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공동부유와 홍색 규제 — 레토릭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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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1월 25일 같은 주제로 진행한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표문이다.
지난 11월 11일 막을 내린 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전회)에서는 중국공산당 역사상 세 번째로 ‘역사적 결의’가 통과됐다. 그 핵심 내용은 중국공산당의 지난 100년을 총결하고 다음 100년의 사명과 목표를 달성하자는 것이다.
지난 100년이 마오쩌둥의 국가 건설과 덩샤오핑의 실사구시로 물질적 부유를 이룬 시기였다면, 향후 100년은 중국을 현대화 강국으로 건설하는 시기다. 바로 시진핑이 빈곤에서 벗어나 그럭저럭 생활할 수 있는 샤오캉(小康) 사회를 실현함으로써 지난 100년을 마무리하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 사상’으로 강력한 국가를 건설할 100년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다 함께 잘살자’는 뜻인 ‘공동부유’를 강조하고 있다. 올해 8월 초 중국 지배자들의 비공개 회동인 베이다이허 회의 이후 특히 그랬다. 그는 공동부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공동부유는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이며, 중국식 현대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인민 중심의 발전 사상을 유지하고, 높은 수준의 발전을 통해 공동부유를 추진해야 한다.” 또 시진핑은 6중전회 직후에 ‘국가반독점국’을 출범시켜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홍색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시진핑 시대 중국이 나아가려는 방향을 알려면, 시진핑이 내세우는 공동부유라는 미사여구를 보기보다 중국공산당이 처한 경제적·정치적 처지와 그에 대응한 실천을 봐야 할 것이다.
사실, 중국공산당의 처지는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만사형통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중국 경제성장률이 크게 하락했다. 미·중 갈등은 바이든 정부 들어 오히려 더 강화되고, 심지어 대만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는 군사 충돌이 우려되는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미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모든 세력이 강력한 중국 건설에 매진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번 ‘역사적 결의’는 이것을 천명한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대중의 불만을 무마해야 할 것이다. 사실 시진핑 정부는 집권 내내 제국주의적 경쟁의 압력 때문에 내부를 단속해야 한다는 압력을 크게 받았다. 그래서 저항하는 노동자와 청년·학생들을 억압하고, 홍콩 민주화 세력들을 짓밟았으며, 분리독립을 추구할 가능성 있는 소수민족들을 강력하게 탄압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이런 맥락 속에서 공동부유에 대해 한 걸음 더 들어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진핑이 공동부유를 강조하고 홍색 규제를 추진하는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중국 경제가 놀라운 발전을 이루는 동안 그 이면에서 빈부격차가 커졌다. 불평등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더 심해졌다. 집값과 교육비는 가파르게 오르지만 일자리와 임금은 늘지 않는 것이 오늘날 중국의 현실이다. 그래서 농민공(농촌에서 도시로 온 이주노동자)이 도시에서 집을 장만하려면 당나라 때부터 저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국의 지니계수를 보면 1990년대 이래 죽 증가했다. 2012년에 출범한 시진핑 정부에서도 0.46에서 0.49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지니계수가 0.4를 넘으면 사회 불안정이 급격하게 높아져 폭동과 반란 또는 혁명이 벌어지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됐지만 중위소득층은 소득 감소와 생활수준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알리바바, 텐센트, 핀둬둬, 바이두, 징동 같은 빅테크 기업들의 수익은 폭등했지만, 노동 대중은 봉쇄와 실업을 경험했다. 중국 지배자들은 이런 일이 지속될 경우 1989년 톈안먼 항쟁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두려워한다.
둘째, 빈부격차가 확대되면 시진핑이 추진하는 ‘쌍순환 전략’은 성공할 수 없다. 쌍순환 전략은 내수에 기반한 경제 성장을 강조하는 전략이다. 그러니 소득불평등이 악화되면 내수를 뒷받침하기 어렵고 경제 성장을 억누를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건 당연할 것이다.
실제로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분기 18.3퍼센트, 2분기 7.9퍼센트에 이어 3분기에는 4.9퍼센트로 떨어졌다. 원자재 가격 급등, 전력난, 부동산 2위 기업인 헝다그룹의 부도 위기 등으로 중국 경제가 급격하게 침체되고 있다. 중국의 산업생산 성장률 역시 시장 기대치인 4.5퍼센트보다 낮은 3.1퍼센트를 기록했다.
