뿐이다.
그동안 민주노총은 고용유지지원금제도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취약계층이 많”고, 곳곳에서 “사업주가 기피”하면서 벌어지는 해고를 전혀 막을 수 없는 등 문제투성이라고 비판해 왔다. 그래서 노동자가 직접 신청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고, 5인 미만과 파견·하청 사업장에 대한 특별 대책을 마련하는 등 “획기적인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번 합의안에는 이런 개선이 없다.
게다가 고용유지지원금제도는 정부가 기업에 지원하는 휴업수당 부담금을 90퍼센트로 늘리는 것이라서,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목적이 강하고 노동자들의 휴업수당을 늘려 주는 것도 아니다.
둘째, 김명환 위원장 측은 “근로시간 단축, 휴업 등에 노동계가 적극 협력한다”는 잠정합의안의 문구가 “고용 유지를 전제”하도록 돼 있어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즉, “고용 유지를 전제”한 경우에는 임금 삭감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렇다면 김명환 위원장 측이 “임금 삭감·반납”, “고용-임금 맞바꾸기”에 합의하지 않았다고 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 합의안은 법에 명시된 휴업 수당마저 삭감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줬다.
김명환 위원장 측이 “노동개악에 합의하지 않았다”는 것도 내세울 게 못 된다. 문재인 정부가 합의안의 문구와 상관 없이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을 국회에 발의했고, 최저임금 인상률을 역대 최악으로 결정했다. 노사정 합의를 성과로 포장하는 것은 이런 정부의 노동개악 추진을 은폐하는 효과를 낼 뿐이다.
셋째, 김명환 위원장은 노사정 대화의 “특성상” 해고 금지를 명문화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애초에 “무조건적” 해고 금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도 한다.(〈한겨레〉 인터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고 금지’를 관철하기 위해 노사정 대화가 필요하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애초에 기대할 게 아니었다고 무책임한 말 바꾸기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민주노총이 내놓은 ‘해고 금지’는 ‘무조건적 해고 금지’가 아니라 ‘기업 지원 시 고용 유지 협약’을 뜻하는 것이었음을 김명환 위원장 스스로 잘 알 텐데 말이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은 조처조차 합의문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공허한 립서비스
김명환 위원장 측은 합의안에 “‘고용 유지’라는 단어가 무려 28차례나 반복해서 나온다”고 자화자찬 한다. 그러나 그저 립서비스 수준의 말이 반복된다고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명환 위원장의 자화자찬은 되레 헛된 기대만 부추겨 노동자들이 정부와 사용자들에 맞서 투쟁하는 데 해로울 수 있다. 가령, 정리해고제 도입에 합의한 1998년 노사정 합의문에 “고용안정”, “해고 회피” 단어가 14번 나왔지만 그 공허한 문구들이 실제 정리해고를 막지는 못했다는 것을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번 합의안에는 노동자들의 고용을 지킬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이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고용 유지” 항목들은 기존 제도를 “활용”하고 “지도”하는 수준에 그쳤다. 아니면 “필요 시 보완책 마련”, “노사 논의 거쳐 방안 마련”이라는 기약 없는 공문구뿐이다.
김명환 위원장의 말에 일말의 진실이 있다면, 노사정 대화로 해고를 막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일 것이다.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희생을 압박하는 정부·사용자들과 대화-협력하는 것으로는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지킬 수 없다. 노동자들이 단단하게 뭉쳐 투쟁해야 성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