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사태, 사회 구조에 내재한 부패와 투기를 보여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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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3월 26일 진행한 노동자연대TV의 온라인 토론회 ‘LH 사태, 부동산 투기와 부패의 대안은 무엇인가(영상 보기)’의 발표문을 다듬은 것이다. 같은 기자의 이전 호 기사들과 일부 겹침을 양해하길 바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패 문제가 불거진 이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지지율 추락에 가속이 붙었다.
데이터리서치가 3월 2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정부 지지율은 31.4퍼센트를 기록해 한 달 전보다 12.2퍼센트 추락했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를 보면 서울에서 문재인 지지율은 27퍼센트를 기록해 심지어 대구에서의 지지율(28퍼센트)보다 낮았다.
LH 부패 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정부의 지지율을 추락시켰다.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서울 아파트값이 83.9퍼센트나 올랐다(서울대 환경대학원 공유도시랩 연구팀 분석 결과). 노동자들은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36년을 모아야 서울에 25평 아파트를 한 채 마련할 수 있고, 청년들은 셋 중 하나가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를 전전하는 상황에서 소수 부자들은 앉은 자리에서 수십~수백억 원을 벌어들였으니 대중의 분노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대중적 박탈감과 막막함이 커지는 속에서, 이번 LH 사태로 정부 관료와 정치인들이 토지 개발의 사전 정보를 활용해 땅을 사고 사리사욕을 취해 왔음이 드러난 것이다.
3월 2일 부정부패를 최초로 폭로한 참여연대와 민변이 제시한 자료를 보면, LH 직원 13명과 가족·지인 등은 2018년 4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3기 신도시 지역인 광명과 시흥에서 100억 원대에 이르는 땅을 매입했다. (개발 계획이 없었다면) 월세도 나올 것이 없는 빈 땅을 사려고 무려 58억 원을 대출받았다. 대출은 주로 북시흥농협에서 이뤄졌는데, 농협까지 부패에 연루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전 개발 정보를 바탕으로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더 많은 지역과 고위 공직자, 정치인들로 확대됐다.
수도권 내에서 최초로 폭로된 광명·시흥을 넘어 남양주 왕숙·인천 계양·과천·고양 창릉 등 3기 신도시 전반으로 확대됐다. 단지 3기 신도시뿐 아니라 전국 곳곳의 도시 개발, 기업 유치, 공항·도로·철도·지하철 건설 과정에서 정치인·관료들의 불법 투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세종시에서는 세종시 건설을 총괄한 행복청장(차관급) A 씨의 땅 투기 의혹이 폭로됐다. A 씨가 2017년 7월 퇴임 직후(11월) 세종시 연서면 와촌리에 땅(9억 8000만 원)을 샀는데, 9개월 뒤에 그 땅 바로 옆에 스마트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선다는 발표가 났다. A가 산 땅은 값이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경기도 투자진흥과 담당 팀장이었던 공무원 간부는 SK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사업 사전 정보를 취득해 용인에 땅 투기를 했고, 땅값은 투자금의 10배가 넘게 상승했다.
아직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전인데도 10명이 넘는 민주당 국회의원과 지자체장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최근에는 행정안전부 장관 전해철의 전 보좌관 가족이 3기 신도시 발표 한 달 전에 안산의 해당 땅을 샀다는 것이 폭로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인 홍문표(홍성 예산), 강기윤(창원) 등은 일가친척이 보유한 땅 근처에 개발 사업 유치를 추진했거나 국회의원 권한을 이용해 수십억 원의 차익을 남겼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런 부패 의혹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인데도 정부 고위 공직자들과 정치인들 사이에서 부패가 얼마나 만연한지를 보여 준다. 그야말로 개발 사업이 있는 곳에 투기와 함께 공직자들의 부패 문제가 필연적으로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고급 정보에 접근하기 쉽고, 자신이 원하는 곳에 개발을 유치할 수 있는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일수록 이런 부패한 특권을 누리기 쉽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3월 25일 고위 공직자 1885명의 재산을 공개한 것을 보면 이들 중 51퍼센트가 주택 외에 자신이나 가족 명의로 땅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은 지난해 평균 1억 3000만 원 늘었다. 노동자와 서민들은 코로나와 심각한 경제 불황 속에 해고, 소득 감소, 실업난에 허덕이는데, 고위 공직자들은 부동산과 자산 가격 급등으로 부를 늘려 온 것이다. 그 과정에 온갖 부정한 방법들이 동원됐을 것이라는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번 문제를 옛 정권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아서 생긴 “적폐”인 양 취급한다.
