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 대 보우소나루 결선을 앞둔 브라질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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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극우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10월 2일 대선 1차 투표에서 탈락하지 않은 것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보우소나루는 노동자당(PT) 후보 룰라의 낙승을 점치던 여러 여론조사 결과보다 10퍼센트포인트 이상 많은 43.2퍼센트(약 5100만 표)를 득표했다.
보우소나루의 자유당은 같은 날 치러진 총선에서도 최다 득표해, 하원 제1당(513석 중 99석)이 됐고 상원 의석 27석을 두고 벌어진 보궐선거에서 19석을 차지했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반대하는 법안을 좌초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브라질 극우의 세가 만만찮게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보우소나루는 육군 대위 출신 직업 정치인으로, 노동자당(PT) 정부의 배신과 뒤이은 정치 위기 속에서 등장해 집권했다. 보우소나루는 노동자들과 차별받는 사람들을 공격하며 극우 면모를 한껏 드러냈고, 이는 브라질 극우가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보우소나루는 채굴 자본들을 위해 아마존 우림을 유린했다. 그러면서 “우생학적으로 열등한” 아마존 토착 원주민들이 우림에 사는 “범죄”를 저질렀으므로 “재판 없이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우소나루는 노동자 임금을 공격하고 여성이 남성과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보우소나루는 경제의 ‘정상’ 가동을 팬데믹 대응보다 중시해서 방역에 훼방을 놓았다. 사망자가 폭증하자, 보우소나루는 백신 반대 음모론을 부추기고 방역 반대 집회를 주도했다.
그 덕분에 브라질 군부독재 시절(1964~1985년)부터 존재하던 개신교 우익, 극우, 심지어 소수의 공공연한 나치도 세를 키웠다.
브라질 대자본가들은 보우소나루가 이윤에 도움이 되리라 여겨지는 한에서는 그를 보아넘겼다.
하지만 보우소나루 취임 1년도 안 돼 세계 경제가 급격히 둔화하자, 대자본가들은 보우소나루와 긴장을 빚기 시작했다. 그가 약속한 경제 회복은 이뤄지지 않았고, 그가 벌인 노동자 공격도 경기 둔화 상황에서 이윤을 벌충하기에는 충분치 못했다.
이제 상당수 대자본가들은 불안정을 키우는 보우소나루보다 노동자당 후보 룰라를 선호하는 듯하다. 10월 30일 결선 투표에서 룰라가 우세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투표로 상황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보우소나루는 (자신의 우상 트럼프가 그랬듯) 선거 결과에 불복하겠다며 공공연히 “내전”과 쿠데타를 선동하고 있다.
브라질 군부는 여기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 보우소나루 정부하에서 많은 군부 출신 인사들이 정부 고위직에 진출했지만, 이들은 대자본가들과도 유착해 있다. 이들이 대자본가들의 희망을 거슬러 친위 쿠데타를 앞장서서 벌일 가능성은 낮은 듯하다.
그럼에도 보우소나루와 브라질 극우는 보우소나루의 선동을 이용해 세를 과시하려 모험을 감행할 수도 있다.
룰라가 보우소나루의 대안인가?
룰라는 1차 투표에서 48.4퍼센트(약 5700만 표)를 얻어 1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룰라는 결선 투표에서도 승리할 듯하다. 이는 브라질 안팎의 노동계급 사람들 대부분에게 안도감을 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룰라에 대한 기대보다는 보우소나루에 대한 증오 때문에 룰라를 찍었다.
사실, 보우소나루의 집권은 룰라와 노동자당의 책임이 크다.
노동자당은 대중 파업 물결 속에서 1980년 창당했고, 1990년대 우파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감에 힘입어 2002년 말 집권했다.
집권한 룰라는 빈민 소득 보조 정책(보우사 파밀리아) 등 수출 수익 재분배 정책을 추진해 심각한 빈곤을 소폭 완화시켰다.
그러나 룰라 정책에 과감함은 없었다. 룰라 임기가 끝난 2008년 OECD는 룰라 정부의 사회 정책으로 인한 지니계수 하락 효과가 0.01포인트에 불과했다고 추산했다.
