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선수 논란:
주류 정치와 언론은 스포츠 스타를 이용할 생각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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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끝나면, 바쁜 것은 정치인들과 기업들이다.
양궁의 안산 선수나 배구의 김연경 선수처럼 국민적 인기를 끈 선수들을 경쟁적으로 각자의 마케팅에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스포츠와 선수들을 정치에 이용하는 행태들이 여전했다.
이낙연을 지지하는 친문 인사들은 김연아·안산·BTS의 공통점은 ‘문파’라는 (근거 없는) 이미지를 만들어 유포시켰다.
이는 우파 지지자들의 안산 선수 흠집내기의 데칼코마니 같다. 우파 지지자들은 세월호·페미니즘(숏컷)·광주(호남)라는 코드를 빌미로 온라인 비방을 벌였다.
그러나 당시 세 번째 금메달 도전을 앞두고 선정적 보도로 논란이 일자, 대한양궁협회 회장이자 현대차 회장인 정의선은 (경기력이) 걱정된다며 안산 선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했다.
올림픽 폐막도 하기 전에 광주광역시는 8월 6일 안산 선수를 시정 홍보대사 1호로 위촉할 방침을 발표했다.(동시에 광주시는 2012런던 올림픽 2관왕인(총 금3, 동1) 기보배 선수를 세계양궁대회 홍보대사로 위촉할 예정이다.)
한국 최초 한 대회 올림픽 3관왕에 대한 국민적 예우 앞에서 유치한 백래시가 성공할 공간은 없었다.
비열한 흠집내기
안산 선수는 대선 국면이라서 더 곤경을 치렀다. 안 선수의 정치 성향은 알 길이 없지만, 안 선수는 세월호 배지를 유니폼에 달고 경기를 치렀다. 민주당 텃밭인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 문재인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하고 주요 여성 엔지오들이 모두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다.
우파는 이런 몇 가지 코드로 안산 선수를 민주당 지지자로 보고 공격한 것이다.
어차피 우파가 이용하기 힘들 게 뻔한 새 ‘국민 영웅’의 이미지를 편협하게 만들어, 민주당이 이를 이용해 선거에서 조금이라도 득을 보는 것을 방해나 하겠다는 속셈일 것이다.
국민의힘 대변인은 안산 선수 비방에 동조하고, 이준석 등 지도부는 지지자들의 찌질한 공격을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안산 선수가 국민의힘을 지지할 일이 없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측도 올림픽 후반에 ‘안산은 문파(文派)’ 어쩌고 하면서 선수가 원치도 않을 방식으로 이용한다.
배구협회가 귀국 인터뷰에서 김연경에게 문재인에게 감사하다는 답변을 종용한 것도 같은 사례로 볼 수 있다.(신한금융그룹에 대한 감사 답변도 유도했다.)
주류 정치·언론한테서 안 선수에 대한 존중은 도통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안 선수가 받았고 받을 고통은 뒷전에 둔 채 그저 자신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이용할 생각뿐이다.
주류 정치의 추잡한 행태들
올림픽은 종합적이고 간접적인 국력 비교의 장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현대화된 장비와 기술들도 경쟁의 대상이다. 물론 기업들도 이를 지원하며 상품과 기술력 홍보의 장으로 활용한다.
가령 이번 올림픽에서는 육상 종목에서 운동화 논란이 있었다. 미국과 일부 유럽 선수들이 신은 나이키 운동화가 탄성이 너무 뛰어나자 약물과 같은 불공정 수단이 아니냐는 “기술 도핑”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이처럼 국가와 기업들이 전폭 지원하고 다수 국민들이 열광하며 지켜 보는 스포츠 국가대항전에서 이겨야 한다는 압박은 배가된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지난 브라질 리우 올림픽 4관왕 출신 미국 체조 선수 시몬 바일스가 정신적 불안과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대부분 종목에서 기권했다.
그럼에도 그러한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선수들은 많은 것을 상징하게 된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스토리, 노력과 공정이 이긴다는 믿음과 스포츠 정신, 한 국가와 민족의 우수성과 자부심 등. 언론은 이를 감동적으로 각색한다.
그러나 이 선수들 대부분이 진천선수촌처럼 훈련과 숙소를 겸한 곳에서 일상과 격리된 집합 생활을 오래 해야 한다. 국민적 기대가 클수록 극심한 스트레스와 신체적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소외는 순수한 노력으로, 노력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헌신으로, 메달은 노력이 빚은 공정한 결과로 상징된다.
마케팅 수단
이런 상징성 때문에 정치인들, 기업, 언론 모두에게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은 새로운 영웅 마케팅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은 인기 메달리스트들을 청와대 만찬에 초청해 격려하며 이미지 개선을 시도한다. 다른 정치인들도 온갖 이유를 만들어 마찬가지 목표를 이루려 한다.