그러나 LH 사태는 문재인 정부하에서도 부패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문제다. 왜냐하면 문재인 정부는 바로 박근혜가 부패 문제로 탄핵된 뒤에 등장한 탓에 정의와 공정을 내세워 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정부의 위선에 대한 환멸감이 더욱 커진 것이다.
물타기와 사태 축소
정부·여당은 불만의 초점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오세훈의 내곡동 땅 문제와 부산시장 후보 박형준의 엘시티 투기와 부패 의혹 등을 부각한다.
우파가 지난 수십 년간 권력을 누리며 온갖 부정부패를 저질러 왔다는 사실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전과 16범이었던 이명박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환멸 덕분에 가뿐히 대통령에 당선됐다. 물론 지금 감옥에 가 있다. 다시 말해, 우파 정치인들의 부패가 현 정부에서도 고위 공직자 부패 척결은커녕 상존하고 있는 현실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집권 세력 자신이 부패 사슬의 한 고리임이 드러나는 마당이다.
친노 좌장 격인 이해찬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위는 맑아지기 시작했는데 아직 바닥에 가면 잘못된 관행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 것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일선 공직자들의 문제인 양 사태를 축소하고 싶어서 아무도 믿지 않는 흰소리를 한 것이다. (정작 이해찬도 ‘맑은 윗물’이 맞는지 의심받고 있다. 세종시 자택 근처 고속도로 나들목 건설 계획 덕분에 그의 집값이 무려 4배 이상 오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정부의 수사 방향과 대책도 도마뱀 꼬리 자르기에 맞춰져 있다. 최근 정부는 이번 사태의 대책으로 공무원 재산 등록 대상 기준을 4급에서 9급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심지어 앞으로 공공기관 임직원의 부패가 발생하면 공공기관 임직원 전체가 성과급을 받지 못하게 하는 대책도 거론되고 있다. 압도적으로 고위 관료들이 저지르는 부패의 책임을 일선 공무원들에게 떠넘기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부패 사태가 권력자들의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막고 있다. 사태 초기에는 정부합동조사단에 국토부를 포함해 ‘셀프 조사’를 하며 시간을 끌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3기 신도시의 사전 개발 정보 유출인 만큼, 국토부와 LH의 관료들이 핵심 수사 대상이어야 했을 텐데 말이다. 또, 정부·여당이 껄끄러운 검찰과 감사원은 배제하며 부패 수사를 통제했고, 투기 의혹이 제기된 토지 전수조사도 한사코 피하고 있다. 이러니 국민의 70퍼센트 이상이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의 조사를 믿지 않는다고 응답한 것이다.
게다가 LH 부패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LH 사장이었고, 사태 초기에 문제를 감싸고 돌아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린 변창흠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질질 끌고 있다. 변창흠이 LH 사장이던 지난해 7월, LH에 투기 제보가 접수됐지만 이들이 퇴직자라는 이유로 제보가 묵살되기도 했다. 그래서 청와대가 일선 꼬리 자르기 하려는 것은 메스꺼운 위선이다.
여당과 우파 야당은 서로 정치적으로 공격할 거리를 찾는 데만 몰두할 뿐 부패를 파헤치는 데 의지가 없기는 매한가지이다. 이들은 국회의원 전수조사 등을 하겠다고 말해 놓고는 구체적인 추진은 하지 않고 어영부영 시간만 끌고 있다.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도 3월 국회 통과는 물 건너갔고, 땅 투기 공직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을 추진하면서도 소급 적용은 하지 않기로 해 이번 부패 사안에는 적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부패의 원인
정치인과 공직자들의 이런 부패 문제는 왜 벌어지는 것일까?
부패를 한국 자본주의의 후진성을 보여 주는 일인 것처럼 보고, 법 제도를 정비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흔하다.
