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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사참위법 개정:
참사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에 미온적임을 보여 주다

12월 9일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관한 법, 이하 사참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상임위(정무위)가 세 개의 안을 통합했는데 핵심은 지난 11월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안(이하 박주민 원안)이었다.

박주민 원안에는 사참위 활동 기간 최대 2년 연장, 사법경찰권(수사권) 보장, 인력 확대가 포함돼 있었다. 4.16가족협의회의 요구 사항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종 통과된 개정안은 활동 기간 연장만 1년 6개월로 축소 반영됐다.

국민의힘은 이런 후퇴한 법안마저도 ‘지금까지 퍼부은 국세가 얼마냐’며 역겨운 논리로 반대했다. 참사의 책임자들 아니랄까 봐 말이다.

그러나 결정적 후퇴는 민주당이 다수인 정무위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정의당 배진교 의원은 처음에는 ‘수사권을 빼면 안 된다’ 하고 반대했지만 민주당의 압박에 밀려 최종 표결에서는 찬성표를 던졌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후퇴한 안이라도 통과시켜야 한다’고 여긴 듯하다. 사참위 활동 기간 연장이 세월호 책임자 처벌의 공소시효 연장과 연동돼 있음을 특히 의식했을 것이다.

개정안은 현행법에 검찰총장에게 수사 요청할 수 있다는 조항을 “수사기관”으로 바꿨는데, 사실상 공수처를 의미하는 것이다.

“내 아이를 살려 내라” 2016년 12월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집회 연단에 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 ⓒ이미진

거듭된 규제 완화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개악인 부분도 있다. 개정안은 진상 규명 대상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 조사를 제외하고 피해자 구제와 제도 개선, 종합보고서 작성 등으로 업무를 한정했다. 대신 해당 인력을 세월호 조사에 투입하겠다고 한다.(5조 2항). 이는 두 참사의 피해자들을 갈라치기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고약하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 조사 담당인 최예용 사참위 부위원장이 개정안에 항의하면서 사퇴했고,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도 즉시 규탄했다. “사참위 목적이자 존재 이유인 진상조사를 중단시킨다는 발상이 대체 가당키나 한 것이냐. ... 사상 유례 없는 두 참사로 고통 받으며 피눈물 흘려 온 피해자들을 찢어놓고 말았다.”

세월호 유가족과 416연대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조사 중단이 “이번 법 개정의 큰 오점”이라고 비판했지만, 이번 개정을 대체로 환영했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여당은 입만 열면 참사 해결을 외치면서도 정작 실천은 거기에 한참 못 미쳤다. 이런 태도가 운동 안에서 불신과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문재인 정부의 친기업 정책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기업주들의 이윤 보장을 위해 규제 완화를 해 왔는데, 화학물질에 관한 규제 완화도 그 일환으로 추진해 왔다.

문재인 정부의 환경부는 선제적으로 화학물질 인허가 절차를 줄이고, 지난 9월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코로나19 대책의 일환이라며 화학물질 취급시설 정기검사를 9개월이나 유예해 줬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어마어마한 피해자를 낳은 사상 최악의 화학물질 참사다. 그런데도 최초 사망자가 신고된 지 18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다.

사참위가 지난 7월에 발표한 피해 규모 정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건강 피해자는 49~56만 명에 이르고, 사망자는 무려 1만 4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는 기존 정부 발표의 10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러나 처벌받은 책임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피해가 발생한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재판중이다. 옥시 대표 존 리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받기도 했다.

살인 화학물질 PHMG·PGH를 유해성 시험에서 허가해 준 김영삼·노무현 정부, 피해자가 속출하는데도 진상 규명과 피해자 구제를 외면한 김대중·이명박·박근혜 정부까지 사람들의 목숨보다 기업 보호를 우선한 역대 모든 정부에게 책임이 있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 하에서 피해 구제 특별법도 만들어졌지만 신청자는 6800여 명(8월 기준)에 불과하고, 그들마저 이런 저런 기준에 걸려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2015년에 남편이 폐암 판정을 받았어요. ... 병원 기록이랑 모든 것을 냈지만 환경부에서는 ‘피해인 것은 비슷하지만 현재 기준으로는 너희들을 피해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해요.]“(유가족 이명순 씨)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할 주체다. 그런데 이번 법 개정 과정에서 국회 정무위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더 조사할 필요 없음’이라는 환경부의 의견을 근거로 사참위 수사권 부여를 반대했다.(정무위 심사보고서)

결국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이윤 논리를 앞세워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을 외면하고서, 비열하게도 그것을 눈가림하고자 두 참사 피해자들 사이를 갈라치기 한 것이다.

왜 사참위는 전진하지 못했나

문재인 정부는 세월호 약속을 어기고 미루면서 ‘사참위를 믿고 기다려 달라’는 식으로 불만을 무마하곤 했다.

그러나 사참위는 강제력이 없고 거둔 성과도 많지 않다. 세월호 소위원회는 해경의 CCTV 조작 의혹,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선체 급선회에 영향을 줬는지 등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중 몇 가지는 허황된 음모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에 관한 괜찮은 탐사 보도를 이어 온 〈뉴스타파〉 김성수 기자가 번번이 그 타당성에 대한 합리적 의문을 제기했지만, 사참위는 답하지 않고 있다.

가습기살균제사건 소위원회도 피해 규모 등을 조사해 발표했지만 한계가 컸다.

게다가 사참위는 세월호 유가족 박종대 씨의 진상 규명 책(문재인 정부와 세월호 적폐 검사들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다)에 대한 인쇄 및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사참위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따라서 사참위의 활동 기한 연장만으로는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번 개정안은 사참위의 수사권을 배제한 대신, 영장 청구권과 압수물 열람·등사 신청 권한을 포함했다. 여전히 검사의 결정권이 큰 조항이다.

이미 현행법은 위원회에게 “수사기관에 수사를 하도록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 수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특검 요청 권한도 있고 실제로 요청했다. 지금 검찰에는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이 설치돼 있기도 하다.

그러나 검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운동 없이는 앞으로도 결코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공수처가 생겨도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4년 참사 직후 세월호 수사를 흐지부지 종결시킨 세월호 적폐 검사들을 오히려 중용했다. 이 검사들은 현 정부와 검찰 최고 요직에 앉아 있고 노무현 정부 출신, 문재인의 측근이다.

당시 세월호 수사 총책임자는 현재 서울중앙지검장이자 추미애 사단의 핵심인 이성윤이었다. 추미애의 또 다른 측근인 정진웅 검사(조국을 수사했던 한동훈 검사를 역습하려고 무리하게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몸을 날린 바 있다)는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의 구조 방기를 규탄했던 시민 홍 모씨를 구속한 전력이 있다. 한편, 구조 과정 수사팀장이었던 윤대진 검사는 윤석열의 최측근이었다.

이성윤과 윤대진, 둘 다 노무현 정부 때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밑에서 특별감찰반장으로 일했던 자들이다.

문재인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낳았던 전임 우파 정부들의 친기업 정책과 안전을 위협하는 규제 완화 정책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서 산재 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그토록 미온적이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기대서는 제대로 된 참사 문제 해결을 성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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