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반대 운동 탄압에 앞장선 국정원: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세월호 참사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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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경찰 인권침해진상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가 제주 해군기지 유치·건설 과정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정원과 역대 정부·군·검·경·시도 지자체가 한통속이 돼 체계적으로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주민과 활동가들을 탄압했다는 내용이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9월 국정원·경찰·해군·제주도 정부 관련자들·서귀포시장은 어느 식당에 모여 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이들은 “순수 주민과 외부단체 세력의 격리”를 위해 “조그만 것이라도 고소고발”하는 것 따위를 작당했다. 실제로 경찰은 2011~2012년 사이에만 강정마을 주민과 활동가 500여 명을 체포·연행했다.
민주당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국책 사업으로 처음 결정한 것은 김대중 정부였고, 그것을 더 밀어붙여 도장을 찍은 것이 노무현 정부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해군은 강정마을 임시총회 주민투표함 탈취를 배후 조종했고, 문재인은 2018년 10월 제주 해군기지에서 열린 국제 관함식에 참석하고 “주민들”과 간담회를 했지만, 같은 시각 벌어진 또 다른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은 경찰과 사복 입은 해군 헌병대에 의해 진압당했다.
국정원과 세월호 철근
특히 국정원은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탄압하는 데서 주도적 구실을 했다.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경찰은 국정원의 충실한 ‘손발’ 구실을 했다. “경찰이 군 기무사와 국정원에 많이 휘둘렸다. ... 국정원이 가장 상부에서 ‘핸들링’했다.”(경찰 관계자들의 진술)
제주 해군기지와 국정원의 이토록 긴밀한 관련성은 또 다른 고리로도 이어진다. 바로 세월호다.
1기 세월호 특조위와 선체조사위는 참사 당일 세월호에는 제주 해군기지행 철근이 400톤 이상, 그것도 부실하게 묶인 채 과적됐고, 이것이 배가 기울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쏟아져 내려 복원성을 결정적으로 악화시킨 요인이었다고 발표했다.
세월호는 제주 해군기지를 위해 탄생한 배나 다름없다. 인천·제주 간 항로를 독점해 온 청해진해운은 이명박 정부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착수함에 따라 해당 항로를 통한 물동량이 증가할 것을 예상했다. 청해진해운은 다른 선박회사가 항로 사용에 진입하기 전에 세월호 도입을 서둘렀고, 화물칸을 늘리려고 비정상적인 증개축도 강행했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로 제주 해군기지의 주요 건설 자재를 운송하며 톡톡히 돈벌이를 했다. 참사 이후 공사에 차질이 생길 정도였다.
이제까지 밝혀진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세월호의 비정상적 증개축, 화물 과적, 무리한 출항의 핵심 배경에 제주 해군기지가 있다. 이렇게 볼 때 국정원이 세월호를 실소유주처럼 관리하고, 침몰 직후 청해진해운 물류팀 직원과 국정원 직원이 수 차례 통화한 일 등이 왜 벌어졌는지도 개연성 있게 설명된다.
세월호·제주 해군기지·국정원의 연결 고리는 세월호 참사에서 국가가 직접적인 책임자임을 보여 준다. 1기 세월호 특조위가 제주 해군기지행 철근 과적 사실을 알아냈을 때(2016년 6월), 새누리당 의원 김용태가 “정국에 큰 파국이 올 수 있다”며 아연실색한 이유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 핵심 고리를 파헤칠 의지가 전혀 없다. 제주 해군기지의 ‘원죄’가 민주당에게 있고, 지금도 여전히 친제국주의적 정책을 추진하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전임 정부만의 책임이 아니라) 민주당 정부들도 포함한 국가의 책임이라는 점이 분명해질수록 현 정부가 져야 할 부담도 커진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말 국정원 개혁위원회는 “국정원의 세월호 소유설 및 특수관계설, 유가족 등 관련 인물 사찰설, 제주 해군기지 철근 운송 관여설, 감사원 세월호 감사 개입설 등의 의혹”에 대해 어떠한 사례나 정황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
문재인은 이 ‘셀프 면죄부’에 대해 “국정원[이] 자체 개혁위원회를 설치·운영하면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치하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거듭 벽에 부딪히고 있다. 세월호 운동은 문재인 정부와는 독립적으로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힘을 동원하려고 애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