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기업과 유착한 인물들 중용:
바이든의 기후 위기 공약, 믿을 게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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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이 기후 위기 대응만큼은 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상당하다. 하지만 한국계 미국인 사회주의자 버지니아 로디노는 바이든과 민주당이 화석연료 산업과 구조적으로 얽혀 있고, 바이든의 인사 정책에서 벌써 그것이 드러나고 있다고 폭로한다. 버지니아 로디노는 미국 마르크스주의 단체 ‘마르크스21’ 회원이다. 이 글은 12월 3일에 쓰여졌다.
[ ] 안의 내용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노동자 연대〉 편집부가 넣은 것이다.
임기 종료를 몇 주 앞두고 트럼프 정부는 환경 정책 개악을 여럿 추진 중이다. 그 중에는 100년도 더 된 철새보호법에 대한 공격, 대서양 [석유·천연가스] 시추 허가 구역 확대, 향후 공중 보건 상 위험 요소를 규제하기 어렵게 훼방하는 조치들이 있다.
트럼프가 공격하는 철새보호법은 1918년 제정된 것으로, 매 등 맹금류를 비롯해 1000종이 넘는 조류를 보호하는 핵심 법률이자, 파괴된 환경을 복원하게끔 강제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법률이기도 하다.(예컨대 석유기업 BP는 2010년 멕시코만 원유 유출로 인해 이 법에 따라 배상금 1억 달러를 물어야 했다. 당시 유출로 바다새 10만 마리 이상이 죽었다.) 트럼프 정부는 기업들이 그런 피할 수 있는 죽음에 책임지지 않아도 되게 하고 싶은 것이다.
이번 개악 전에도 트럼프는 이미 100건에 이르는 환경 규제를 폐기·완화했다. 트럼프 정부는 수로와 습지 수백만 마일에 대한 보호구역 지정을 해제했고, 멸종 위기 생물에 대한 보호 방침을 완화했으며, 공유지 수억 에이커를 석유·천연가스 시추 가능 구역으로 개방했다.
개중에는 11월에 정부가 북극야생동물보호구역에서 원유를 시추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도 있다. 또다른 개악이 이뤄지면 뉴멕시코주(州)에 있는 차코캐니언국립역사공원 주변 공유지 수천 평방마일과 알래스카 야생 지대 깊숙한 곳 등에서 채굴·채광이 추가로 허용될 것이다.
한편, 바이든은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1조 7000억 달러[한화로 약 1900조 원]를 배정하겠다고 공약했으며, 이 문제가 자신에게 최우선 과제 중 하나라고 했다. 하지만, 기후 재앙의 규모가 워낙 크고 사태가 워낙 시급하기 때문에, 바이든의 계획은 전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기후 변화를 대놓고 부인하는 작자[트럼프]가 앞으로 4년 동안 백악관에 없을 테니 다행이지만, 앞으로 4년 동안 대응이 불충분하고 탄소 배출량은 계속 늘어날 것도 재앙적이긴 마찬가지다.
트럼프 하에서 미국은 파리 기후 협약을 탈퇴했다. 바이든 하에서 미국은 협정에 재가입할 것이다. 하지만 5년 전 오바마 정부 시절,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는 늘리기로 협정을 타결하는 것을 보며 환경운동이 기겁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파리 협정 이전의 코펜하겐 회담때도 오바마는 자신의 명망을 이용해 국제적 합의 절차를 우회하고 미·중 간 막후 거래로 협정이 구속력을 갖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그래서 그 결과물인 파리 협약은 구속력이 없다.] 바이든도 오바마의 방식을 이어갈 태세가 돼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기간에 바이든 선거운동본부는 화석연료 기업과 연계된 인물을 에너지 부문 자문위원으로 두고, [핵발전, 화석연료 기업들과의] “타협적”인 기후 위기 정책을 지향하고, 프래킹* 금지에 반대해서 비판받았다. 바이든은 화석연료 기업들이 주는 선거운동 후원금을 거부하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화석연료 산업 투자자가 주최한 대규모 후원금 모금 행사에 참가해 비판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전력노조(IBEW) 위원장 로니 스티븐슨이 바이든 인수위원회에 합류했는데, 전력노조와 스티븐슨은 포괄적 기후 위기 대응 계획의 일환으로 화석 연료 사용을 단계적으로 줄여 나가자는 주장 일체에 공공연히 반대해 왔다.
바이든은 오바마 정부 시절 에너지부 장관을 지낸 어니스트 모니즈를 입각시키거나 신설된 기후 위기 국제 대응 조율 직책에 임명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보도했다. 기후 단체들은 바이든이 모니즈에게 어떤 자리도 줘서는 안 된다고 요구해 왔는데, 모니즈가 장관직을 마친 후 [미국의 천연가스·전력 기업] 서던컴퍼니의 이사가 됐기 때문이었다. 모니즈는 프래킹 지지자이기도 하다.
