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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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한창이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외교적 보이콧’을 벌이고 중국 정부가 자국의 인권 유린을 은폐하는 데 이 행사를 이용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것은 서구 열강이 중국과 경쟁하면서 벌이는 제국주의적 힘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모든 열강이 국제 스포츠 행사를 자신에게 득이 되도록 이용해 왔다.
다음은 지난해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에 실린 기사로, 스포츠 발전의 역사 자체가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막대한 이윤을 내려는 지배계급의 노력과 얼마나 밀접하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 준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스포츠를 사랑하고 스포츠에 참여하고 스포츠 방송을 시청한다.
세계 인구의 거의 절반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2016년 하계 올림픽을 시청했다. 그리고 35억 7000만 명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방송을 봤다.
이런 시청자 통계들은 엄청나지만, 그다지 놀라운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스포츠로 고달픈 삶을 잊거나 일시적 위안을 얻으려 한다.
스포츠는 많은 사람들에게 지루한 노동일 사이에서 활력을 주는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됐다. 2019년 약 1450만 명이 잉글랜드 프로 축구 리그 경기를 관람했다.
스포츠는 고달픈 삶을 잊는 수단이 될 뿐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파편화와 원자화에 억눌린 자기 표현과 집단성을 표출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수많은 사람들로 이뤄진 상상 속 공동체는 이름 있는 11명의 팀을 통해 더 실감나게 된다. 개인은 응원만 하는 개인일지라도 그 자체로 조국의 상징이 된다.”
어떤 팀을 응원하거나 스포츠 클럽에 가입하는 것은 사회적 계급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경쟁은 지배자들에게 유용한데, 우리가 뭉치지 않고 계속해서 서로를 이기려 애쓰게 만들기 때문이다.
상품화
자본주의하에서 모든 것이 그렇듯 스포츠도 상품화됐다. 스포츠는 인기가 많기 때문에, 수익을 올릴 거대한 시장을 제공한다.
그래서 스포츠는 지배계급에게 정치적으로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한테서 돈을 빨아들이려는 거대 기업들이 제공하는 스포츠를 소비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구단들은 경기 입장권에 최대 97파운드[약 16만 원]까지 값을 매긴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판촉과 협찬, 중계권, 스포츠 도박 등 이 모든 것을 둘러싸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산업이 형성된다.
영국의 스포츠 도박 회사 벳365의 공동 CEO 데니스 코츠는 2020년에 팬데믹으로 인한 고난을 이용해 4억 6900만 파운드[약 7100억 원]를 벌어들였다.
미국의 미식축구 리그인 NFL이 벌어들이는 수입의 대부분은 중계권 계약에서 나온다. NFL은 아마존·폭스·CBS·NBC·ESPN과 2033년까지 적용될 100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NFL의 주요 행사인 슈퍼볼[NFL 결승전]은 광고로 가득하다.
30초짜리 광고 한 편이 500만 달러[약 63억 원]가 넘는다.
이런 마케팅은 실제로 효과가 있는데, 2019년 슈퍼볼 기간 동안 스낵 매출은 10.3퍼센트 증가해 4억 400만 달러[약 4500억 원], 맥주 매출은 12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를 기록했다. 이익에 굶주린 스포츠 산업의 모습을 보면 스포츠에 환멸을 느끼기 쉽다.
그리고 현대 스포츠는 쉽게 반동적인 목적에 이용될 수 있다.
스포츠 행사는 지배계급이 장악하고 있지만 모든 계급의 구성원이 참여한다.
이런 행사는 거짓된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 내고, 이는 대개 애국주의를 부추기는 데 이용된다.
영국에서는 국제 경기 기간 동안 집 밖에 국기가 휘날리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 팀을 함께 응원하면서 연고지에 대한 자부심이나 애국심이 계급보다 더 강한 연결고리라는 착각이 생겨난다.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는 적이 된다.
이는 지배계급에게 이롭다.
노동자 집단 사이에 분열이 생기면 관심을 사용자에게서 다른 데로 돌릴 수 있고, 사용자들은 우리를 착취하기 더 쉬워진다.
스포츠에는 유구한 역사가 있지만, 오늘날 우리가 아는 체계적인 현대 스포츠는 원래 영국의 명문 사립 학교에서 만들어졌다. 축구는 19세기에 명문 사립 학교에 도입됐고, 이때 처음으로 스포츠 규칙이 성문화되기 시작했다.
스포츠는 처음에는 서로 다른 학교 사이에, 그다음에는 계급 사이에서 경쟁심을 조장하기 위해 이용됐다. 규칙을 만든 명문 사립 학교 팀은 지역의 노동계급 팀에 그 규칙을 강요하려 했고, 이는 흔히 싸움으로 이어졌다.
교장들은 스포츠 경기와 경쟁을 현실에 적합한 인격을 형성하기 위한 것으로 여겼다.
영국의 명문 사립 학교 학생들은 장차 프랑스나 스페인과 같은 경쟁 제국주의 국가들과 겨룰 제국의 지도자가 되도록 교육받았다.
체계화된 스포츠는 제국의 산물로서 전 세계로 수출됐다.
19세기 말, 그리고 제1차세계대전을 앞두고 국가 수준의 스포츠 행사와 국제 대회들이 급부상했다.
1896년에는 올림픽이 부활했고, 1903년에는 투르 드 프랑스[프랑스 전역을 일주하는 사이클 경기], 1909년에는 지로 디탈리아[이탈리아 일주] 사이클 경기가 처음 열렸다.