그런 관계들이 나중에 더욱 발전하면, 선수들도 특정 정치인을 공개 지지하고 그것을 통해 정부가 관여하는 스포츠 행정기관의 간부가 되거나 심지어 국회의원이 되기도 한다. 물론 뜻대로 안 될 때는 보복도 당한다.
한국 선수 중 역대 올림픽 개인 획득 메달 개수 1, 2위인 양궁의 김수녕(금4, 은1, 동1)과 쇼트트랙의 전이경(금4, 동1)은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을 지지했다.
나란히 이명박 취임식에 초청받았던 그들은 이명박 임기 중에 각각 양궁협회 이사, 대한체육회 선수위원이 됐다. 전이경은 당시 한나라당에 입당해 선거에 나가려고도 했었다.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은 박근혜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우승으로 국민 스타가 된 이에리사는 박근혜 정부 때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했다. 박정희 하에서 박근혜가 이에리사를 격려한 인연이 이어진 것이다.
반면에 피겨 김연아 선수와 수영 박태환 선수는 박근혜 정부 하에서 푸대접을 받았다.
박태환은 이명박이 대한수영연맹 회장 출신인 덕에 이명박 취임식에도 초대받았었지만, 박근혜 때는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김종한테서 올림픽 불출마를 강요받았다. 박태환은 2017년 문재인 지지 선언에 동참했다.
박근혜 정부는 정부 시책(훗날 국정 농단 비리로 드러난)에 잘 협조하지 않는다며 김연아에게도 불이익을 줬던 것으로 드러났다.
유착
기업들도 선수들을 이미지 광고에 써먹는다. 선수가 무명일 때부터 후원한 곳은 투자가 성공한 경우다. KB금융그룹이 올림픽 메달을 따기 전부터 김연아 선수를 후원해 득을 톡톡히 봤다.
또 하나는 각 경기 종목을 관할하는 연맹이나 협회를 특정 재벌사가 전폭 후원하는 경우다.
대한민국 동하계 올림픽 통틀어 가장 많은 메달을 건 선수는 양궁 김수녕, 사격 진종오(금4, 은2)이다. 대한양궁협회와 대한사격연맹의 경우, 각각 현대차그룹과 한화그룹이 전폭 후원한다. 양궁과 사격은 2000년대 이후 한국의 “메달밭”이다.
현대차는 이번 올림픽에서도 안산·김제덕 선수 등 덕분에 이미지 개선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다음 메달밭은 동계올림픽의 쇼트트랙이다. 한국빙상경기연맹은 20년간 삼성그룹의 후원을 받았다. 그러나 빙상계와 삼성, 박근혜·최순실이 국정 농단 비리로 연결돼 오히려 위상과 권력이 추락했다.
삼성, 박근혜 정부와 유착됐던 한국빙상경기연맹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 임원의 전횡, 코치 폭력과 성비위, 집단따돌림 등이 폭로돼 비난을 받았다. 삼성은 자의반타의반으로 후원을 중단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왕따 경기’ 사건은 대표적인 친문 언론인 김어준의 방송에서 폭로됐다. 코치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용기있게 공개했던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는 1년여 운동 공백 후 지난해 초 고(故) 박원순 시장의 환영을 받으며 서울시청팀에 입단해 재기에 성공했다.
한편, 언론사들도 생방송 뉴스 인터뷰에 선수들을 부르고, 자사의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섭외해 시청률 대박을 기대한다.
기성 정치인들은 앞다퉈 그들의 팬임을 자처하고 친분을 과시한다. 이것이 더 강한 정치적 인연으로도 발전한다.
이야깃거리가 되는 경우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진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의 실제 주인공인 핸드볼 금메달리스트 임오경은 지난해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이 됐다. 임오경은 이명박 시절부터 한나라당의 영입 제안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 영화를 만든 임순례 감독은 영화를 만들 당시에는 문화계 친노 인사로 분류됐었다.
그런데 이들 중 정말로 스포츠 행정가와 정치인으로 변신해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대부분 한 번 쓰이고 버림받는다.
특정 정치인을 한 번 지지하고 나면 국민적 영웅이라는 아우라가 더는 없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면 소리없이 사라지곤 한다. 이에리사나 임오경의 의정 활동 존재감을 기억하는 이가 있을까.
광고계에서도 국가대표일 때와 아닐 때의 출연료 차이가 난다. 김연아 선수가 국가대표를 빨리 은퇴하지 못한 게 그것 때문 아니냐(소속사의 이해관계)는 보도도 있었다.
이런 것이 극심한 경쟁과 스트레스 속에서 나온 결과에 대한 보상을 빌미로 주류 정치와 자본가들이 스포츠 선수들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자기들 편으로 줄세우기에 실패하면, 상대편이 이용 못하도록 흠집내고 비난하고 박대하기도 한다.
정치와 경제, 정치와 스포츠가 분리돼 보이지만, 여전히 주류 정치는 추잡한 방식으로 스포츠(와 선수)를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