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공약으로 살펴본 10기 민주노총 임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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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차기(10기)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사무총장을 뽑는 임원선거가 11월 28일부터 12월 4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선거는 경제 위기 장기화와 코로나19 확산으로 노동자들의 고통이 커지는 상황에서 치러진다. 특히, 지난 7월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잠정합의안이 부결돼 전임 김명환 집행부가 사퇴함으로써, 사회적 대화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 선거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기호1번 김상구-박민숙-황병래 후보조는 국민파 경향으로, 김명환 전 집행부의 사회적 대화 노선을 계승한다. 후보들 중 가장 온건한 성향이다. 국민파는 7월 임시대대의 노사정 잠정합의안 찬반 투표에서 40퍼센트라는 만만찮은 지지를 받은 데서 보듯 영향력이 작지 않다. 비록 그동안 문재인 정부 지지가 더욱 급락해 이번 선거에서 더 불리하겠지만 말이다.
김상구 후보조는 ‘공세적 사회적 교섭’을 주장하며 이렇게 말한다. “1998년 노사정 합의 이후 노사정(대화)은 나쁜 것으로 악마화하고 건전한 토론을 해 오지 못했다.” 당선하면 가장 먼저 ‘교섭전략위원회’를 만들고, 100일 안에 대통령, 각 정당 대표와 대선 후보들, 사용자단체, 재벌 회장 등을 만나겠다는 약속도 내놓았다.
그러나 지금 노동개악, 구조조정 등에 맞서 총력으로 싸워야 할 판에 민주노총 집행부가 경제 시스템 활성화에 골몰하는 대통령, 재벌 총수 등을 만나 대화를 추진하는 것은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그들의 양보 압박에 힘을 실어 주는 나쁜 효과만 낼 것이다. 무엇보다 계급 협력을 정서적으로 부추겨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기 곤혹스럽게 만들 위험이 크다.
물론 김상구 후보조는 으레들 그러듯이 “대화와 투쟁을 병행”하겠다고 말한다. 김명환 집행부도 투쟁을 병행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문재인 정부와의 파트너십을 추구하면서 대정부 저항이 매우 무뎌졌고, 번번이 투쟁을 자제하거나 조합원들을 수동화시켰다.
김상구 후보조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내 것을 지키”는 투쟁을 자제하고 “내 것을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부적절하다. 취약계층을 위하자는 선한 취지를 인정하더라도, 정치 과정상 대기업 정규직이 양보하면 취약계층에게 그 혜택이 갈 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되레 노동자들의 투지를 꺾어 개혁의 진정한 동력을 약화시킨다.(자세한 논의는 본지 327호 ‘민주노총 지도부의 선제적 양보 제안: 불가피하지 않은 양보 제안은 취약계층 보호도 어렵게 만든다’를 보시오.)
진정 취약계층을 위해서는 정규직 양보나 ‘사회적 대화’에 의존할 게 아니라, 조직 노동자의 조건 방어 투쟁을 적극 지도하며, 싸워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면 그 힘이 미조직·비정규직을 위해서도 발휘돼 함께 싸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사회적 대화와 투쟁
기호2번 이영주-박상욱-이태의 후보조는 사회변혁노동자당(이하 변혁당)이 주도하고 노동당·노동전선 등이 동참해 구성됐다. 이영주 후보는 한상균 집행부 시절 사무총장으로서 민중총궐기 등을 조직한 이력을 내세운다. 또, 민주노총의 첫 여성 위원장 후보임을 부각시킨다. 김수억(기아차 사내하청), 김미경(교육공무직본부), 이태성(발전비정규직) 등 ‘비정규직이제그만’ 활동가 다수가 지지를 밝혔다.