홉스봄은 다음과 같이 썼다.
“영국의 국제 경기들은 브리튼 제도의 국가들을 서로 겨루게 하거나(축구의 경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는 1870년대부터, 아일랜드는 1880년대부터 행사에 포함됐다), 영국 제국의 여러 지역들을 서로 겨루게 했다(크리켓 테스트 매치[크리켓 국제 경기]는 1877년에 시작됐다).
“브리튼 제도 밖에서 열린 첫 국제 축구 경기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대결(1902년)이었다.”
스포츠는 지배자들에게 귀중한 제국주의적 유대 관계를 강화했다. 작가 조지 오웰은 이를 일컬어 “무기 없는 전쟁”이라고 했다.
제국
아프리카 전역에서는 축구가, 인도와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크리켓이 중간계급을 제국의 사상으로 끌어들이는 데서 핵심 요소였다.
영국군 장성들은 스포츠를 이용해 병사들을 더 강하고 유능하게 만들고자 했다. 이 아이디어는 영국 제국 전체에 퍼졌고 많은 부대가 신병 모집에 스포츠를 이용했다.
스포츠는 지배를 관철하는 데도 이용됐는데, 영국의 스포츠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하는 것은 영국이 식민지에 통제력을 행사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제국주의적 관계는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영연방 경기대회(코먼웰스 게임)의 이전 명칭은 영국 제국 경기 대회(브리티시 엠파이어 게임)였다.
이 대회는 영국 제국에 남은 구성원들의 자부심을 내세우고 단합의 외양을 취하며 영국과 [옛] 식민지 국가들의 자본주의적 관계를 북돋는다.
축구 세계에는 구단들이 만들어진 이래 한 가지 변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지배계급이 구단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공장주들은 구단을 꾸려 노동자가 쉬는 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구단들은 공장주들이 노동자에게 주는 선물이자 단합을 도모하기 위한 것처럼 제시됐다.
그래서 런던 동부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로고에 망치가 있는 것이다. 이 팀은 템스강 철공소 노동자들로 구성된 구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영국 제국 경기 대회와 유사하게 여기서도 스포츠는 더 강하고 양질의 노동자를 만들고자 건강을 증진하고 경쟁심을 장려하는 데 이용됐다.
축구를 이용해 사용자들은 계급에 따라 단결해 있던 여러 작업장 노동자들을 자잘한 경쟁으로 분열시키려 했다. 이런 경쟁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며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옛 구단주들은 오늘날 더 부유하고 더 착취적인 구단주로 대체됐으며, 이들도 마찬가지로 스포츠를 이용해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려 한다.
1936년 베를린 하계 올림픽은 아돌프 히틀러가 백인 우월주의와 유대인 혐오라는 자신의 파시즘 사상을 홍보하는 데 이용됐다. 유대인 선수들은 여기에 참가할 수 없었다.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때는, 이 행사가 러시아의 인권 유린을 은폐하는 데 이용된다고 폭로한 펑크 그룹 푸시 라이엇에 의해 성차별, 동성애 혐오, 경찰 폭력 문제가 부각됐다.
2012년 런던 하계 올림픽은 긴축이 한창인 가운데 열렸음에도 110억 파운드[약 17조 원]의 비용이 들었다.
카타르 지배자들은 2022년 월드컵을 주최하면서 이미지 쇄신을 기대할 것이다.
영국에서는 공인된 최상위 국제·전국 대회나 경기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풀뿌리 수준에서 지역별 스포츠 클럽과 경기를 관람하거나 거기에 참여하기도 한다. 입장권 가격이 올라서 경기장에 입장하지 못하는 축구 팬들이 늘어나자 지역별 축구 팀이 많이 생겨났다.
‘20파운드도 어지간해’ 캠페인[Twenty’s Plenty, 입장권 가격을 20파운드, 약 3만 원 이하로 낮추자는 캠페인]이 축구 원정 경기 입장권 가격을 두고 불매 운동을 벌이겠다고 위협하자, 경기당 가격은 30파운드[약 5만 원]로 내려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배제되고, 캠페인 활동가들은 여전히 20파운드 상한을 요구하지만, 이는 의미 있는 변화다.
비싼 가격
구단이 클수록 입장권 가격도 비싸진다.
지난 [2019~2020년] 시즌 토트넘 홋스퍼 FC의 시즌 입장권 가격은 기막히게 비싼 1895파운드[약 310만 원]였다. 팀과 선수, 팬이 전부 거래하고 투자할 상품으로 여겨진다.
자본주의는 스포츠를 계속해서 유리한 대로 이용해 먹으려 할 것이다.
이는 2021년 4월 유럽 슈퍼리그가 출범을 시도하면서도 명확히 드러났다.
팬들과 프리미어 리그가 압력을 넣으면서 잉글랜드의 6개 창단 구단 전부가 슈퍼리그에서 빠졌다.
시위대는 [6개 구단의] 경기장과 훈련장을 향해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나가라, 나가라, 나가라” 하고 외치며 시선을 끌었다.
“노동계급 스포츠에 대한 사랑이 금전욕으로 망가졌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대기업의 스포츠 소유는 필연적으로 상업화를 강화할 것이다. 스포츠가 더 커지고 인기가 많아질수록 자본가들은 팬과 관객에게서 더 많은 이윤을 쥐어짜낼 것이다.
스포츠가 진정한 가치를 갖게 하려면 자본주의를 패배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