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 반년:
뿌리 깊은 건설 부패, 정부는 꼬리 자르기에 급급
〈노동자 연대〉 구독
올해 4월 29일 인천 검단 신도시 아파트 주차장이 붕괴하며 철근 누락 문제가 드러난 지 반년이 됐다. 천만다행으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부실 공사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1995년에 15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후에도 부실 공사로 인한 참사는 계속돼 왔다. 2021년 9명의 목숨을 앗아간 광주 학동 철거 건물 붕괴 참사, 2022년 노동자 6명이 사망한 광주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 참사 등.
검단 아파트 주차장 붕괴 사고는 설계, 시공, 감리가 총체적으로 부실한 결과였다. 설계에서부터 지하 주차장의 기둥 32개 중 15개에 철근이 빠져 있었고, 시공 중에 기둥 4개에서 철근이 추가로 빠졌다. 콘크리트의 강도도 설계 기준보다 30퍼센트 낮았다. 이 모든 과정을 감시했어야 할 감리업체는 이를 눈감고 넘어 갔다.
이 아파트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주한 것이었다. 그런데 설계와 감리를 맡은 기업들에 LH의 전직 관료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인맥을 활용해 사업을 수주하고, LH는 이 기업들의 문제들을 눈감아 주는 부패 커넥션이 있었을 공산이 큰 것이다.
〈시사저널〉 인터뷰를 보면, 그런 부패 커넥션은 건설 업계의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로비 금액은 사업 예산을 짤 때부터 산정한다. 전체 수주액에서 5퍼센트 정도다. 수주액이 1조 원이라면 500억 원을 로비에 쓰는 것이다. 전관들이 LH 로비를 전담한다.”(〈시사저널〉 1764호)
경실련과 〈시사저널〉의 조사를 보면, 2015~2020년 LH가 수의계약으로 발주한 설계 용역 중 69.4퍼센트를 LH 전관 영입 업체 47곳이 따냈다.
부패 문제가 불거지자 윤석열은 “건설 이권 카르텔”을 깨부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건설 이권 카르텔”에서 정부 자신도 공범이다. 당장 LH가 발주하는 아파트의 설계사, 시공사, 감리사를 선정하는 최종 책임자는 국토교통부 장관이다.
정부는 LH만 문제 삼으며 사태를 축소하려 하지만, 사실 국토교통부의 부패도 LH 못지않다. 국토교통부 간부로 퇴직한 사람들도 건설 관련 업계에 영입되는 게 관례처럼 돼 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이 김건희 일가에 대한 특혜와 관련 있다는 의혹에서 보듯, 국토교통부가 관할하는 사업들도 막대한 사적 이익과 연관되고, 이를 바탕으로 부패가 만연해 왔다.
구조적 문제
건설 부패는 단지 타락한 개인들 때문에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
정부가 도로, 공항, 건물 등을 건설하는 데 쓰는 사회간접자본 예산은 매해 수십조 원에 달한다. 건설 기업들에게 정부는 최대 발주처인 것이다.
따라서 건설 기업들은 정부·공기업의 고위 공직자들과 연줄을 만들어 수주를 받아 내는 게 돈벌이에 도움이 된다. 자본주의 이윤 경쟁이 부패를 낳는 근본 토양인 것이다.
이런 부패 구조 속에서 기업들은 더욱 싼값에 공사를 하며 건설 비용을 빼돌리고, 정부 관료들은 이런 행태를 쉬쉬하며 눈감는다. 이는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예컨대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지난 8월 7일부터 이틀간 2511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 결과, 건설사로부터 비용 감축을 위한 공사기간 단축과 속도전을 강요받는다는 응답이 89.4퍼센트에 달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권한을 시장에 분산하는 것이 부패의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이후 감리를 민간 기업이 맡게 됐다. 그러나 이는 민간 감리 기업과 정부·공기업 관료들의 유착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부패를 낳았을 뿐이다.
이번에도 윤석열 정부는 LH의 권한을 축소하고 대신 민간 기업의 참여를 확대하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 LH가 하던 일을 지방자치단체들에 넘긴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부패의 양상을 변화시킬지는 몰라도 부패 자체를 막을 수 없다.
축소, 왜곡
윤석열 정부는 “건설 이권 카르텔” 운운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태를 축소하고 꼬리 자르기 하는 데 급급하다.
정부는 철근 누락 아파트에 대한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와 LH는 2017년 이후 LH 발주 사업 중 무량판 구조로 지어진 지하 주차장에 한해서 전수 조사를 했을 뿐이다.
이 사안을 문재인 정부의 문제로 몰아가는 데 이용하며 정략적 공격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무량판 구조가 아닌 다른 구조로 지어진 건물이나 지하 주차장만이 아닌 주거동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지만, 정부는 이런 문제는 쉬쉬하면서 넘어가고 있다.
이번에 주차장이 붕괴한 아파트의 시공사인 GS건설에는 솜방망이 처벌만 하려 한다. 정부는 GS건설 영업정지 10개월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를 낸 HDC현대산업개발은 총 1년 4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도 멀쩡히 영업을 잘 하고 있다. 8개월은 과징금을 4억 원 무는 것으로 대신하고, 나머지 8개월은 수년간 지속될 소송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는 기업들의 이윤을 우선하며 노동자와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규제 완화를 계속해서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긴축 정책도 비용 절감 압박을 키워 부실 공사의 우려를 키울 것이다.
이는 정부가 건설 부패를 막을 대안이기는커녕 부실 공사와 같은 문제를 키워 온 공범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진정한 대안은 정부와 기업에 맞서 이윤보다 안전을 요구하는 아래로부터 운동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