이영주 후보조는 노사정 대화에 매달려 온 김명환 집행부를 “잃어버린 3년”이라고 비판하고, 이전 한상균 집행부를 계승하겠다며 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화 문제를 거부하지 않고 노정 교섭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사용자와 정부를 한꺼번에 상대해야 하는 노사정 교섭과 달리, 노정 교섭 방식은 정부와 민주노총의 1 대 1 직접교섭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섭 대상과 방식의 이런 차이는 본질적이지 않다. 사용자 측이 협상장에서 빠지더라도 문재인 정부가 자본주의 정부로서 그들 편에 서 있으니 말이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청와대를 비롯해 각급 정부 부처와의 만남·협의를 여러 차례 해 왔지만 해결되는 문제는 없이 시간만 까먹었다.
게다가 노동전선, 노동당, 변혁당 소속이거나 그들과 가까운 중집 성원들이 예외 없이 모두 김명환 전 집행부가 추진한 코로나19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와 양보교섭 추진에 반대하지 않았다.(민주노총 중집에서 만장일치로 추진됐다.) 이에 관한 이영주 후보조 측의 비판적 성찰을 찾아볼 수 없다.
이영주 후보조는 2022년 대선 대응을 위한 일련의 사업 계획을 내놓았다. 당선 직후 ‘한국사회 구조변혁 전략특위(가칭)’을 구성해 노동자·민중의 공동 요구안을 만들고, 그 요구안을 바탕으로 2021년 11월 중에 하루 총파업-민중총궐기를 성사시키고, 이를 통해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자·민중의 단일 후보를 내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개혁 요구에 동의하는 한국 사회의 모든 진보세력, 시민세력까지” 아우르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물론 이 구상이 불신받는 자본주의 양당이 여전히 주도하면서 교착상태에 있는 공식 정치에 파열구를 낼 만큼 강력하게 현실화된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 침체가 심각하고 질질 끄는 상황에서 필요한 정치는 계급투쟁을 동력으로 해야지, 민중주의(진보적 포퓰리즘 연합)를 동력으로 해서는 민주당 개혁파 정치인들의 주도권을 따돌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기호3번 양경수-윤택근-전종덕 후보조는 자민통 경향인 전국회의 소속이다. 택배, 배달라이더, 공공연대노조 소속 공공 비정규직 노조들 등 최근 새롭게 부상하며 활력을 보여 준 노동자 투쟁·조직 경험을 내세우며 후보 공약과 연결시키고 있다. 양경수 후보가 민주노총 경기본부장으로서 지역에서 세월호 총궐기 등을 조직한 이력, 민주노총의 첫 비정규직 위원장 후보라는 점을 부각한다.
양경수 후보조도 2022년 대선 대응을 목표로 내년 하반기 투쟁을 공약했다. 내년 11월 3일 총파업을 벌여 “대선판을 흔들”고 노동자 의제를 이슈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대화 문제에서 “투쟁이 우선”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임단투 시기 조정으로 “애매하게 묻어가지 않겠다”거나 “문재인 정부는 대화할 상대가 아니라 투쟁할 상대”, “사회적 대화 틀에 갇혀 시간 허비하지 말고, 투쟁을 우선해 지형을 바꿔야 한다”며 가장 투쟁적으로 말한다.
그럼에도 불안감은 든다. 자민통 경향은 그동안 조국 사태, 한일 갈등 등 국면에서 문재인 정부를 가장 분명하게 지지했다. 또, 애초 김명환 집행부가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참가하는 것이나 선제적 양보를 제안하는 것을 지지했다(제반 좌파 조직 노조 간부들도 그랬지만).
기호4번 이호동-변외성-봉혜영 후보조는 전해투(민주노총 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 활동가들을 주축으로 구성됐다. “지역, 산별, 제정파를 아우르는 통합 지도부를 구성하겠다”는 주장이 두드러진다. 이호동 후보조는 김명환 집행부의 노사정 대화 추진을 비판하면서 ‘노정 교섭, 산별 교섭’을 따내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노총이 제1노총으로서 “공세적 대화”를 해야 한다고도 강조하고 있다. 지난 9기 민주노총 임원선거에 출마했을 때 “사회적 대타협 분쇄”를 주장한 이호동 후보가 “공세적 대화 전략”을 주장하는 것은 후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