룰라 정부가 2000년대에 위기를 맞지 않은 이유는 호황 덕분이었다. 당시 중국 경제가 고성장을 구가하며 브라질산 원자재와 상품을 막대하게 수입했고, 그 수익의 아주 적은 일부만으로도 극빈층의 생활이 나아졌던 것이다.
당시 브라질 안팎의 좌파들은, 룰라 정부가 불가피하게 IMF의 압박을 일부 수용하면서도 반신자유주의적 정책도 펴서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려 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타협을 통해 개혁을 도모하는 룰라의 노선에는 엄청난 대가가 따랐다.
룰라는 군부독재 시절부터 권력을 누린 우파들과 손잡고 거국 내각을 구성했다. 룰라의 첫 부통령은 제조업 대자본가였고, 룰라가 처음 지명한 중앙은행장은 정통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였다.
룰라는 전임 정부의 친기업 정책을 계승했고, 민영화 정책인 민관협력(PAC)을 맹렬히 추진했다.
또, 재정 적자를 피하려고 공공복지 지출을 삭감하고 연금을 개악했다. 20퍼센트에 육박하는 고금리 정책을 고수해, 거액을 축장해 둔 브라질 대자본가들의 부가 폭증했다.
아마존 우림 대규모 개발도 룰라 정부가 시작한 것이다. 룰라 재임기에 개발 과정에서 살해된 토착 원주민의 수는 전임 우파 정부 시기보다 168퍼센트 늘었다.
룰라 정부하에서 노동자당은 더 온건해졌고 좌파는 주변화됐다. 노동자 운동 출신 인사들이 장관이나 국영기업 사장이 됐고, 수많은 노동자당·노동조합·사회운동 활동가들이 정부 하급 관료가 됐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주도한 혁명적 좌파들은 룰라 재임기에 룰라 정부의 복지 공격을 비판했고, 그 때문에 룰라에 실망한 노동자들 사이에서 약간 지지를 늘리기도 했다.
2007~2008년에 세계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지자, 룰라의 후임 노동자당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는 긴축을 적극 추진했다. 룰라 정부가 그나마 시행했던 복지 정책들은 호세프 임기 첫 몇 달 만에 무력화됐다.
노동자당의 인기가 결정적으로 추락했다. 게다가 우파는 노동자당이 연루된 대규모 부패 스캔들을 이용해 정치 공세를 폈고, 결국 호세프는 탄핵됐고 룰라는 수감됐다.(관련 기사 본지 181호 ‘노동계급의 이익을 못 지켜 우파의 정치 공세도 못 막다’)
누구의 구원 투수인가
룰라의 지향은 정부를 거치며 더 온건해졌다. 이번 대선 때 룰라는 노동자 권리 신장과 서민 구제에 관해서는 거의 주장하지 않았다.
룰라는 신자유주의적 우파와의 동맹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룰라의 부통령 후보는 2006년 대선 당시 룰라의 경쟁 후보였던 우파 정치인 헤랄도 알키민이다.
노동자당 지지 노동조합과 노동자당 지지 NGO들은 사용자 단체인 브라질은행협회·상파울루산업연맹과 함께 선거 자금 모금을 조직했다.
1차 투표에서 격차가 예상보다 근소하자 룰라는 우파에 더 구애하고 있다.
룰라가 당선되더라도 그가 보우소나루의 노동자 공격과 환경 파괴를 되돌리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브라질을 덮칠 세계적 경제 위기에 대응해 기존 정책들을 큰 틀에서 유지하며 땜질할 공산이 크다. 바로 그런 방향성 때문에 브라질에서 극우가 부상했는데도 말이다.
룰라의 ‘좌우 협력’에 대한 정치적 의존은,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지배자들과 협력하고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대위기 시기에 노동자를 지키고 극우의 재부상에 맞서려면 아래로부터 폭넓은 좌파적 투쟁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혁명적 좌파를 비롯한 급진 좌파들의 선제적 능동성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