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와 동아시아 정세

이 기사는 4월 7일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의 발제문을 조금 다듬은 것이다.

3월 24일 북한 당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이하 ICBM)을 발사했다. 북한의 ICBM 발사는 2017년 11월 이후 4년여 만의 일이다. 북한은 지난해 연말부터 극초음속미사일·순항미사일 등을 계속 발사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ICBM을 시험 발사한 것이다.

과거 경험과 현재 정황을 감안해 볼 때, 머지않아 북한의 새로운 핵실험이 이어질 수도 있다.

이 글은 먼저,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게 된 과정을 짚어 보고, 2018~2019년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긴장이 쌓여 온 이유를 살펴보려 한다. 특히,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불안정해진 국제 질서와 북한의 ICBM 발사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보면서, 혁명적 국제주의자들이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얘기해 보려 한다.

3월 24일 발사된 북한의 ICBM ⓒ출처 조선중앙통신

북한은 왜 핵과 미사일을 개발했을까?

1991년 옛 소련이 붕괴해 냉전이 끝날 때 북한은 핵탄두나 중장거리 미사일을 하나도 보유하지 못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오늘날 북한은 총 6번의 핵실험을 했고 ICBM까지 개발한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냉전이 끝나자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타진했다. 1992년 김일성은 자신의 측근(김용순 조선로동당 국제담당 비서)을 미국에 보내어, 자국과 수교한다면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내민 손을 뿌리쳤다. 오히려 영변 핵시설 등의 북한 핵 개발 의혹을 부풀려 북한을 위협했다.

미국이 북한 ‘위협’을 과장한 것은, 냉전 이후에도 자국 군대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 주기를 원해서였다. 소위 “불량국가”를 통제하고 지역 평화를 지키려면 미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 ‘위협’을 부풀려 동맹을 강화하고, 군사력 배치를 정당화하고, 이런 일들을 통해 중국 같은 잠재적 경쟁자의 부상을 견제하려 했다.

이렇게 북핵 문제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패권 전략에 엮여 버렸다.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적 경쟁 속에 얽히고설키면서 북핵 문제는 갈수록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가 됐다.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처럼 모종의 합의가 이뤄져 긴장이 완화되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이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거나 약속을 불이행하면서 다시 긴장이 커지는 패턴이 반복됐다.

이런 패턴이 25년 넘게 반복되는 동안 북한은 진짜 핵무기 개발로 나아가게 됐다.

이라크 전쟁

북한 관료들은 냉전 이후의 세계를 보면서 그들 나름의 교훈을 찾았다. 특히 이라크 전쟁이 중요한 교훈이었다. 이라크는 2002년 조지 부시 2세 당시 미국 정부에 의해 북한·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되고 이듬해에는 미국 군대에 의해 점령됐다. 이를 보면서 북한은 핵무기가 없다면 이라크 꼴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던 것이다.

결국 북한은 2006년 최초의 핵실험을 감행했다. 미국의 북핵 의혹 제기가 결과적으로 자기 실현적 예언이 돼 버렸던 것이다.

이처럼 북핵 문제의 주된 책임은 대북 압박으로 위기를 키운 미국 제국주의에 있다.

사실 대북 압박은 단지 말로 위협하는 데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냉전 종식 이후에 한반도는 두 번이나 전쟁 코앞까지 갔었다. 1994년 클린턴 당시 미국 정부가 영변 핵시설 폭격을 심각하게 검토했고, 2017년에도 트럼프의 말, “화염과 분노”로 상징되는 전쟁 위기가 고조됐었다.

앞으로 이런 위협은 또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위협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2018년 북한은 ICBM 발사 유예 선언을 했지만, 북·미 대화에서 얻은 것이 없었다.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제공 싱가포르 정보통신부

2018~2019년 북·미 정상회담과 그 이후

북한의 이번 ICBM 발사를 두고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인수위는 모두 “북한이 ICBM 발사 유예 선언을 스스로 파기했다”고 비난했다.

물론 북한 당국은 2018년 북·미/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ICBM 시험 발사와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북·미 대화가 지속돼 한미연합훈련 등 대북 압박과 제재가 완화되기를 기대하며 내린 조처였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까지 제재를 완화하지도, 한미연합훈련 등에 의한 압박도 늦추지 않았다.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는 외려 대북 제재를 강화했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영변 핵시설을 포기할 테니 제재 일부라도 완화해 달라고 미국 측에 제안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를 거절하고 북한에 일방적 양보를 요구해, 하노이 회담은 합의문 한 장 없이 끝나버렸다.

