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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의 진상규명 책 금지하려는 2기 특조위 옳지 않다

지난 7월 세월호 유가족 박종대 씨(고 박수현 군 아버지)가 《4·16 세월호 사건 기록연구 - 의혹과 진실》을 출판했다. 이 책은 제목이 말해 주듯이, 법원·검찰·해경·국방부·국군기무사령부 등 국가기관 기록물과 1기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1기 특조위) 조사 결과, 언론 보도 등 방대한 자료를 꼼꼼하게 비교·분석한 결과물이다.

《4·16 세월호 사건 기록연구 - 의혹과 진실》, 박종대 지음, 선인, 1103쪽

이 책은 특히 참사 당일 책임자들의 구조 방기, 방해 과정을 재구성하고 있는데, 기존 출판물들이 다루던 수준을 한층 업그레이드하고 있어 세월호 참사를 연구·조사해 온 사람들에게 소장 가치가 있다. 앞으로 진상 규명에도 참고 자료로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8월 초 2기 특조위에 해당하는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가 법원에 이 책에 대한 인쇄 및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유인즉슨 ‘사참위가 작성하고 수집한 자료가 직간접적으로 인용됐고 조사대상자의 신원이 여과 없이 기술돼 향후 조사 수행에 타격을 입게 됐다’는 것이다. 사참위는 박종대 씨가 사참위 자문위원으로서 약속한 바를 어겼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참위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첫째, 해당 책은 이미 이런 저런 방식으로 그러나 파편적으로 알려져 있던 내용을 종합하고 재구성한 뒤, 저자의 합리적 추측과 의견을 덧붙이는 식으로 구성돼 있다. 즉, 사참위 주장처럼 ‘비밀에 부치지 않으면 향후 조사에 방해될 내용’들이 결코 아니다.

둘째,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인 박종대 씨는 피해 당사자이고 사참위의 ‘비밀’을 유출해서 조사를 방해할 의도나 악의를 갖고 있지 않다. 박종대 씨는 참사 직후 416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장을 맡기도 했고, 이후 직장까지 그만두고 오랜 시간 진상 규명 작업에 매진했다. 사참위가 아니라 직접 정보 공개 청구 등을 통해 알아낸 자료도 많다.

셋째, 사참위가 조상 대상자 신원이 밝혀지는 것에 쩔쩔매는 것이 진심이라면, 그것은 사참위에 강제 수사권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박종대 씨나 그의 책 때문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세월호 참사 해결을 약속해 놓고는 그 약속을 아주 철저하게 외면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처음에 청와대에 직접 진상규명 기구를 만들겠다고 했다가 철회한 바 있다.

강제력 있는 수사 권한 없이는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 어렵다는 건 이미 박근혜 정권 때 1기 특조위 활동을 통해 입증됐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차선책이라며 2017년 말 여야 합의로 누더기 2기 특조위 법을 통과시켜 버렸다. 사참위는 결국 주목할 만한 성과나 존재감 없이 시간만 보냈다.

넷째, 개연성 떨어지는 여러 가지 버전의 외력 충돌설, 고의 침몰설 등도 온라인이나 다큐 영화를 통해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 박종대 씨의 책만 판매 금지돼야 할 이유는 없다.

문재인 정부 비판

박종대 씨는 이 책에서 세월호 참사 수사를 무성의하게 종결한 검·경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와 검찰 특별수사팀을 곳곳에서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가 책에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바로 그 세월호 적폐 검사들은 노무현 정부 출신, 문재인 측근들로 현 정부 아래서 고속 승진했다.

참사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 바로 현 검찰 내에서 ‘추미애 사단’ 대표주자로 꼽히는 이성윤이다. 이성윤은 2014년 참사 당시 광주지검 목포지청장이었다. 또, 문재인 정부는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구조 방기 책임자도 해경 중요 보직에 앉혔다. 요컨대, 문재인 정부가 간접적으로 진상 규명을 방해해 온 셈이다.

저자는 책의 결론 격인 마지막 장을 “대통령 문재인의 ‘침묵’과 대선공약 불이행”을 다루는 데 할애하고 있다. 이 장은 문재인 정부가 만든 국정원 적폐청산위원회가 합리적 의혹들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국정원은 세월호 침몰 사건에 관여한 정황이 없다”고 발표한 것, 20만 명 넘는 ‘세월호 특별수사’ 국민청원을 청와대가 무시했던 것 등을 비판한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진상 규명 책임을 제대로 된 권한도 없는 사참위에 떠넘기려 했다. 그리고 사참위는 지금 애먼 박종대 씨에게 자신들이 무능한 책임을 떠넘기려고 한다.

저자는 “대통령 문재인의 [세월호] 공약은 임기 초반에 일찍이 파기됐다”며 일찍부터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압박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고 말한다.

사참위가 이러한 유가족의 뼈저린 마음에 응답하기는커녕, 진상 규명 노력이 담긴 책의 출판을 가로막으려 하는 시도는 이 기구의 목적과도 배치된다. 사참위는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