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
시장 개혁 전환이 쉽지 않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

김정은 집권 후 북한 정부는 경제정책을 크게 바꾸려 하고 있는 듯하다. 이 변화의 핵심은 각 생산단위의 자율권과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경제개발구·특구 개발로 외자를 유치하려는 노력이다. 김정은식 시장 개혁·개방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정책 변화의 핵심은 북한 정부가 2012년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진 ‘6·28 방침’이다. 북한 내부에서는 ‘새로운 경제관리체계’ 또는 ‘새로운 경제관리조치’라고 불린다고 한다.

북한 정부는 6·28 방침을 공식 발표한 적이 없다. 다만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기사를 통해 북한 경제정책에서 무엇이 변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는 있다. 〈조선신보〉에 따르면, “이번 [새 경제]조치에 의해 공장들에서는 국가계획을 수행하면서도 여러 대상들과 자체의 결심으로 생산계약을 맺을 수 있다.” 즉, “경영권한을 현장에 부여한 것”이다.

지난해 7~8월 북한 정부가 곳곳에서 강연회를 열어 6·28 방침을 설명했다고 한다. 그 설명 내용을 종합하면, 공장기업소들은 독자적으로 생산하고 생산물의 가격과 판매 방법, 수익과 분배도 자체로 정하게 된다. 그리고 생산설비 및 자재, 연료와 전력 문제도 국가가 아닌 관련 공장들이나 탄광, 발전소들과의 거래를 통해 스스로 구입해야 한다.

농업분야에서도 농민의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조처를 시행했다. 지난 9월 방북한 일본 기자들에게 북한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리기성 교수는 “농민이 목표를 초과한 잉여수확분을 처분하도록 허용하는 조처를 실시 중”이라고 밝혔다.(〈연합뉴스〉)

북한 정부는 경제특구를 대폭 늘리는 데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북한이 새로 만든 경제개발구·특구만 전국적으로 14곳에 이른다. 북한 관료는 이런 경제개발구·특구를 통해 해외 자본을 적극 유치하려는 것이다. 김정은이 최근 마식령스키장 등 관광시설 건설에 신경을 많이 쓴 것도 해외 자본 유치와 관련 있는 듯하다.

빈부격차

이런 변화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1980년대 초 중국이 단행한 수준의 시장 개혁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김연철 교수(인제대)는 “시장을 비롯한 현재 북한의 경제 시스템은 중국의 1980년대 수준으로 볼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보수주의자든 자유주의자든 김정은의 경제 개혁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본다. 예컨대 보수적인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는 시장 개혁으로 북한 주민들이 좀 더 자유롭고 풍요로워질 수 있으므로 “세계는 북한식 개혁 프로그램의 제한성을 잘 이해면서도, 북한 개혁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관료는 노동자들에게 시장 개혁의 부담을 전가시킬 것이다. ⓒ사진 출처 stephan (플리커)

그러나 북한 관료가 시장 개혁에 나선 것은 북한 노동계급의 고통을 결코 해결해 주지 못한다. 오히려 시장 개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삶이 희생되고 빈부격차가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1989년 동구권 붕괴 후 동유럽에서 진행된 시장 개혁·개방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시장 개혁·개방으로 동유럽 노동자들은 생활수준이 하락했다. 오히려 실업률 급증, 사회복지 폐지나 축소 등 때문에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과거에 북한 관료가 시도한 시장 개혁 조처들도 이와 비슷한 문제들을 낳은 바 있다. 예컨대 2002년에 단행한 시장 개혁 조처인 ‘7·1 조치’는 엄청난 물가 인상을 일으켰다. 당시 북한 정부는 쌀 1킬로그램의 가격을 시장 가격에 맞춰 무려 5백50배가량 인상했다. 그런데 노동자 임금은 고작 18배가량 인상돼, 노동자들한테 엄청난 부담이 전가됐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진정한 해방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김정은의 시장 개혁을 지지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북한의 시장 개혁·개방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진전될 수 있을지, 그리고 성공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우선, 지금의 대외 환경이 북한에 상당히 불리하다. 북한 경제가 회복되려면 북한 정부가 국제 금융기구들로부터 차관을 들여와야 한다. 따라서 북한의 시장 개혁은 대외정책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북한의 현 경제정책은 상당 부분 중국·한국·미국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대외정책

