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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난민 외면하는 미국과 그 동맹들
파병했던 한국 정부도 책임져야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굴욕적으로 패배했다. 언론들은 미군 철수로 전에 없던 새로운 ‘난민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고 보도한다.

사실 아프가니스탄의 난민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난민 발생에 책임이 있는 주요 강대국들은 줄곧 난민들을 외면해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2020년 현재 아프가니스탄 난민은 무려 570만 명에 이른다. 고향을 등진 채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떠도는 사람이 290만 명이고 나머지는 해외로 탈출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절반이 여성이다.

아프가니스탄은 2014년 시리아에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압도적인 난민 발생 1위 나라였다. 그 후로도 2위 아니면 3위였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벌인 미국과 그 동맹들이 여기에 책임이 있다.

폭격

미국이 침략하기 전에도 아프가니스탄은 난민이 많이 발생하는 나라였다. 소련의 침공과 패퇴, 이후 미국이 지원한 군벌들 간의 분쟁으로 이미 20년 넘게 전쟁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200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고 처음 2~3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들은 너무나도 지쳐 있었고, 미국이 피폐해진 경제를 재건하고 평화를 유지해 주기를 바랐다. 2000년 514만 명이었던 아프가니스탄 난민은 2005년 235만 명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미국은 재건도 평화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전쟁을 벌인 목적이 패권을 재천명하고 전략적 요충지에서 점령을 유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미군은 탈레반을 색출하겠다며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집에 들이닥쳐 폭력적으로 수색했다. 구금과 고문도 서슴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이에 저항하다 미군에 피해를 입히면 그 보복으로 공중폭격이 뒤따랐다. 2006년 미군은 이라크에 88번 폭격했는데, 아프가니스탄에는 무려 2100번이나 폭격했다. 이는 더 큰 반발을 불러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폭격이 쏟아지는 곳에서 재건이 가능할 리 없었다. 미국은 자국 내의 엄청난 불평등을 용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의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쓸 생각이 없었다. 해외 원조의 상당액은 부패한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서방 엔지오들이 착복했다.

결국 2006년쯤부터 난민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여성 억압

취약한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미국의 지원과 지역 군벌들에 의존했다. 군벌들은 탈레반 못지않게 여성을 억압했다. 2007년 한 아프가니스탄 페미니스트는 저널리스트 존 필저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서방이 그들에게 후원받는 군벌들의 잔악함에 침묵해서 분개했습니다. 이 군벌들도 [탈레반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군벌들은 여성들을 강간하고 납치하고 테러합니다.”

침략은 엄청난 수의 난민을 낳았다 2011년 카불의 한 난민 캠프 ⓒ가이 스몰만

2013년 1월 영국의 포토 저널리스트 가이 스몰만은 카불 외곽의 난민 캠프를 취재해 미군 점령하의 참상을 드러냈다. 그가 인터뷰한 난민 가드자이 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가족은 전투를 피해 [원래 살던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헬만드주(州)를 떠나왔습니다. 거기서는 일자리도, 가진 땅도 없었습니다.

“만약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으면 탈레반이 정부의 스파이라고 의심했을 것입니다.

“신분증이 없으면 경찰이 탈레반이나 알카에다라는 혐의로 체포했을 것입니다. 저는 평화로울 수만 있다면 정부든 탈레반이든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가드자이 씨는 그날 아침 생후 18개월 된 딸을 난민 캠프 인근 공동묘지에 묻었다. 제대로 된 난로나 연료가 없어서 밤새 얼어 죽은 것이다. 스몰만은 이런 일이 겨울에 흔한 일상이라고 보도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은 지난 50년 동안 가뭄이 심해져 왔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올해 6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극심한 가뭄과 식량난으로 약 1400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으며, 난민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했다.

40년

이처럼 아프가니스탄은 1979년 소련 침공부터 2021년 미군 철수까지 40년 넘게 전쟁터였다. 1980년 이후 난민이 200만 명 이하로 줄어든 적이 없다.

상상해 보라. 태어날 때부터 40세가 넘도록 전쟁뿐이었다면. 한창 일할 20대부터 은퇴할 60대까지 온통 전쟁뿐이었다면. 물론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말이다.

왜 이들은 생에 한 번 전쟁이 없는 곳에서 새 출발을 꿈꾸면 안 된다는 말인가?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했던 강대국과 그 동맹들은 모든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원하는 나라에서 살 수 있게 하고, 충분한 지원을 해야 마땅하다.

서방 국가들의 난민 떠넘기기

지금도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어떻게든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용 인원을 줄이거나 서로 떠넘기려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탈레반에게서 해방시켜 주겠다며 침략도 불사하더니, 정작 탈레반의 탄압을 우려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난민 발생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미국과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신들을 위해 일했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위주로 받아들이려 한다.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전체 아프가니스탄 난민에 비하면 극히 일부다.

그런데 미국과 영국은 자신들에게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도 충분한 보호를 제공할 태세가 전혀 아니다.

바이든은 이들을 세계 여러 곳의 미군기지나 해외기착지로 보내 심사를 통과한 사람만 미국으로 데려오겠다고 밝혔다. 영국은 5년에 걸쳐 고작 2만 명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8월 16일 독일 총리 메르켈은 아프가니스탄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키스탄 등 아프가니스탄 주변 국가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돈을 줄 테니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독일에 오지 못하게 막아 달라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육로를 통해 유럽으로 가려면 이란과 터키, 그리스를 차례로 지나야 한다. 이를 막으려고 그리스는 터키와의 국경에, 터키는 이란과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있다.

한편, G7은 8월 24일 긴급 정상회의를 열어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논의할 예정이다. 외신을 보면, 영국은 탈레반에 대한 경제 제재를 제안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는 전쟁과 기후변화로 이미 폐허나 다름없는 아프가니스탄 경제를 더욱 악화시켜 난민 발생을 부채질할 것이다.

냉혹한 한국 정부

한국에서도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용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이 한국을 포함한 해외 미군기지에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분산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커졌다.

한국의 파병 부대 등에서 근무했던 아프가니스탄인과 그 가족들이 탈레반의 보복을 우려해 한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도 한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그 수가 400여 명이라고 말했다.(이들은 대부분 생계를 위해 근무했을 것이다.)

또, 현재 한국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체류기간이 끝난 후에도 귀국을 원치 않을 수 있다.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한국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인은 411명이다.(미등록자가 더 있을 텐데 규모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한국 파병 부대 등에서 근무했던 아프가니스탄인에 대해서만 매우 신중한 태도로 국내 이송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영길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한국으로 보내는 것에 사실상 반대했다. 인권 운운하며 침략했던 자들이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뜻과 처지는 깡그리 무시한 채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의 참상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침략 첫해부터 수송 부대, 공병 부대 등을 파병해 미국을 지원했다.

2010~2014년 파병된 ‘오쉬노’ 부대는 미군의 지역재건팀(PRT)과 ‘점령 안정화 작전’을 벌였다. 오쉬노 부대에는 아프가니스탄 경찰을 양성할 훈련 교관 40명도 포함돼 있었다. 이 경찰들은 점령군과 함께 마을을 수색하며 저항 세력을 ‘소탕’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한국행을 원하는 모든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조건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미 한국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인들도 그들이 원하는 한 계속 한국에 머물면서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필요하다.

미군기지나 격리된 지역 또는 시설에 수용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입국 때 정부는 이들이 제주도 밖으로 나가는 것을 금지했었다. 이는 예멘 난민들의 처지를 더 악화시키고 위험한 존재로 낙인 찍는 효과만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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