트럼프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 언론 앞에서 김정은과의 ‘우정’을 과시했지만, 그의 실제 행동은 달랐던 것이다.

한미연합훈련은 꾸준히 실시됐고, 중국을 염두에 둔 해외 연합 훈련도 늘어났다. 미국 유명 언론인 밥 우드워드는 그의 책 《격노》에서 2019년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친서를 보내어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지 않은 것에 항의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 이전 우파 정부들과 다를 것이라는 지지자들의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 5년 동안 문재인 정부는 대북 정책에서 언제나 미국에 보조를 맞췄다.

현상 유지

바이든 집권 후 지난 1년 동안 북·미 관계는 어땠나? 바이든 정부는 북한을 향한 외교의 문이 열려 있다고 자주 말했다.

그러나 말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바이든 정부한테는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는 게 급선무였고, 이를 위해 동맹 체계를 재조정하고 강화하는 데 신경을 쏟았다. 북한과의 관계는 이런 전략에 연동돼 있는 사안으로, 부차적인 문제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바이든 정부가 현상 유지 수준에서 북·미 관계를 관리하려 한다고 본다. 바꿔 말하면, ICBM 발사를 유예하겠다고 선언한(2018년) 이후로 북한은 얻은 게 없었던 것이다. 트럼프는 제재를 강화하고 한미연합훈련을 지속했고, 바이든은 “현상 유지”에 치중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북한 관료에게 “현상 유지”는 석유 같은 필수 자원을 제대로 수입하지 못하는 고강도 제재와 자신을 위협하는 군사 압박의 지속을 의미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는 것에 대한 북한 관료들의 불만은 쌓여 왔고, 그들은 이를 여러 차례 대외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ICBM 시험 발사로 자신들이 이런 상황에 균열을 낼 수 있음을 보여 주려 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얽히는 인도-태평양의 불안정

미국 정부와 남한 정치인들은 이번에 북한이 일방적으로 도발했다고 주장하지만, 위에서 필자가 설명했듯이 그 전후 맥락을 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한의 ICBM 발사는 강대국들 간 제국주의 갈등이 악화돼 세계적으로 긴장이 높아져 온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소련 붕괴 후 많은 사람들은 미국 주도 국제 질서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미국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하락하며 다른 경쟁자들과 미국의 간극이 줄어들자 제국주의 경쟁은 새롭고 위험한 방향으로 전개돼 왔다.

특히, 중국의 부상이 기존 국제 질서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은 지금 그 나름의 제국주의적 목표를 갖고 인도-태평양에서 미국을 밀어내려 한다.

미·중 갈등은 오늘날 자본주의 국제 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균열인 것이다.

이런 지정학적 위기는 군비 경쟁으로도 표출되고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에 자국 해군력의 60퍼센트를 집중시키겠다고 했고, 첨단 무기 개발에서 우위를 지키려 애쓰고 있다. 이에 대응해 2010~2020년 중국의 군사비 지출은 무려 76퍼센트나 늘었다.

물론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인도-태평양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상호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 상호 의존이 전쟁을 방지해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 전문가들은 가까운 미래에 양국이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에서 충돌하는 시나리오를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다.

사드

이런 상황이 자아내는 긴장에 한반도도 얽혀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고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사드 같은 첨단 무기를 한국에 배치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박명호 북한 외무성 부상은 대만 주변에 집결되는 “미국과 동맹국들의 방대한 무력”이 북한에도 위협이라고 했다.

그래서 북한도 군비 경쟁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10~2020년 아시아 국가들의 군사비 지출은 무려 52.7퍼센트나 늘었다. 한국은 1년 국방예산으로 북한 국내총생산(GDP)보다 더 많은 돈을 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군사 능력 증강에 열을 내는 것은 특별히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현재 주변국들의 군비 증강을 재래식 무기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핵과 미사일이라는 ‘비대칭 무기’에 갈수록 더 집착하는 것이다. 경제난 속에 인민 대중의 필요를 희생해 가면서 말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은 인도-태평양의 불안정을 더 악화시키는 계기가 될 듯하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이 러시아를 지원하면 제재 등으로 보복하겠다고 위협했다.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동시에 다른 지역에서의 전쟁에도 관여할 수 있다며 중국을 견제했다.