오바마 시절에는 많은 민주당 지지 인사들이 화석연료 기업들과 친밀했지만 이후에는 거리를 뒀던 데 반해, 모니즈는 여전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장관직을 마친 후 모니즈가 설립한 비영리 단체 ‘에너지 미래 구상’의 의장은 석유기업 BP의 CEO 출신인 존 브라운 경이다.
막대한 기업 후원금
모니즈는 줄곧 화석연료 기업들과 짭짤한 연계를 맺어 왔었는데, 예컨대 BP의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모니즈가 MIT에서 설립한 연구단체 ‘에너지 구상’은 석유 기업들의 후원금에 의존해 운영되며 몇몇 세계 최대 화석연료 기업들에서 막대한 기부를 받았다. ‘에너지 구상’은 화석연료 기업의 성장을 옹호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2017년에 내각을 떠난 후 모니즈는 장관 시절 지원했던 화석연료 가공 기업[서던컴퍼니]에서 유급으로 직책을 맡았다. 모니즈는 이 모든 일을 하면서도 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와 화석연료 산업의 성장이 함께 가야 한다는 오바마 정부의 에너지 전략을 계속 지지한다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이 글이 쓰인 후 모니즈는 실제로 바이든 정부의 에너지부 장관 후보로 물망에 올랐지만 환경단체들의 반발 속에 무산됐다. 하지만 모니즈는 바이든의 에너지 관련 공약 수립 과정에서 중요한 구실을 수행했을 뿐 아니라, 바이든의 인수위에 참여한 인물 여럿이 그와 중요한 연계를 맺고 있어 여전히 막후의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됐다. 바이든은 민주당에서 화석연료 산업의 돈을 손꼽히게 많이 받는 인물을 기후 쟁점 등에 대한 대응을 주 임무로 하는 백악관 고위직에 앉혔다. 바이든은 “기후 변화 운동가들과 재계를 잘 연계하리라 기대”한다며 백악관 공보수석에 루이지애나주(州) 하원의원 세드릭 리치먼드를 지명한 것이다.
리치먼드의 선거구는 루이지애나주에서도 정유소와 플라스틱 공장이 즐비해 “암(癌) 지대”로 악명 높은 지역에 있다. 리치먼드는 10년 동안 하원의원을 지내면서 석유·천연가스 기업에게서 후원금을 하원에서 다섯 번째로 많이 받았다.
미국 에너지관리청은 2030년이 되면 미국의 석유·천연가스 생산량이 2018년 대비 30퍼센트 늘 것이라고 전망한다.
리치먼드는 화석연료 기업에게서 약 34만 1000달러[약 3억 7500만 원]을 받았는데, 전력·천연가스 공급업체 엔터지에게서 5만 달러, 석유 기업 액손모빌에서 4만 달러, 석유 기업 셰브론·필립스66·발레로에너지에게서 각각 1만 달러를 받았다. 미국에서 대기 오염이 가장 심각한 10개 지역 중 7개가 위치한 지역구의 의원이면서 그런 돈들을 긁어모은 것이다.
리치먼드는 중요한 기후·환경 관련 의안에서 거듭 당론을 거슬러 투표했다. 기후 재앙이 자신의 출신 주인 루이지애나를 강타했을 때, 리치먼드는 공화당과 함께 화석연료 수출을 늘리고 석유·천연가스 수송관 개발을 지원하는 법에 찬성표를 던졌다. 리치먼드는 타르샌드 개발을 위한 키스톤 XL 대형 송유관 매립 사업*에도 찬성 투표했다. 리치먼드는 프래킹 허가 지역에 대한 환경 규제 기준을 마련하는 민주당 법안에도 반대표를 던졌고, 오바마 정부가 프래킹에 대한 환경 규제를 엄격하게 적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법안을 공화당이 발의했을 때도 찬성 투표를 했다.
리치먼드는 바이든 선거운동본부 공동 본부장을 지내며 ‘그린 뉴딜’을 지지하지 않았다. 사실 놀랄 일은 못 되는 게 바이든 자신도 ‘그린 뉴딜’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못박았기 때문이다. 대선 후 〈CBS〉의 한 시사프로그램과 인터뷰에서 리치먼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집권하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통치할 것이지만, [그 가치에 맞는] 법이 통과되지 못했을 때 의회 밖으로 나가서 이를 두고 왈가왈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화석연료 기업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이든이 “석유 산업에 대한 전면적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고 “중단기적으로 기업에 더 도움될” 수도 있다고 말한 것도 놀랍지 않다.
