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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집 피해 한국 온 러시아인들을 난민으로 인정하라

난민 인정 심사를 받게 해 달라는 소송에서 이긴 러시아인 난민들에 대해 법무부가 항소했다. 법무부는 이들을 항소심 결과를 기다리며 또다시 불안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처지로 내몰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징집을 거부한 러시아인 난민들이 인천공항에 와 난민 신청을 하기 시작했다. 법무부는 이들에게 난민 심사를 받을 기회를 주지 않기로 결정하고 입국을 막았다. 이 때문에 러시아인 난민 5명이 수개월째 인천공항에 억류됐다.

러시아인 난민들은 난민 지원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법무부 결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월, 5명 중 3명에 대한 판결이 나왔고 2명이 승소했다.

안타깝게도 1명은 패소했다. 그는 결국 3월 4일에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했다고 한다.

그런데 2월 28일에 법무부는 승소한 2명에 대해 항소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입국은 허가하되 주거를 영종도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이하 ‘영종도 센터’)로 제한했다.

물론 인천공항에 억류돼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영종도 센터는 외진 곳에 있는데다 허가를 받아야 외출·외박이 가능하다. 외부인의 방문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법무부는 재판 기간 중 난민 신청을 하지 말라는 조건도 달았다. 일단 난민 신청을 하면 강제송환 금지 원칙이 적용돼 쫓아내기 어려워진다.

2월 25일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집회 참가자가 징집을 피해 한국에 온 러시아인의 난민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조승진

법무부는 단순 징집 거부가 난민 인정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협소하고 까다로운 난민 인정 기준 자체가 문제다. 이런 식이면 불의한 전쟁에서 헛되이 목숨을 잃지 않으려는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난민으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백 보 양보해서,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할 사유가 있는지 여부가 법무부와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릴 만큼 쟁점이라면, 정식 난민 심사를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소송으로 시간을 끌며 난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난민인권네트워크와 전쟁없는세상은 법무부에 러시아인 난민의 입국 허가와 난민 심사 기회 부여를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여 왔다. 법무부의 항소 방침이 알려지자 난민인권네트워크는 3월 1일 이를 규탄하는 성명도 발표했다.

신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을 합쳐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유엔난민기구는 지난해 12월 기준 해외로 떠난 우크라이나인 난민이 1550만 명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징집을 피해 나라를 떠난 러시아인도 수십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된다.

그러나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과 러시아 모두 수많은 인명 피해도 아랑곳 않고 자신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더 확대하려 한다.

윤석열 정부도 여기에 일조하고 있다. 윤석열은 폴란드 등 제3국을 통해 무기를 우회 지원하는 등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방을 편들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삶의 터전이 파괴돼서든,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든, 징집이나 정치적 억압을 피해서든 난민이 늘어날 것이다. 한국으로 오는 난민도 늘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서방 제국주의 강대국들에 협력해 이득을 얻으려고 하면서도, 그 희생자인 난민의 유입은 경제적·정치적 부담으로 여기며 억누르려 한다. 법무부가 “향후 징집을 피해 난민 신청하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고 항소 이유를 밝힌 것이 이를 잘 보여 준다. 한국행을 고려하는 난민들에게 한국으로 오지 말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 이 소송의 진정한 목적인 것이다.

요컨대 윤석열 정부는 러시아인 난민이든, 수출한 무기와 그로 인해 확대될 전쟁 때문에 희생될 사병과 민간인이든 평범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한국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서방 제국주의 강대국의 지배자들이 아니라 우크라이나·러시아의 평범한 대중과 연대해야 한다. 그 연장선에서 러시아인 난민도 환영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러시아인 난민들에 대한 항소를 철회하고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

따뜻한 물조차 쓸 수 없는 공항 억류 난민

본지는 아직 1심이 진행 중이라서 인천공항에 억류돼 있는 한 러시아인 난민과 연락이 닿았다.

그는 3개월 전에는 비행기 티켓을 구입해 한국에 살고 있는 부인이 인천공항 출국장으로 와서 입을 옷과 생필품을 전달해 줄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21년간 거주하고 있는 그의 부인은 한국 국적도 취득했다.

그러나 현재는 돈이 떨어져 부인을 만날 수 없다며 “한국 정부가 우리 가족을 파괴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공항 내 생활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한 달 전부터는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현재 머무는 지하층 출국 대기실과 3층 장애인 화장실을 오가며 빨래와 세면을 해결하고 있다. 샤워시설이 없기 때문에 씻는다고 해도 페트병에 물을 담아 몸에 뿌리고 손으로 적시는 게 전부다.

그는 콧물·두통 등 감기 증상에도 시달리고 있다.

인천공항에 억류돼 있는 러시아인 난민이 화장실에서 힘들게 빨래와 샤워를 하고 있다 ⓒ제공 인천공항 억류 러시아인 난민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힘듭니다. 출입국 당국과 법무부가 우리를 이렇게 다루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왜 사람을 이렇게 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무부가 1심에서 승소한 2명에게 항소한 것은 1심이 진행 중인 2명에게도 압박이 될 것이다. 1심에서 이겨도 법무부가 항소할 게 뻔하니, (영종도 센터로 거처가 옮겨지기는 하지만) 계속 버틸지 고민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와 함께 1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한 난민은, ‘한국 정부가 우리를 도와 주지 않는데 또 6개월(법무부가 항소할 경우 예상되는 소송 기간)을 여기서 살 수 없다’며 다른 나라로 떠날지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1심 판결은 3월 28일로 예정돼 있다. 재판부는 이들의 손을 들어 줘야 한다. 또 법무부는 항소할 것이 아니라 징집 거부 러시아인들을 즉각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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