러시아군의 부차 학살이 폭로된 다음 날, 미국·영국·호주는 자신들의 군사 동맹인 오커스(AUKUS) 차원에서 극초음속미사일 개발을 위해 서로 협력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이 계획에 대해 장쥔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또 다른 우크라이나 위기” 가능성을 언급하며 반발했다.

대만

중국은 세계경제와의 연결을 유지하고 싶으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 나토가 타격을 입기를 내심 바란다. 지난달 중국의 친정부 언론인 후시진은 “러시아는 미국을 억제하는 데서 중국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이고 이 점은 “중국 사회 주류의 합의”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 이 전쟁은 미·중 갈등과 더한층 얽힐 수 있다. 그래서 대만이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일본 자민당이 핵무장 논의를 시작한 것도 심상찮은 일이다. 도미타 고지 미국 주재 일본 대사는 중거리핵전력의 일본 배치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처럼 인도-태평양의 지정학적 위기가 향후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최근 북한이 ICBM을 비롯한 핵무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주된 이유인 것이다.

주변국들의 군비 경쟁 맥락 속 북한의 군사력 증강 ㅡ 그다지 특출날 것 없다

혁명적 국제주의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북한 당국은 자국의 핵무력이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사실 북한 관료로서는 미국 제국주의의 위협에 직면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가 전쟁을 억제하는 효과를 내더라도 불안정을 제어해 주지도 못하고, 영구적으로 전쟁을 막아 주지도 못한다.

오히려 (필자가 위에서 설명했듯이) 미국은 북한의 ‘위협’을 과장해 자국의 전략과 대외정책을 관철시켜 왔고, 이는 불안정을 키워 왔다.

게다가 실제로 핵무기가 사용된다면 그것이 미국 제국주의와 그 협력자들만 타격하는 것은 아니다. 핵공격으로 훨씬 더 많이 희생되는 것은 노동계급 등 보통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 북한 핵무기는 반제국주의 연대를 건설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요컨대 북한 핵은 정의로운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고, 핵발전 반대 운동과도 조화되기 어렵다.

온건 좌파는 북한이 평화를 위협하며 긴장 고조에 주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정의당은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남한 국가의 이해관계를 존중하며 늘 이런 태도를 취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고, 당 논평에서 추가 제재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사회진보연대도 최근 들어 북한을 더욱 비난한다. 사회진보연대는 중국·러시아보다는 미국 중심의 기존 국제 질서가 더 낫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눈으로 한반도 문제도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견해들은 북핵 문제의 더 큰 책임이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에 있다는 점을 놓치는 것이다. 제국주의가 세계 자본주의의 국면임을 보아넘긴 채 특정 강대국(가령 러시아)이 상대적 약소국들(가령 우크라이나)을 억압하는 문제로 축소시켜 이해하면 정의당과 사회진보연대처럼 적과 친구를 혼동할 수 있다.

항구적

한편, 일부 급진좌파는 북한 핵무기를 지지하지 않고 북핵 문제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책임이 크다고 옳게 보면서도, 평화협정과 핵무기금지조약 체결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는 평화주의적 대안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강대국들 간의 경쟁은 국가 간 합의로 항구적으로 제어될 수 없다는 점에서 평화주의적 해법에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세계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국가 간 협정으로 평화의 지속이 가능하다고 보면 개혁주의로 미끄러질 공산이 크다.(카우츠키 등 제2인터내셔널의 결정적 시험대는 평화주의 문제였다.)

지금까지 북한 ICBM 발사를 세계의 지정학적 불안정 증대라는 맥락 속에서 살펴봤다. 그리고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자행해 온 대북 압박의 산물임을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에게 앞으로 주변 정세가 더 위험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미국과 한국 지배자들이 가하는 대북 제재와 압박에 반대해야 한다. 곧 한미연합훈련이 진행될 예정이고,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에 대응하자며 한반도 수역에서 한·미·일 3국 연합훈련도 제안했다.

다음 달에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이런 일에 더 적극적인 협조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이미 윤석열 인수위는 미국으로 대표단을 보내어 미군 핵전력의 한반도 전개 문제를 협의했다.

우리는 미국과 한국 정부가 사드 추가 배치 등 군비를 증강하고 군사 훈련을 강화하는 데에도 반대해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반제국주의적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 서로 싸우는 열강 중 어느 한 쪽을 지지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제국주의가 경쟁적 자본 축적의 논리에서 비롯했다는 점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은 반자본주의와 분리돼서는 안 될 것이다.

한미연합훈련 등에 의한 대북 압박에 반대해야 한다 ⓒ출처 주한미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