그러나 부패는 자본주의 경제의 이윤 논리 속에서 끊임없이 싹틀 수밖에 없다는 것을 봐야 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국가가 벌이는 개발 정책은 그 자체로 이윤을 추구하는 게 흔하고 이에 따라 온갖 투기·부패 문제가 끼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의 정치 체제가 군사 독재에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 이행하고 이제는 상당히 안착했는데도 부패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 양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독재 하에서는 더 집중적인 형태의 부패가 벌어졌다. 전두환·노태우가 직접 재벌들에게 수천억 원의 돈을 걷어서 자신의 정치인들에게 뿌리는 식으로 부패가 집중됐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 이행하면서 권력이 분산되고 그에 따라 부패의 구조와 양상이 변화했다. 정치인과 관료들 내에서 내밀한 형태로 기업들과의 연계가 형성되고, 지방자치제가 발전하면서 지자체장들과 기업들의 청탁·부패가 강화되는 식으로 말이다. 검찰, 경찰, 군대, 공무원, 공기업 등의 고위 관료 등 국가 기구 내 권력자들과 기업주들 간의 유착은 변형된 형태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부패는 아직 공직자 개인들의 부정한 투기 수준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정부 관료들이나 정치인들과 기업들 사이에 더 큰 규모의 유착과 뇌물 수수가 오가는 일도 흔하다. 4대강 사업이나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뿐 아니라 수천억~수조 원에 이르는 정부 사업 수주를 위해 건설사들이 입찰 비리를 벌이는 일은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건설 수주를 통한 부패가 정치인들이 정치 자금 마련을 위한 통로로도 쉽게 활용된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같은 정부 관료들과 정치인들의 부패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국가의 성격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자본주의에서 국가는 기업들의 이윤 추구 활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자본주의에서 국가 권력 통치자들은 다른 나라의 국가 권력 통치자들과 경쟁하면서 자국 경제를 더욱 성장시켜야 한다는 이해관계를 갖는다.
군사력을 강화하고 국내 통치를 공고하게 할 경찰, 검찰, 관료층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도 자본주의 경제가 더욱 성장해야 한다고 보고 이를 위해 자본 축적에 이해관계를 가진다.
그래서 정부의 투자는 기업 이윤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맞춰진다. 이와 같은 국가와 기업들 간의 긴밀한 상호관계 속에서 부패 고리가 형성된다.
기업들도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국가 기구를 활용해 더 많은 이익(개발 이익 포함해)을 얻고, 자신이 원하는 정책들이 추진되게 하기 위해 정부 관료들과 (뇌물이나 향응 등으로) 선을 대려 한다. 정부 관료들도 이런 관계 속에서 이득을 얻는 것이다. (정경 유착은 불법 영역보다 합법 영역에서 훨씬 광범하게 형성된다. 정부와 국회의 수많은 합법 정책들은 본질적으로 기업주들의 이윤 획득에 기여한다.)
이런 식으로 정치 권력자들과 경제 권력자들 사이에 씨줄과 날줄처럼 부패한 관계들이 형성된다.
요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패는 국가와 자본의 상호의존 속에서 구조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작고한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 크리스 하먼은 국가와 자본의 관계를 “구조적 상호 의존 관계”라고 정의했다.) 이 속에서 부패한 공직자들의 개인적 치부 행위가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LH와 서울주택공사(SH) 등은 서민주택 공급 등을 목표로 한다지만, 언제나 시장 경제와 민간 기업들의 이윤을 건드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사업을 추진했다. 그래서 LH와 SH 등은 공공임대주택을 매우 제한적으로 공급해 왔다. 반면, 민간 건설사들에는 공적으로 수용한 토지를 제공하고 건설 시공을 맡기며 개발 이익을 나눠먹는 긴밀한 공조 관계를 유지해 왔다.
예를 들어 위례 신도시에서는 LH와 SH가 건설사들에 공공택지를 매각하고 아파트를 비싸게 분양하는 과정에서 건설사와 개인 투자자들이 23조 원에 달하는 시세 차익을 올렸다(경실련).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공직자들의 부정한 투기와 부패가 상존하는 것이다.
최근 LH 공직자들의 부패를 계기로 우파들은 국가 주도 개발 정책이 아닌 민간 시장 중심의 정책을 강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으로 시장을 강화한다고 해서 부패가 줄어든다는 근거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시장 경쟁이 강화될수록 이를 위해 기업들이 국가 관료에게 선을 대며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시도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부패를 없애려면 자본주의 이윤 체제에 근본적으로 도전해야 한다. 투기를 없애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이윤 체제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결코 정부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치 권력자들은 이윤 체제를 수호하며 그 속에서 이득을 누리는 자들이다.
부패 문제가 시장과 국가 사이에 구조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설령 개혁적일지라도) 지배자들에게 맡겨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을 통해 박근혜 정권의 부패 문제를 부분적으로라도 드러냈듯, 정부에 맞서는 대중 투쟁이 성장해야 한다. 그 운동이 자본주의 체제에 전면적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발전해 나갈 때 진정으로 부패와 투기가 없는 사회를 건설할 토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