여기서 관건은 바이든 정부가 기후 문제에 관해 어떤 바람을 (추상적으로는 전적으로 좋은 말만 할 수도 있다) 품고 있느냐가 아니다. 바이든 정부가 기후 문제에서 “취약”하고 공화당과 타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조차 핵심이 아니다(그것 자체로도 나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진정한 문제는 바이든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를 굳건히 지지한다는 것이고, 이윤 추구나 현상 유지에 방해가 될 수준으로 기대가 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바이든의 배신에 항의하는 운동 진영
트럼프 정부의 재앙적 행보와 바이든 정부의 ‘평소 하던 대로 하자’ 식 대응에 어떻게 저항해야 할까?
진보적 기후 운동 청년 단체 ‘선라이즈 운동’은 대선 때 경합주에서 청년 약 350만 명의 투표를 조직했는데, 이제는 바이든에게 기후 변화 대응 약속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를 주도하고 있다.
세드릭 리치먼드 지명에 대해 ‘선라이즈 운동’은 이렇게 논평했다.
세드릭 리치먼드는 화석연료 산업에서 막대한 돈을 받아 왔고, 석유·천연가스 기업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 왔으며, 자기 선거구에서 환경이 오염되는데도 침묵했다. 청년들과 환경오염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의 사람들은 바이든 정부가 거대 석유기업보다 자신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오늘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배신감에 가깝다. 대통령 당선자 바이든이 가장 먼저 지명한 사람이 정치 이력 내내 화석연료 기업들에게서 자기 당인 민주당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기부금을 받은 사람이니 말이다.
‘선라이즈 운동’은 바이든의 리치먼드 지명이 “바이든의 대선 승리를 가능케 했던 청년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규정했다.
11월에 ‘선라이즈 운동’은 리치먼드 지명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바이든, 쫄지 마라” 하고 외치며 필라델피아에 있는 바이든 선거운동본부 건물로 행진했다. ‘선라이즈 운동’은 내각의 요직에 대한 추천 인사의 명단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든과 인수위원회가 이 명단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라도 기용하리라는 기색은 전혀 없다.
‘멸종 반란’은 기후 변화 문제로 대규모 직접 행동을 벌이겠다고 [대선 전에] 선포했는데, 선거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당선하든 [기후 변화 대응을] 압박하려는 목적에서였다.
11월 19일에는 원주민 운동, 인종차별 반대 운동, 기후변화 운동 활동가들이 워싱턴 DC에 있는 민주당 당사 앞에서 시위를 벌여, 바이든이 기후 변화에 즉각 대응하고 ‘그린 뉴딜’을 승인하라고 촉구했다. 시위대는 로비스트들과 친기업 인사들이 내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미주리주(州) 하원의원 당선인 코리 부시와 뉴욕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하원의원 여럿이 이날 시위에서 연설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운동 덕분에 하원의원에 당선했습니다. [진보파 하원의원 당선자로 꼽히는] 자말 보먼, 코리 부시, 몬데어 존스가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것도 운동 덕입니다. [오카시오-코르테스와 함께 진보파 하원의원 ‘스쿼드(분대)’로 꼽히는] 일한 오마, 라시다 틀라입이 이 자리에 함께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보파 상원의원으로 알려진] 에드 마키가 재선한 것도 운동 덕이었습니다. 바로 운동의 힘입니다. 저들에게는 돈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국 표를 던지는 것은 돈이 아니라 우리들, 사람들, 청년들입니다. 우리 [의원들이] 의석과 정치적 힘을 청년들에, ‘흑인 목숨을 위한 운동’에, 여성에, 미국 전역의 노동계급에 빚진 것을 늦었지만 갚을 때가 됐습니다. 계급 쟁점이고, 인종 쟁점이며, 젠더 쟁점입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같은 사람들이 쟁점을 부상케 하고 운동의 공로를 인정하는 것은 물론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운동이 자본주의 정치 체제 하에서 우리를 대변해 줄 사람에 표를 던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구실을 맡을 수 있음을 봐야 한다.
이날 청년들이 조직한 시위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이 한 약속을 지키게끔 하고 지난 4년 동안 후퇴했던 것들을 되돌리는 데에도 운동이 매우 중요함을 보여 준다. 세계적인 ‘그린 뉴딜’과 그 이상을 추진하려면 운동이 더 커지고 더 강력해져야 한다. 앞으로 과제는 다인종적 기후 정의 운동을 건설하고, 이 운동이 노동조합 운동과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또, 수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이 녹색 경제라는 관점을 지지하게끔 조직하고 전략을 구상하는 것도 과제다. 동시에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녹색 경제는 이윤 추구에 기반하는 자본주의 하에서 불가능함을 힘주어 주장해야 한다. 녹색 경제는 전 세계적이고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뿐 아니라 지구 그 자체의 필요까지 충족할 경제다. 지구를 지키려면, 세계를 변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