최근에 의미심장한 뉴스가 있었다. 2020년 중국의 출생률이 1000명당 8.52명으로 4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중국 국가통계국). 지난해 출생인구는 1200만 명으로 2016년(1786만 명)보다 3분의 1이나 줄었다.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은 몇 년 전에 폐지됐지만, 젊은이들은 부동산 폭등, 감당하기 힘든 사교육비, 일자리 감소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지배자들에게 인구 감소는 좋지 않은 뉴스일 것이다. 노동력 감소, 소비 감소, 경제 활력 감소를 초래하고 노인 부양 부담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공동부유 정책의 일환으로 학업과 사교육 부담을 줄이고 주택 가격을 억제하는 정책을 발표한 이유이다.
셋째, 중국 국가관료들은 빅테크 기업들이 국가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알리바바의 마윈이 중국의 금융제도를 동네 구멍가게라며 비판하고, 디디추싱이 정부 당국자의 만류에도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그래서 중국 당국은 그간 엄청난 부를 쌓고 코로나19로 더 부유해져 대중의 불만과 분노의 대상이 된 빅테크 기업들을 공동부유의 명분으로 단속하고 규제하고 있다. 국가 통제를 확고히 하려는 것인데, 이는 미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내부 단속이기도 하다.
빅테크 기업
시진핑의 공동부유와 홍색 규제에 대해 한국의 일부 지식인과 좌파들은 일종의 환상이 있는 것 같다. 노회찬 재단의 김형탁 사무총장은 공동부유론이 “부와 소득의 격차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요소가 됐다는 방증”이자 “덩샤오핑의 선부(先富) 논리를 수정해 함께 잘살자는 마오쩌둥의 공부(共富) 논리를 결합하겠다는 노선”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식인 선언 네트워크’ 공동대표인 이병천은 “시진핑 정부는 오늘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국가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하다”고 논평했다.
친진보당 저널 〈민플러스〉는 중국공산당의 공동부유와 6중전회의 결과를 홍보한 〈환구시보〉 사설을 번역해 실었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의 현실은 ‘다 함께 잘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최근 중국 언론은 홍색 규제의 대상이 된 기업들이 기부를 크게 늘리고 대중에게 도움을 준다고 부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불평등의 골을 메울 수는 없을 것이다.
2020년 세계부자보고서가 발표한 10억 달러(1.2조 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슈퍼리치의 숫자를 보면, 중국이 799명으로 미국의 626명보다 많다. 중국 상위 1퍼센트 부자가 국내총생산의 30퍼센트를 차지한다. 반면, 2020년 5월 전인대 직후에 리커창 총리가 시인했듯이, 전체 인구의 40퍼센트가 넘는 6억 명은 월 1000위안(약 18만 원) 이하로 생활한다. 전체 인구의 90퍼센트에 해당하는 12억 6000만 명은 월 5000위안(약 93만 원) 이하로 생활한다.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려면 노동자와 농민 대중의 소득을 늘려 줘야 한다. 하지만 시진핑은 집권 내내 노동조합을 결성하거나 임금 인상이나 보상금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탄압했고, 이들을 지원하는 노동NGO 활동가들을 잡아갔다. 최근 시진핑은 공동부유가 ‘복지주의’라는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면서 애국주의 교육을 통한 ‘정신적 공동부유’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러니, ‘다 함께 잘살자’는 공동부유는 말뿐이고 시진핑에 기대해서는 결코 달성할 수 없는 목표인 것이다.
공동부유 추진에는 또 다른 난관도 있다. 시진핑 정부는 부동산세나 소비세 또는 상속세를 도입하려 하지만 지배 세력의 반발 때문에 잘 진척되지 않고 있다. 기업에 대한 홍색 규제는 빅테크 기업들을 넘어 기업 전반에 위축 효과를 낼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시진핑이 실수하거나 성과를 못 내면 지배계급 내부의 갈등과 분열이 생길 수 있다. 중국 지배계급 내 의견 충돌은 언제나 있었고 지금도 있다. 두 사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부실 국유기업 개혁을 둘러싸고 파산 같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할 것이냐, 국유기업 살리기를 할 것이냐 하는 갈등이다. 최근에는 금융자본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있다.