그러나 미국은 6자회담 재개를 한사코 거부하면서 당분간 북한과 대화할 여지를 주지 않고 있다. 미국과 서방의 제재 때문에 북한은 시장 개혁에 필요한 자금을 외부에서 끌어오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북한은 주로 중국과의 대외 무역에 기대 필요한 자금을 얻으려 한다. 그러나 중국과의 관계가 밀접해지는 건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중국과의 경제 관계가 깊어질수록 북한은 중국 경제의 등락에 민감해져서, 중국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 북한 경제도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또한 경제적으로 중국에 의존함에 따라 정치적으로도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이 커지는 것을 막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각 기업에 자율권을 부여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물자(물적 자원)는 북한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자원 확보를 둘러싼 경쟁은 심각한 공급 부족 사태 등 혼란을 낳을 수 있다. 벌써 북한 현지에서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게다가 북한은 그나마 부족한 자원을 대부분 군사 분야에 쏟아야 한다. 이 자원을 경제 발전으로 돌리고 싶더라도 대외관계의 악화 때문에 쉽지 않다. 또한 북한 군부 자신이 무역회사들을 틀어쥐는 등 군부가 경제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다.

따라서 시장 개혁의 폭과 속도 등을 둘러싸고 북한 관료 내에 긴장과 갈등이 커질 개연성은 상당히 크다. 또한 시장 개혁 과정에서 부담을 전가받게 될 노동자들의 불만을 어떻게 해결할지도 불투명하다.

북한 사회의 본질

북한 정부가 시장 개혁에 적극 나서는 것은 북한 사회가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주의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보여 준다.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사회주의’라며 북한 관료들이 시장 개혁에 열을 올리며 해외 자본을 유치하려고 투자설명회까지 여는 모습을 보면,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의 최고 단계’라는 냉소적 농담이 떠오를 법하다.

흔히 사람들은 주요 생산수단이 국유화된 것을 근거로 북한이 사회주의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유화나 국가 통제 경제가 사회주의의 기준이라면, 박정희 시절의 남한도 저명한 인도인 경제학자(M K 다타-초두리)의 지적대로 사회주의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국유 경제를 바로 사회주의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국가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바깥에 있다는 생각이 상식으로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가 역사에 등장한 이후, 국가는 언제나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적 일부였다.

그동안 북한이 채택해 온 국가 주도 경제는 20세기 중엽 세계 자본주의의 주요 흐름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중에 일본과 나치 독일을 위시한 여러 나라들도 국유화와 국가 개입을 통해 경제를 운영했다.

후발 국가의 지배자로서 북한 관료는 노동자와 농민을 쥐어짜면서 한정된 자원을 중공업에 집중 투자해 자본 축적을 이루려 했다.

북한 관료를 자본 축적에 열을 올리게 한 진정한 동력은 동·서 진영 간 냉전적 경쟁에서 비롯됐다. 미국과 남한을 상대로 한 군사적·경제적 경쟁의 논리가 북한 관료의 정책 결정을 좌우했다. 그 논리는 바로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인 ‘축적을 위한 축적, 경쟁을 위한 경쟁’이었다. 이 점에서 북한은 1960~70년대 남한과 본질이 다르지 않은 국가자본주의 사회다.

북한 지배 관료들은 노동자 대중을 (경쟁적 축적) 시스템에 종속시키고 착취율을 높여 왔다. 북한 노동계급 대중의 삶은 고단했고, 불만에 찬 대중을 통제하고 억압하려고 북한 국가는 거대한 억압기구(강제수용소, 공안 기구 따위)를 만들었다.

물론 북한에서는 사기업과 개인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관료가 국가를 통해 간접적·집합적으로 노동계급을 착취한다. 그러나 이것은 형태의 차이지, 본질의 차이가 아니다.

따라서 북한 사회에서 진정한 분단선은 계급 착취 구조를 따라 관료와 노동계급 사이에 놓여 있지, 국가와 시장 사이에 놓여 있는 게 아니다.

북한과 같은 모습의 사회였던 옛 동구권에서 스탈린주의 관료들이 변모하는 과정을 봐도, 북한 관료의 본질을 알 수 있다. 소련과 동유럽에서 스탈린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시장자본주의로 이행했지만, 구체제의 관료들은 대부분 지배계급의 지위를 유지했다. 옛 소련 시절 KGB 요원이었던 자(푸틴)가 지금 러시아 대통령이며, 중국의 소위 ‘사회주의 시장경제’에서 주요 기업체를 쥐락펴락하는 자들은 대부분 중국공산당 1세대 지도자의 자녀들이다.

따라서 북한 경제가 국가에서 시장으로 무게중심을 옮겨 봤자 북한 노동계급한테는 ‘옆으로 게걸음 치는 것’일 뿐이다. 북한 노동계급이 스스로 일어서서 계급 착취 구조를 무너뜨릴 때만, 노동자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진정한 사회주의적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북한 노동계급은 서방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민주적 권리를 지지하는 투쟁도 함께 벌여야 할 것이다.

이메일 구독, 앱과 알림 설치
‘아침에 읽는 〈노동자 연대〉’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보내 드립니다.
앱과 알림을 설치하면 기사를
빠짐없이 받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