이런 의견 차이는 아직 갈등과 분열로 이어지지 않고 있지만, 미·중 경쟁이나 노동자 저항 등을 놓고 지배계급 내 의견 충돌이 첨예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아래로부터 노동자 투쟁이 분출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다.
시진핑이 추진하는 공동부유와 홍색 규제의 대상 기업들은 국가와 공산당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장차 그럴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이다. 엄청난 부를 쌓거나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기업들이 모두 규제의 대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캐나다에 억류돼 있다 귀국한 화웨이 부회장 멍완저우에 대한 중국 정부의 환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5G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화웨이는 애국주의 기업으로 대우받는다. 반면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메이퇀, 디디추싱 같은 거대 빅테크·플랫폼 기업들은 각종 규제와 천문학적 벌금을 받고 있다.
중국 지배자들은 경제에 대한 통제력을 포기하지 않고 더 강화하려 한다. 시진핑과 중국 지배계급은 대기업에 대한 이런 통제력 강화가 제국주의적 경쟁에서 이겨 세계적 패권국이 되는 데 꼭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비자본주의 영역?
공동부유와 관련해 영국의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의 견해가 흥미롭다. 그는 세계 자본주의가 2008년 경제 위기와 이어진 장기 불황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경기 침체 때문에 이윤을 위한 생산 체제로는 공동부유를 달성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경우 서방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영역’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중국의 장래 번영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중국의 향후 성장은 … 국가의 역할을 줄이는 것보다는 기술과 숙련 노동에 대한 국가 주도의 투자와 공동부유 정책에 달려 있을 것이다. … 중국 이외 지역에서는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생산양식으로 남아 있다. 자본의 힘이 중국 안팎에서 남아 있는 한 ‘공동부유’는 달성하기 힘들 것이다.”
마이클 로버츠는 중국에서 자본주의 영역을 억제하고 비자본주의 영역을 확장하면 공동부유가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환상은 자칫 시진핑이 주장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국가 통제 강화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로버츠가 말한 중국의 ‘비자본주의’ 영역에서 바로 국가자본이 노동자와 농민을 착취해 거대한 부를 축적하고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 관료는 지배계급이 됐다. 중국을 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 영역이 공존하는 사회로 이해하기보다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봐야만 중국 사회의 동학과 시진핑의 행보를 간파할 수 있다.
시진핑은 집권 동안 수많은 노동운동 활동가들을 잡아갔다. 2015년 광둥 지역의 노동NGO 활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은 많이 알려졌다. 시진핑과 중국공산당에 비판적인 인물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있다. 시진핑은 신장위구르에서 노동수용소를 운영하며 150만 명에서 200만 명에 이르는 위구르 남성들을 감금했다. 홍콩에서는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그동안 허용됐던 정치적·시민적 권리마저 빼앗고 있다.
시진핑의 이런 권위주의적 억압 조처에 일부 사람들은 무기력을 보이기도 한다. 시진핑을 무소불위의 힘을 지닌 진시황제처럼 보면서 말이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노동계급이 거대한 규모로 성장했고, 2010년대 저항 잠재력을 보여 줬다. 2015년 탄압 이후 잠시 소강인 듯하지만 이런저런 투쟁들이 산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플랫폼, 인터넷, 서비스, 배달 등의 부문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파업도 늘었다. 또, 대학에서는 사회 비판적이거나 노동자 투쟁을 지원하는 동아리들도 생겨났다.
시진핑의 중국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더 강경해지고, 지정학적으로 더 거칠어지는 한편, 국내에서는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하고 있다. 시진핑이 대중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수사로 공동부유를 주장하지만 노동 대중과 청년들의 불만을 억누르기 어려울 것이다. 공동부유는 조금도 진보적이지 않다.
희망은 오직 앞에서 소개한 노동자와 청년들의 투쟁이 전진하는 것에 있다. 그런 투쟁만이 국제 경쟁이 아니라 대중의 필요를 우선하는 사회를 향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이런 투쟁을 바라고 지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